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심물항(立心勿恒)
마음을 세웠으나 굳히는 데에
한결같지 못하다는 말이다.
立 : 설 입
心 : 마음 심
勿 : 말 물
恒 : 항상 항
출전 : 주역(周易) 계사(繫辭) 하전(下傳) 第5章
子曰 : 君子安其身而后動, 易其心而后語, 定其交而后求.
공자께서 이르기를,
"군자는 그 몸을 편안하게 한 뒤에 움직이고,
그 마음을 또한 편안하게 한 뒤에 말하며,
그 교류를 결정한 뒤에 구한다.
君子修此三者, 故全也.
군자는 이 세 가지를 닦기에 온전하다.
위태롭게 움직이면 백성이 함께하지 않고,
두렵게 말하면 백성이 응하지 않으며,
교류(소통) 없이 구하면 백성이 함께하지 않고,
함께하지 않으면 결국 상함에 이름이라.
그래서 역에서 이르기를,
'보탬이 되는 게 없고, 또 공격하며,
마음을 단단히 먹어 굳히는 데에
한결같지 못함이니 흉하다'고 했다."
초패왕 항우가 관중을 점령함으로써
중국 천하를 통일하였다.
이제 그에게 대적할 자가 없게 된 것이다.
고조의 무리가 있었지만 휘하 장군의 면면을 보거나,
병사들의 숫자로 보거나 전혀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큰 인심을 쓰듯이 고조에게 한(漢)나라의 왕이라는
그럴싸한 명칭을 주어서 파촉으로 내쫓았다.
파촉은 중국 서쪽 끝에 붙은 첩첩산중의 오지로
구름다리만 끊으면 그대로 고립되는 험한 땅이다.
고조를 따르며 전쟁터에 참가했던 부하들도,
이제 고조는 망했다 싶어서 하나 둘
고조를 배신하고 초패왕에게 달려갔다.
부하들의 탈영을 보다 못한 유방이
중국과 파촉을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인
구름다리를 스스로 끊어버릴 정도였다.
초패왕은 또 옛 진나라 땅을 셋으로 나누어서
진나라 출신의 장군들에게 맡기고,
혹시나 있을 줄 모르는 고조의 반란에 대비하게 하였다.
그러니까 파촉의 입구를 완전히 봉쇄한 것이다.
영토의 넓이와 부유함, 장군과 정예병의 수,
병사들의 사기, 중국을 완전히 장악해서 다스린다는 위엄,
무엇을 비교하더라도 초패왕이 세상의 왕으로
권세를 누릴 것을 의심할 자가 없었다.
다만 초패왕이 모르는 것이 하나 있었다.
초패왕의 그 모든 자랑거리가
모래 위에 쌓은 빌딩이었다는 것이다.
‘중국을 완전히 장악해서 다스린다는 위엄’은
내 가족과 평안히 살고 싶은 백성의 뜻과는 상관없이
초패왕의 힘으로 만든 것이다.
백성과 소통하고 합의해서
얻은 권력이 아니라는 것이다.
초패왕은 자신에게 대항한 군사는 물론이고
항복한 군사까지도 모두 죽임으로써
백성과 원수가 되었다.
죽임을 당한 군사들은 누군가의
아버지이고 형이며 동생이었다.
또 군사를 이끌고 가는 곳마다 불사르고
파괴해서 백성들의 살 곳을 없애버렸다.
백성을 죽이고 그 재산을 없애버린 것이다.
초패왕으로서는 중국 통일전쟁이고,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고
부유함을 넓히는 전쟁이었을지 몰라도,
백성들은 자신의 가족이 몰살당하고
재산을 뺏기는 전쟁이었던 것이다.
내 가족을 죽인 권력, 내 재산을 강탈해서
부유하게 사는 초패왕에게
좋은 감정을 가질 리가 없다.
장군과 정예병의 수, 병사들의 사기 역시 그렇다.
초패왕을 따라다니면 벼슬도 얻고
재물도 얻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초패왕은 벼슬과 재산을 아끼고 주지 않았다.
아낀 것이 아니라 안주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했다. 왜 그랬을까?
초패왕은 역발산기개세의 대단한 영웅이었다.
적진에 단신으로 뛰어들어가서 적을 궤멸시켰다.
그러므로 자신의 힘과 전략으로 중국을 통일한 것이지,
다른 장군이나 군사들의 힘은
별 도움이 안 되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없었어도 무방한 장군과 병사들이라며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했으니,
그 심사가 좋을 리가 없었다.
백성과 뜻이 통해서 서로 화합하지 못하는 정권은,
영토가 넓고 군사수가 많아봐야
홍수 한번이면 다 쓸려가는 사상누각이다.
초패왕과 그 장군, 병사들이
서로 화합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들의 원천이 되고 토양이 되는
백성하고도 화합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한신이 파촉의 병사들을 이끌고 나오자,
싸움 한 번 해보지 못하고 와르르 무너졌다.
백성들이 고조를 택한 것이다.
그것이 세상의 이치이다.
백성들이 새 정권을 선택하면
아무리 힘이 세더라도 구 정권은 무너진다.
왜그런가?
백성의 마음과 이익이 신정권을 택했기 때문이다.
백성의 마음을 모르는 정권은 사상누각일 뿐이다.
그래서 주역에서는,
"위태한 상태에서 함께 하자고 하면
백성이 함께 하지 않고,
확실하지 않은 것을 하자고 하면
백성이 응원하지 않고,
친하지 않으면서 달라고 하면
백성이 주지를 않으니,
더불어 하는 사람이 없으면
해치려는 사람이 올 것이다"고 가르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