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고도(古都)’ 경주. 가을 하늘이 유난히 짙푸르다. 처용과 선화낭자가 제짝을 찾아 사랑을 속삭이고 화랑 관창이 들판으로 말을 달리던 서라벌의 아득한 옛 하늘도 바로 이랬을 것이다. 지난달부터 경주 보문단지에서는 신라 문화의 옛 향기를 되살리는 문화엑스포가 한창이다. 현장을 총괄 지휘하고 있는 이필동(李泌東·59) 행사기획실장을 만나 엑스포의 의미와 신라 문화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을 들어보았다. 연극 연출가이자 이창동(李滄東) 문화관광부 장관의 친형이기도 한 그는 기자의 질문에 진지하면서도 솔직하게 답변해주었다.
“일정이 절반 남짓 지나간 현재까지의 진행 상황은 대체로 만족스럽습니다. 1백50만명으로 잡은 관람객도 이미 70만명을 넘어섰지요”. 예년과 달리 늦비가 쏟아진데다 태풍까지 불어닥친 탓에 바짝 긴장했으나 그럭저럭 고비를 넘겼다. 일부 시설이 바람에 휩쓸려 무너지고 전광판이 깨지기도 했지만 복구작업이 거의 끝난 상태다. 한때 중단됐던 ‘에밀레-천년의 소리’ 주제공연과 볼쇼이 서커스 공연도 지금은 모두 일정대로 진행중이다. 추석연휴가 끝나면서 중·고생들과 일본 관광객들의 단체입장이 밀어닥치고 있어 활기를 되찾고 있다.
이번 엑스포의 주제는 ‘천마(天馬)의 꿈’. ‘새천년의 미소’와 ‘새천년의 숨결’을 주제로 내걸었던 제1회(1998년)나 2회(2000년) 때보다 좀더 구체화됐다. “뻑적지근하게 가득 차려놓고도 꼬집어낼 만한 음식이 마땅치 않은 경우가 있듯이 푸짐하게 차리는 것보다 일정한 방향으로 특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문화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열쇠를 신화라고 간주할 때 신라 문화의 본질을 되살려 세계에 드러낼 수 있는 메타포로 ‘천마’가 가장 잘 어울린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는 것일까. 각국의 신화를 캐릭터와 영상으로 보여주는 ‘세계 신화전’을 비롯해 주막·대장간·난전·진골댁이 들어선 서라벌 저잣거리에 이르기까지 설명이 줄줄이 이어졌다. 그중에서도 17분 정도 상영되는 ‘화랑영웅 기파랑전’에 대한 자랑은 대단하다. 천마와 만파식적, 기파랑 설화를 바탕으로 짜여진 탄탄한 줄거리와 정교한 묘사가 돋보인다. 화면에서 연꽃잎이 흩날리면 객석에서는 향기가 피어나고 안개도 깔린다. 영상의 질이 뛰어나면서도 단위시간당 제작비는 할리우드 영화에 비해 기껏 6~7%밖에 들지 않았단다. 물론 100% 국내 기술진에 의한 제작이다.
각국의 성(性)문화를 보여주는 ‘에로스와 문명전’도 돋보인다. “기획단계에서부터 되니, 안되니 논란이 많았으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예술의 영원한 주제가 아니냐”며 되묻는다. 화랑세기에 나타나는 자유분방한 신라인의 성관념에 대해서도 설명이 따라붙었다. 선덕여왕 행차식과 수문장 교대식, 보부상놀이가 펼쳐지며 각국의 토속상품을 선보이는 벼룩시장과 인형극도 공연되고 있다. “외국인들이 떡메를 치거나 도자기를 직접 만들어보면서 ‘원더풀’을 연발한다”고 소개했다. 주막집에 들어앉아 국밥에 동동주를 들면서 공연을 구경하는 것도 일품이다.
그가 행사에 뛰어든 것은 제1회 문화엑스포가 준비되던 97년. 처음부터 전체적인 틀이 그의 머리와 손을 거쳐 짜여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광고회사인 조일기획 사장으로 재직하면서 대구 지역의 뜻있는 문화·예술인들을 주축으로 ‘세계민속축제’를 열기로 추진하던 것이 계기였다. 때마침 비슷한 성격의 이 행사계획이 발표되는 바람에 개인적으로 자문을 하다가 결국 진행 책임을 맡아 조직위원회에 들어앉았다. 경북도청 별정직 공무원인 셈이다. “이 일대는 도투락 목장이 있던 벌판이어서 비가 조금만 와도 늪지대를 방불케 했으나, 땅을 고르고 다져서 전시장을 세운 것”이라며 지난 날의 고충을 털어놓았다.
행사 개막이 임박해서부터는 아예 전시장 부근에 숙소를 얻어 식구들과 떨어져 지내고 있다. 자택은 대구에 있기 때문에 평소에는 도청에서 운행하는 셔틀버스로 조직위원회 사무실이 있는 보문단지까지 출퇴근한다. 2시간도 넘게 걸리는 출퇴근 생활이 7년째 접어드는 셈이다. 그러고 보면, 경주문화엑스포 업무를 맡은 것은 동생인 이창동 장관과는 털끝만한 연관이 없다. 그는 이 부분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없이 지나갔지만, 자칫 오해를 받기 십상이라는 점에 있어서는 은근히 신경을 쓰는 눈치다. 한편으로는 억울하다는 표정도 읽혀진다.
