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내 신음소리가 그렇게 이상했나.
퉁퉁 부은 눈을 하고서 욕실 세면대에 두 팔을 지탱한 나는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꼼꼼하게 뜯어봤다. 진했던 쌍커풀이
부은 눈 때문에 조금은 풀려버려 아마도 나중에 코디 누나들이 보면 길길이 날뛸 것이다.
"...하읏."
나는 그때 내질렀던 신음 소리를 생각하며 똑같이 읊어보는 병신 짓을 한다. 그리고는 이게 아닌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
하다가 또 다른 신음 소리를 내보는 더더욱 병신 같은 행동을 했다. 새벽에 있었던 그 일에 오죽 상처받았으면 내가 이따
위 미친 짓을 할까.
"하앙...!"
씨발... 이건 진짜 더더욱 아닌 것 같다!
"형, 뭐 해?"
"..으악!"
노크도 없이 벌컥 문이 열리고 박유천이 한 손에는 수건을 들고 욕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내 목소리를 들은 건지
해괴망측한 표정을 짓는다. 나는 거울 속에 비친 박유천의 모습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욕실 타일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아씨! 놀랬잖아! 이새끼야!!"
"그러는 나야말로, 형보다 곱배기로 놀랬다고! 무슨 희한한 소리를 내냐?"
"씨..드..들었냐?"
"일부러 들은게 아니라 들린거지."
"꺼져, 노크도 안 하냐! 넌?!"
"우리 사이에 노크는 무슨, 그나저나 다시 생리병이 재발한거야? 무슨...!"
나는 박유천이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수건걸이에 걸려져 있던 마른 수건을 녀석의 면상에 던져버렸다. 저 새끼는 내 심
기를 너무 건드려서 탈이다.
"아씨!! 내가 뭘 어쨌다고 이래! 눈은 뭐 저따구로 퉁퉁 부어선!"
"야! 빡유!!!"
내가 또 한번 소리를 지르며 이번엔 옆에 있던 묵직한 샴푸통을 던지려는 시늉을 하자, 녀석은 얼굴이 파리하게 질려서는
욕실 밖으로 튀어나가 버린다. 이럴때만 재빠르지.
나는 다시 거울을 보며 아까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해볼까 하며 입술을 벙긋거리려다가 이러고 있는 내 자신이 참으로 또
라이같아서 그냥 관둬버렸다. 박유천 말대로 가뜩이나 눈이 이렇게 부었는데 볼 쌍 사납게 뭐하는 짓인지. 참으로 한심하
다, 이런 내 자신이.
달칵.
"아씨! 박유천! 내가 노크하랬지!!"
또 한번 노크없이 열리는 욕실문의 마찰음에 나는 이번에는 도저히 못참겠다는 화난 얼굴을 하고서 조금전 집어들었던 샴
푸통을 들어 등 뒤로 내던졌다. 그러자 아주 정통으로 맞은 것인지 퍽! 소리와 함께 연이어 쿵!! 하는 소리까지 들린다.
"허헉...! 차..창민아!!"
인상을 잔뜩 구겨쓰며 뒤돌아섰을땐, 그곳에는 바닥을 구르는 샴푸통과 함께 막내 창민이가 맨바닥에 쓰러진 채로 쌍코피
를 흘리고 있었다.
정말 하느님이라는 것이 내 머리 위로 존재하기나 하는 것일까.
"창민아, 미안해! 응? 한번만 봐주라!"
"형, 미워..."
"미안해! 진짜 넌 줄 모르고 그랬어!!"
"...됐어, 맨날 밥해달라고 조르는 내가 사실은 귀찮아 죽겠지?"
"아니,아니! 그게 아니라니까?!"
나는 창민이의 콧구멍에 손수 휴지를 돌돌 말아 끼워주면서 창민이를 어르고 또 달랬다. 그러나 이미 상처받을대로 상처
받은 막내는 여전히 심통난 표정이다.
"뭐 먹고 싶어? 피자 시켜줄까? 응? 너 피자 좋아하잖어!"
"필요없어."
빌고 또 비는 나를 외면해버리며 막내는 엉덩이를 씰룩 거리면서 부엌에 가 찬물에 밥을 말아먹기 시작했다. 그 안쓰러운
모습에 나는 막심한 후회를 하며 죄없는 머리카락을 쥐어 뜯어댔다. 그러자 옆에서 한심한 눈길로 나를 내려다보며 박유
천은 혀를 끌끌 차댄다.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이게! 나는 박유천에게 달려들었고, 녀석은 새초롬하게 혓바닥을 내밀며 '준수야아!'하고 침실로 쌔앵 달려가버렸다.
