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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kbs 드라마 '경성스캔들'의 팬픽으로 주인공들의 이름을 그대로
빌려 사용하고 있는 소설입니다.
경성스캔들 갤러리와 인터넷소설닷컴외에는 연재되지 않는 소설이므로
무단 도용과 수정,배포를 절대금지합니다.
경성연애담
내기로 시작된 인연, 세기의 스캔들에 한 획을 긋다.
송주를 태운 차는 어느새 명빈관을 빠져나와, 경성 시내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 까르페디엠 VIP룸이라고? "
아까 명빈관에서의 소동 이후, 말없이 생각에 빠져있던 송주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응, 수장이 예약을 했다고 하더군. "
그러자 근덕이 차 안에 달려 있는 거울을 통해 송주와 눈을 마주치더니,
시원스레 대답했다.
"영랑이랑... 다른 아이들은 어디 갔어? 아까 안 보이던데- "
구슬이 달린 조그만 백에서 거울을 꺼내 얼굴을 이리저리 살피는
송주였다.
"오늘 지라시 잡지 촬영 때문에 경성역 앞으로 갔어. 아마
지금 쯤이면 명빈관으로 돌아오고 있을거야. "
"아, 오늘이 그 날이였어? "
송주는 새삼 잊고있던 사실이였다는 듯 고개를 한번 끄덕이더니,
거울을 도로 집어 넣었다.
다시 침묵이 이어졌다. 송주는 또다시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완과의 대화가 그녀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것이
틀림없었다.
이렇게 대화가 일단락 되어버리자, 잠시 송주의 눈치를 살피던
근덕이 결국ㅡ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근데 그, 내기란거 말이야... 뭐야? "
".... 내기? 아- 그거? "
근덕의 말에 송주가 살짝 곤란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 내기의 내용을 제 3자에게 밝혀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당사자가 아닌 이상ㅡ 그 내기의 내용이 밝혀진다 해도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증인이 생긴다면 완이 이 내기에서 발빼는 것은
더욱 힘들어지게 되는 상황이 전개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내기는 더욱 재밌는 국면으로 접어 들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다.
송주는 훗- 하고 예의 그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며 운을 떼었다.
"내기를 했어, 완이랑. "
"어떤 내기? "
근덕은 차분하게 묻고 있었지만, 그의 눈빛은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완이가 먼저 내기를 건거지. 사람을 대상으로 - "
"사람을 대상으로 ? "
"그러니까 쉽게 말하자면, 연애를 하기로 한거야. 나나 완이나 - 둘 중
먼저 대상을 공략하는 쪽이 이기는 내기지. "
"음, 그런거야? 차송주에게 좀 구미가 당기는 내기였겠어, 조건은? "
송주의 말을 들은 근덕이 피식 웃으며 말을 받았다.
"조건은.... 내가 지면, 완이에게 명빈관에 한 방을 챙겨주는 것.
내가 이기면 완이가 독립투사가 되는 것. "
".... 오, 나쁘지 않은 조건인데? "
근덕은 이것저것 따져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러자 송주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솔직히 나는 손해볼 거 없어. 완이가 명빈관에 눌러 앉는다고
해도 방 하나만 내주면 되니까. 물론, 남자 손님들이 완이를 좀 경계하겠지.
하지만- 나에 비하면 완이는 조금 손해를 보는 정도가 아니겠지? "
"선우완이 독립투사라... 귀하게 자라신 도련님이 나라를 위해
몸 바치려면 고생 꽤나 하겠는걸. "
근덕은 실실 웃으며 송주와 눈을 맞췄다. 앞으로의 내기가 어떤 국면으로
접어들지, 송주 역시 기대가 되는 모양이였다. 그녀는 한 쪽 입꼬리를
올리더니, 입을 열어 말했다.
"이 내기에서 누가 이길 거라고 생각해?"
"글쎄.. 아무래도 멋모르고 덤비는 선우완보다는 한 수 위인 차송주, 아니겠어? "
"훗. 그렇게 생각해주다니 기분은 좋은데? "
송주는 근덕의 말에 살짝 웃어보였다.
