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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말씀 민수기14:4-10
민수기는 36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시내산에서 마침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위해 인구조사를 하고 이어 필요한 성막과 희생제사와 이스라엘 각 지파의 진군 순서 등에 대한 말씀이 10장까지 나옵니다. 이어서 메추라기 사건, 미리암이 문둥병에 걸리는 사건과 정탐꾼을 보내고 이것에 대한 불신과 그것의 결과로 광야 40년을 방황하는 이야기가 20장까지 나옵니다. 21장에서 36장까지는 요단 맞은편이 보이는 모압 땅에서 있었던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가나안 아랏의 왕과의 전쟁, 아모리 왕 시혼과의 전쟁, 바산 왕 옥과의 전쟁, 바알 브올과 발람과 관계된 미디안 전쟁 등의 역사가 여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광야 40년의 역사가 기록된 것이 바로 민수기입니다.
오늘 말씀은 시내산에서 출발하여 가데스 바네아에 도착하여 12명의 정탐꾼들이 가나안 땅을 정탐한 후 정탐 보고를 하면서 일어난 사건을 다룬 말씀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믿음이 무엇인지 배우고자 합니다. 가나안 땅이 좋긴 좋은데 성읍이 너무 견고하고 아낙자손, 아말렉 자손, 헷족속, 여부스인, 아모리인, 가나안인들이 있어 정복할 수 없다고 10명의 정탐꾼들이 하나같이 부정적으로 보고했습니다.
그러나 갈렙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길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열 사람은 아니라고 하면서 덧붙여 이야기 했습니다. 그들은 너무 강하여 우리는 그들을 이길수 없다, 그 땅은 사람을 삼키는 땅이요, 그곳에는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 있고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도 있었다고 말하면서 그들에 비하면 자신들은 메뚜기처럼 보인다고 했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주신 약속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못한다, 우리는 못한다, 이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리더가 하나님의 말씀을 부정적으로 이야기하면 백성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에 온 회중이 겁을 먹고 밤새도록 울며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습니다. 막 부정적인 말을 했습니다. 심히 절망적인 말도 서슴없이 했습니다.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차라리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겠다고 불평했습니다. 나아가 하나님께 불평을 쏟아부었습니다.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 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그들은 전쟁도 해보지 않고 그 앞에서 겁을 먹고 불평하고 심지어 그동안 그들과 함께 하셔서 승리를 주신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하나님때문에 이렇게 되었다고 불평과 원망을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리더의 중요성이지요. 리더의 한 마디 한마디는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해야함을 배웁니다. 자기 생각을 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므로 리더는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를 통해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시는 믿음의 말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부정적으로 곡해해서는 결코 안될 것입니다. 열 사람의 리더가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지 못하고 자기중심적인 말을 함으로 모든 백성들이 거기에 동조함으로 불신에 빠지게 하고 결국 하나님의 뜻을 거스러게 하였습니다. 리더는 하나님의 뜻을 살펴야 합니다. 리더는 믿음의 말, 하나님의 일을 살펴 이것을 말해야 합니다.
4절을 보십시오.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그들이 불신의 말을 듣고 바로 마음이 동요되어 거역하고 배반하는 일이 생기지 않았습니까? 이 시점이 언제입니까? 출애굽 한 지 대략 1년 2개월 쯤 밖에 안된 시점입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했습니까? 진퇴양난 속에서 홍해바다가 갈라져 무사히 그 바다를 육지같이 건넌 일이 불과 일여년 전의 사건이 아니었습니까? 이 사건만 있었다면 그래도 이해가 됩니다. 그것만 있었습니까? 너무나 많은 기적이 있었지 않습니까? 물이 없는 사막에서 풍부한 물을 공급받는 기적도 체험하고 맛나를 매일 먹는 체험을 지금도 하고 있고 조금 전에는 메추라기가 사방 지면에 떨어져 먹어도 먹어도 남아도는 고기를 먹기도 했습니다.
시내산에서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십계명의 돌판을 주시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가져야 할 거룩한 율법도 받지 않았습니까? 어떻게 하면 죄에 빠지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믿음의 삶을 살 수 있는지도 다 듣지 않았습니까?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가 다 그들의 것이 아니었습니까?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첫째,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면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마음에 교만이 싹트고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일들이 자신이 이룬 것처럼 느껴집니다. 모든 것이 다 나의 능력이지, 내가 열심히 놀겨해서 여기까지 왔지, 이런 생각에 빠지게 됩니다. 그럴대 하나님이 부담스럽고 하나님이 말씀이 힘들게 느껴집니다. 이스라엘이 지금 이런 유혹에 빠진 것이 아닐까요? 지금까지 함께 하신 하나님을 다 잊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못할 일이 없는데, 믿고 나아가자, 하나님께서 더 큰 축복을 주실 것이다, 마침내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을 축복으로 주실 것이다. 이런 믿음이 생깁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과 함께 하시는 전능하시고 은혜가 충만하신 하나님을 잊어버렸습니다.
둘째는, 불신과 욕망이 아니겠습니까? 불순종의 죄악이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반드시 인도하시겠다고 약속하셨지만 그들은 이 하나님을 거역했습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보다 네피림 즉 아낙자손을 더 두려워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자신과 처자식을 더 앞세워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것뿐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세우신 종 모세와 아론을 인정할 수 없다, 우리는 다른 지휘관을 세워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들의 주장은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자기들에게 조금만 어려움이 닥치면 금방 뒤로 넘어지는 어린아이 같았습니다. 어린아이처럼 생떼를 부렸습니다.