얍삽한 쥐새끼 같으니.
하는 수 없이 곧 매니저 형이 오기 전에 일단 눈부터 어떻게 가라앉히고 보자는 생각에 나는 냉장고에서 차가운 얼음조각
한 개를 꺼내 눈두덩이에 가져갔다. 그때 침실 쪽에서 내 휴대폰이 줄기차게 울리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어기적어기적 침
실로 걸어갔다.
침실에는 박유천이 김준수의 젖은 머리를 드라이기로 말려주며 히히덕거리고 있었고 침실 입구에 있는 침대에선 정윤호가
아직 잠들어 있었다. 아무리 얄미운 정윤호라지만 행여나 녀석이 깰까봐 박유천과 김준수에게 얼른 나가라고 인상을 쓰며
손짓했고 녀석들은 내게 마귀할멈이라며 궁시렁댄다.
"네, 여보세요."
발신자가 누군지도 확인하지 않고 무심결에 전화를 받았는데, 수화기에선 '어떡해! 진짜 받았어!' 하며 시끄러운 여자 음
성이 들린다. 그제서야 나는 어떻게 내 폰 번호를 알아낸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발신자가 여자 팬이라는 것을 눈치채게 되
었다.
-거기 재중이 폰 맞죠?!
"아닌데요."
휴대폰 스피커를 조금 크게 해놓은 탓인지 상대방이 여자라는 것을 알게 된 박유천과 김준수는 드라이기를 챙기다 말고
두 눈을 반짝이며 내게 사사삭! 다가온다. '형, 여자 생겼어?' 하고 박유천이 물어오는데, 나는 그런 놈의 머리에 살짝
꿀밤을 놔줬고 옆에 있던 준수 놈은 아씨이! 우리 초니 때리지마! 하며 얄미운 박유천 놈의 편을 든다.
쇼를 해라.
옆에선 강아지와 돌고래가 쌍으로 떠들어대고 전화 수화기에선 자꾸만 나를 추궁해대는데, 나는 휴대폰을 들고있지 않은
다른 한 손에서 얼음이 거의 녹아 찬 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을 보고는 얼른 전화를 끊으려 수화기를 고쳐들었다.
-맞잖아요! 맞잖아! 맞잖아!!
"아닌디유~."
"푸훗!!!"
내 딴엔 개그라고 흘린 내 고향 사투리가 먹혀든 건지 박유천과 김준수가 얼굴이 시뻘게져서는 배꼽을 잡고 뒤집어진다.
-꺅! 재중아! 사랑해!!!!!
뚜뚜뚜...
방 안이 떠나갈 듯 울리는 팬의 음성을 끝으로 전화는 끊어졌고 방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던 녀석들은 연신 실실 거리며 급
기야 아프지도 않는지 손바닥으로 세게 방바닥을 두들겨 댄다.
난 네 녀석들 엔돌핀을 상승시켜주려고 지껄인 개그가 아니란 말이다.
나는 그 둘을 살짝 흘겨봐주곤 침실을 빠져나가려고 뒤돌아섰다.
"......."
헝클어진 머리를 하고서 시끄러운 소리에 잠이 깬 듯한 정윤호는 단 잠에서 깨어나 자신의 머리칼을 매만지며 상체를 일
으켰다. 소리도 없이 일어난 녀석을 발견한 나는 움찔하며 손에 들고 있던 녹은 얼음을 발 아래로 떨어뜨렸다. 얼음이 방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에 정윤호는 하품을 하다말고 나를 돌아봤고 나는 또 한번 흠칫하며 얼음을 줍지도 않은 채로 침실
을 빠져나왔다. 그런 나의 뒷통수로 정윤호의 메마른 시선이 꽂히는 것 같다.
어제 일도 어제 일이지만, 난 지금 눈밑까지 내려앉은 다크써클과 퉁퉁 부은 눈을 녀석에게 보여줄 정도로 개념이 없지는
않단 말이다!
"너 정말 생각이 있어, 없어?"
"미안해, 누나."
"일단 얼음찜질부터 좀 하자."
미안하다는 말을 하면서도 내 표정은 그리 미안한 기색이 서려있지 않다. 오직 내 옆에 앉은 정윤호의 머리카락을 다듬어
주는 미용실 아가씨의 손길이 거슬릴 뿐이다.
