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벧전1:22-25절) 우리를 거듭나게 한 것
오늘날 우리에게 참으로 감사한 것이 많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감사한 것은 우리가 오늘도 이렇게 건강하게 살아있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우리가 지금 병원에 입원해 있거나, 죄수로 감옥에 들어가 있다면, 하나님이 만드신 이 아름다운 하늘과 땅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거나, 대화도 나누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소외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질병은 환자를 사회로부터 소외시키고, 건강한 사회활동을 하지 못하게 합니다. 또한 죄는 사람을 감옥에 격리시켜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없게 합니다.
요즘 군대가 많이 좋아져서 옛날같이 때리지도 않고, 병사들을 인격적으로 대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군대는 아무리 잘해 주어도 그 생활은 답답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자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세상에 새로운 삶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만일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우리의 존재 자체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났기에‘나’라는 존재가 생기게 되었고, 또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경험들을 하고, 많은 사람들을 알고, 사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존재하는 것만으로는 무언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는 많은 소외와 미움과 자유를 억제하는 것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진정으로 아름답고 풍성한 삶을 살려면, 이 세상에 존재해야 할 뿐만 아니라, 소외되지 않고, 자유가 보장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질병과 가난과 미움과 정치적인 억압은 우리를 소외시키고, 진정한 자유를 빼앗아갑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누구나 자유를 원합니다. 더 진정한 자유와 더 많은 자유를 원합니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아무리 자유를 얻고, 모든 것들을 다 내 마음대로 한다 해도 이 소외는 없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진정한 소외와 억압의 원인은 죄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진정으로 아름답고 후회가 없는 삶을 살기위해서는 인간으로 한번 태어난 것으로는 부족하고,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그것을 성경은“거듭난다(be born again)”라고 말합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한 번 더 태어나는 경험들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의 존재 의미를 알지 못하고, 무의미하게 살다가 어느 한 순간 어떤 계기가 되어서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깨달을 뿐만 아니라, 자기가 이 세상에서 아주 잘할 수 있는 길을 발견하는 이것입니다.
그 순간이 사람은 세상에서 각광을 받고, 유명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결국 그것이 자기 발견의 한 방편은 될 수는 있겠지만, 진정한 소외와 억압을 해결해 주지는 못합니다.
사람이 진정으로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려면, 하나님과 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죄의 담이 허물어져야 합니다. 그것은 마치 독일 베를린 장벽이 허물어지는 것보다, 식물인간으로 살던 사람이 의식이 돌아오는 것보다 훨씬 더 엄청난 기적중의 기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믿는다고 하면서도 우리 자신에게 일어난 이 엄청난 변화와 축복을 모르고 산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 성경에 무지해서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는 말씀으로 이것을 깨닫고 해결 받아야 합니다.
거듭난다는 것은 마치 중환자실에서 의식을 잃고, 누워있던 사람이 의식이 돌아오는 것이요, 감옥에 갇혀서 평생 햇빛을 보지 못하고 살던 사람이 석방되어 태양 아래서 마음껏 살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내 자신이 가난하고, 직장이 없고, 결혼도 하지 못한 것만 생각하고, 여전히 중환자처럼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어진 이 거듭남이란 사건은 엄청난 축복입니다.
이 사건은 우리를 잡아매고 있던 소외와 죄의 사슬들을 모든 끊어져 버리고, 이제 마음껏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마음껏 하면서 살 수 있는 자유(自由)가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Ⅰ.우리를 거듭나게 하신 말씀
1:23절)너희의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우리 생애에 가장 중요한 기적은 우리가 이 세상에 사람으로 태어나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일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우리의 존재는 영원한 어둠 속에 있을 것입니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나”라는 존재를 알지 못할 것이고,“나”라는 존재는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났기 때문에 존재의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 세상에 동물(돼지나 소나 닭)으로 태어났다면, 어떨까? 그야말로 우리의 인생은 비참하고 허무하기 짝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많은 문제에 사로잡혀서 이 세상에 인간으로 살아가는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사람들은“내가 태어나지 않은 것이 차라리 좋았을 뻔했다”고 말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사실 우리도 전에는 이 세상에 존귀한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안에 가장 필요한 것이 빠져 있는 바람에 존재의 의미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 중요한 것이 곧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면, 자기 욕심(慾心)과 야망(野望)을 위해 살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이 이렇게 자기 욕심과 야망을 위해 사는 자체가 소외요, 억압인 것입니다. 이것이 곧 인간답지 못한 것입니다.