어쨌거나, 얘기를 계속해서 들어보자. “경주는 과거 천년을 깔고앉아 다가오는 천년을 내다볼 수 있는 곳”이라며 서라벌이 한반도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였음을 강조한다. 고구려 북방문화와 백제 남방문화를 융합한 신라의 도읍. 유네스코 세계문화도시로 지정됐다는 사실에서도 무한한 값어치가 증명된다.
그리스에서 시작된 서양문화가 실크로드를 타고 동쪽에 이르러 석굴암 본존불 미소로 꽃피웠다던가. “신라 문화가 세계적으로도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라며 “경주를 문화특별시로 지정해 진짜 경주답게 관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화장실·문간방 하나 뜯어고친다 해도 아무데서나 기왓조각이나 도자기 파편이 쏟아져나오는 도시. 시가지 전체가 박물관이라고나 할까. 스스로 황당한 생각이라며 소개하는 발상이 재미있다. “언젠가 경주의 문화재 보호구역 전체 땅값이 4조원 안팎이라고 들었는데, 차라리 정부 예산으로 몽땅 사들여 처음부터 다시 개발하는 것이 어떠냐”는 것이다. ‘신라왕경(王京) 발굴 프로젝트’라 이름붙여 관광객을 끌어들인다면 앞으로 천년 동안 먹고 살 것이 나올 수 있다는 주장이 솔깃하다.
요즘은 신라인들의 혼과 정신이 서려 있다는 남산에 올라 무덤과 절터를 돌아보는 것이 하나의 습관이 됐다. 그런 점에서 보문호에 백조 유람선이 떠다니고 다른 유원지와 비슷하게 분수가 설치된 데 대해 불만을 표출하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장보고 교관선을 띄우고 주변에 청해진을 본떠 만든다면 훨씬 뜻깊은 유적·관광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나름대로의 견해를 제시했다. 개인적으로 신라 문화에 대한 관심은 언제부터 갖고 있었을까 궁금했다. 그러나 “그 전에도 경주를 많이 와봤지만 제대로 관심을 갖지는 못했었다”고 솔직히 고백한다.
경북 안동 출생. 경북고(44회) 졸업. 연극 연출가로서 대구·경북 일대에서는 진작부터 이름을 얻고 있다. 현재 대표를 맡고 있는 극단 ‘원각사’만 해도 자신이 77년에 창단했으니 무려 26년의 오랜 연륜을 자랑한다. 연극에 첫발을 디딘 것은 고교 시절이던 61년. 차범석 선생의 작품인 ‘밀주(密酒)’에서 이장 역할이 첫 배역이었다. 그런데 그 뒷얘기가 다소 복잡하다. “자유당 말기 부통령에 출마했던 이기붕 후보의 수성천변 유세에 학생들을 강제 동원함으로써 촉발된 ‘2·28의거’ 1주년 기념제가 데뷔 무대”라는 설명부터가 그렇다. 한때는 경북일보·경상매일 등 2개 신문에서 문화부장을 지내기도 했다.
동생인 이장관이 경북대 사범대학 시절부터 연극에 취미를 가졌던 것도 사실은 그의 영향이었다. 4형제 가운데 그가 맏이이고, 이장관은 셋째. ‘결혼’ ‘티타임의 정사’ 등의 작품에 출연해 소질을 인정받았으나, 결국 그의 만류로 도중에 포기하고 말았다. “밥벌이로는 집안에서 나 혼자면 족하다고 여긴 때문”이라며 웃음을 비쳤다. 넉넉지 못한 형편에서 자라난 만큼 형제들의 우애는 더없이 좋다. “이번 추석에도 모두 모여들어 밤새는 줄 모르고 얘기를 주고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동생이 장관직을 맡고 있는 데 대해서는 아무래도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모양이다. “그 전에는 아무렇게나 하던 얘기도 지금은 조심해야 하는 처지”라며 처신이 불편해졌음을 숨기지 않았다. 호칭조차 ‘문화부에 있는 친구’라는 식이다. 그러나 형제들끼리 만날 때는 형의 입장에서 솔직한 생각을 전달한다. “며칠 전에 만났을 때도 ‘네가 장관이 됐을 때 많은 사람들이 전문가다운 새로운 방향의 정책을 기대했으나 아직 그렇지 못한 것 같다’는 얘기를 했다”고 소개했다. 본인 스스로 업무에 욕심이 적지 않은 입장에서 동생도 장관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를 바라는 마음이기 때문일 것이다.
별다른 취미를 들자면 잡지 창간호를 모으는 것. 1930년대에 발행된 ‘소년’ 영인본을 포함해 무려 500여점을 소장하고 있다. 창간호뿐 아니라 연극 분야를 포함한 일반 서적도 5,000권이 넘는다. ‘재산목록 1호’라고 여기고 있다. 문화·예술에 종사하면서 술을 거의 마시지 못하는 것도 특이하다. “맥주 한병을 밤새워 마셔도 다 못마실 정도”라고 실토했다.
인터뷰가 끝나갈 즈음 재일교포 건축가인 이타미 준(伊丹潤)이 그의 사무실을 방문했다. 다음 행사에 참고하려고 견해를 듣기 위해 초청했다는 것이다. 행사가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도 그는 벌써 다음 행사를 내다보고 있었다. 이번 행사는 내달 23일까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