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라이트>를 보았습니다.
스포주의
원래 보고 싶었던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158관왕이라는 수식어가 비정상적이고 비현실적으로 보이고,
영화를 수식하기에는 얄팍하고 어색해보여서 거부감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 딴에는 이 영화를 ‘시상식용’으로 폄하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국내 평단의 호평에 관심이 생겼고,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받는 ‘마허샬라 알리’의 모습에 반해 이 영화를 보게 됐습니다.
역사적 해프닝이었던 아카데미 작품상 번복은 <문라이트>에게는 생명연장이었습니다.
2월 22일에 개봉한 이 작은 영화가 아직까지 걸려 있으니 ‘오스카 위너’의 프리미엄은 인공심장 수준입니다.
좀 더 여유를 갖고 이 영화를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번의 해프닝은 참 다행이었습니다.
<라라랜드>에게는 심심한 위로를...
‘마허샬라 알리’는 의외였습니다. 그렇게 금방 떠나다니.
원래 조연상이라는 게 분량을 따지지 않는다지만, 그렇다쳐도 생각보다 분량이 적더군요.
이 형님 때문에 영화를 선택한 입장이라 아쉬움에 더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구요.
이번 조연상 수상이 작년의 ‘화이트 오스카’ 논란의 반작용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살짝 들었습니다.
물론 연기와 존재감은 오스카 위너로 손색이 없었습니다.
이 형님이 연기한 ‘후안’이 꼬마아이 ‘리틀’에게 바다수영을 가르치는 장면은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많은 분들에게서 명장면으로 손꼽히는 이유를 알겠더군요.
‘넌 세상의 중심이고, 거세고 위태로운 세상을 헤쳐나가야 한다’는 것을 바다수영을 통해 가르치는데,
리틀로선 그런 가르침을 준 유일한 어른이고, 사실상의 아버지였습니다.
특히 바다에 누운 리틀의 작은 머리를 받쳐주는 모습은 흡사 갓난아이를 안은 아버지의 모습 같더군요.
그리고 리틀에게 자신이 마약상임을 밝히며 흐느끼는 장면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장면이 알리의 마지막 모습이었던 것 같은데,
‘아저씨는 마약을 파는 사람이에요?’라는
아이의 질문에 후안은 주체하지 못할 자괴감을 느꼈나봅니다.
카메라로도 연기로도 힘을 주지 않은 장면이지만,
후안의 심경이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해진 좋은 장면이었습니다.
기억해두고 지켜봐야 할 좋은 배우를 알게 됐네요.
‘마허샬라 알리’로 간편하게 불러줘서 정말 고맙네요.
풀네임은 한글 표기로도 읽어내기 어려웠습니다;;
이 영화에서 거의 유일하게 친숙한 얼굴인 ‘나오미 해리스’의 연기도 좋았습니다.
<캐리비안의 해적>과 <007 스카이폴>에서 인상적이었지만 보조적인 역할에 그쳤던 그녀가
이 영화에서 폭넓은 연기를 제대로 보여줬습니다.
친숙한 배우라 그런지 연기를 더 신경쓰며 보게 된 것 같네요.
‘재미있다’, ‘감동적이다’ 라고 표현하긴 힘든 영화이고, ‘시적인 영화’라는 감상이 많던데,
저는 ‘힙합적인 영화’로 보였습니다.
한 흑인 래퍼가 읊조리듯이, 토해내듯이 자신의 인생을 이야기하는 그런 힙합 같았습니다.
영화 <그녀에게>의 OST를 비롯한 곳곳에 깔린 다양한 장르의 음악은 샘플링 같았고,
카메라의 움직임은 힙합비트처럼 느껴졌습니다.
강렬하고 진한 이미지들까지 포함해서 감독은 이 영화 전체를 ‘흑인의 삶’ 그 자체로 녹여내려 했나 봅니다.
3장 ‘블랙’에 이르면 유약한 샤이론은 강인한 블랙으로 거듭납니다.
달라진 인상과 매끈하게 굴곡진 근육을 보며 이 아이가 그동안 얼마나 이를 악물었을지 짐작됩니다.
(동부 맥기네스가 겹쳐 보이더군요)
근육질 몸을 두른 화려한 장신구와 금이빨은 방어막처럼 보이고,
검은색 비니와 마약상이라는 직업에서 결국 ‘블루(후안)에 가까운 블랙’이 됐구나 싶습니다.
한 영화기자가 이 영화에 대해 ‘개인의 완성’이라는 표현을 쓴 것이 와 닿는 대목입니다.
