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수산업자의 비서에게 “변호인 만나 싹 녹음하라” 시켜놓고
비서가 폭로하자 집 찾아가 “파일은 경찰에 전달안했다고 하라”
경찰이 ‘가짜 수산업자’ 김모(구속)씨의 유력 인사 금품 제공 사건을 수사하면서 참고인(김씨 비서)에게 “김씨 변호인을 만나 대화 내용을 싹 녹음하라”고 시켰다는 본지 보도가 나온 20일, 서울경찰청은 이 사건 수사팀장이자 녹음 지시 당사자인 강력범죄수사대 허모 경위에 대한 진상 조사에 착수했다. 그런데 그날 밤 이 사건 수사팀이 녹음 지시 내용을 폭로한 김씨 비서를 만나 “녹음 파일을 (허 경위에게) 전달하지 않은 것으로 해달라”고 회유한 것으로 21일 알려졌다. 서울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가 사실상 사건 축소를 시도한 것이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허 경위의 부하 직원인 서울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 B 형사는 20일 오후 김씨 비서 A씨에게 전화를 걸어 “김씨가 유력 인사들에게 보낸 수산물 선물세트 가격 등을 확인해야 한다”며 “오늘 늦더라도 좀 만나자”고 했다. A씨는 “내일 새벽에 출근해야 해 곤란하다”고 했지만 “몇 가지만 물으면 된다. 집 앞으로 가겠다”며 수차례 만남을 요구했다고 한다. A씨가 “전화로 하면 안 되겠냐”고 했더니 “허 팀장 사건(녹음 요구) 이야기하려는 것 아니다. 그 사건 관심도 없다. 잠깐이라도 괜찮으니 만나자”고 했다고 한다.
경찰은 지난 4월 12일 A씨를 공동폭행 등의 혐의로 체포했다가 풀어줬고, 6월 중순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A씨 입장에선 이미 자기 사건은 경찰 손을 떠난 셈이다. 그러나 경찰은 A씨를 풀어준 직후부터 김씨의 금품 제공 사건의 참고인 자격으로 그를 수차례 불러 조사했고, 이 과정에서 허 경위가 ‘변호인과의 녹음’도 지시했다.
B 형사는 20일 밤 11시 30분쯤 경북 포항시 A씨의 집 앞 편의점에서 A씨를 만나 약 1시간 동안 조사를 진행했다. A씨는 “(B 형사가) 수산물 선물세트를 구매한 업체 정보와 가격 등을 물었는데 앞선 조사에서 다 확인했던 내용들이었다”며 “정식 조사가 아니라 A4 용지 한 장에 내가 대답하는 걸 메모하는 정도였다”고 했다.
이후 B 형사는 헤어질 무렵 A씨에게 “허 팀장에게 녹음 파일 준 게 맞느냐. 팀장은 기억을 잘 못하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가 “(녹음 파일에) 별 내용 없었지만 준 것은 맞는다”고 하자 “안 줬다고 하면 안 되겠느냐. 부탁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엔 “이런 이야기하는 건 내 목 걸어놓고 하는 거다”는 말도 했다고 한다. A씨는 본지 통화에서 “부당한 수사를 받아서 폭로까지 했는데 경찰이 야밤에 조사한다고 내려와서 사실과 다르게 말해달라고 하니 너무 불안하다”고 했다.
수사팀의 이 같은 회유 시도는 불법이라고 법조계 인사들은 말한다. 검찰 출신 변호사는 “피해자에게 허위 진술을 교사한 것은 형사처벌을 받을 만한 사안”이라며 “경찰의 감찰 조사를 방해하는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강요 미수,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면담강요죄 등에 해당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강력범죄수사대 관계자는 “수사하는 과정에서 필요하면 (A씨를) 만날 수도 있는 것”이라며 “조사 당시 어떤 내용이 오갔는지는 알려줄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