아마 송주는 근덕이 한 말이 인사치레로 하는 말 정도라고 생각하고
웃어 넘겼을터였다.
하지만 근덕은 내뱉은 말은 그저 인사치레가 아니였다.
그가 수년간 송주와 지내오면서 느낀건, 송주가 절대로 만만히 봐서는 안 될
여자라는 사실이였다.
그녀는 기생이라는 직업적 허물을 쓰고 있지만, 실은 독립투사이며
아주 훌륭한 저격수니까 -
또한 그녀의 미모는 말할 나위없이 출중했으며, 대담함 또한 따라갈
자가 없었다.
치명적인 그녀의 유혹으로 인해 기밀 정보를 내뱉은 남자가 한둘이 아니였고,
그녀의 손에 아무도 모르게 죽어간 친일파 인사도 한둘이 아니였다.
애물단에 있어 그녀의 존재는 수장 만큼이나 중요했다.
그녀처럼 드러내놓고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근덕으로써는 안타까운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나 꽃다운 여인이 기생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 그것은 동지인
송주에게 미안한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였다.
기생이란 직업때문에 항상 화려한 한복이나 드레스를 입고,
입술을 붉게 물들인 그녀는 가끔씩 안쓰러워 보였다.
그리고 화려한 치장을 하지 않은 그녀는 아주 가끔 ㅡ 곧 무너질 것 같은
약해보이는 얼굴을 할 때도 있었다.
한없이 강해보이는 여자지만, 그녀도 여인이였다.
이렇게 살아가는 인생 속에서 분명 한을 느끼고 살아가리라-
근덕은 거울로 송주를 슬쩍 쳐다보며 조금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한편, 그 시각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한 무리의 여자들이 경성
시내를 걷고 있었다. 그 중 무리와 조금 떨어져 혼자 걷고 있는
영랑에게 집적대는 남자가 있었으니, 그는 왕골이였다.
본명은 지민식. 그냥 부를때는 멀쩡한 이름이지만 거꾸로
부르면 식민지. 그의 이름은 이 시대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이름이였다. 하지만, 그에게는 그저 부끄러운 이름일 뿐이였다.
어렸을때부터 여간 놀림을 많이 받은 지라, 본명 대신
왕골이라는 별칭을 사용하는 그였다.
순진해보이는 얼굴을 했지만 경성의 황태자인 완을 친구로 둔 탓일까,
그의 작업은 평범한 남자들에 비해서 강도 높은 느끼함을 가지고 있었다.
"영랑아! 오라버니가 맛있는 거 사줄까? "
"배 안고픈데요? "
영랑이 새침하게 말했지만, 왕골은 굴하지 않고 더욱 더 목소리를
낮게 깔며 말했다.
"그럼 우리 영랑이. 목도 마를 텐데 까르페디엠에서 깔피스나 한잔? "
영랑은 왕골의 느끼한 말투에 인상을 조금 찌푸렸다.
"음... 그건 - "
그리고는 핑계가 될 만한 구실을 찾는 듯, 말 끝을 흐린 그녀는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어? 이수현 나으리? "
고개를 돌리자마자 보이는 수현의 이름을 큰소리로 부르는 영랑이였다.
사실, 수현은 까르페디엠 테라스에 있는 의자에 앉아 책을 읽던 중
이였다. 그는 갑작스런 영랑의 외침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큰 목소리에 수현은 당황한 눈치였지만 잊지 않고, 정중하게
인사의 말을 건네는 그였다.
"... 안녕하십니까? "
"왜 여기 계세요? "
수현의 인사에 영랑이 후다닥- 그에게로 뛰어왔다. 호기심이 가득한
눈초리로 묻는 영랑을 보며, 수현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순간적으로, 여동생같다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차송주씨와 약속이 있어서요. "
"소,송주 언니랑요? "
수현의 말에 영랑은 두 눈을 더 동그랗게 떴다.
