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기차, 세계 전기차 생산·판매 중심에 우뚝
폭스바겐, ‘중국 배우기’ 앞장
비야디 판매, 테슬라 첫 추월
서방, 중국 견제하다 뒤쳐져
세계 전기차 산업의 판도가 바뀌고 있다. 중국이 그 중심에 섰다. 내연기관의 세계적 강자인 폭스바겐은 중국 투자 확대를 통해 ‘중국 전기차 배우기’에 나섰다. 이 회사는 중국에서 전기차를 만들어 유럽에 수출하고 있다. 중국의 전기차 업계 선두인 비야디는 분기 판매에서 테슬라를 처음 추월한 것으로 보인다. 전기차의 역사가 새로 쓰이는 중이다.
2023년 10월 3일 중국 산시성 시안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18회 시안 국제 자동차 박람회’에서 관람객들이 비야디(BYD)의 첫 고급 브랜드 모델인 양왕(仰望)의 U8 차량을 관람하고 있다. (시안=신화통신/뉴시스)
●내연기관 강자 폭스바겐의 중국 전기차 배우기 = 세계 내연기관 차량 제조 부문 강자인 독일 폭스바겐이 이젠 중국 내 공장에서 전기자동차를 만들어 유럽에 판매하는 처지가 됐다.
중국 경제매체 차이신에 따르면 폭스바겐은 안후이성(省) 허페이시 공장에서 유럽 시장 수출용 전기 SUV(스포츠유틸리티 차량)인 쿠프라 타바스칸 생산을 개시했다. 폭스바겐의 3번째 중국 합작사인 폭스바겐 안후이가 생산하는 쿠프라 타바스칸은 폭스바겐의 계열사인 스페인 세아트가 생산하는 모델과 동일하다.
눈여겨볼 대목은 운송비를 포함한 각종 비용을 감수하면서까지 폭스바겐이 쿠파라 타바스칸을 중국에서 생산해 유럽 시장으로 보낸다는 점이다. 폭스바겐은 중국산 쿠프라 타바스칸 제조 원가가 스페인 세아트가 생산하는 같은 모델의 절반도 들지 않기 때문에 이 같은 결정을 한 것으로 안다고 차이신이 짚었다.
폭스바겐은 일본의 닛산·도요타와 더불어 세계 최고 수준의 내연기관 자동차 기술을 선도해온 세계 굴지의 자동차 기업이다. 그러나 자동차 시장이 전기차 위주로 재편되는 상황에서 폭스바겐 역시 중국 의존도를 키워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실 세계 1·2위의 동력 배터리 기업인 CATL(닝더스다이)과 BYD(비야디) 등을 키워온 중국은 이미 전기차 배터리 공급망을 쥐고 있다. 중국 토종 전기차 기업인 BYD는 이미 미국 테슬라와 엎치락뒤치락하는 세계 최대 전기차 생산기업으로 등장했다. BYD의 지난해 누적 전기차 판매량은 157만4822대에 달했다.
이런 상황에서 폭스바겐은 중국 현지 기업들로부터 부품 조달을 늘리고 첨단 전기차 기술을 배울 목적으로 중국 투자를 늘려왔다. 폭스바겐은 전기차용 디스플레이, 미디어시스템 등을 습득하기 위해 전기차 스타트업 샤오펑(小鵬·Xpeng), 배터리 제조업체 궈시안(Gotion), 자율주행에 초점을 둔 소프트웨어와 반도체를 만드는 호라이즌 로보틱스 등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고 있다.
특히 폭스바겐은 허페이공장에서 유럽 수출용 전기 SUV 생산에 이어 2026년부터 중국 보급형 전기차 모델을 출시한다는 계획이다.
일각에선 전기차 전환에 뒤처졌던 폭스바겐이 ‘중국 배우기’를 통해 전세 역전에 나섰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올해부터 본격화할 중국과 유럽연합(EU)의 전기차 분쟁 추이가 주목된다. 1% 수준에 불과했던 중국산 전기차 판매 비중이 2022년 8%로 치솟았고, 내년엔 15%가 될 것으로 추산되는 가운데 EU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EU는 중국 당국의 ‘불공정 보조금 혜택’으로 중국산 전기차가 싼 가격에 유럽 시장에 유입돼 역내 기업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면서 중국을 겨냥한 반(反)보조금 조사를 진행 중이다. EU는 중국 당국이 수년 동안 CATL과 BYD 등의 전기차와 동력 배터리 분야 산업을 전폭적으로 지원해왔고, 전기차 구매세 면제 등 보조금을 줘온 걸 문제 삼고 있다.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의 방중 계기로 이뤄진 지난해 12월 7일 시진핑 국가주석, 리창 총리와의 회동에서 양측은 중국산 전기차 문제를 논의했으나 뚜렷한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비야디, 전기차 분기 판매 첫 테슬라 추월 = 중국 전기차 선두 업체 비야디(比亞迪·BYD)가 작년 처음으로 연간 판매 300만대를 달성했다. 또 작년 4분기 순수 전기차 판매에서 글로벌 전기차 최강자로 꼽히던 미국의 테슬라를 제쳤다.
