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오늘도 연일 폭염이 계속되었습니다. 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아침 일찍 농사일을 시작했습니다.
어제 끝난 줄에서부터 다시 피를 뽑기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행자님 세 명이 함께 했습니다.
의자에 앉아서 피를 뽑던 스님은 어느 순간부터 의자를 두고 앞으로 쭉쭉 나갔습니다. 스님은 가장 먼저 두 줄을 끝냈습니다.
그리고 되돌아서 아직 멀리서 피를 뽑고 있는 행자님의 줄에서 함께 피를 뽑았습니다.
모두 두 줄씩 피를 다 뽑고 나서 바닥에 놓아두었던 피를 거둬들였습니다. 피가 풍년이었습니다. 피는 논둑에 자란 풀 위에 쭉 깔았습니다.
“이렇게 논둑에 깔아 두면 풀이 자라는 걸 막을 수 있어요.”
논을 수차례 왔다 갔다 하며 피를 다 거둬들였습니다. 트럭을 타고 지나가던 마을 분이 신기한 듯 물어보았습니다.
“스님, 뭐하셨어요?”
“논에 피를 뽑았어요.”
“고생 많으시네요.”
트럭이 지나가고 스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요새 피 뽑는 사람이 없어서 신기한가 봐요.”
오전 울력을 마치고 두북수련원으로 돌아와 낮에는 뙤약볕을 피해 실내에서 업무를 보고 원고 교정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오후 5시 무렵에 갑자기 밖에서 비가 쏟아지는 소리가 났습니다.
“스님, 비가 옵니다.”
행자님이 크게 소리치며 알렸습니다.
“그래요? 어서 들깨 모종을 심으러 갑시다.”
비가 오기 시작하자 스님은 재빨리 작업복을 갈아입고 밭으로 향했습니다. 요즘 날씨가 덥고 비가 오지 않아서 지난번에 옮겨 심어 놓은 들깨 모종이 많이 말라버렸습니다. 마른 들깨를 뽑고 다시 모종을 심기 위해 비가 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반가운 비가 내리자 스님은 하던 일을 두고 급히 나가서 우비도 입지 않고 비를 맞으면서 들깨 모종을 심으러 갔습니다. 직장을 퇴근하고 온 향존법사님과 봉화에서 온 희광법사님이 함께 했습니다.
“스님, 비옷은 안 입으세요?”
“괜찮아요. 날도 더운데 시원하게 맞으면서 심죠.”
부슬부슬 내리던 비가 모종을 심기 시작하자 장대비로 변했습니다. 혹시 비가 그칠까 걱정했는데 비가 쏟아지니 옷이 흠뻑 젖어도 반가웠습니다.
함께 시작했지만 스님만 앞으로 쭉쭉 나갔습니다. 향존법사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아무리 빨리 해도 스님을 따라갈 수가 없네요.”
“나는 대충 심고 있어요. 마르면 또 심으면 되죠.”(웃음)
두 두둑에 모종을 다 심고 나자 비가 잦아들었습니다.
“수고했어요! 비를 맞으면 시원할 줄 알았더니 그래도 덥네요.”(웃음)
비가 땅 밑까지 충분히 적실만큼 내리지 않아 행자님 한 명이 남아서 물을 주기로 하고 스님은 밑밭에 가서 채소를 수확해왔습니다. 내일 새벽에 희광법사님이 봉화로 돌아간다고 해서 급히 채소를 수확했습니다.
“스님, 강연 시간이 거의 다 되었습니다.”
“아이고, 늦겠네요. 빨리 갑시다. 혹시 강연 전까지 못 도착하면 방송팀에게 농사 영상을 일단 틀어달라고 전해주세요.”
울력을 마치고 서둘러 두북 수련원으로 향했습니다. 땀과 비로 젖은 작업복을 벗고 물만 한 바가지 끼얹은 후 가까스로 강연 직전에 방송실에 들어갔습니다.
4700여 명이 생방송에 접속했습니다. 스님의 소개 영상이 끝나자 스님이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저는 조금 전까지 들깨를 심다가 시간을 놓쳐서 급히 쫓아와 겨우 강의 시작 전에 도착했습니다. 기다리던 비가 내려서 우비도 입지 않고 밭에 가서 들깨를 심고 왔어요.