"차,차송주씨랑 나으리랑? "
어느새 다가온 왕골은 둘의 대화에 끼어들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저, 나으리-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
수현의 말에 영랑은 조금 고심하는 표정을 짓더니 이윽고 작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하지만 왕골은 영랑이 수현에게 관심을 보이자 안달이 난 표정을 지었다.
"영랑아, 그러지 말고 일단 깔피스 한잔 시키고 나서- "
"나으리, 이건 진짜 중요한 이야기에요. 꼭 들으셔야 한다구요. "
하지만 그의 말은 영랑에게 먹히니는 커녕, 철저히 무시 당했다.
싫은 티를 거의 내지 않은 영랑이 왕골을 쳐다보지도 않는걸
보니 말이다.
왕골이 울상을 지으며 멀어져 가자, 수현이 영랑을 보며 말했다.
"이제 말씀하셔도 될것 같습니다만- "
"저기- 송주 언니랑 요새 자주 만나세요? "
".. 그 질문에 제가 꼭 대답해야 ... 하는 겁니까? "
수현이 피식 웃으면서 물었다. 하지만 애초부터 영랑은 그 질문
에 대한 답을 얻길 바란것은 아니였다. 그녀는 자신이 보고 들은
바를 전달하고 싶었기에 그런 질문을 던진것 뿐이였다.
그리고, 결국- 그녀는 파란을 몰고 올만한 말을 꺼냈다.
"그게 말이죠. 송주 언니가 자꾸 나으리께 잘 해드리는건요.
완이 오라버니랑 내기를 건 것 때문이ㅡ "
"어머, 저런. 들켜버렸네요? "
낭랑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가던 영랑의 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소,송주 언니! "
영랑은 예상치 못한 송주의 등장에 화들짝 놀라 주저 앉았다.
송주가 다정하게 손을 내밀며 말했지만, 영랑은 그 손을 잡으면서도
움찔했다.
"자초지종을 말씀 드리는 건 내가 할테니 그만 가봐. "
"어,언니- "
송주는 영랑에게서 시선을 돌려 수현을 바라보며 접대용 미소를 날렸다.
"안으로 들어가는게 어떨까요? "
송주의 말에 수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VIP룸으로 향했다.
이윽고 두 사람만이 존재하는 VIP룸에 칵테일이 나올때까지도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죄송합니다. 주차에 문제가 생겨서 좀 늦었습니다. "
근덕이 훈훈한 웃음을 지으며 들어오자, 수현은 곧바로 거사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수현의 상세한 설명과 함께 거사 계획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자
근덕과 송주는 진지한 자세로 그 일에 대해 논하기 시작했다.
한 시간 이상의 논쟁 끝에 거사의 저격수는 결국, 송주가 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가장 중요한 일이 결정되자 근덕은 화장실을 가보겠다며 밖으로 나갔다.
다시 둘만 남게 되었다.
"간만의 사냥이라 그런지, 좀 두근거리네요? "
송주는 침묵을 깨고 말을 꺼냈다. 그녀는 대답 없는 수현을 보며 살짝
웃더니, 칵테일 잔에 담긴 내용물이 찰랑 거리도록 흔들었다.
피 같이 붉디 붉은 칵테일은 잔이 흔들리는 데로 찰랑- 거리고 있었다.
송주는 그게 재밌는 놀이라도 되는 듯, 흥미로운 표정으로 잔을 들여
다 보고 있었다.
그런 송주를 잠시 바라보던 수현이 말을 꺼냈다.
"근데 그 내기라는게 도대체 뭡니까? "
"... 어머, 죄송해요. 제가 잠시 딴 생각을 하느라 깜빡하고 있었네요. "
수현의 말에 송주가 미안해하는 표정을 짓더니, 곧 자세를 바로 했다.
"그 내기라는건- 저와 완이가 건 내기를 말하는거에요. "
"그런데 왜 제가 그 내기에 관련되어 있다는 건지 모르겠군요. "
수현은 송주의 말에 차분하게 반응했다.