비야디는 1월 1일 발표한 자료를 통해 작년 한 해 누적 신에너지차(전기차·하이브리드차·수소차) 판매가 302만4417대로, 전년보다 62.3% 증가하며 목표로 삼았던 연간 판매 300만 대를 초과 달성했다고 밝혔다. 이는 2018∼2022년 직전 5년간의 누적 판매(313만4283대)와 비슷한 수준이며, 비야디는 역대 처음 글로벌 판매 랭킹 10위권에 진입했다.
비야디 신에너지차 판매는 2018년 24만7811대에서 2019년 22만9506대, 2020년 18만9689대로 2년 연속 감소했으나 2021년 60만3783대, 2022년 186만3494대로 급증했다.
지난 12월 판매는 34만1천43대로 전년 동월 대비 45% 증가하며 월간 기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10월부터 3개월 연속 월간 30만대 이상 판매 기록도 이어갔다. 작년 10월(30만1800대)과 11월(30만1903대)에는 30만대에 턱걸이했고 12월에는 전달보다 13% 급증했다. 이에 대해서는 작년 11월부터 가격 할인 등 공격적인 판촉전에 나선 것이 주효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런 가운데 작년 4분기 순수 전기차 판매에서 비야디가 처음으로 테슬라를 추월했다. 비야디의 작년 4분기 판매 94만4779대 가운데 순수 전기차는 52만6409대, 하이브리드차는 41만6242대였다. 분기별 순수 전기차 판매가 역대 처음으로 50만대를 넘어선 것이다.
반면 2일 발표된 테슬라의 작년 4분기 전기차 판매량(인도)은 48만4507대에 그쳤다. 2022년도 4분기에는 비야디 전기차 판매가 43만2000대로, 테슬라의 43만5000대에 약간 못 미쳤다.
2022년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를 합친 차량 판매에서 테슬라를 추월해 세계 신에너지차 판매 1위에 올랐던 비야디는 작년 3분기에는 총이익률(매출액에 대한 매출 총이익의 비율)에서도 테슬라를 제쳤다. 작년 3분기 비야디 순이익은 104억1300만 위안(약 1조9000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82.2% 급증했고, 총이익률은 22.1%에 달했다. 반면 테슬라 총이익률은 17.9%에 그쳤다.
작년 3분기 총이익률 선전에 이어 4분기에 순수 전기차 판매만으로도 테슬라를 앞서게 되면 명실상부한 세계 전기차 시장의 최강자로 올라서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비야디는 2022년 3월 내연기관차 생산을 전면 중단하고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 생산에 ‘올인’했다. 2022년 하반기 독일과 노르웨이, 스웨덴 등에 잇달아 대리점을 개설한 비야디는 최근 헝가리에 전기차 조립공장 건설 계획을 발표하며 본격적인 유럽 진출을 선언했다. 비야디는 2030년까지 유럽 전기차 시장의 10%를 차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편, 비야디는 연간 판매 목표 달성과 관련, 판매상들에게 20억 위안(약 3천700억원) 규모의 포상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판매 목표를 달성한 판매상에는 판매 차량 1대당 666위안(약 12만2000원)을 지급하고, 목표에 미달한 판매상에도 목표 달성률에 따라 포상금을 차등 지급할 계획이다. 비야디는 중국 내 대부분 판매상이 지난해 판매 목표를 달성했다고 밝혔다.
●서방, 신흥국 시장 지배력 상실 가능성 = 이처럼 중국의 전기차 업체들이 확장세를 이어가는 가운데 서방에서는 견제를 강화하고 있다. 이런 흐름에 대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 전기차에 대한 서방의 불안감은 결국 문제를 더 키울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과 유럽이 중국 공급업체를 보조금에서 제외하고 관세를 인상하는 방식은 오히려 전기차 도입을 둔화하고 자칫 신흥국 시장에서 지배력을 잃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WSJ에 따르면 북미 공급망을 육성한다는 목적 아래 중국에서 제조된 배터리 부품이 배제되고 그 부품을 쓴 일부 미국 자동차 모델은 자국에서 부적격하게 됐다. 이로 인해 테슬라의 모델 3 후륜 구동 및 롱 레인지 버전 등이 자리를 잃을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WSJ은 서방이 다른 쪽을 해치려다 오히려 자기 자신을 해치는 우를 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체 공급망을 구축하고 제조업체에 적응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전기차 전환을 너무 늦추면, 중국은 거대하고 넉넉한 보조금을 받는 자국 시장은 물론 수출을 통해 신흥 경제국에서 더욱 앞서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서방이 자체 공급망 보호와 글로벌 경쟁력 확보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맞추기는 쉽지 않다는 게 WSJ의 설명이다.
[한국무역신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