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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후 愛
written by.나루
10.10.10
고작 이별 하나 했다고 청승 떠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 걸음 앞에 나뭇잎 한장이 떨어져내렸다. 그것은 아무 소리도 없이 찾아온 것이였다. 소리없이 나뭇잎은 갈빛으로 퇴색되어 있었다. 그것을 멀거니 보다가 다시 울고있는 내 친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사귀던 남자애와 헤어졌다는 그 애에게 다 괜찮아질거야, 하는 의미없는 위로만을 건넸다.
괜찮아 지는 것은 무엇일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생각지 못했던 것이 새롭게 다가왔다. 사람이 사랑하는 그 과정은, 봄에서 가을까지가 아닐까. 가을이 지나 퇴색되고, 겨울에 죽고, 다시 꽃피는 봄을 지겹게 반복하는 것을 떠올리며 나는 내 생각에 수긍했다.
그렇다면 괜찮아진다는 것은, 가을의 시간인가. 눈부셨던 시간들이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닌 날들로 기억되는 퇴색의 시간인가. 나는 말없이 울고있는 내 친구를 도닥였을 뿐이다.
우리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사람들은 너와 내가 사랑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 둘 조차 알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나는 우리가 사랑했었다고 생각한다. 그저 시간처럼, 아주 잔잔하게 흐르는 사랑을 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렇게 이별했다. 우리의 관계를 알지 못했던 사람들이 이별을 알 리가 없었다. 그리고 너와 나 역시 그것을 떠벌리고 다니지 않았다. 그 누구에게서도 나는 낮의 내 친구 처럼 위로를 받지 않았었다.
어쩌면 우리는 진실로 사랑했었을까. 우리의 이별은 조용했고, 어떠한 격동에 흔들린 것도 아니였다. 다만 시간이 가는대로 끝에 닿았을 뿐이다. 나는 그게 너와 나의 방식이였다고 생각했다. 가을은 갑자기, 그런 내 생각에 혼란을 주는 것이다. 나는 왜 이별이 전해주는 요란한 아픔이 없을까. 헤어진 그 날 이후 단 한번도 떠올리지 않았던 너를 추억하자 맘이 복잡해져왔다.
그날은 아마 함께 영화를 보고 있었나. 네가 보자고 했던 영화였지. 어차피 우리가 함께 했던 일이라고는 늘 그런 것 밖에 없긴 했다. 같은 노래를 듣거나, 같은 차를 마시고, 같은 영화를 보는. 그래서 나는 우리가 아닌 다른 연인들이 신기했다. 늘 요란하게 미니홈피를 꾸미고, 커플티를 맞추는 그런 행동들은 늘 내 생각의 범주에서 벗어나있었다. 심지어 우리는 연락조차 드문드문하게 했으니까. 너는 어쩌면 그런 우리가 싫었을지도 모른다, 싫다고 말 할 줄 모르는 애였으니까. 그래서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됐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렇다고 너를 원망할 생각은 없다. 미워할 생각도 없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뭐해?」
그날 역시 연락을 몇일 째 하지 않았던 날 중에 하나였다. 갑자기 너는 내 집에 찾아왔다. 그런 일은 몇번씩이나 있곤 했다. 아무것도 안하고 있었어, 하는 내 귀에서 헤드폰을 가져간 네가 DVD 한장을 내밀었다. 이거나 같이 보자, 하면서 웃었다. 내 취향과 네 취향은 신기하리만치 비슷했다. 하긴 나는 나와 닮은 사람이 아니면 쉽게 친해지질 못했다. 너와 내가 닮았기 때문에 난 널 사랑했을까. 잡생각을 떨치며 화면을 바라보았다. 그 날과 같이 영화 속 인물들은 사랑하고 있었다. 아주 잔잔하게. 그리고 그렇게 헤어지는 것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화면이 까매졌다.
화면은 까매졌는데, 이상하게 앞이 뿌옇게 변했다. 테이블에 비친 내가 울고 있었다. 어째서 눈물이 나는 지 조차 모르겠다. 단 한번도 너와 헤어진 후에 울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다 지난 지금에서야 뒤 늦은 아픔이 밀려왔다. 어이가 없었다.
「우리도 헤어질까?」
나는 내가 현실에 살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지독히도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상에 안주하려함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또 한 지나치게 그것들을 동경한다. 언젠가, 그렇게 된다면 나는 저렇게 할거야. 하고 생각한다. 마찬가지였다. 언젠가 사랑한다면, 나는 저렇게 사랑하고 싶어. 그런 마인드가 우리의 사랑을 낳았고 또 한 언젠가 이별한다면, 저렇게 아프지 않게 조용히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은 문득 그런 말을 던지게 했다. 나는 네 눈을 보고 있었다.
영화의 끝은 두 주인공이 그때의 너와 나 처럼, 서로 눈물 하나 없이 다정하게 헤어지는 것이였다. 크레딧이 올라가는 것을 보며 무심코 말했다. 네가 응? 하고 되물었다. 네 눈을 보고 다시 말했다.