인간에게 가장 놀라운 것은 이 세상에 사람으로 태어나서 한 평생을 살아 보는 것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인간이 진정으로 이 세상에서 한없이 아름답고, 축복된 삶을 살려면, 소외와 억압 쇠사슬을 끊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하나님의 강력한 사랑이 부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단 이 세상에서 살아 있는 자체가 대단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중요한 것을 모릅니다. 그래서 전혀 자신의 의미를 모르거나, 더 심한 경우는 짐승 같은 욕망을 위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본문은 우리 인간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사건은 우리가 이 소외와 억압의 끈을 끊고, 진정한 새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곧 우리가 신앙적으로 거듭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를 잠자던 무덤에서 일으키는 것이요, 영원한 죄와 속박(束縛)에서 건지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어떻게 하면 우리 인간들에게 이런 위대한 일이 일어 날 수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의 다른 어떤 것으로도 불가능하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1:23절)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우리가 어떤 새로운 세상 지식을 듣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일이 될 때가 있습니다. 특히 학교에서 어떤 지식을 배웠기 때문에 두고두고 인생을 사는데, 큰 힘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다는 것은 우리 영혼에 치료하는 레이저(laser)광선을 쪼이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죽었던 영혼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 살아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능력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경은“씨”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에서부터 비롯하여 앞으로 무궁무진한 좋은 나무가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처음 거듭나는 것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일어납니다.
가끔 사람들은 중생의 시기를 아느냐? 모르느냐? 는 것으로 사람들을 넘어지게 하는 이단(구원 파)가 있는데,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우리는 정확하게 언제 거듭났는지 잘 모릅니다. 그런데 거듭난 후에는 분명한 것이 나타납니다.
그것은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내 죄를 대신해 죽으셨다는 것이 믿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안에 굉장히 중요한 변화를 가져오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나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죄의 담이 허물어지는 것입니다.
인간의 소외중에서 가장 무서운 소외가 곧 하나님으로부터의 소외와 죄의 억압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를 구주로 믿음으로 이 담이 허물어지고, 억압이 풀려 버리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작은 씨에 불과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모든 축복이 다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에서부터 시작하여 어마어마한 능력과 축복이 우리의 삶에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말한 이 씨는 썩지 아니할 씨이기 때문에 믿음의 나무가 자라다가 중간에 썩는 일 없이 계속적으로 뻗어나고, 무궁무진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인생에게 있어서 가장 귀한 보배는 곧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는 자는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나게 됩니다. 그러나 이때 태어나는 것은 우리가 세상에 처음 태어나는 것과는 그 씨가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Ⅱ.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우리가 이렇게 새로 거듭난 자라면, 이제부터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까?
1:22절)너희가 진리를 순종하므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우리가 예수를 믿고, 새 사람으로 태어난 후,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 는 것이 생각보다 굉장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이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기 때문에 매일 찬송하고, 예배드리고, 기도만 하면서 살면 좋겠지만,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또 살아야 합니다.
즉 공부를 해야 하고, 직장을 다녀야 하고, 장사도 해야 합니다. 또 기왕 공부하고, 장사하고, 직장생활을 해야 한다면, 더 잘하고 싶은 욕심이 생겨서 한번 잘해 보자고 열심을 내어 공부도 하고, 돈도 벌다보면, 도대체 거듭난 것과 거듭나지 않은 것의 차이가 무엇인지? 모르게 되고, 예수 믿고 난 후, 더 욕심이 많아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믿는 사람들은 천국도 욕심내고, 이 세상에서도 좋은 축복은 모두 다 가지려고 하는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 믿고 난 후에도 은혜로만 살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왕 세상에서 공부도 하고, 돈도 벌어야 한다면, 남들보다 잘하고, 성공하고 싶은 욕심이 있는 것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더 중요한 것은 영적인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알아가고, 믿음이 자라고, 특히 죄의 습관(習慣)에서 깨끗함을 입고, 또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고, 봉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연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영적인 필요 중에서 어느 것을 더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하느냐? 이것이 우리에게 언제나 갈등이 됩니다. 즉 학생들에게는 성경 말씀을 읽고, 은혜 받는 일에 주력할 것인가? 아니면, 지금 이 시간에 영어 단어를 더 외우고, 학과 공부를 더해서 세상 적으로 성공하는 일에 주력해야 할 것인가? 하는 갈등입니다.
