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첫째주 저녁 퇴근을 일찍하니까 처가 "우리 낙지 먹으러 가요" 한다.
"그렇치" 내가 처를 처음 만난 날이 있는 주이고
태능 배밭에서 요즈음 식으로 말하면 소개팅으로 서울의대 동기 4명과 이화여대 4명이 배를 핑게로 만났었다.
그 시절 데이트에는 봄은 소사에 복숭이나 자하문 밖의 앵두나 자두, 여름이 시작되면 수원푸른 동산의 딸기,
가을이면 안양의 포도나 태능의 배를 먹으러 갔었다.
그날 저녁 식사를 지금은 없어진 무교동 낙지골목의 허름한 집에서 낙지를 먹었지요.
그러니 낙지는 이때 쯤이면 반드시 챙겨 먹어야 할 우리집의 기념 음식이다.
서초동에서 강남역까지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 간다.
오랜만에 가니까 주인이 바뀐 듯하다.
그 전 주인은 나의 고등친구의 중학교 동창이었으나 집안 분쟁으로 상표권이 뺐기고
물러났다 한다.
주문은 조개탕 하나, 낙지볶음 하나, 그리고 소주 한병.
나중에 사리 일인분만 시켜 남은 낙지에 비벼 먹으면 되는데
옆자리에서 시킨걸 보니까 이럴 는 공기밥을 시켜야 커다란 대접에 시원한 콩나물 국도 나온다.
틀어놓은 TV 뉴스를 보는데 아는 얼굴이 하나 보인다.
나와 친한 후배 대구시장이다.
이어 나오는 인물도 내가 아는 분으로 우리대학 이사장이며 체육회 회장님,
마지막으로 나오는 이명박 현대통령, 연이어 아는 분 셋이 나오니 나도 덩달아 유명인사인가.
대구에서 열리는 전국체육대회 개막식 중계이었다.
한참 호호불며 먹다보니까 옆자리의 남녀가 같이 나간다.
거기에는 남긴 만두가 두개 있다.
"저걸 가져다 먹어?"
몇번씩이나 처에게 이야기를 하여 처도 잘 아는 시실이 있다.
광화문 크라운 제과 2층은 66년 그때 막 생기기 시작한 육교가 있었다.
여기에 들어가 목 좋은곳에 앉으면 계단을 오르내리는 여자들의 치마속을 살짝 엿볼수 있다.
"우리가 치한 들인가?"
그날도 용돈이 궁하여 둘이서 빵 두개만 달랑 시키고 앉아 있는데
우리 옆자리의 데이트하던 남녀가 시킨 빵을 다먹지 않고 일어선다.
얼른 친구가 일어서더니 그 자리에 가서
"저희들이 가져가 먹어도 될까요?"
"그러세요"
이 친구는 나의 하숙친구이자 우리 동급생.
부친이 선구 판매업을 하는 부산 영도의 집에서 놀러가 자본 적도 있었고
가족들 사항까지 잘 안다.
원래 체질이 인문계라 인문계에서 고등 3학년 때 집안의 권유, 주로 어머니의 영향 으로
불과 몇달간의 공부로 의대에 들어 온 수재 타이프이었다.
이화동에서 하숙을 같이할 때 새벽 골프를 나가시는 박 전대통령의 육중한 리무진 소리에 잠도 깨었고
적산 가옥이라 화장실은 반드시 안방을 거쳐야 되는 구조로 과년한 주인 딸이 자고 있어
새벽에 걸어서 학교 본관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다 수위한테 혼난 적도 있었다.
아침을 같이 차려주었기 때문에 늦잠 주 특기인 이 친구덕에 금요일 첫시간인 수학을 빼먹어서
후에 편미분, 편적분을 독학하여 학점을 딴 기억이 난다.
어느 날,
신문에 난 동양방송 TV탤런트 모집광고를 보고 서류전형에 합격하고
실습을 보러 가던 날 방송국까지 따라갔었다.
물론 떨어졌지만.
우리가 훌륭한 소질의 배우를 몰라본 게 아닐까.
결국 일년 낙제를 하고 후배로 졸업하여 이비인후과 전공으로
여러 곳을 전전하다 요즈음은 부산의 종합병원에서 근무를 한다.
상처를 하고 재혼을 하여 잘살고 있다며 소식을 전하는데
내가 " 그 병원에 회의있어 갔었는데 너가 거기에 근무하는 줄 몰랐어."
다음 번 부산에 내려 가면 큰 껀수하나를 물었다.
낙지는 너무 익히면 질겨 지니까 적당해야 한다.
이 집의 낙지는 양은 작아도 맛과 씹히는 맛 둘다 최고이다.
한때는 이 집에 나의 6년 위 와인좋아하는 우리병원 산부인과과장과 우리와인을 가져가서 먹기도 한 집이다.
다음번에 올때는 감자피 만두를 하나 더 시키고 공기밥도 일인분 더 시키는 것이 좋겠다.
가다 달콤한 이이스크림 하나 사먹고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면 술이 다 깰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