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탁PD 1 - 신진 자연호 회항기 ^^*
- 8월 13일 (토) 6물 날씨: 호우주의보
조행기도 아니고 회항기라니 이게 무슨 말인가~! 조사 님들이라면 누구나 다 피하고 싶은 회항을 뭔 얘깃거리도 못될 텐데 이렇게 써 올리는 사람이 있다니, 정말 웃긴다 싶으실 게다.
그래도 들어보면 재미난 이야기가 있으니 함 봐 주시길 바란다.
8월 들어 4일 날 홍원항 드래곤호를 출조한 이후로 한 열흘 정도 잠잠했던 나는, 낮부터 출조하고 싶은 마음이 동하여 어디 탈만한 배가 없나 하고 두리번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오늘같은 날씨에는 미리 예약을 하지 않아도 출조 취소객들이 많아 어느 배든 원하는 배를 골라 탈 수 있는 그런 날임을 직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터넷을 켰고 바로 눈에 들어온 곳이 신흥레져호이었다. 특히 신흥레져호에선 이런 날에 재미를 많이 봤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은근히 기대가 되었었다.
역시 날씨 탓에 대기자도 급속히 줄어들었고 나도 한 자리를 꿰차고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초저녁 무렵 아니나 다를까 오늘은 출항 취소한다는 연락이 왔다. 혹시나 했었지만 역시나 이었다. 김이 팍 샜다.
그냥 포기하고 내일이나 내일 모래 가자고 마음을 다잡고 집에서 채비나 만들기 시작했다. 마침 이번 여름 출조 때마다, 우럭과 함께 열기의 입질이 많았던 지라, 그 때의 아이디어를 채비로 만들어 볼까 하고 있었다. 사실 우럭을 하다가 열기 채비로 바꾸려고 하면 우럭이 울고, 그렇다고 우럭만 바라 보고 있으면 열기가 울 테니…… 이 마음 조사 님들이라면 다들 똑 같으리라.
그래서 생각해 낸 아이디어가 2단 채비 위에 많지는 않지만 20단차 정도로 17호 바늘을 몇 개 낄 수 있는 채비를 만들어 볼 요량이었다. 그 결과물이 곧바로 만들어졌다. 20~25단차 5~7단+80단차 2단, 거의 250~270Cm 짜리 긴 채비였다.
열기바늘 한 두 개 껴서 우럭채비로 내리다가 열기 입질이 있으면 바늘만 몇 개를 더 껴서 내리면 되겠지? 속으로 ‘효과가 있을까?’ 하면서 키득거리고 있을 찰나에, 어느덧 12일 밤 12시가 되었고, 하필 그때 신진 자연호에 두 자리가 빈 것이 눈에 딱 띄었다.
지역에 따라 날씨의 영향이 달라서 그런가? 안흥, 신진항이랑 홍원항이랑 그리 먼 곳도 아닌데…… 속으로 의아해 하면서 살펴보니, 신진 안흥 권에선 거의 모든 배들이 출조를 강행하는 것이 아닌가? 홍원항에선 모두 출조 하지 않는데…… 서선장님의 결단을 믿어야 하는데…… 이걸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고민!!!
그러는 와중, 내 속의 악마의 속삭임에 몸은 이미 예약 전화를 걸고 있었고…... 그 다음은 안 봐도 비디오다.
샤워 한 번 한 후, 서울에서 신진도를 향해 차를 몰기 시작했다.
반포IC 진입하기 전에 버거킹 와퍼 세트 하나 사서 입에 물고...... 서울에서 거의 1시 반에 출발, 신진도에 도착하니 3시 반이 조금 넘었다.
예상대로 신진도에선 조사님들이 분주히 오가며 활기가 넘쳤다. 비는 간간히 내렸다.
몇몇 아는 조사 님들이랑 서로 인사를 하기 바빴고, 게다가 낚시점에선 기분 좋게도 대구용 오징어 내장을 오늘 가공한 것을 가져다 놓고 팔고 있었다. 그냥 보기에도 너무 신선해 보였다.