"어머, 무슨 샴푸 써요? 윤호씨? 샴푸 냄새 너무 좋다."
그녀는 얼굴을 살살 쪼개며 자르라는 머리는 안 자르고 정윤호의 머리카락만 만지작거렸다. 그러자 정윤호는 모르겠는데,
하고 시종일관 무표정을 일삼는다.
"뭘 그렇게 봐?"
"앗! 차가워요, 누나!"
우리 멤버와 함께 한지 약 2년이 다되어가는, 우리보다 4살 많은 코디 누나는 한눈을 팔고 있는 내가 얄미운건지 다짜고
짜 내 부은 눈두덩이에 얼음주머니를 확 가져다댔다. 그 얼얼하고 차가운 감촉에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다른 미용사가
내 머리를 만지고 있다는 것도 망각해버리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버렸다.
"이 녀석! 엄살은!"
소파에 앉아 신문을 보던 매니저 형이 나를 쳐다보며 장난식으로 꾸짖었고, 정윤호와 녀석의 머리를 손질해주던 미용사가
동시에 나를 돌아봤다.
뭐야, 갑자기 바보가 된 느낌은.
나는 헛기침을 해대며 다시 자리에 앉으려는데 내 뒤에 있던 미용사가 갑자기 안색을 굳히며 입을 연다.
"어..어떡해, 갑자기 일어나셔서 실수로 뒷머리를 너무 많이 잘라버렸어요..."
하얗게 질린 얼굴을 하고서 거울에 비친 나에게 덜덜 떨리는 손으로 뭉텅 잘려나간 머리카락 뭉치를 들어 보이는데, 그
순간 나와 코디 누나는 동시에 창백한 피부톤을 하고서 경악을 해댔다.
"쿠쿡! 진짜 가끔씩 보면 나보다 더 애 같은 짓을 한다니까?? 그치이, 준숙아~."
"준숙이라고 부르지 말랬지!"
코디 누나의 잔소리를 들으며 연신 죄송하다는 말을 되풀이하는 그 미용사는 내 머리칼을 다시 땜질해주고 있었고, 나는
피부마사지를 받고 나와 내 옆에서 알짱되며 약올려대기 바쁜 박유천과 김준수를 노려보기에 급급했다. 곧이어 '다 됐습
니다.' 라는 말과 함께 갑갑했던 가운이 풀어졌고 나는 거울을 보며 어색해진 뒷머리를 쓰다듬어댔다. 옆머리는 자르지
않은 채로 길게 내리고 뒷머리만 목덜미를 반쯤 덮었는데, 이 머리도 그런데로 나쁘지 않아보인다. 그런데 커트하는 것을
끝낸 미용사의 눈빛이 조금 이상하다. 나한테 너무 미안해서 그런가, 하고 나는 단순하게 치부해버렸다.
"와아, 재중이 형 목덜미 진짜 하얗다! 깨물어봐도 돼?"
"죽을래? 박유천?!"
"아아! 노..농담이야!"
내 뒷목을 보며 감탄을 자아내던 유천이를 내가 뭐라하기도 전에 김준수가 귓바퀴를 꼬집어 끌어당겼고, 박유천은 비명
을 지르며 또 다시 김준수에게 굴욕적인 모드로 탈바꿈했다. 나는 그런 둘을 처참히 쌩까며 두 눈을 얼음 찜질하면서 다
시 거울 속의 내 모습을 이리저리 비추어봤고 순간 나를 향한 누군가의 시선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런 나의 눈
동자에는 정윤호의 작은 얼굴이 담겼다.
정윤호는 나의 얼굴과 훤히 드러난 목덜미를 번갈아보고 있었다.
"...뭐..뭐야, 내 얼굴에 뭐 묻었어?"
내가 얼음 주머니를 눈두덩이에서 떼며 다른 한손으로 얼굴을 만지작대자, 정윤호는 인상을 구겨쓰면서 고개를 홱 돌려버
렸다. 그리고는 남들이 들리지 않도록 작게 욕을 내뱉는데, 나만이 정윤호의 입에서 나온 '씨발.' 이라는 낮은 저음을 들
으며 살짝 움찔했다.
나는 뭐가 잘못된건가 싶어 다시한번 거울을 들여다보는데.
"헉!"
