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셀 푸코의 책을 읽으면서 함께 한 여행이었다.
오사카를 거쳐 교또와 시즈오카를 들러 드디어 동경에 도착하였다.
내가 살았던 학교 앞 4조 반의 다다미 일본식 집은 이미 헐어버리고 없었다.
대신 학교 안의 우람한 은행나무와 우에노 공원과 우에노 아메요꼬 시장을 둘러보면서 과거를 찾을 수 있었다.
일본은 무너지고 있었다. 30년전의 흥청거림은 간 곳이 없었다.
빠찡코의 시끄러웠던 소리와 공중전화 박스에 붙어있던 성매매 전단지는 내가 다녔던 학교 안의 가을 은행나무 잎 만큼 많이도 거리에 떨어져 있었다. 이제, 그것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패전 후, 미국에 매달려 살아오던 일본이 마지막으로 잡아야 할 지푸라기는 역시 미국 뿐이었다.
센카쿠 열도에 대한 중국과의 분쟁은 무너지는 제국의 보수 정치인들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다행한 일이었다.
TPP, 아시아 태평양의 다자간 무역 협정을, 미국과 일본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일본으로서는 중국의 위협에 대해 미국의 애정을 다시 한번 확인 할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역시, 미국은 일본의 러브콜에 응해주었다. 일본 여행 중에 뉴스에서 미국과 일본은 다시 한번 군사 동맹을 결의하고 있었다.
아마, 끝나지 않은 동아시아의 625전쟁은 센카쿠 열도에서 재발될 가능성이 높았다.
한국은 망서리고 있다. 중국의 위협에 자유무역 협정을 동의할 수 밖에 없었고, 그런 한국에 대해 미국은 TPP로 협박을 하고 있다.
한국은 어디를 선택할 것인가?
19세기 말의 조선의 갈팡지팡이 재연되는 기분이었다.
일본의 자본주의는 한계점에 도달했다. 후쿠시마의 핵이 아니었다고 해도 그 한계점은 불과 몇 년이 빨라졌을 뿐이었다.
미국의 재정압박은 공공기관의 셧다운으로 해결하고자 했다.
이미 자본주의적 국가경영은 불가능함이었다고 세계 대전에서 예견했으나, 제국주의 국가들은 그 돌파구를 사회주의와 파시즘과 수정자본주의로 겨우 이겨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자본주의는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맑스와 아담 스미스와 히틀러와 레닌과 그람시와 또 그를 따랐던 추종자들, 모택동과 스탈린 김일성 그리고 박정희 또 누구였던가.
19세기 이후 무수히 많은 영웅들과 천재들은 모두 한 뿌리에서 출발했다는 것이 파국의 제국들에서 증명이 되고 있다.
미국의 디트로이트는 아마 한국에서 재연될 것이다. 러시아의 체르노빌이 미국에서 일본의 후쿠시마에서 재연되고 있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로 나누는 좌/우파의 어리석음에 대해서 이미 푸코가 비웃고 있었음을 오히려 좌파들이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