냠냠 대구야 기다려라~! 내 오늘도 다섯 마리만 데리러 가마~
내 마음은 마냥 신이 났다.
식사를 하지 않을 요량으로 햄버거를 먹고 왔건만, 칼국수 집에서 조사 님들께서 드시는 죽을 보곤 또 먹고 말았다. 속으론 든든히 먹어야 무거운 대구 많이 들어올리지 하면서 ==;+
다른 날엔 대부분 배에 올라 장비를 설치하고 누워 자는데, 오늘은 무슨 마음이 동한 건지 배에 타기 전에 낚시대에 전동릴이며 전선이며 모조리 설치하여 비닐까지 씌워 들고 기다렸다. 서울에서 그렇게 늦게 출발하여 왔건만 시간이 남아 돌았다.
배에 올라타니 선장님이랑 사무장님께서 언제나처럼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사무장님은 한하호에 있을 때보다 자연호에서 훨씬 얼굴이 피신 것 같다. ㅋ 장비를 미리 준비해서 그런지 일찌감치 자리에 누워 잠이 들 수 있었다.
그런데 간간이 뿌리는 비 때문에 입은 비옷은 완전 땀복이 다 되어 있었고, 배 안은 거의 사우나 수준이었다. 다행히 홍원항처럼 모기가 많지는 않아서 옷을 죄다 훌러덩 벗어버리고 자리에 누워 잠을 청했다.
새벽 5시쯤 배가 출항을 하였고, 배 바닥이 바다 수면에 닿는 충격의 크기로 파도의 크기를 가늠하면서 서서히 잠이 들어가려고 하였다. 그 때, 한 20여 분 달리던 배가 갑자기 엔진 출력이 확 줄어들면서 요동치기 시작했고, 그와 동시에 잠도 확 깨었다 큰 너울이 있나? 하는 의문이 들무렵 비 소리가 요란해지기 시작하였다. 보이지는 않지만 바람이 장난이 아닌지, 배의 좌우 흔들림도 범상치 않았다. 선장실에서 바쁘게 주고받는 무선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지 2~3분 후, 선실문이 드르륵 열리면서 사무장님의 큰 머리가 쑥 들어왔다.
‘ 갑자기 돌풍이 불어서, 출항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안전을 위해 그냥 회항하도록 하겠습니다 ‘
배 바닥의 충격파보다 큰 뭔가가 내 머리를 내리쳤다. ‘ 쿠궁!!! 럴수 럴수 이럴수가!!! ‘
그래도 이내 생각을 고쳐 먹었다. 안전이 최고지. 그런 생각에 도달하자 선장님이 고마워졌다.
보통 돈에 혈안이 된 선장 나부랭이들은, 이런 경우 절대 회항하지 않고 기어코 바다를 기어나간다. 그리고선 섬 뒤쪽에 배를 대곤 낚싯대 몇 번 드리우게 한 후, 날씨 때문에 힘드니 다음 기회에 좋은 조과로 보답(?)하겠다고 하면서 들어와 버리곤 한다. 그런 후 잘해야 선비 50%를 돌려주거나, 아예 2~3만원 주고 집에 가라고 한다. 우리 조사님들 그런 경험 많지 않으셨는가?
그런 날은 보통 물고기도 잡지 못하고, 낚시점에서 구입한 미끼들도 죄다 바다에 버리게 되고, 채비도 날리고, 옷이란 옷은 빤쮸까지 홀라당 젖고, 마음은 죄다 착잡해진 상태로 집에 가게 되는 게 보통이다.
6시 경 신진항에 도착해 알아보니, 그 곳 신진항과 안흥항에서 출조한 몇몇 배들은 돌아오지 않고 섬으로 갔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바로 위에서 말한 시나리오대로 되지 않았을까 싶다. 내가 좋아하는 안흥항의 땡땡호도 어청도 섬 뒤쪽으로 간다고 했단다. 입맛이 씁쓸했다.
