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글이 600자를 넘어 입력이 안 되기에 별도로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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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신라본기 나해이사금 3년 기록에 "3월 을묘일(음력)"에 일식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를 양력으로 환산하면 대략 198년 4월 말이나 5월 초가 됩니다. 하지만 현대 천문학적 검증 결과 해당 시점에는 한반도나 중국 대륙에서 관측 가능한 일식이 없었던 것으로 파악됩니다."- knjpark
=> 삼국사기 나해이사금조 어디에 그런 기록이 있는지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아래는 제가 가진 나해이사금 3년(198) 기록입니다. 일식기록은 없고 대신 홍수 기록이 있습니다. 삼국사기는 일본서기와 다르게 판본마다 내용이 심하게 다르지 않습니다.
*奈解尼師今, 三年, 夏四月, 始祖廟前臥柳自起. 五月, 國西大水, 免遭水州縣一年租調. 秋七月, 遣使撫問.
나해이사금 5년과 6년에 있는 일식은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奈解尼師今, 五年(200), 秋七月, 太白晝見. 隕霜殺草. 九月庚午朔, 日有食之.
*奈解尼師今, 六年(201), 春二月, <加耶國>請和. 三月丁卯朔, 日有食之.
신라본기 일식 중 아예 그 해에 일식이 없었던 대표적인 기록이 2대 남해차차웅조의 일식 2개인데, 이것은 4대 탈해이사금조에서 옮겨 간 것으로 봅니다.(3대 유리이사금조는 왜가 없음) 그 이유는 남해 11년조에 왜와의 전쟁이 있고 탈해 3년조에 평화협정이 있어 사건의 원인과 결과인데 둘을 떼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이때 탈해이사금조의 일식 기록 2개도 남해차차웅조로 함께 이동한 것으로 봅니다. 신라가 왜를 최초로 만난 것은 탈해이사금 시기입니다.(혁거세거서간조의 왜는 사건이 아니기 때문에 제외)
나해 3년조에 홍수가 난 지명 대신에 나라 서쪽이라고 방위만 쓴 이유가 무엇입니까? 신라본기를 보면 구체적으로 지명을 쓴 경우가 있고, 서쪽이니 남쪽이니 하고 방위만 쓴 경우가 있습니다.(방위만 쓴 경우는 서쪽과 남쪽에 몰려 있습니다.) 그 차이가 무엇입니까?
*奈解尼師今, 十三年, 春二月, 西巡郡邑, 浹旬而返. 夏四月, <倭>人犯境. 遣伊伐찬<利音>, 將兵拒之.(13년 봄 2월, 왕이 서쪽의 군과 읍을 순찰하고 열흘 만에 돌아왔다.)
*奈解尼師今, 三十二年, 春二月, 巡狩西南郡邑, 三月還. 拜波珍찬<康萱>爲伊찬.(32년 봄 2월에 왕이 서남쪽 군읍을 순행하고 3월에 돌아왔다. 파진찬 강훤을 이찬에 임명하였다.)
첨해 10년조에 일식기록이 하나 더 있지만 일어나지 않은 경우라 나해 6년조 일식기록이 통일전 신라 일식의 마지막 기록입니다. 왜 201년이 마지막이지요? 첨해 10년조의 일식 기록은 어디서 이동해온 것인지는 모릅니다.
첫댓글 반갑습니다. 과거와 미래님.
제가 재차 확인하 바로는 198년 일식 기록이 없군요.
죄송합니다
정확한 사료 비판을 통해 오류를 바로잡아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