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그미 카멜레온은 죽을 때까지
평생 색깔을 바꾸려고
1제곱미터 안을 맴돌고
사하라 사막개미는 죽을 때까지
평생 먹이를 찾으려고
집에서 2백 미터 안을 맴돈다
나는 죽을 때까지
평생 시를 찾으려고
몇 세제곱미터 안을 맴돌아야 하나
-『조선일보/최영미의 어떤 시』2023.02.06. -
삶의 허무니 어쩌니 길게 말해 무엇하리. “너는 평생 몇 세제곱미터 안을 맴돌았니?”라고 물어보면 게임이 끝난다. 네가 아무리 잘난 척해도, 네 아무리 별볼일 없는 사람이라도 우리는 모두 맴돌다 가는 인생. 직업에 매인 사람이라면, 직장에 구속되지 않은 사람이라도 누구나 공감할 멋진 시.
피그미 카멜레온, 사하라 사막개미 그리고 인간. 서로 다른 동물들이 색깔과 먹이와 시를 찾아 각각 1제곱미터, 2백 미터, 몇 세제곱미터 안을 맴돌다 사라진다. 제곱미터, 미터, 세제곱미터의 수학적인 변주도 언어의 맛을 느끼게 한다. 시에서는 무의미한 반복이 허용되지 않는다. 쉬운 듯 쉽지 않은 시. 시를 쓰기보다 시를 찾기가 더 어렵다.
똑같이 맴돌다 가는 운명이지만 인간과 다른 동물들의 차이: 인간만이 몇 세제곱미터 안을 맴도는 자신을 의식하고 한탄한다. 인간만이 이 거룩한 문자로 자신이 느끼는 허망함을 다른 호모 사피엔스에게 전달 전파 전염시킬 수 있다.
누가 내 발에 구름을 달아놓았다
그 위를 두 발이 떠다닌다
발, 어딘가, 구름에 걸려 넘어진다
생(生)이 뜬구름같이 피어오른다 붕붕거린다
이건 터무니없는 낭설이다
나는 놀라서 머뭇거린다
하늘에서 하는 일을 나는 많이 놓쳤다
놓치다니! 이젠 구름 잡는 일이 시들해졌다
이 구름, 지나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구름기둥에 기대 다짐하는 나여
이게 오늘 나의 맹세이니
구름은 얼마나 많은 비를
버려서 가벼운가
나는 또 얼마나 많은 나를
감추고 있어서 무거운가
구름에 깃들여
허공 한채 업고 다닌 것이
한 세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