또 어떤 경우는 내가 영적으로는 많이 성장했는데, 왜 하나님은 여전히 가난하게 하시고, 세상 적으로 할 일을 주시지 않을까? 고민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느 것 하나에만 치중할 수는 없습니다.
차라리 어느 한 가지에만 치중하는 것은 간단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삶은 결코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두 가지 모두를 해아 합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를 하는 태도가 다르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의 영적인 필요는 뜨거운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즉 신앙생활을 열정적으로 해야만, 영적으로 큰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일은 열정이 일어나려고 할 때도 열정을 좀 식히면서 성실하게 해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일단 예수를 믿고 난 후에는 영적인 필요가 더욱 중요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입니다. 우리는 성경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가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연결시키는 생명줄과 같기 때문입니다. 대개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에서 말씀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면, 사회생활도 소극적인 것을 많이 보게 됩니다. 때로는 우리가 하나님에 대하여 갈급하기 때문에 세상일을 등한시할 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학생 때는 너무나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한 나머지, 학교일을 등한히 할 때도 있으나, 이런 것은 일시적인 현상이고, 너무 오랫동안 한 쪽으로 치우칠 때는 세상 적으로 어려움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 거듭난 자라면, 하나님의 말씀에 헐떡거리면서 받아들이는 것이 정상인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아기가 너무 배가 고플 때, 엄마 젖 꼭지를 물고, 헐떡거리면서 젖을 빠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나 거룩해졌는지? 우리 영혼이 얼마나 깨끗해 졌는지? 판단하십니다. 세상 사람들(토개공 직원)은 돈 벌기 위해 쉽게 거짓말을 하지만, 우리에게 깨끗한 양심은 돈으로 살 수 없는 엄청난 보배입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약간의 이익보다는 깨끗한 양심을 지키는 것이 더 유익인 줄 알아야 합니다.
어떤 대선 후보는 선거철 표 얻기 위해 대형교회 이름을 올려놓고. 특권과 의무도 감당하지 않고 있다가 10년만에 소속 직분자라고 거짓말하는 바람에 딱걸려 망신만 당하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믿음의 형제들을 주안에서 사랑하므로 믿음의 열매를 맺어야합니다.
1:22절)...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할 수 있는 한 믿음의 형제들을 많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남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이 없습니다.
물론 내가 가진 재산을 다 팔아서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나눠 주고, 나는 간단하게 살면, 마음은 편할 수 있을지 몰라도 이것이 진정으로 다른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갈6:10절)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소중함을 되찾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위해 다른 것들은 부수적으로 사용되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영혼이 거듭나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영혼이 거듭나는 것이 가장 귀하고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모든 사람들은 그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럴 때는 어쩔 수 없이 말씀 외에 다른 것을 줄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구제나, 치료나, 돈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의 영혼이 살아날 수 있도록 기도하고 말씀을 전해 주는 것입니다.
Ⅲ.말씀은 길고 인생은 짧다.
히포 크라테스는“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고 했고, 우리나라 옛말은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마 히포 크라테스가 말한“예술”이라는 것도 그 사람이 남긴 봉사나 업적을 말하는 것일 것입니다. 사람이 젊었을 때는“인생이 짧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우리 인생에서 진정으로 무엇을 알고, 의미 있게 남을 위해 살 수 있는 기간은 너무나 짧다는 것을 많이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1:25절)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우리의“인생은 풀과 같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영광도 풀의 꽃과 같다”했습니다. 봄이 되면, 많은 풀들이 자라고, 또 꽃들이 핍니다. 그러나 그 풀들이 가을이 되면, 모두 시들고, 꽃은 보다 더 빨리 시들어 버립니다.
젊음이 좋은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일단 힘이 있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자신감이 있고, 또 실수를 해도 회복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일은 참으로 공평한 것 같습니다.
즉 젊은이에게 없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와 돈입니다. 만일 젊은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와 돈과 힘이 있다면, 그는 못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재벌 2세).