"그건ㅡ 공교롭게도 나으리가 내기의 대상이기 때문이라고나 할까요? "
"대상이요? "
"완이와 제가 건 내기라는 건,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내기거든요."
"그럼, 내기의 대상인 제가 알게 되었으니 이 내기는 무효가 되는 겁니까? "
"뭐, 원칙적으로는 그런 셈이지만... 그렇게 되면 너무 재미없지 않겠어요? "
수현이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송주를 바라보고 있자, 송주가 더욱
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기를 시작한지 고작 이 주일 밖에 안 되었는데, 이렇게 내기를
끝내는 건 너무 재미없지 않나요? 나으리가 이 내기를 모르는 것으로 해주
신다면, 좋을텐데요 - "
송주가 말 끝을 살짝 올리며 유혹적으로 말했다.
"지금 협박... 하시는 겁니까? "
그러자 수현은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
"저런- 그렇게 들렸나요? 협박은 아니지만 일종의 공모를 하자는 거
라고나 할까요? 전 완이가 내기에 지면 독립투사가 되는 조건을
걸었거든요.. "
하지만 이어지는 송주의 말에 수현의 얼굴에서 웃음끼가 싹- 걷혔다.
"완이는 아무 것도 모르고 있잖아요. 독립투사인 형, 선우민과 자신
의 친일파 아버지가 사실은 독립자금을 대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가장 친한 친구인 이수현이 한 단체의 수장으로써 있다는
사실을.. "
송주는 얄밉게도 틀린 말 하나 없이 정확하게, 수현의 약점을
건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수현은 그녀를 미워할 수도 없었고, 화를 낼 수도 없었다.
그녀의 말은 일리가 있었고, 그건 부인 할 수 없는 사실이었으니까.
언젠가는 밝혀질 사실이지만 아직은 때가 이른, 완이 들으면
뒷통수를 맞은 표정을 지으며 다신 너같은 자식 안본다고 할지도
모르는 그런 사실이니까.
"이 사실을 알면 완이가 어떻게 반응 할까요? "
송주가 수현에게 물었다.
"... 협조... 해 드리겠습니다. "
수현이 눈을 맞추며 대답하자 송주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녀의 얼굴에서는 분명 미소가 어려있었지만, 그건 왠지 서글픈 미소였다.
그렇게 까르페디엠 VIP룸에서 송주와 수현의 은밀한 거래가
이루어졌다.
한편, 그 시각 여경은 어김없이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선생님, 이거 보세요. "
"어, 그래. 필성이 글씨가 점점 예뻐지네. 잘했어. "
여경은 예쁜 미소를 띄우며 필성이라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아이는 여경에게 칭찬을 들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은
지 씩 - 웃으며 글씨를 적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녀는 밖을 바라보았다.
살짝 열어둔 문으로 기분 좋은 바람이 들어왔다.
하지만 그녀의 시선은 한 남자가 항상 서있던 그 자리에 멈춰 있었다.
분명 아무도 없었지만 그녀는 그 자리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한참동안 밖을 바라보던 그녀가 한숨을 포-옥 내쉬었다.
몇일째 완을 못보았다.
매일매일 어떻게든 얼굴을 비추고 가던 그가, 오지 않고 있었다.
마음이 심란했다. 이런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내비치지는 않았지
만, 그녀의 마음은 혼란스럽기까지 했다.
문득문득 떠오르는 그의 얼굴.
"선생님! 선생님 이거 봐주세요! "
하지만 여경의 상념은 거기서 깨지고 말았다. 이윽고 다른 아이가 여
경을 불렀기 때문이다.
여경은 한글을 열심히 배우는 아이들을 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분명 우리나라 말이고 글인데 우리나라 글이라고 할수 없다니,
기막힌 노릇이였다.
그렇게 야학 수업은 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끝났다.
아이들을 보내고도 여경은 한참 동안이나 서점에 있었다.
