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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신라,가야토론방 포상8국의 난 (이종욱교수의 312년설)
knjpark 추천 0 조회 158 26.02.13 15:37 댓글 3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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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6.02.13 23:19

    첫댓글 3세기 초 포상팔국의 가야 공격과 신라의 가야 구원은 남해안 최대의 전쟁이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목격자가 있는데 230년 무렵의 한반도를 남부를 기록한 후한서 동이전 변진한조입니다. 시간 순으로 기술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포상팔국의 가야 공격과 신라의 간섭 - 삼국사기
    2) 삼국사기에서 가야 소멸 - 삼국사기
    3) 변한지역에서 가야(가라)가 사라지고 목지국(월지국) 진왕이 통치하는 변진한 소국체제 출현 - 후한서
    3세기 초의 사건 진행이 하나도 논리적 모순이 없습니다.
    그런데 진한지역은 언제 어떻게 목지국(월지국) 진왕의 통치 하에 들어갔습니까? 포상팔국 전쟁에 신라가 가야를 도와 참전한 것이 사실입니까? 사실이라면 신라가 가야를 도운 이유가 무엇입니까? 3세기에 삼한을 통치하는 목지국(월지국)은 누가 언제 건국한 나라입니까?

  • 작성자 26.02.13 23:51

    ​과거와 미래님 반갑습니다.
    포상팔국의 난을 4세기 초로 보는 견해는 현재 역사학계에서 매우 설득력 있는 주장이자 논리적으로 훨씬 정합성이 높습니다.
    ​왜 4세기 초(300년대 초)가 더 타당한가?
    ​삼국사기 기년(나해 이사금 14년, 서기 209년)을 그대로 믿기 어려운 '기년 인상(연대를 끌어올림)'의 관점에서 보면, 4세기 초가 논리적 모순을 해결해 줍니다.

    나해이사금 14년은 기년조정하면 309년 정도

    ​3세기까지는 임나가라가 낙동강 하구의 무역권을 쥐고 건재했습니다. 하지만 4세기 초, 백제의 팽창과 신라의 성장이 맞물리면서 가야 연맹 내부에 균열이 생겼고, 이때 포상팔국이 임나가라(금관국)를 공격한 것으로 보는 것이 고고학적 유물(대성동 고분군 등)의 변화와 일치합니다.

  • 26.02.15 06:37

    신라 6세 지마이사금의 기록을 연도별로 살펴보면 단 1년도 안 틀립니다. 10세 나해이사금의 기록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왕의 기록들이 중일사서를 통해 간단히 검증이 가능합니다. 어떻게 검증하는지를 점차 보시게 될 것입니다. 1세 혁거세조부터 4세기 이전 신라본기 전체 사건 연도를 하나씩 검토해보면 적어도 90% 이상의 기록이 단 한 달도 안 틀립니다. 백제본기와 고구려본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10%는 틀리냐고 물을 수 있는데 2천 년 전 기록이 90% 정확한 것은 엄청나게 정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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