반면에 나이든 사람은 돈과 지혜는 있지만, 힘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제대로 인간 구실을 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조금 배우고 나면, 스스로 먹고 살아야 하고, 가정을 이루어 나가야 하기 때문에 돈을 벌어야 합니다.
그래서 한 때 순수했던 사람이 돈 맛을 알고 나면, 더 돈에 집착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 철이 들어서 제대로 남을 위해 살려고 할 때는 이미 나이가 들어서 인생의 무대에서 내려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제대로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시간은 나무나 짧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대에 한번 올라가 보지도 못하고, 인생을 마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이 세상에서 인간으로 살아 볼 수 있는 엄청난 기회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자기 한 사람 먹고 살기 위해 한 평생을 의미 없이 살다가 아까운 인생을 끝내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최고로 아름답고 멋진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길을 올바로 들어서야 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말씀의 능력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온 세상을 창조하셨고, 그 말씀으로 이 세상을 이끌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말씀이 내 인생을 멋지게 창조 할 것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말씀을 가까이하고 주야로 묵상하며,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면, 모든 일이 형통(亨通)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수1:7절).
또 아브라함은 76세의 나이에 안정된 삶을 모두 다 포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갔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어느 누구보다도 훌륭한“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또 모세는 애굽(이집트 왕)바로의 딸에게 입양되어 애굽의 왕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얼마든지 애굽에서 왕자(王子)로 대우받으면서 잘살 수 있었지만, 말씀과 함께 고난 받는 길을 선택했기 때문에 인류 역사상 가장“능력 있는 지도자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믿는 다면, 우리에게도 이런 기회가 주어질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서라면, 세상의 모든 안정된 것을 버릴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성령의 능력을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결코 찬란하고, 위대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항상 성령에 민감해야 하고, 성령의 능력과 함께 움직여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의 강한 바람이 불 때, 다른 사람들은 흉내 낼 수도 없는 수천 배의 능력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내가 예수를 믿었기 때문에 세상 적으로 출세할 수 없었던 것을 아쉬워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사람들은 세상의 줄을 끊어야만, 하나님을 전적으로 붙들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너무나 빨리 지나갑니다. 지금 우리 앞 세대 사람들은 많이 떠났습니다. 이제는 우리 세대요, 조금 있으면, 다음 세대가 밀고 들어오면서 우리 세대를 보고, 무대(舞臺)에서 내려오라고 할 것입니다.
우리도 얼마 있지 않으면, 늙게 되고, 그때는 무엇을 하고 싶어도 힘이 없습니다. 그리고 젊은 사람들이 끼워 주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조금 더 지나면, 우리는 모두 다 죽어서 땅에 묻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한 것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을 많이 한 사람은 늙지도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평가는 너무나 무섭습니다. 자기 딴에는 성공한 것 같아도“저 사람은 돈 밖에 모르는 사람(돈별레,구두쇠)이었다"고 평가할 것입니다. 아직 우리에게 시간이 남아 있을 때,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을 사랑하며 살되, 중요한 것은 생명의 말씀을 믿음으로 모든 것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이름과 축복과 영광을 저 천국에서 받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육체(肉體)의 남은 때, 삶 전체를 주님께 드린 사도 바울과 같이 아름다운 삶의 열매를 맺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멘
찬송가 311장 *내 너를 위하여*
알림(연속14회)
▣ 교갱원 소속 *가족같은 교회, 교회같은 가족* 금년 ☞ 정착의 해
◈12월 대심방(세례겸)과 셀(cell)현장 점검을 위해 장소, 날짜, 시간을 스마트폰으로 소통해야 소속이 될 수 있으며, 만약 정착하지 않고*특권과 의무*를 실천하지 않는 셀(cell)의 무관심이 *생명의 양식*촛대를 옮기고 전체 삭제되지 않도록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 리더(leader)1명을 뽑아 *필수과목*을 필하고,예배 인도 등 본원과 계속 소통해야 안전할 수 있습니다(직분자 임명도 동일).
※ 매일 새벽 기도로 시작하고, 저녁 기도로 하루를 마치는 습관을 가집시다.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 교회갱신 성경연구원
정 의 영 목사 ☎ 010-8772-019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