어느새 어스름한 푸른 빛으로 물들어가는 저녁, 여름이라
해가 늦게 지는 탓에 시간 지나가는 줄도 모르고 있는 여경이였다.
그녀는 손수건 모퉁이에 조심스레 수를 놓는 일에 몰두해있었다.
투툭 쿵-
그 순간 무언가 창문에 부딫히는 듯한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힘없이 던진 작은 돌멩이 같은 게 부딫히는 소리였다.
여경은 창문이 혹시나 깨졌을까 싶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창문 곁으로 다가선 순간, 밖에 보이는 한 남자의 뒷모습.
"! "
여경은 그 뒷모습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짐작이 맞다면 저 사람은 ㅡ
여경은 바깥으로 뛰쳐 나왔다. 여경이 달려나오는 소리에
돌아보는 남자, 그는 완이였다.
여경이 복잡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는 반면, 완의 얼굴에서는
한껏 여유가 묻어나왔다.
"안 보이다가 보이니까 되게 반갑지? "
완은 그 특유의 억양으로 말하며 씨익 웃어보였다. 하지만 여경은
대답하지 않았다.
"약... 일주일만이던가? 그 정도됐지, 아마? "
"....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
완이 다시 말을 꺼냈지만, 여경이 퉁명스럽게 물었다.
완은 그녀의 태도에는 익숙한듯, 그저 웃으며 그녀에게 한 발짝
한 발짝 다가갔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근사한 곳에 가서 식사나 하면서
얘기하는게 어때? "
완이 다가와서야 여경은 그를 제대로 쳐다보았다.
오늘 그의 옷차림은 평소와는 달랐다.
살짝 부풀린 머리는 매끈하게 넘기고, 하얀 와이셔츠에 검정
나비 넥타이, 그리고 타이트한 검정 조끼와 바지.
그리고 그의 턱시도에는 새틴으로 바이어스 장식이 되어 있어
한껏 세련된 느낌이 들었다.
화려한 색깔의 수트를 즐겨입는 그에게서 포멀한 턱시도 차림이라니,
블랙과 화이트로 차려입은 그의 모습은 젠틀해보였다.
하지만 여경은 완의 시선을 외면하며 최대한 싸늘하게 말했다.
"저는 집에 가서 내일 야학 교재 준비를 해야 합니다. "
"그거 말고 할 일있어? 그건 내일 아침에 해도 되는 일이잖아.
꼭두새벽부터 애들이 오는 것도 아니고- "
"저,저녁 준비를 해야합니다."
"너 매일 집에서 먹잖아. 양음식 안 좋아 하는 애가
일주일에 얼마나 나가서 외식을 한다고? "
하지만 여경은 쉽게 가겠다는 대답을 꺼내지 않았다.
그녀가 계속 고집스레 버티고 있자 완은 결국ㅡ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ㅡ 여경의 손목을 끌어 당겼다.
"어,어디 가시는 겁니까? "
"저녁 먹으러ㅡ "
완은 짧게 대답하고는 여경을 차에 태웠다.
여경은 가는 내내 말이 없었다.
물론 여경은 얼마든지 이 상황에서 빠져 나올수 있었다.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면 이 남자도 분명 질릴터였다.
하지만 여경은 그러지 못했다. 아니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여경은 이내 도착한 곳이 음식점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여,여긴? "
"동물들도 때가 되면 털갈이라는걸 하는데 말이야. 흰 저고리에
검정 치마보다 백배 나은 걸 골라보자고- "
"무슨 ㅡ 밥 먹으러 가는데 옷을..? "
여경이 의아해하며 멈춰있는 동안에 완은 이미 여경을 옷가게
안으로 끌어당겼다.
릿샤, 경성에서 가장 유명한 옷가게였다.
양장과 드레스, 하꾸라이와 같은 옷을 팔기로 유명한, 근데 왜
여기에 도대체.
완을 따라 안으로 들어와버린 여경은 옷을 대보는 여주인
앞에서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가씨는 체구가 작아서 귀여운 스타일이 어울릴것 같은데ㅡ "
여주인이 말을 건넸지만 여경은 여전히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여경이 가만히 있자, 완은 여주인을 바라보며 슬쩍
눈빛을 보냈다.