「우리도 헤어질까?」
나는 네가 당황하는 것은 처음 보았다. 그러나 농담이지, 하고 다시 되묻지는 않았다. 고민하는 얼굴도 아니였다. 그냥 네 눈 속에서 아주 잠깐 파도가 일었다. 아주 짧은 찰나의 순간이였다. 너는 영화 속 남자 주인공의 얼굴을 흉내라도 내듯 다정한 얼굴로 그래, 하고 말했다. 우리의 이별의 순간은 그러했었다. 아무일도 없었던 것 처럼 나는 너를 배웅했고, 잘 있어, 하면서 너는 내 집에서 멀어져갔다. 그리고 나는 다시는 너를 보지 못했다.
차마 올라가는 크레딧을 다 보지 못하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쌀쌀한 바람이 반팔만 입고 있는 내 팔뚝을 스치고 지나갔다. 내가 보지 못한 것은 무엇일까. 과연 단순히 크레딧이 올라가는 것인지, 아니면 내 자신이 울고 있는 모습인지. 내 자신이 아주 비겁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괴로웠으며, 또한 추웠다. 너를 잃었다는 사실이 갑작스레 커다랗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아, 이 얼마나 어리석은 모습인지.
걷기 시작했다. 어디를 향해, 무엇을 위해 걷는지는 나도 잘 몰랐다. 그냥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자괴감이 들었다. 우리가 자주 오던 까페 앞이였다. 네가 공강이던 날에는 저기서 차를 마시며 나를 기다렸다. 그리고 나는 과제를 하면서 너를 기다렸었다. 자주 오긴 했지만, 나는 너랑 이곳에 한번도 함께 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가 함께 하지 못한 것은 아직도 엄청나게 많은 것이였다. 또 다시 눈물이 나올 것 같은 기분에 얼른 팔을 들어 눈가를 문질렀다. 또 다시 바람이 싸ㅡ하게 불어왔다.
바람이 부는 것과 동시에 방울소리가 들렸다. 카페 문에 달려있는 방울소리였다. 그리고 거기서 나오고 있는 너와, 그 소리에 고개를 든 내가 눈이 마주치는 것도 역시 순간이였다. 네 눈에 또 다시 파도가 이는 것 같았다. 너는 되게, 잘 지내고 있는 것 같다. 이 감정을 뭐라고 해야할지 모르겠다. 억울한건가. 그건 아닌 것 같다. 오묘한 감정에 몸을 움츠렸다. 네가 내게로 오고 있다.
“뭐해?”
그날과 같은 질문이였다.
“…안녕.” 그리고 나는 그날처럼 대답할 수가 없었다. “응, 근데 여기서 뭐해. 추워보인다.” “여기…? 아, 친구 기다려.” 거짓말을 못한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거짓말을 할때마다 발등을 내려다본다면서. 그런데 나는 너에게는 그런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네게는, 내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었나. 그래서 나는 지금 최초의 거짓말을 하고 있다. 우습게도, 똑바로 너의 눈을 쳐다보면서. “응…그렇구나, 난 가볼게. 안녕.” 나는 어수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뒤돌아 뛰기 시작했다. 빨리 내게서 멀어지고 싶어 하는 것 처럼. 굉장히 우울해져왔다. 기다려야 할 친구도 없는 나는 어찌 해야 하나, 우두커니 서있기만 했다. 그리고 점점 작아졌던 네 등이 크게 보이기 시작했다. 까만 머리통이 아니라, 어색한 얼굴을 하고 네가 멀어졌던 아까와는 다르게 느린 걸음으로 다가왔다. 아주 순식간이였다. 걸음은 느린데 시간은 빨랐다. 우리가 사랑한 시간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흘렀는데, 이별 후의 이 시간은 계속해서 변하고 있는 것이 놀랍도록 신기했다. 우리가 아닌 다른 연인들은 늘, 이렇게 사랑해 왔을까. “너 입어, 난 오늘 좀 더워. 그리고, 이제 좀 추워질거니까…옷 이렇게 입지말고 따뜻하게 입고 다니고. 진짜 갈게.” 그렇게 다가온 너는, 내 눈을 마주치지 않고 옷을 건네며 말해왔다. 너 역시 나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아서 몰랐는데, 넌 참 거짓말을 못하는구나 싶었다. 입술을 다시 한번 짓이겼다. 또 다시 네가 등을 보였다. 이번에는 전 처럼 빠르게 멀어지지 않았다. 내 손에는 네 온기가 묻은 옷이 들려있었다. 그리고 나는, 너를 잡고 싶었다. 이번에는 너를 잡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너는 뛰지 않았으므로. 그런데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내 손에 들린 네 온기조차 식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발 끝에 힘을 주었다.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움직이려 애썼다. 