우비를 입지 않고 들깨를 심으면 두 가지 좋은 점이 있어요. 첫째, 비가 오면 옷은 젖지만 들깨가 살 수가 있습니다. 둘째, 비가 안 오면 옷을 안 버릴 수 있고 들깨는 물을 주면 됩니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습니다. 그런데 우비를 입고 들깨를 심으면 비가 안 올 때 우비를 또 벗어야 되는 수고로움이 생겨요. 그러니 우비를 안 입어서 비를 맞게 되더라도 ‘들깨가 살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비가 오는 게 더 좋습니다.” (웃음)
이어서 지난주에 대중들과 함께 논매기와 밭매기를 했던 모습을 영상으로 함께 보았습니다.
“요즘은 이렇게 매일 논에 들어가서 피를 뽑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영상으로 보니까 재미있어 보이죠? 구경하면 재밌어 보이는데 직접 해보면 힘듭니다. 옛날부터 제일 힘들다고 하는 노동이 6월에 보리타작을 하는 것이고, 두 번째가 7월에 논매기 하는 것입니다. 뙤약볕에 논매는 일이 매우 힘든 작업 중에 하나예요. 요즘은 논에 피약을 치기 때문에 피를 뽑을 일이 별로 없는데, 저희 정토회는 유기농 하느라고 피약을 안 쳤더니 피가 모보다 더 많이 자라서 피를 뽑는 게 보통 일이 아닙니다. 매일매일 피를 뽑고 있는데 진척이 잘 안 되고 있어요.
저희 공동체 대중들만으로는 역부족이어서 대중들에게 연락을 좀 해서 도와달라고 했더니 45명이 왔어요. 45명이 논에 들어가서 오전 내내 피를 뽑았는데도 다 못 할 정도로 풀이 많았습니다. 그만큼 자연의 복원력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농촌에서 유기농을 하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약을 치지 않고 농작물을 생산하는 것은 실제로 해보면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이렇게 노동을 해보면 우리가 매일 먹는 농산물이 정말 소중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이어서 즉문즉설을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네 명이 손들기 버튼을 누르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남자 친구가 치아 관리를 소홀히 해서 화가 나는데, 남자 친구를 어떻게 대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인지 질문했습니다.
치아 관리를 소홀히 하는 남자친구에게 화가 납니다
“사랑은 상대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상대를 위해 조언을 해주는 것입니까? 제가 좋아하는 남자 친구가 치아 관리를 소홀히 해서 고민입니다. 처음에는 남자 친구가 비용 문제를 들기에 보험 적용이 되는 때를 기다려줬더니, 그다음에는 치과 가는 두려움에 미안하다는 말만 하며 미뤄서 제가 화를 내면서 치과 예약을 잡으라고 했습니다. 남자 친구가 치아로 인해 고생할 것을 걱정해 치료하라고 조언하는 것이 연인으로서 할 일인지, ‘네 몸은 네가 알아서 해라’ 하고 관심 없이 내버려 두는 것이 사랑에 더 가까운 건지, 어느 것이 맞나요?”
“관심 없이 내버려 두고 ‘네가 알아서 해라’ 하는 것은 외면입니다. 화를 내면서 ‘고쳐라’ 하는 것은 집착이에요. 둘 다 좋은 게 아닙니다. 두 가지 심리가 정반대 같지만 사실은 같은 심리예요. 상대를 내 마음대로 하려고 하기 때문에 뜻대로 안 되면 '에이, 죽든지 살든지 모르겠다. 네 마음대로 해라' 이렇게 되는 겁니다. 내 마음대로 하려고 하지 말고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치아가 걱정이 되면 ‘치아는 이렇게 관리하는 게 좋다’ 하고 조언을 해주면 돼요. 그 조언대로 하고 안 하고는 그 사람의 문제입니다. 내 애인이든 남편이든 자식이든 조언대로 안 한다고 화를 내면 그것은 집착이지 사랑이 아니에요.”
“하나 더 여쭤도 될까요? 엄마가 몸이 안 좋으신데 저는 엄마를 좋아하니까 빨리 병원에 가보라고 얘기를 했어요. 그런데 엄마가 무섭다고 병원에 안 간다고 하세요. 이 경우에도 집착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마찬가지죠. 좋은 일도 집착을 하면 갈등이 생깁니다. 상대가 자발적으로 가도록 안내는 하되 본인이 안 가겠다면 방법이 없습니다. 상대가 돈이 없어서 못 가면 질문자가 돈을 대주면 되고, 몰라서 못 가면 가르쳐 주면 되고, 이런 건 다 해야 돼요. 그러나 본인이 안 하겠다고 하면 방법이 없습니다. 정신질환이라서 본인의 판단력이 정상적이지 못하다 하더라도 강제 입원은 굉장히 어렵습니다. 인권 침해가 되거든요.