여주인이 완의 눈빛을 보고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그녀는 미리 준비해둔 것 같은, 이미 재단과 가봉처리가
완벽하게 되어 있는 드레스를 가져왔다.
"아가씨, 이거 한번 입어봐요. 아가씨한테 딱 맞을것 같은데- "
여주인이 여경에게 옷을 안겨주며 말했다. 그제서야 여경이
좀 정신이 든듯, 완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옷 같은거.. 필요 없습니다. 양장은 잘 입지도 않고, 아니
안 입으니까요. "
"오늘 입어보면 되겠네- "
"말했지 않습니까 저는 양- "
"그냥! 오늘만 입어라 - "
완이 조금 화난 듯한 말투로 말하자, 여경이 몸을 움찔거렸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이렇게 다시 말다툼이라니,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였다.
여경은 조그맣게 한숨을 쉬더니 결국 피팅룸 안으로 들어갔다.
어? 너무 쉽게 되는데?
완은 갑작스레 고집을 꺾는 여경을 보며 되려 벙찐 표정을지었다.
하지만 이내 그는 여경의 변신에 더 벙찐 표정을 짓게 되었다.
"어머, 아가씨. 너무 이쁘네요. "
여경이 입고 나온 디자인은 경성에 하나 밖에 없는 드레스로
완이 미리 골라둔 것이였다.
하얀색으로 된 끈이 없는 이 드레스는 깨끗하면서도 심플한 느낌이였다.
가슴 앞 쪽과 치마에 주름이 잡혀있는 것 외에 별 장식이
없는 이 미니 드레스는 여경의 무릎에서 딱 떨어지는 기장이였다.
이윽고 여주인은 여경에게 다가와 진주로 된 목걸이를 걸어 주었다.
그리고 치장의 마지막은 베일과 같이 얇은 천으로 된 숄을 두르는
것이였다.
그녀의 가냘픈 어깨에 숄을 두르자, 그녀의 순수함이 한층
부각되어 보였다.
완은 한동안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이,이상해요? "
"아, 아니. 아주 예뻐. "
완은 겨우 정신을 차리고는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찬사의 말을
마구 늘여놓았다.
예를 들면 사막속에 핀 장미, 진흙속의 진주같은.
그리고 계속해서 현란한 말로 여경의 시선을 붙잡아 둔 후에
다음 장소인 미용실로 데려갔다.
여경이 또 반항하려는 듯 완에게 대꾸하자, 완은 아까와 같이
살짝 화를 내는 어투로 말했다.
그러자 여경은 다시 움찔거리더니 입을 다물었다.
이윽고 앞머리를 일자로 가지런하게 내리고, 뒷머리를 부풀려
매끄럽게 올린 그녀는 그녀는 한층 우아하면서도 청순해보였다.
완은 모든 준비를 마친 여경을 차에 태웠다.
항상 단정한 한복 차림만 고집하던 그녀가 드레스라니, 이건 분명
그녀의 일생에서 한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였다.
하지만 그녀는 계속해서 어색해서 죽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치마 자락을 쥐고 있었다.
완은 그런 그녀를 흘끔 바라보더니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젠장, 미치겠군. 이렇게 두근거리다니ㅡ
완은 애써 고개를 돌리며 여경을 외면했다.
한복을 입었을 때는 매혹적이였지만 이번에는 또다른 느낌이
들었다. 우아하면서도 가냘퍼서 지켜주고 싶은 그런 느낌.
하지만, 그에게는 그때의 심정과 똑같은 두근거림이
그리고 형용할수 없던 그 묘한 심정이 다시금 느껴졌다.
"여기가 어디에요? "
여경은 차가 멈추자 바깥을 보며 신기해했다. 경성의 한적한 야외로
나온 두 사람은 불빛이 은은하게 비추고 음악이 흘러나오는 정원
에 다다랐기 때문이였다.
