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4.10.28 09:49 43' / 수정 : 2004.10.28 09:56 15'
조선일보는 지난 24일 열렸던 2004 조선일보 춘천 마라톤 참가기를 11월 5일까지 춘천마라톤 홈페이지(marathon.chosun.com)를 통해 받고 있습니다. 접수된 글중 춘천 마라톤 대회의 열기와 감동을 생생하고 섬세한 필치로 그려주신 조은숙(38·주부·전북 전주시)씨의 참가기를 chosun.com에 싣습니다. 춘천마라톤에 처음 참가한 조씨는 3시간 50분 59초의 기록을 세워 여성 완주자 1354명 중 104등을 차지했습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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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마라톤 참가기]이천사! 춘천마라톤
▲ 춘천마라톤에 참가한 조은숙씨가 코스를 달리고 있다.
작년 춘천마라톤 ‘달리는 사람들’ 책자에 올해 첫 풀을 춘천에서 뛰고싶다는 글을 썼었다. 이미 두 번의 풀을 뛰어 처녀성은 잃었지만 한번은 춘마에서의 기록 미보유자를 벗어나기 위해, 또 한번은 춘마 대비 마지막 LSD(Long Slow Distance의 약자·천천히 오랫동안 달리기) 훈련을 뜻함이었다. (아! 변명 힘드네요)
12년전 10월 24일은 그 길고 막연했던 연애10년에 종지부를 찍은 날이기도하다. 춘천마라톤대회 하루 전, 각방을 써 준 남편의 배려에도 결혼식 하루 전날의 그 설렘처럼 깊은 잠을 잘 수 없었다.
새벽 4시. 다른 때 같으면 남편 깰까봐 살금살금 들쥐마냥 대회 나갈 준비를 하는데 오늘은 웬일인지 남편이 더 일찍 일어나 설치며 마치 마지막 길을 떠나는 사람을 대하듯 대우해준다. 욕심부리지 말고,천천히 즐기면서 뛰고 오라며 같이 가는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쓰라면서 하얀 봉투까지 내미는 것이 아닌가. 받아쥐는 순간 두툼하다. 20만원쯤 되려나…. 갑자기 감동이 밀려온다. 역시 난 돈에 약하다.
이틀 전에 싸 놓은 가방을 다시한번 점검한다. 칩과 배 번호와 날씨에 따른 대회복 긴타이즈, 반팔, 민소매, MP3의 배터리를 다시 점검 점검.
이 팽팽한 긴장감 빨리 뛰어 버렸으면 좋겠다.
2만 5000명. 일찍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집결한 장소에 가본적이 있던가, 생각해 보니 처음이다. 역시나 마라톤을 하는 아주 훌륭한 초등학교 동창과 만나기 위해 대여섯번의 전화 통화를 하고, 다같은 풀코스 주자라 작은 대회에서 느끼는 풀코스 주자만의 우월감을 느낄수 없다며 불만아닌 불만을 토로하며, 무작정 아는 얼굴들을 찾아 물품보관소로 화장실로 스트레칭도 하지 못한채 실속없는 방황을 하고 다녔다.
오늘 나의 대회 컨셉은 4시간 안에 마라톤벽을 만나지 않고, 피니시 라인에서 나도 한번 울어보기. 아직 레이스 조절엔 미숙하지만 초반 오버만 하지 않으면 가능하리라.
출발 총성 15분후 F그룹에서 같이 달리기로 한 선생님 말씀에 의하면, 물결처럼 자연스럽게 흘러 나가다가 칩매트를 밟는 순간 내가 용수철처럼 튕겨 나갔단다. 난 어쩔수 없는 대회용 오버걸인가보다.
