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10일(금)
* 시작 기도
주님...
주님께서는 육체에 계실 때에 아버지 하나님께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리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하나님이시면서도 아버지께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기 때문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주를 따르는 자들로 하여금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게 하셨습니다.
단단한 음식을 먹어 영적으로 장성한 자가 되어야 마땅하나 나는 여전히 젖이나 먹어야 할 자입니다.
언제나 우리 주님을 기쁘시게 하며 온전히 주의 품에서 참된 평강을 누릴 수 있을런지요?
나를 주의 공의로 심판하여 주의 의를 이루시고 소망 가운데 거하게 하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주소서.
내가 있는 이 자리가 주의 나라임을 믿습니다.
비록 환난과 곤고가 있을지라도 이것이 사망의 증상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한 연단임을 믿음으로 받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잠 14:17-35
제목 : 죽음조차 소망이 있음은...
17 노하기를 속히 하는 자는 어리석은 일을 행하고 악한 계교를 꾀하는 자는 미음을 받느니라.
18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음으로 기업을 삼아도 슬기로운 자는 지식으로 면류관을 삼느니라.
19 악인은 선인 앞에 엎드리고 불의한 자는 의인의 문에 엎드리느니라.
20 가난한 자는 이웃에게도 미움을 받게 되나 부요한 자는 친구가 많으니라.
21 이웃을 업신여기는 자는 죄를 범하는 자요 빈곤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는 자니라.
22 악을 도모하는 자는 잘못 가는 것이 아니냐? 선을 도모하는 자에게는 인자와 진리가 있으리라.
23 모든 수고에는 이익이 있어도 입술의 말은 궁핍을 이룰 뿐이니라.
24 지혜로운 자의 재물은 그의 면류관이요 미련한 자의 소유는 다만 미련한 것이니라.
25 진실한 증인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여도 거짓말을 뱉는 사람은 속이느니라.
26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견고한 의뢰가 있나니 그 자녀들에게 피난처가 있으리라.
2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생명의 샘이니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
28 백성이 많은 것은 왕의 영광이요 백성이 적은 것은 주권자의 패망이니라.
29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
30 평온한 마음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를 썩게 하느니라.
31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공경하는 자니라.
32 악인은 그의 환난에 엎드러져도 의인은 그의 죽음에도 소망이 있느니라.
33 지혜는 명철한 자의 마음에 머물거니와 미련한 자의 속에 잇는 것은 나타나느니라.
34 공의는 나라를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
35 슬기롭게 행하는 신하는 왕에게 은총을 입고 욕을 끼치는 신하는 그의 진노를 당하느니라.
* 나의 묵상
(26)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견고한 의뢰가 있나니 그 자녀들에게 피난처가 있으리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그 분을 온전히 신뢰하는 것이다.
이 신뢰는 나의 주관적인 신념이 아니라 주님이 성경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에 근거한다.
세상 사람들은 돈을 의뢰하고 권력을 의뢰하며 명예를 의뢰한다.
그러나 이 의뢰하는 것들은 결국 존재물이며 만물 안에 속한 것들이다.
이는 의뢰하고 신뢰하는 대상이 아니라 이용의 대상인 것이다.
여호와, 즉 주를 경외함으로 견고한 의뢰와 믿음이 있다는 것은 만물 안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만물 위, 창세전을 말한다.
그곳만이 변하지 않고 쇠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를 경외함으로 온전한 소망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그 나라야말로 흔들리지 않는 영원한 나라임을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고 믿는다 하면서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견고한 의뢰, 즉 창세전 만물 위의 세계인 아버지 집이 아니라 만물 안에 속한 돈과 명예와 권력을 의뢰하는지 모른다.
결국 요즘 신앙의 모습은 돈과 건강 자녀 명예 권력이 하나님이 되어 버린 시대이다.
그리고 그것들이 자신의 견고한 의뢰인 줄 알고 의지하지만 결국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말처럼 자신의 견고한 의뢰가 자신의 발등을 찍는 도끼로 돌아오고 만다.
돈을 의뢰하는 자는 돈에 망하고, 건강을 의뢰하는 자는 더 큰 중병에 시달리며 자식을 우상처럼 의뢰하는 자는 자녀의 패륜이 자신의 발등을 찍는다.
명예나 권력은 결코 영원하지 않으며 그것을 잡고 있을 때는 자기를 지켜 주는 것 같으나 떨어지면 여지없이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고 만다.
그런 자는 마치 인생의 낙오자처럼 아무런 소망이 없다.
오직 그 권력과 명예를 위하여 고군분투하다가 끝나고 마는 것이다.
이처럼 자기가 보기에는 그 길이 바르고 옳은 길처럼 보이지만 필경은 사망의 길이다.
이 모든 길은 결국 맘몬의 길이며 결국은 사망이다.
그러나 주님을 온전히 경외하여 아들 곧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은 자는 변하지 않고 쇠하지 않는 견고한 의뢰가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창세전 만물 위의 세계인 아버지 품이다.
이곳만이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의 보고(寶庫), 즉 생명의 샘이 있다.
(2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생명의 샘이니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
수가성 여인이 목이 말라 양도 많고 비교적 성분도 좋은 야곱의 우물에 나와 물을 마신다.
그러나 야곱의 우물은 마셔도 마셔도 다시 목마르다.
그가 2천년 동안 기다리던 그리스도를 만났다.
주님은 유대에서 갈릴리로 가시다가 일부러 신적 의지를 가지고 사마리아 수가성에 있는 야곱의 우물을 찾으셨다.
메시야 곧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목말라 하는 한 여인을 만나기 위함이다.