요즘은 타인의 의사에 반해서 어떤 것을 강압하면 다 인권 침해가 됩니다. 미국에서는 국민 전체의 건강을 위해 정부가 백신을 맞으라 하는 것도 개인의 인권 침해라고 저항을 하잖아요. 서구 사회는 개인주의가 굉장히 발달했기 때문에 그걸 왜 국가권력이 관여하느냐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서구 사회에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초기에 빠르게 확산이 되었죠. 그래서 개인주의적 자유가 꼭 좋은 게 아니구나 하는 걸 우리가 알게 되었잖아요. 그렇다고 중국처럼 공익을 위해서 강제적으로 집행하는 것도 좋은 게 아닙니다. 유럽처럼 개인에게 다 맡기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개인의 자유는 존중을 하되 공익을 위해서는 개인도 전체의 방침을 따라주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타인이 거부하는 것을 강제로 하는 것에 대해서는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규제가 있습니다. 본인이 치료를 거부할 때 강제로 치료를 하려면 확실하게 누가 봐도 이상 증상이 나타나야 합니다. 자살을 하려고 한다든지, 기물을 부순다든지, 상대를 폭행한다든지, 이럴 때는 강제 입원이 가능하지만, 그냥 일반적인 증상으로는 강제 입원을 시키기가 어렵습니다.
예전에는 어린아이들에게 교육상 매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부모도 선생도 아이를 때려서 가르쳤잖아요. 그것을 ‘사랑의 매’라고 불렀습니다. 지금은 어린아이라도 말을 안 듣는다고 때리면 아동학대 죄가 됩니다. 시대가 바뀌었다는 얘기예요. 이런 행태가 좋은지 나쁜지는 두고, 시대가 그렇게 바뀌었다는 겁니다. 어떤 것도 우리는 타인에게 강제할 수가 없습니다.
옛날에는 내가 누구 좋다고 막 따라다니는 것을 열렬한 사랑이라고 그랬잖아요. 편지도 계속 보내고, 집 앞에 가서 꽃 들고 기다리고, 이런 모습들이 소설에도 많이 나왔습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말이 통하는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하면 ‘스토킹’이라고 해서 사생활 침해 죄가 됩니다.
어떤 것도 상대가 원하지 않는 것을 강제할 수가 없는 것이 지금 현실입니다. 부모가 자식에게든, 자식이 부모에게든, 부부지간에든, 이 현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사랑의 이름으로 가정폭력이 일어나는 겁니다. 좋은 마음으로 권유를 하되, 조언대로 하고 안 하고는 상대의 자유라는 것을 꼭 명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들이 좋은 뜻으로 한 것의 결과가 나빠집니다.”
“말씀해 주신 대로 상대에게 중요성을 깨우치도록 조언을 하고, 집착은 하지 말고, 비용 도움이 필요하면 도움을 주는 쪽으로 하면 될까요? 만약 스님이 치아 검진을 받으셨는데 이대로 그냥 두면 60대에는 임플란트를 10개를 하게 된다고 들었을 때, 제가 스님 곁에서 수행하는 대중이라면, 계속해서 치료를 하셔야 된다고 조언을 드릴 것 같거든요.”
“그렇게 조언을 하면 되죠. 그걸 하고 안 하고는 그 사람의 사정이고요. 그런데 너무 지나치게 잔소리를 해서 역효과가 나면 안 하는 게 나아요. 적절하게 유머스럽게 접근하는 게 필요합니다. 때로는 효과를 위해서 약간 협박을 해도 되고, 약간 큰 소리를 쳐도 돼요. 그러나 진짜 화가 난다면 내 생각대로 안 했기 때문에 생긴 집착입니다. 짐짓 화난 척하고 한 번 해보는 정도는 괜찮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나니 밤 9시가 훌쩍 넘었습니다.
내일은 새벽에 천일결사 기도를 생방송하고, 대중들과 함께 논매기를 한 후, 오후에는 서원행자 신청자 교육에 참석해 즉문즉설을 하고, 저녁에는 다시 논매기를 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