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에스기 겐신 (1530 ∼ 1578)
- 일생 -
- 일본 전국시대 최고의 의리남 (별명 : 에치고의 용)
- 나가오 다메카게의 차남으로 출생 (아명 : 나가오 가게토라)
- 20살 넘게 차이나는 형(하루카게)의 무능함에 가신들이 힘을합쳐 켄신을 옹립함으로 가독을 승계
- 호조가의 공격에 간토간레이였던 우에스기 노리마사는 에치고로 도피해 켄신에게 복수를 부탁
- 노리마사의 양자가 되어 우에스키가를 계승하고 우에스키 겐신으로 개명, 간토간레이직 계승
(간토간레이 : 간토구보를 도와 간토지역의 행정을 총괄하는 감독관)
- "가이의 호랑이" 다케다 신겐이 시나노를 침공해오자 시나노 영주인 무라카미 요시키요가 켄신에게 다케다 토벌을 의뢰
- 정의 덕후였던 겐신은 바로 응낙후 신겐과 "가와나카지마 전투"를 벌이게 됨
(용과 호랑이의 대결로 불리며 총 5차례 대치했는데 실질적으로 싸운건 4차전투 한번...)
- 평생의 숙적 신겐이 주변국가들의 무역봉쇄로 "소금"을 얻지못해 곤란을 겪게되자, "인도적 차원"에서 소금을 보내줌
(아무리 적이라도 치사하게 말려죽이는건 인의가 아니다)
- 노부나가가 무로마치막부의 마지막 쇼군을 쫓아내자 겐신도 결국 노부나가 토벌을 결심하게되고, 때마침 오다측 (시바타 가쓰이에)의 7만대군을 테도리가와 전투에서 대파시킴
- 상경준비중 뒷간에서 뇌출혈로 사망 (...)
- 평가 및 이모저모 -
- 생애불범 (살아있는동안 여자를 가까이 하지않겠다) 맹세를 하고 철저히 지킨탓에 자식없이 사망
(덕분에 "겐신 여성설"까지도 나오고 있고...겐신을 사모했던 한 여성은 남장을 하고 전쟁터마다 겐신을 따랐다는 전설이 전해짐)
- 키가 6척 거구라는 설도 있는데 실제 입은 갑옷으로 추측하면 150cm대 후반으로 알려짐. 혈액형은 AB형
- "생전 누군가와 한 약속을 먼저 깬적은 한번도 없다"고 전해짐
- 군신으로 추앙받을정도의 인물이였으나 대부분의 전투가 본인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닌, 의리로 인한 출정이 특이
※ 일생을 싸웠던 겐신의 숙적들이 내린 인물평
"겐신이야말로 전국 제일의 의리있는 인물이다" by 호조 우지야스 (한때 겐신에게 멸망직전까지 몰렸던 인물)
(아들에게)..."내가 죽은후 위험에 빠진다면 겐신에게 의탁하라" by 다케다 신겐 (겐신 일생의 웬수)
- 겐신 사후, 100만석이 넘었던 영지도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30만석 감봉으로 살림이 팍팍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신들중 단 한놈도 주군을 이탈하지않고 "감봉도 감수하겠습니다. 주군곁에 남을테니 내치지 말아주십쇼" 해서 다 거둬줌
- 에도시대, 도자마 다이묘들에대해 갖은 이유를 다붙여서 가이에키(영지몰수)하고 덴포처분하는 와중에도 끝(메이지유신)까지 살아남은 몇 안되는 가문중 하나로 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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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ㄷㄷ 겐신을 저리 평했던 호조하고 신겐은 통수의 달인들...
@[치] DNDN ^^7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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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ㄷㄷ
제4차 가와나카지마 전투는 1989년에 영화로도 제작됐는데 일본 버블시대의 영광을 보여줌
근데 영화 원작 작가가 겐신빠라 영화도 겐신이 주인공으로 묘사됨
'하늘과 땅'이라는 작품인데 지금 기준으로도 전쟁씬 하나는 기가 막히게 뽑은 작이니 관심있는 훌들 참고하도록
그거 겐신을 너무 띄운작품이란 얘기가 있긴한데...암튼 멋진 의리남임엔 분명한듯
통스코그룹 가신단 일동도 왕종훈 다이묘 회장님께 충성을 다하겠읍니다. 3대가 통스코 흐흐
고맙습니다 허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