그러나 기본소양은 갖춘 마라토너로서 앞지르기는 하지 않고 천천히 천천히 앞 주자의 발자국에 내 발자국을 찍는다. 소시적 햇살좋은 가을날 마로니에 공원 벤치에 앉아 사람 구경하던 취미를 살려 달리면서 앞주자들을 구경한다. 반타이즈와 버프(buff·두건)로 멋을 낸 남자 주자들도 많은데 키크고 늘씬한 긴 머리의 여성 주자가 자꾸 눈에 들어온다. 무슨 여자들이 저렇게 달리기를 잘하나…, 곱지 않은 시선을 던진다.
메이저급 대회 나가면 탱크탑 입은 여성주자들이 많다기에 나름대로 민소매 쫄티와 새로 바지도 하나 장만하고 신경 많이 썼는데 뭐, 주변 반응은 별로인 것 같다.
주변의 끊임없는 이어지는 마라토너들과 같은 속도 같은 호흡으로 달린다.
많은 상념들이 머리를 스친다. 드라마틱하게 하필 오늘이 결혼기념일, 연애10년에 1000여통의 편지를 주고받으며, 이 남자와 결혼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아 결혼했건만 신혼초부터 이혼 위기를 넘기며 첫 아이 낳고 심한 우울증에 무기력하게 살아온 날들…. 우리 부부는 제일 좋아야 될 시절을 그렇게 서로 할퀴며 살았다.
그도 참 힘들었으리라. 왜 이제와서야 이런 생각이 드는지….
달리기를 하면서 어릴적 땅따먹기 하듯 내가 확보하는 땅. 내발로 뛰어가는 10km, 20km 그 거리만큼 내 마음은 넓어지고 여유로워짐을 느낀다. 중간 기록을 휴대폰 문자로 보내주는 서비스에 남편 전화번호를 남겼다.
10㎞ 53분, 20㎞ 1시간 45분….
행여 중간에 늦어지면 그가 걱정할까봐 열심히 달렸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건 나의 오버였다)
즐겁게 천천히 달리기! 최선을 다한 뒤 느끼는 성취감과 자기 만족! 항상 이 두가지 기로에서 망설이지만 오늘은 최선을 다하고 싶다.
그러나 나의 오지랖은 항상 발목을 잡는다. 시각 장애우가 놀라지 않도록 도우미분에게 작은 소리로 화이팅도 외쳐주고, ‘수능 대박’을 등에 붙히고 달리는 고3 선생님에게도 화이팅,
카메라앞에서 살짝 포즈도 취해보기도 한다. 이런 일들의 단 몇 초가 내 힘겨운 달리기에 위안이 된다.
30㎞를 넘어서 MP3의 불륨을 높힌다. 음악을 들으면 주변에 신경쓰지 않고 철저하게 혼자가 된다. 사교성엔 치명적이지만 어차피 혼자 달려가야 할 길. 남은 10km는 평소 달리던 내 달리기 거리에 최면을 건다. ‘지금 우리 동네 저수지변을 달리고 있다. 사연있는 무덤을 지나고 있다….’
40여㎞쯤 달리니 마라톤을 42.195㎞로 정한 사람이 웬수같다. 이 2㎞만 아니라면 얼마든지 널널하게 달릴수 있을텐데…. 그러나 여지껏 달려온 길을 이 2㎞때문에 망칠수는 없다. 이제 십여 분만 달리면 피니쉬라인에서 마음껏 기뻐할 수 있다. 나는 오늘 이 기록으로 평생 먹고 살 수도 있다.
몸이 힘드니 사고(思考)도 유치해지지만 어쩔수 없다.
▲ 춘천마라톤에 참가한 조은숙씨가 코스를 달리고 있다.
연도에 늘어선 인파를 보니 새삼 힘이 쏟는다. 피니시 라인에서 사진 잘 찍혀야 되는데 나도 모르게 마지막 스퍼트를 하고 말았다. 무의식중에 나오는 나의 완주 세레모니. 두팔을 벌려 온 세상을 껴안는다.
일행들과 닭갈비집에서 일주일간 구경 못한 소주를 한잔 마시는데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휴 또 일찍 들어오라는 전화인가….
“자기 기록 내 휴대폰에 문자로 들어왔네. 3시간 50분. 조은숙 내가 그럴줄 알았다.얼마나 죽자살자 뛰었길래~.”