아뿔싸. 목덜미와 어깨를 잇는 그 어중간한 자리에, 새벽에 정윤호가 진하게 남겨둔 붉은 색 키스마크가 보란 듯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사색을 하며 어떻게든 머리카락을 억지로 끌어당겨 보기도 하고, 입은 연베이지 색 니트를 목 근처로
끌어올려 보기도 했지만 헛수고였다. 그러다가 거울을 통해 그 미용사와 슬쩍 눈이 마주치는데, 그녀와 나. 둘다 서로 어
색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김재중! 뭐해, 시간 없어. 그나저나 창민이는 왜 이렇게 안와?"
조금전 마사지룸으로 피부마사지를 받으러갔던 막내가 오지 않자 매니저 형은 시계를 보며 서서히 인상을 굳혔고, 그때
마침 창민이가 룸 입구에 있던 미용사에게 수건을 건네주면서 뚱한 표정을 지은 채로 저벅저벅 걸어왔다. 뭐가 그리도 맘
에 들지 않는 것인지 고운 미간에 잔뜩 주름이 잡혀 있다.
"표정이 왜그래?"
"마사지하는데 방해된다고 자꾸 빵이랑 우유 못먹게 하잖아요!"
창민이는 불만이 가득한 어투로 궁시렁 댔고 코디 누나는 그런 창민이를 보며 할 말을 잃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아침밥
도 못차려줬었지.
나는 불현 듯, 오늘 아침에 찬물에 밥을 말아먹던 창민이 녀석의 옆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창민이를 바라보며 잔뜩 미안
해하는 표정을 짓는다.
매니저 형의 늦었다는 재촉에, 코디 누나와 멤버들은 급히 미용실 계단을 내려갔고 미용실 자동문을 지나쳐 그들을 따라
계단을 내려가려는 나를, 누군가 어깨를 잡아 돌려세웠다.
"이거, 아까 그 미용사가 너한테 전해달라더라."
"......."
"주면 알 꺼라고. 그리고 머리 잘못 자른거 사과도 했어."
"......."
무표정을 하고서 불쑥 내게 무언가를 내미는데, 나는 그런 정윤호를 당황한 채로 쳐다보다가 엉겁결에 받아 들었다. 그것
은 살색 대일밴드였다.
"..아."
정윤호에게서 받아든 대일밴드를 나는 의아한 눈길로 내려다보다가 순간 화르륵 얼굴이 불타올랐고, 그런 나를 스쳐지나
정윤호는 느릿하게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칠칠 맞은 년."
혼잣말을 하듯 중얼대는 녀석의 싸늘한 저음에, 밴드를 들고 있던 나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그리고는 등을 돌려 조금씩
작아져가는 정윤호의 뒷통수를 따라 나 역시 급히 계단을 밟고 내려갔다.
*
언제까지 슬럼프 없이 이렇게 꼬박꼬박 소설을 올릴수 있을지...ㅜㅜ악 겁이 나네요.
6편에 리플을 달아주신 인소닷 회원님들 ㅜㅜ! 완전 사랑하긔!
카페 게시글
BL소설
동 성
※※※ 새빨간 망상 ※※※ 07
새빨간바비
추천 0
조회 1,530
07.12.27 21:06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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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저두 당신을 매우 사랑하긔!! 소설은 부담없이 써주길바라긔!!>.<
혐님 ㅜㅜ안녕하세요! 자주 뵙게되네요!ㅎㅎ 완전 사랑합니다 ㅋㅋㅋㅋ
님 연인에서 자주 만나긔...ㅂㄱ 님 소설은 항상 날 울게 만들어요T_T...성실연재
어머어머 진짜요??ㅜㅜ!! 곧 내일부터 방학이라 늦게 올리지는 않을꺼에요ㅜ! 성실연재하겠습니다! 고마워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앗, 로하님도 연인에??? 와우, 동지ㅋㅋ ㅜㅜ 만나서 반가워요!!! 리플 감사합니다!!
아아...늦게봤네요 ;ㅁ; 아무튼.....목에 쪼가리 남았으면 매니저가 다 보고나서 묻지 않았을까요? 그냥 사생활이라 가만히있은건가..... 근데..............칠칠맞은...X....이라뇨 ;ㅁ; 언제부터 영웅재중이 여자가 된거죠 ㅠㅠ;; [아님 원래 윤호는 재중을 여자로 생각하고있었다던가아... ](씨익)
매니저가 발견하지 못했죠 ㅜㅜ ㅎㅎ 그리고 재중이는 여자가 맞답니다. 이르구 ㅋㅋㅋ 윤호만의 여자죠 ^^;;;;;;;;;;........ㅋㅋㅋ 리플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