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용(中庸)의 실천
우리가 사용하는 말 중에 ‘중용(中庸)’이란 말이 있다. 옛날 어르신들이 하시는 말씀에 ‘중용을 지켜라’는 말이 있다.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말고 자기의 자리와 분수를 지키며 살라는 연륜 있으신 어른들의 깊이 있는 충고의 말이다. 사실 우리가 늘 중용을 강조하지만 ‘중용의 삶이란 정확한 무엇이냐?’를 묻는다면 그 대답은 쉽지 않다.
중용은 공자의 손자인 공급(孔汲), 일명 자사자(子思子)가 쓴 책의 이름이기 한데, 이후 성리학의 완성자인 주자는 중용을 이렇게 해석하고 있다. “중(中)은 치우치지도 않고(不偏), 어디에 의지하지도 않고(不倚) 넘치거나 모자람이 없는 상태다(無過不及). 용(庸)은 언제나라는 의미의 평상(平常)이다.(中者 不偏不倚無過不及之名 庸 平常也)” 중용은 간단히 말하면 역동적이며 지속적인 평형(平衡)이라 할 수 있다. 나아가 중용의 인생으로 말하면 하루 정도 중용의 삶을 살았다고 해서 그 삶을 중용의 인생이라 하지는 않는다. 언제나 평생토록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아야 비로소 중용의 인생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중용의 인생을 산다는 것은 예로부터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고 하였다.
“중용을 영어로는 Golden Mean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영어 단어 속에는 Mean 즉 ‘중간’이라는 정지되어 있는 수치적 개념의 중용을 강조하고 있어 동양의 역동적인 중용의 의미를 충분히 반영하고 있지 못한 것 같다. 중용은 모든 개인에게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수학적인 중간이 아니라, 개인의 개별적인 상황을 고려하고 역동적으로 그 기준이 움직이는 이성적인 판단에 근거한 것이다. 중용은 이도 저도 아닌 중간의 위치가 아니다. 때로는 나아가고 때로는 물러설 줄 아는 진퇴(進退)를 아는 것이 중용을 실천이다. 조직 내에 옳지 못한 결정이 내려질 때 중용을 지킨다고 가만히 침묵한다거나, 국가의 생존을 위협할 만한 불의(不義)에 적당히 타협하는 것 역시 중용은 아니다.”(박재희, 중국철학자). 그러므로 인륜도의(人倫道義)에 맞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바로 중용의 삶이라고 말할 수가 있을 것으로 본다.
중용의 중요한 의미 중에 하나가 ‘시중(時中)사상’이니, 일명 ‘상황(時)의 중(中)’이다. 세상은 무한히 변화하는데, 그 변화를 인정하고 그 변화에 맞춰 정확한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시중(時中)이다. “수시이처중야(隨時以處中也)! 즉 그 상황의 변화에 따라 정확한 중(中)을 찾아 처해야 한다!” 여기서 수시(隨時)는 상황의 변화이며, 처중(處中)은 그 상황분석에 따른 정확한 판단과 실행이다.
공자는 군자(君子)야말로 중용의 인생을 사는 사람이며 소인(小人)은 중용에 반한 인생을 사는 사람이라고 정의하였다(君子 中庸, 小人 反中庸). 군자와 소인은 지위나 학식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그가 중용의 삶을 살고 있는가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세상을 사는 모습들은 참으로 다양하다. 다만 어떤 모습으로 살던 그 삶의 기준은 변함없이 중용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불완전한 인간의 능력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사실상 우리 각자가 중용을 실천하여갈 인생의 목적과 비전(vision), 준칙과 규범이 매우 다양하고 때로는 애매모호하여,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중용의 실천은 그저 형이상학적인 수사(修辭)에 머물기 쉽다.
그런데 이런 중용의 삶과 관련하여 성경에서는 말하기를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네 발을 악에서 떠나게 하라(잠언 4장 27절).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대로 너희는 삼가 행하여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모든 도(道)를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복이 너희에게 있을 것이며 너희가 차지한 땅에서 너희의 날이 길리라(신명기 5장 32-33절)”라고 하였으니 위에 설명한 동양사상과 크게 통한다.
나아가 예수그리스도는 우리들이 이 혼잡하고 어려운 세상에서 헤치고 나아갈 바에 대한 법도와 준칙을 쉽고도 간결하게 소개하고 비유로도 말씀 하였는데, 이후 2천년이상을 지나오면서 그 생명력이 증명되었으며, 이는 오늘날 우리들에게 명확한 삶의 목적과 비전 그리고 평안과 기쁨을 안겨주고 있다.
하여 생각건대, 가르침이 쉽고 간결한 예수 그리스도를 배우고 익히고 실천하여 나가면 중용의 삶은 저절로 쉽게 이루어질 것이라는 생각이다. “나 예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태복음 11장 29-30절). 인생을 너무 어렵게 살지 말고 가급적 단순화 하도록 하자. 진리는 쉽고 간명하며, 승리하는 인생의 길도 진리에 따른 단순화에 달려있다.
2024. 9.28. 素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