무엇을 위한 자존심인지도 모르면서, 이러지 말자고 생각했다. 움직이기 시작했다. 너는 조금 멀리 떨어져있었다. 나는 이제 너를 위해 뛸 수 있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아주 가까이에 있는 너를 잡았다. 아주 조금. 나름대로 많이 뻗었다고 한 손에는 고작해야 네 새끼손가락만 걸려있었다. 차갑게 식어버린 새끼 손가락에 또 다시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얼른 고개를 숙였다. “…” “…” “할말…있어?” 아, 이상하다. 너를 위해 뛰었지만 나는 너를 용기내서 잡을 수가 없고 말을 할 수가 없다. 예전에 책에서 본 글이 생각났다. 여자는 자존심에 지배되는 동물이라고. “…” “…응?” 너는 어떤 눈을 하고 날 보고 있을까. 고개를 들어올릴 수가 없었다. 너를 마주하면 정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네가 간절한 눈으로 날 봐주면 좋겠는데, 그걸 마주할 수가 없다. 어쩌면 네 새끼손가락 만큼 차가운 눈이면 어떡하니. “…” 그리고, 너의 한숨과 내 한숨이 한데 섞인 것도 동시였다. 아주 약하게 쥐고 있던 새끼 손가락마저 나는 놓쳐버리고 말았다. “…아니야, 옷 고마워.” 그리고 그제서야 나는 고개를 들어올릴 수 있었다. 눈이 마주쳤다. 네가 웃었다. 응, 안 돌려줘도 돼. 그럼 나 진짜 갈게. 네가 말하는 것을 듣고 나는 인사조차 할 수 없었다. 다시 널 잡지 못했다. 너는 그렇게 점점 멀어져갔다. 나는 그것을,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나 역시 뒤돌아섰다. ㅡ 내일이 되어서 나는 네가 준 옷을 입고 다시 이곳에 들렀다. 어제 돌아갈때는 입지 못했었다. 무슨 정신이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나는 너를 한번도 떠올리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있잖아, 다시 생각해보니까 어쩌면 의도적으로 피한게 아니였을까. 네가 좋아하던 차를 입에 대면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내가 너에 대해 물으니까, 많이 말해주더라. 근데 내가 일일이 그거 되묻는데, 저번에 말해줬던거잖아. 하고 말하더라고. 그때 안듣고 뭐했냐구. 어쩌면 내게는, 널 잡을 수 있던 기회가 수차례 있었는 지도 몰라. 우리가 이별하던 그날, 너는 어쩌면 몇번이고 닫혀있는 내 집의 현관문을 뒤돌아봤을 지 모르지. 나는 왜 너를 한번도 잡을 수 없었을까? 참 이상한 일이 있어, 자존심은 정말 별거 아니야. 그런데 사람들은 누구나 그것 때문에 어떤 것을 희생하기도 하고, 때로는 죽음까지 불사해. 그런데 그중에서도 사랑하는 여자는, 지독하게 자존심에 지배된다더라고. 이런거 정말 공감한 적 없거든? 근데 나는, 내가 그런사람이 될 줄 정말 몰랐어. 「걔, 휴학했잖아.」 「…왜?」 「글쎄, 들리는 얘기로는 군대간다 그러더라고. 갔다와서 자퇴하고 유학간다더라.」 입고 있던, 네가 줬던 옷을 벗었다. 까페 언니에게 혹시 네가 이곳에 다시 오거든, 꼭 전해달라며 부탁하고 나왔다. 너를 잡지 못했던 이자리에 잠시 서있었다. 나 혼자지만, 그래도 우리가 정말 이별한 곳은 여기라고 생각할게. 아득하게 새끼손가락의 온기가 남아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문득 마주쳤던, 아주 짧은 시간, 네 눈안에 담겨있던 지독한 간절함이 이곳에. 이곳만이 기억하려나. 언제까지 기억해줄 수 있을까. 나는 언제까지 널 기억할까. 너는 언제까지 날 기억할까. 사람은 끊임없이 생각하는 동물이다. 그래서 끊임없는 그 생각속에는 수많은 추억의 시간이 포함된다. 인간의 감정은 그 기억에 지배된다.나쁜 기억을 갖게 하면 그 사람을 싫어하게 되고, 좋은 기억이 있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사랑 역시 그런 것이다. 사람은 사랑을 하면서 끝없이 생각한다. 그 순간 끊임없이 상대를 생각한다. 그리고, 사랑하지 않게 되면 점점 상대에 대한 생각은 줄어든다. 나는 이제 너를 생각하지 않으려 내 자신을 막는 일을 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점점 멎어들게 되겠지. 그렇게 우리 사랑도 시들어가려나. ㅡ 이별하는 이야기가 쓰고 싶었어요 ㅠ.ㅠ 그런데 여자가 재수없어요 근데 저는 저 여자가 현실의 여자와 비슷하다고 봄니다 저는 정말루 사랑하는 여자는 자존심에 죽는 거 가씀니다.. 잡고 싶은데 정말루 잡을 수가 없는..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제가 저 상황을 겪어본건 아니지만... 그래도 여자의 마음이 이해가 가네요^^
공감되네요..^^
우와...진짜진짜공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