그래도, 항구에 들어오니 선비를 100% 봉투에 넣어 그대로 다 돌려주셨다. 심지어 낚시점에서 사가져간 대구 내장들도 죄다 현금으로 바꿔 주셨다. 그 분들의 어두운 얼굴표정을 볼 때, 잘못한 것도 없이 괜히 내가 미안했다.
집에 와서 회항하지 않고 출조했던 배들의 조황정보를 확인해 봤다. 역시 어떠한 배도 조황이 올라 온 배는 없었다.
오늘 같은 날은, 낚시인들에게 있어 모두가 손해를 볼 수 밖에 없는 날이다. 이 자리를 빌어, 과감하게 회항을 결정하신 자연호 선장님과 사무장님, 태안낚시백화점 사장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오늘 같은 날 출조를 강행한 내가 밉다. 후회막급이다. ㅋ
첫댓글 고생 하셨습니다만, 선장님의 결단에 나름 다행입니다. 신진 자연호 그나마 좋은 배로 분류해 놓습니다. 이런 정보가 소중한 정보가 아닐런지요... ^^*
대박이다.꽝맨 클럽 탈출이다..뭐 이런 허풍스럽고 자랑만해대는 누구 조행기보다 훨씬 마음에 와 닿는건 왜일까?열심히 바다를 찾았던 조사분들이라면 회항하는 허무한 경험 한 두번쯤은있으리라..ㅈㅇㅎ에대한 좋은 평가는 익히들어 알고있었음에도 오늘 다시 느끼게됩니다. 더욱이 이미 구입한 미끼까지 환불 받으셨군요. 저 또한 매너 좋은 선단으로 기억해놓으렵니다. 비오는 날 수고 많으셨습니다.
선사나 낚시점에서 당일 손해는 있을지 모르겠으나 길게 보면 결코 손해가 아닙니다. 눈앞의 작은 이익보다 조사님들의
안전을 위한 회항 결정에 대한 보상은 반드시 있을겁니다. 그게 세상 이치입니다. 세상 이치는 짜~여~언 스러운것이니까요.
선사, 출조점 모두 조사님들에게 베푼만큼보다 더 크게 돌아갈 것이라 확신합니다. 그게 인지상정이지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회항을 결정한 선장님의 뜻이 잔잔한 감동으로 느껴집니다.
저도 전날 고민많이했습니다 출조포기상황의 바다상황이었지만 다른유선 다출항하는데 다음날 신진도의 새벽
바람이 예사롭지않더군요 늦었지만 출조포기결정 조사님에게 안전즐낚의 우선을설명하고 아침식사대접하면서
다음을기약하자고 공감대가 형성되어 배승선도 않하고 포기하였습니다 안전이 우선이죠 저는요즘 갈등하고있습니다 작금에 주변이 너무어수선하고 남을헐뜻는 모함으로 신진도에서 독수리호를 접어야하는 갈림길에 있습니다 성질같아서는 확 뒤집어버리고싶은 심정이내요 참을대로참았지만 이제는 아니내요 회원님들 즐낚하세요
모든게 이심전심이라봅니다, 출조와 출조에 조과를 책임지는 선장님감사드라고 그것을 이해하시고 좋은 덕담주시고 저보도겸한 님께 찬사사 박수를 짝짝 고생하셨습니다
아~ 제가 아는 사람들도 이날 출조한건 아는데;; 조황사진이 안올라와서 궁금했었는데;;
결국 이렇게 되었군요~
단, 내만권배들은 전날(금) 대박조황이었고 이날(토)에도 굿 조황이었더군요
날씨 안좋은걸 예상했었으면 가까운 내만배를 이용해 보시길^^
신진 자연호 선주님, 낚시점 점주님의 마음이 참 아름답네요...
선주님, 점주님 부자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