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이야기 647 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 8 : 강원도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살겠네
‘땅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고 인구밀도는 가장 낮은 곳’으로 알려진 인제는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원통역현의 동쪽 30리에 있다.” 인제 하면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살겠네’라는 말을 떠올리게 되는데, 이 말에 얽힌 유래는 다음과 같다.
옛날 어느 임금이 난리를 피해서 이 고을에 와서 머물렀다. 그는 서울의 형편이 궁금하여 몇 차례나 사람을 보냈는데 그때마다 되돌아오는 이가 없자 다시 한 사람을 보내면서 “인제 가면 언제 오겠느냐”라고 묻고 만일에 또 돌아오지 않는다면 “원통해서 못 보내겠다”라고 했단다. 그 뒤로 이 말은 뜻이 바뀌어 인심이 순박한 이 고을에서 다른 곳으로 식구를 떠나보낼 때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내는 말로 쓰였다가, 전방에서 군대 생활을 한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왔다. 요즈음에는 이곳이 워낙 깊은 산골인지라 다른 지방에서 이곳으로 갈 적에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는 뜻으로 많이 쓴다.
원통리 일대산이 많고 들이 적어서 그런지 가장 면적이 넓으면서도 인구는 가장 적은 지역에 속하는 것이 인제군이다.
산이 많고 들이 적어서 그런지 가장 면적이 넓으면서도 인구는 가장 적은 지역에 속하는 것이 인제군이다. 인제군에는 해발 1000미터가 넘는 험준한 산들이 즐비하다. 전방 지역의 기온을 얘기할 때마다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향로봉이 해발 1293미터이고, 응봉산이 1271미터, 설악산이 1708미터, 점봉산은 1424미터에 이른다. 이처럼 높은 산들을 사이에 두고 고성군, 속초시 양양군과 맞닿아 있다. 서쪽으로는 해발 1146미터의 도솔산, 1316미터의 대암산 등을 사이에 두고 양구군과 맞닿으며, 남쪽으로는 1436미터의 방대산, 1118미터의 소뿔산, 1443미터의 주억봉, 1388미터의 구룡덕봉, 1240미터의 가칠봉 등을 사이에 두고 홍천군과 맞닿는다.
강원도 인제군 인제읍 합강리에 합강정(合江亭)이라는 정자가 있다. 인제팔경 중의 하나인 합강정 앞에서 내린천 1) 과 인북천이 합류한다. 그곳에서부터 강이 합쳐져 흐르므로 합강정이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인제 지역 최초의 정자인 이 합강정은 숙종 2년(1676)에 건립하였으나 화재로 불타버린 것을 1756년에 중수하였다.
소양강 합강정정자 앞으로 내린천과 인북천이 합류하는 합강(合江)이 흐른다고 하여 합강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관아의 북쪽 5리에 있다. 한 물줄기는 기린현(麒麟縣)에서 흘러오고, 한 물줄기는 설악산에서 흘러와 원통역에 이르러 서화수와 합류해 정자 앞에 이르는데, 합류한 강의 이름은 미륵천이다. 동쪽으로는 맑은 강을 굽어보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흙으로 이루어진 토산(土山)을 등지고 있다. 구불구불 뻗어와 끝이 끊어진 곳에서 낭떠러지를 이루어 가파르게 솟았다. 언덕 위는 평평하게 펼쳐진다. 그 가운데에 정자가 있는데 맑은 연못을 굽어 바라보면 경치가 시원하고 상쾌하여 산골 고을의 뛰어난 경치가 여기보다 나은 곳이 없다. 지금은 다만 옛터만 남았다. 병자년 겨울에 십자각(十字閣) 5칸을 지었다.
1760년에 간행된 『여지도서』에 실린 글이다. 1865년(고종 2)에 6칸으로 중수하였고, 한국전쟁 때 폭격으로 무너진 것을 1971년에 6칸 정자로 다시 건립하였다. 지금의 합강정은 1996년 국도 확장 공사 때 철거하였다가 1998년 6월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2층 목조 누각으로 복원한 것이다.
합강정에서 기린면으로 가는 소양강에 세워진 다리는 리빙스턴교라고 불린다. 한국전쟁 당시 이곳에서 유엔군 제3군단이 북한군의 맹공격을 받아서 후퇴하게 되었는데, 동쪽의 강 건너 기린면으로 통한 길만 트여 있었다. 그러나 다리가 없어 강을 건너지 못하고 싸우다가 결국 군단이 전멸하였다. 당시 한미 합동 작전을 이끌다가 사망한 리빙스턴 중령은 ‘이곳에 다리를 놓아달라’는 유서를 남겼다. 그 후 그의 부인이 사재를 털어서 다리를 만들었으므로 리빙스턴교라고 하였고, 다리에 붉은 칠을 했으므로 붉은다리라고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