진정 믿음이 필요한 순간에 그들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자기 자신들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을 주변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자신들이 그들과 비교할 때 메뚜기처럼 작게 보인다고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정체성, 자긍심을 다 버렸습니다. 얼마나 비참한 순간입니까? 자유와 신앙을 위해 믿음의 결단을 한 것이 아닙니까? 다시는 종의 삶을 살지 않고 하나님 앞에 참 자유의 삶, 풍족한 삶을 살기 위해 애굽을 떠난 것이 아닙니까? 그들은 가나안에 거주하고 있는 여러 종족들과 그들의 견고한 성읍을 보고 낙담했습니다. 하나님 보다 세상을 바라봄으로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불신이 그들을 삼키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종, 여호수아와 갈렙은 어떠했습니까? 6절을 보면 그들이 자신들의 옷을 찢었다고 했습니다. 이는 영적 분노의 표현이 아닙니까? 하나님 앞에서의 건강한 믿음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면 도무지 그런 불평과 원망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강한 반발이 아닙니까? 여호수아와 갈렙이 불신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떤 말을 했습니까? 7, 8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10명의 다른 정탐꾼들은 정탐을 한 후에 그 땅을 주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았지만 갈렙과 여호수아는 달랐습니다. 그 땅을 주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았으며 백성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심어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면 반드시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그 땅을 반드시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 땅은 정말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닙니까? 포도송이가 얼마나 컸으면 두 사람이 막대기에 꿰어서 들어야 할 정도일까요? 또 석류와 무화과도 정말 꿀처럼 달았을것입니다.
9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 이전 성경 번역본에는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 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어 원어에도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ki lachmenu hem.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의 빵이기 때문이다. 정말 담대한 표현이 아닙니까? 맛있는 빵을 보고 무서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이와같이 분명한 믿음의 선언을 합니다. 그들은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먹이라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확신에 찬 믿음의 말입니까? 뿐만 아닙니다. 가나안 땅으로 올라가 정복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 땅 백성을 두려워 하지말라고 합니다.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믿음의 사람은 이와같은 사람이 아닙니까?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여호수아와 갈렙이 담대하게 말합니다. 비록 하나님의 말씀이 감당하기 어렵더라도 이것을 순종하는 것이 믿음의 사람이 아닙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 어찌 쉬울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나를 따르고자 하는 자는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져야할 것이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자신을 부인한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보다는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뜻을 먼저 앞세우는 것이 아닙니까? 그 뜻에 순종하는 것이 바로 갈렙과 여호수아 같은 믿음의 사람들이 우리들에게 전해주는 믿음이 아닙니까? 또한 믿음의 사람들은 세상을 두려워 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갈렙과 여호수아가 열 사람의 다른 정탐꾼들이 본 그 가나안 땅을 상황을 보지 않았을까요? 여호수아와 갈렙도 동일하게 그 상황을 다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보다는 그들을 분명 이기게 하실 하나님을 먼저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먼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 그들과 담대히 싸울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믿음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할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와 같은 이런 주님의 말씀을 늘 믿는 믿음을 간직해야겠습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수아와 갈렙의 믿음의 권면을 받고도 마음을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사실 이것은 여호수아와 갈렙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까? 그럼에도 그들은 그 마음을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마음을 돌이키기는 커녕 그런 믿음의 말을 하는 여호수아와 갈렙을 돌로 치려하였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완악해졌는지 알 수 없습니다. 결국 하나님이 이 사건에 개입하실 수 밖에 없으셨습니다. 그 때에 여호와의 영광이 회막에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나타나시니라.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들은 노아 홍수 때처럼, 소돔과 고모라 때처럼 멸망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모세의 중보기도로 겨우 멸망을 면했습니다. 대신 그들은 크나큰 훈련을 받아야 했습니다. 바로 광야 40년 훈련이었습니다. 1년 만에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입성할 수 있었지만 불신과 죄악으로 광야 40년의 혹독한 시련을 감당해야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모두 광야에서 죽을 수 밖에 없었고 대신에 그 자녀들만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불신에는 반드시 그 댓가가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그 불신으로 에덴동산을 쫓겨났습니다. 가인이 또한 그 죄악으로 유리방황하는 삶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그 죄악으로 말미암아 많은 시련을 받아야했습니다. 이방인들의 압제를 끝도없이 받아야했습니다.
결론입니다. 가데스바네아에서의 정탐보고 사건이 오늘날 우리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세계에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우상이 팽배하고 율법이 없어 마음대로 행하는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어 온 세상 나라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제사장 나라가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여호수아와 갈렙을 통해 무엇이 믿음인지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제가 먼저 이 말씀을 깊이 받아들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지 않는 것입니다. 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순종하기를 기도합니다. 제가 늘 안다는 마음으로 하나님 말씀을 깊이 경외하지 못하는 죄악이 있습니다. 제가 말씀을 무겁게 생각하고 말씀을 더욱 경외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더 깊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더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세상에 대하여 담대한 마음을 가지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땅이라면 믿음으로 담대히 나아가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세상으로 나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 땅으로 나아가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를 원하십니다. 그 가운데 분명 하나님께서 일하실 것을 믿습니다. 오늘날 이 세상은 과거 네피림 족속들이 살던 땅보다 더 악해보이고 더 강성해 보입니다. 이러한 곳에 나아가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 불가능해보이기도 합니다. 제가 불신의 말을 입밖에 내지 않아야겠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을 마음에 새겨 하나님의 말씀이면 아멘하고 나아가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모두도 그렇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이 주시기를 우너하시는 땅이 바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임을 믿습니다. 아멘! 기도하고 마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