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자랑
Anycall 개발의 원조 천경준 전 삼성전자 부사장이 내 친구다.
삼성정보통신연구소 소장을 오래했고 지금은 에스원 고문이다.
그는 나를 늘 자기의 전자기술의 사부라고 부른다.
1963년 가을쯤 어느 토요일이었다. 나와 그는 고등학교 1학년1반 급우였고,
대구역에서 통근열차를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그는 경산에서 동학했고,
나는 대구 살았지만 토요일이면 언제나 오산동 집에 가서 할아버지를 뵈야하고
어지간한 머슴 못지않게 모든 농사일을 도왔다. 그 후 ...
내가 성서 50사단에 지원입대한다고 인사드리러 갔는데, 할아버지의 요청으로 동생들을 데리고
증조부 산소에 가서 기념촬영을 할때까지 82세에도 정정하셨고 늘 맏손자를 대견해 하셨다.
그런데 입대 1주일 후에 돌아가셨다고 연락이 와서 며칠 훈련병이 훈련도 재키고 할아버지
초상치르러 가야한다고 고집피우다가 기합도 좀 받았다. 그때는 1968년이다.
다시 대구역.
토요일 통근차 시간은 느긋하다. 그래서 친구와 함께 교동 양키시장을 갔다.
한참 전에 나의 삼촌이 건네준 광석라디오 회로도의 부속품을 사러 간 것이다.
그때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트렌지스터라는 용어가 일반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지금의 LCD제품들은 수백, 수천만개의 액화 트렌지스터들로 이루어졌지만.
1석(단 하나의) 트렌지스터 광석라디오를 만들려고 양키시장 전기제품가게를 다 훌텄다.
당시의 모든 라디오들은 진공관식으로, 직접 제작해도 진공관 6구식 정도면 성능이 좋았다.
세계 최고급의 제니스라디오도 진공관식이다.
나는 다행히 2SB56이라는 일제 토시바의 트렌지스터 제1세대 부품을 살 수 있었다.
위의 내 친구는 옆에서 뭔지도 모르고 구경만하고 따라다녔고.
그 후 연구 연구 끝에, 겨울방학 직전에 소리가 쾅쾅 울리는 라디오를 성공했고,
내 친구를 집으로 데려와서 보여 주었다. 높게 안테나를 쳐야 하니까 집으로 와야하는 거다.
그 순간 친구가 꺼뻑 자빠져버렸다. 이게 그 양키시장에서 산 걸로 만든 거냐고 따진다.
그래서 그 날 샀던 부품들을 내가 만든 라디오의 나무박스를 열고 하나하나 보여줬다.
그 사건이 30년 후에 Anycall이라는 괴물의 탄생을 예약했을 줄이야 !!!
나는 부모님 청으로 상과대학 경영과를 갔는데, 친구는 당시 새로 생긴 전자공학과에
지망했다가 종로에서 재수를 하게되었다. 내 친구가 얼마나 지식이 많았으면 재수생이 서울에서
유일한 “종로라디오TV학원” 강사를 하면서, 종로 대성학원 재수생 수강료의 몇 배를 벌었고,
장가 갈 때까지 직장 다니면서도 고정강사로 있었기에, 데이트도 YMCA 지하다방에서만 했다.
지금의 친구 어부인은 나만 보면 꺼뻑죽는다. 타위펠리스 입택할때도 나만 불렀다.
경제기획원다니던 아가씨를 눈여겨 본 내가 두 사람의 결혼을 쾌히 승락해 주었던 보답이라고 본다.
나의 트렌지스터 라디오가 “쾅 쾅” 터지던 날 이후로 친구는 나의 수제자가 되었다.
라디오의 복잡한 회로도도 그려주고 삼덕동 대구시립도서관에 같이 가서 전자와 트렌지스터
관련 책들도 뽑아주었다. 다음 해 봄방학때 나는 “청출어람이 바로 이러하구나”라고 감탄했다.
친구는 이미 1석이 아닌 2석 라디오를 만들었다.
친한 친구들과의 교류는 누구에게나 끊임이 없겠고, 나도 다른 좋은 친구들이 많지만,
나와 천경준은 많은 인연이 있었다. 젊을 때 회사가 서울역앞 대우빌딩에 같이 있었고,
내가 1977년 벨기에 브르셀에 주재원으로 나가 있을 때 친구는 암스테르담의 최첨단
전자회사인 필립스에 몇 달간 연수를 와있어서 유럽이 좁다 하고 만나기도 했다.
어린 시절 어느 토요일 오후, 한 친구와의 생각지 못했던 여가가,
인생의 크나 큰 변화와 국가, 사회의 더 큰 발전에 기여했다는 것이 나의 체험이고,
친구는 지금 DNA분석의 최첨단 Bio회사를 운영하고 있고, 나는 감사로도 재직했다.
자신의 성공을 감사해하는 친구의 나에 대한 정신적 경제적인 배려는 상식을 넘는다.
나처럼 공짜 골프 많이 친 사람 나와 보라고. 공무원들은 말고.
몇 년 전 나의 모친 대구 빈소에 누구보다 먼저 서울에서 내려와서 문상하면서
“채영기를 저의 친구로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나와 함께 어머님의 영전에 감동어린 은혜를 빌었었다.
좋은 친구다. 친구의 국가와 기업에 대한 기여는 말할 수없이 크다.
꺼먼 다이얼전화기 개발하려고 일본을 다니던 시절부터, 현재의 와이브로 광대역무선까지…
내 친구는 가히 국보적 존재이다. 지금도 정부, 삼성에서나 과학기술한림원 등에서
많은 역할을 하고 있는 친구가 부럽기도 하다. 나도 상대보다 공대로 갔어야 했는데???
사람들은 누구나 미지의 앞선 길을 찾는다. 그 옛날 시골에서 캄캄한 밤길을 혼자 걷듯이.
오늘 날 세계 최고의 정보통신 국가가 된 한국도 이 이야기와 같은 풀뿌리들의 기여가 크다고 본다.
나의 훌륭한 친구 천경준의 자랑이, 내 자랑이 되어서 더 흐뭇하다.
첫댓글 멋진 우리 선배님이 계셔서 우리들은 늘 든든하고 자랑 스럽습니다. 항상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세요!!! 늘 건강 하시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