“내 기록이 자기 기록 아녀? 그래야 내일 당신 회사가서 말발 서지. 차 막혀서 오늘 안에 못 들어갈거 같은데 기다리지 말고 먼저 주무셔.”
“천천히 와.”
밤 12시 20분, 말끔히 정돈된 집, 욕조에 미리 받아놓은 온수와 뜨끈뜨끈하게 덥혀놓은 자석요와, 전기 밥통에 퍼놓은 밥 한그릇이 준 감동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렇게 귀신 달래듯 같이 달리자고 꼬셔도, 달리기는 아랫것들이나 하는 거라며 달리기 자체를 죄악시 하던 그가, 나의 중간기록 문자를 받고 “이눔의 것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나도 한번 달려 보자”며 학교 운동장에 나가 25바퀴를 뛰었단다.
무의식중에 나온 거실에서의 세레모니. 두팔을 벌려 그를 껴안는다.
우이씨~. 다 부부동반인데 나 혼자 결혼기념일 기념 달리기 하느라 얼마나 외로웠는 줄 알어?
첫댓글 돌수 뭐 한다냐~ 잔다냐~
우~ c, 점심 대신 감동 먹네.
애주의 글솜씨에 감동먹고, 애주(사진)인물에 감동먹고, 면벽 말데로 점심 안먹어도 배가 부르네
애주야.원고료 받으면 내 빚 가퍼라~~~잉
꺼억~꺼억 ~! 가슴에 눈물이 나누나..
으~미~. 나 지금 얼라덜 볼까봐 눔물 감춘다...
감동 또 감동......그래도 점심 먹으러 가야쥐.
역시 애주글은 참 맛갈스럽다...그건 그렇고 남정네한테 각방 쓰라고 하는건 이해하겠는데...이상하네??????
윗글이 "대회참가후기"에 있었는데.... 없어졌네??
역쉬~ 단하나 뿐일 명예회원 자격있네...
감동에 드라마네. 역시 애주야... 점심 먹었냐....
오스가 참 대단하다.
애주씨, 글 재미있게 잘 읽었어.10년 연애한 사람들은 그렇구나, 게다가 결혼기념일 달리기선물..글도 잘쓰고 모습도 예쁘고. 58크럽의 꽃 이네.
이 글이 저쪽에도 있던디..
애주 대단하다. 결혼12주년기념 마라톤대회에 하객 24,000명이 참석했다는 것 아녀... 근데 한명만 참석을 안 했구만...
애주야 문단에 데뷰해라...^^~~
감동에물결~~~애주글이 맛갈나네....
야ㅎㅎ 애고 귀엽다 글고 대단하구 장하다
지고두 주듸는 살아서...장군오빠만 빼구 캄사합니다.장군오빠!벼루기 간을 내 드세요.
코 끝이 찡 하네 ! 벌써 세번이나 읽었쓰 어쩌믄 글도 잘쓰고 달리기도 잘하누 ~~
애주야~~ 나 토욜에 앰불란스에 실려갈 정도루 마셔도 되니?
지 생일날 뛰는 놈이나 결혼기념일에 뛰는 놈이나 하여간 못말리는 놈들이여...^&^ (광수야! 실컷 마셔라...그 앰블란스 술취한 하마가 운전할꺼다.)
조은숙양! 글에서 보면 "알어?"하고 끝났는데....그 다음에는 뭐했어. ^^
암껏두 안했어요.
너 !! 자석요 깔구 결혼 기념 몸부림 칠때 난 돈 잃구 울었다 ....
오파리의 별, 마온의 스타!, 전국구 태양.. 나., 감동 쭈욱!!!!!!~~~~~~~~~~~
이뿌다~애주씨~남편분두 ~멋있어 절대루 밴댕이아니네뭐~~
댓글역사상 위 멍후의 작품이 최고라 생각함(읽을 때마다 웃음이 나옴).
나 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