여경이 완의 대답을 기다리듯 바라보자 완은 그제서야 겨우
표정 관리를 하며 둘러댔다.
"아. 오늘은 특별한데서 식사를 하고 싶어서 말이야.
자 가실까요, 레이디? "
그리고 정원을 지나 사람들이 있을 파티장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완이 멈췄다.
아직 아무것도 눈치를 채지 못한 여경이 그저 순수한 눈으로 완을
올려다 보고 있었다.
완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 하지만 이내 혼란스러운 감
정을 정리하기라도 하려는 듯, 그는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완이 내민 손을 보며 여경은 조금 망설이는 눈치였다.
하지만 이내 조심스럽게 완의 손 위에 자신의 하얀 손을 올렸다.
두근두근 ㅡ
맞닿은 손에서 시작된 두 사람의 두근거림이 심장으로
까지 전해지는 듯 했다.
그리고, 진정한 내기의 막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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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올리는 것 같네요. 갑자기 연재가 뚝 끊겨서 궁금해하신
분, 계시려나요?
눈팅은 싫어합니다. 하하하하하하하, 댓글을 남겨주시면
쌩유베리감사, 잊지않아요! < 홍철씨 버전?!
아, 계속해서 댓글을 남겨주시는 분들 제가 다 읽고,
다시 리플 달고 있어요. 다시 한번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 전합니다.
댓글을 달아주시는 분들 덕분에 힘내서 글씁니다.
이번에 쓰면서 슬럼프를 좀 느꼈어요. 으아, 창작은 역시 뼈를 깎는
고통!! 잘 안풀리니까 미치겠더군요.
다음편은 조금 빨리 가져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다음 편은 완의 질투..... 가 조금 예상 되는데요.
두고 보시면 알거에요.
★여경의 옷을 묘사한 장면은, 오드리 헵번의 이미지를 떠올리면서
한거에요. 예전에 한지민씨가 잡지에 나왔던 사진 보고, 삘받아서
쓴건데요. 그 사진을 구한다고 해도 첨부를 할수가 없으니까...
그냥 구하는 거 포기했습니다.
다음편도 잘 부탁드립니다~ 싱긋.
첫댓글 아... 경성스캔들 정말 재밌게 봤는데 소설로 보니까 또 느낌이 다르네요! 재밌어요~ 건필하세요!
가온누리♡님~ 댓글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쭉- 지켜봐주시길.ㅎㅎㅎㅎ다시한번 댓글 달아주신거에 대한 감사의 말씀을.ㅎㅎ
계속 쓰는거 기다렸어요., 이번에도 너무 재밌어요^^
시울님~ 기다려주셨다니 정말 기쁩니다~ㅎㅎㅎㅎ 재밌게 보셨다니 다행이에요.
너무 재밌어요 >_< 1편부터 보고 옴 ㅎㅎ 건필하세요!!
잠자는겨울곰님~ㅎㅎㅎㅎ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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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쪼님~ ㅎㅎㅎ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경성스캔들, 정말 잊지 못할 명품드라마죠~ㅎㅎㅎ다음편도 기대 많이 해주세요~
일편부터 쭉 보고 왔는데요 !!! 아 정말 재미있어요 ! 경성스캔들 정말 좋아하는 드라마에요! 소설로 읽으니까 더 새로와요! 읽을때마다 주인공들이 제 머릿속에서 움직이고 배경도 알아서 나오고 음악도 알아서 깔리는!! 정말 재미있답니다 ㅎㅎ 작가님 힘내세요!!!!!!
피글위글님~ 자동으로 영상,음성지원이 된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댓글에 힘입어 열심히 6편도 쓰고 있으니 곧 올리겠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ㅎㅎㅎ
너무너무 재밌어요 ㅜㅜ 기달려지는....
메메멤님 감사합니다~ 오늘 자정 넘어서 아니면 내일 아침쯤 6편 올라갈거에요~ 댓글 감사합니다. 계속 지켜봐주세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