1, 2장에서의 이 아이가 겪고 느끼는 것들에 대한 섬세한 묘사는
결국 어떻게 ‘블랙’이라는 개인으로 완성되는지를 보여주기 위함이었던 것으로 정리가 되더군요.
집안의 먼지 낀 전등이 뿜어내는 습한 기운마저도 개인의 성장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것 같습니다.
좀 더 거창하게는 ‘흑인의 역사’로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흑인들이 육체, 장신구, 패션, 음악 등의 상징을 통해 스스로를 지켜오며
지금의 흑인 문화를 이룬 역사의 축약본을 본 것 같았습니다.
흑인영화에서 예상할 수 있는 인종차별의 직접적인 상황은 묘사되진 않습니다.
하지만 척박한 생활상만으로도 그들이 미국 사회에서 어느 위치에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특히 마약에 대한 묘사가 인상적인데, 샤이론의 성장에서 마약은 아주 중요한 고리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마약이 샤이론의 엄마와 가정을 몰락시키지만, 괴롭히는 아이들로부터의 피난처가 되어 준 곳이 마약창고였고,
그곳에서 만난 마약상 후안 아저씨는 인생의 가르침과 따뜻함을 전해 준 유일한 어른이었습니다.
그리고 평생의 가장 낭만적이고 황홀했던 기억에는 마리화나가 함께 하고 있죠.
이 아이에게 마약을 단순히 ‘악’으로만 치부하도록 하는 것이 다 호사스럽게만 느껴지네요.
이렇게 마약은 흑인들의 터전과 일상에 밀접한 것이고, 그들의 척박한 삶의 증명인 셈입니다.
이상의 감상들 때문인지 하나의 좋은 사회학 자료를 본 느낌도 들었습니다.
고등학교는 무리겠고, 대학의 사회학 수업에 활용하기에 추천할 만한 영화였습니다.
ps. 영화를 보는데 한국영화 <싸움의 기술>이 생각나더군요.
분위기도 완전 다르고, 복수의 카타르시스도 없는데도 자꾸 생각나는 게
인물구도가 닮아서 그랬나 봅니다.
이것이 '블랙'의 인생이다 ★★★★
첫댓글 리틀, 샤이론, 블럑의 배역을 맡은 세명의 배우들은 인상이 전혀 다른데 눈빛이 정말 비슷하게 느껴져서 일체감을 주더라구요. 마허샬라 알리와 자넬 모네는 히든 피겨스에도 같이 출연했죠. 마허샬라 알리는 이번엔 세상 스윗한 역할인데 그것도 잘 어울리네요. 자넬 모네는 nba중계를 보신 분들은 익숙하실만한 가수인데 이제 배우로서도 자리잡아가는 모양이네요 https://youtu.be/IAfYa0IHnZ0
PLAY
히든피겨스에서 알리 형님은 혼자 만 다른 장르 영화를 찍더군요ㅎ
모네는 문라이트에서 참 이쁘더라구요. 가수인건 영화보고 알았습니다.
스포 안당하려고 일부러 채널 돌리고 클릭 안하고 해서 지지난주에 봤습니다. 보는 내내 너무 불편하고 힘들었습니다. 동성애에 대한 거부감이 아닌 영화 자체에 대한 불친절함에 익숙하지 않아서 였다고 생각합니다. 색다른 영화를 접했다는 면 빼고는 좀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편하지 않은 영화죠. 동성애 장면에서는 저도 허걱했습니다. 보는 동안은 덤덤했지만 보고나서 생각해볼수록 더 호감이 들고 있습니다.
모처럼 재밌게 본 영화네요.
1,2장에 비해 3장은 와닿지 않았다는...
후안은 뭔가 굉장히 매력적이라는~
알리 형님한테 반했어요~
영화 정말 좋았습니다. 여운이 많이 남았고 다시 보고 싶은 영화.. 나오미 해리스는 이제 정키역에 달인이 된 듯.. 예쁜 아가씨인데.. 아 그리고 싸움의 기술은 파괴지왕의 열화판일뿐..
특이하게 보고있을때보다 보고나서가 더 좋았던 영화였어요^^
영화 좋았어요. 색채가 주는 울림이 매우 크더라고요.
샤이론에겐 아버지나 다름없는 마허샬라 알리가 샤이론의 어머니에게 마약을 파는 그 역설적인 지점이 되게 인상깊기도 했고요.
그리고 샤이론이 자라나 두터운 근육을 두르고도 눈빛만큼은 어린 시절이랑 똑같이 유순한게 캐스팅이 참 좋더라고요.
그 마약의 순환고리가 젤 인상적인 부분이었죠. 그리고 그 근육에 그 눈빛은 사기에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