그리고 주님은 그녀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요 4: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주님이 주시는 물은 주님의 피요 주의 말씀이다.
그 말씀이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솟아나는 샘물이 되는데 이 샘물이 바로 복음이다.
이 복음이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이 생명으로 사는 자가 바로 증인이요 진실한 증인이다.
이처럼 생명으로 사는 진실한 증인은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능력의 복음을 전한다.
아들의 생명을 가지고 영생의 삶을 사는 자는 자연스럽게 복음이 흘러 나간다.
자기 안에만 고여 있는 것이 아니라 흐르고 흘러 죽어 있는 바다를 살리며 그 안에 생명을 살게 하는 능력이 있다.
(25) 진실한 증인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여도 거짓말을 뱉는 사람은 속이느니라.
거짓말을 뱉는 악인은 환난이 닥칠 때 그 환난을 견디지 못한다.
(시 1:4~5)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환난은 하나님이 주시는 징계요 심판이다.
말씀이 없는 자는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자로써 환난의 태풍 앞에서 견디지 못하고 넘어지게 되어 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공의이다.
그러나 의인에게도 동일한 환난이 닥치지만 그 환난은 의인을 더욱 의인 되게 만든다.
따라서 의인은 그 죽음에도 소망이 있다.
(32) 악인은 그의 환난에 엎드러져도 의인은 그의 죽음에도 소망이 있느니라.
악인은 환난을 견디지 못한다.
하지만 의인이 환난을 견딜 수 있는 이유는 그 환난은 하나님께서 의인에게 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의로운 분이시며 불의하실 수 없으시기에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이다.
그것이 심지어 환난을 넘어 죽음이라 할지라도 그렇다.
의인은 자신에게 주시는 그 심판을 옳다고 인정하며 수용하는 자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주신 환난의 무덤은 곧 하나님이 하나님의 품으로 초청하시는 초청장이다.
환난과 무덤은 죽음을 의미하지만 내가 죽을 때 아들의 생명으로 살아나게 된다.
오직 내가 아들의 무덤에 연합될 때 나는 죽고 아들의 생명으로 사는 것이다.
그 안에서 말씀과 함께 주님 앞으로 나아가면 주님께서 친히 교제의 장소인 성전을 지어주신다.
성전은 주님이 거하시는 장소로써 다른 곳이 아닌 내가 죽는 무덤에서 지어진다는 사실이다.
의인은 죽음에도 소망이 있는 이유가 바로 주님께서 함께하시는 성전을 지어주시기 때문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영광은 무덤 너머에 있다.
나는 주를 경외한다고 하면서도 그분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였다.
겉모습은 주를 믿는 것처럼 보이고 교회에 나가지만 나의 속마음은 주님을 견고히 의뢰하지 않고 오히려 돈과 사람과 세상을 더 의뢰하는 자였다.
학원을 할 때도 돈이 많이 들어오면 살 것 같고 아이들이 떨어져서 돈이 잘 들어오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았다.
고난과 어려움이 닥치면 겉으로는 기도하는 자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주님보다 사람을 더 의뢰하였다.
지금 당장 나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 나섰던 것이다.
물론 교회에 나가고 주를 믿었으며 어려움이 있을 때 기도하였지만, 나의 속사람은 ‘오직 예수’가 아니었다.
그것은 '예수만 아니라 그 무엇도'였다.
이런 나는 실상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가 아니라 세상을 의뢰하는 자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누가 뭐래도 내가 내 자신을 잘 알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주시는 환난을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알지 못하고 해결해야만 하는 숙제였다.
그래서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온갖 수단을 동원하기도 하였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내가 어떻게 피할 수 있겠는가?
나는 하나님의 언약도 모르고 복음도 모르는 정말 무식한 자였다.
수많은 환난 속에서도 주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던 나에게 어느 날 주님은 복음으로 찾아오셨다.
이 복음은 나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버렸다.
믿는다 하면서도 항상 회색지대에 살던 내가 이제는 거기서 빠져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내 앞에 닥치는 환난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무덤으로 초청하시는 주님의 손길임을 알고 아멘 하면서 이를 수용하고 그 무덤 안으로 들어갔다.
복음을 통하여 생명으로 사는 나는 날마다 말씀 앞에서 깊이 주님과 사귐을 갖고 그 사귐이 내 삶에 실재가 되었다.
주님의 뜻도 모르고 살아오면서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나는 죽기에만 합당한 자이다.
그런 나를 주님은 기꺼이 용납하시고 그 너른 품으로 품어 주셨다.
내가 무슨 염치로 그 은혜를 받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아들을 힘입어 담대함으로 아버지께 나아가는 것이 이 시대의 언약을 유지하는 조건의 규정임을 안다.
그러하기에 염치없고 얼굴이 뜨뜻하여 고개를 들 수 없을지라도 나아간다.
그리고 날마다 나의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고 죄의 몸을 의의 병기로 드리려 한다.
때로는 넘어지지만 나는 주님의 언약 백성임을 확신한다.
이것은 나의 신념이 아니라 주님이 주신 믿음의 선물이다.
그래서 오늘도 아들이 보았던 그 영광을 주님과 함께 보며 살아간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이 죄인을 용납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죽어 마땅한 자이지만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셨으니 그 은혜에 합당한 자로 살기 원합니다.
주님을 온전히 경외하여 견고한 의뢰가 항상 내 앞에 있게 하시고 복음을 통하여 생명을 얻은 자로서 많은 영혼들에게 피난처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게 하소서.
주님은 나의 생명의 샘이십니다.
주님이 주시는 심판이 죽음일지라도 소망이 있음은 그 안에 아들의 생명으로 사는 영생의 실재가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영광을 받으소서.
높임을 받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