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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기사 스크랩 "광주의 진실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5 0 화이팅 ! 추천 0 조회 558 08.04.04 20:05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광주의 진실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 전 중앙일보 기자 인터뷰 광주민주화운동

2007/10/17 16:38

복사 http://blog.naver.com/ilovepekr/70023148684

이하는 한 전교조 교사가 고교생들로 하여금 좌파서적을 읽게한 후, 그 서적에 담긴 사건들의 당사자를
찾아가 인터뷰하게 한 숙제 중에서 광주사건과 관련하여 흥미로운 언급들이 담겨 있어 발췌하게
된 글입니다....

질문자의 시종일관 공세적인 질문에도 흔들리지 않고, "광주의 진실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희생자의 목소리가 너무 큰 것이 실체규명의 걸림돌" 등등 담담하게 그 당시를 풀어놓는 전 중앙일보
광주취재기자 김인곤님의 인터뷰답변이 아직도 그 정확한 진상을 놓고 극단으로 엇갈리고 있는
80년 광주의 모습을 들여다 볼 수 있는 하나의 작은 조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전문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한국현대사 산책'을 읽고 한 취재 인터뷰 고교생의 글: 저자인터뷰 2004/08/31



제가 함께 공부하는 학생들이 책을 읽고 그 책과 관련된 분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쓴 글입니다. 한 해에 한번 이렇게 학생들이 몇몇씩 모여 어떤 책을 읽고 누군가를 찾아가서 그 삶을 이야기듣고 오게 하지요. 지난해 가을에 학생들이 쓴 글입니다. 제가 가르치는 반이 모두 네 반, 한 반에는 다섯 사람이 한 작은모임을 이루어서, 네 반에는 모두 스물여덟 모임이 있게 됩니다. 그 스물여덟 모임이 스물여덟 종류 책을 읽고 각자 누군가를 만났지요. (이상 전교조 교사의 서문, 중략...이하는 인터뷰 전문)


김인곤씨와 만나 테크노마트 옆에 있는 조금한 까페에서 인터뷰를 했다. 그 분 왠지 외모와 옷차림부터 심상치 않았는데 인터뷰내용도 만만치 않았다. 모든 내용에 자신은 어떤 것이 사실인지 모른다고 하시면서 대답을 피하곤 하셨다. 하지만 나중에 생각해 보니 다른 뜻이 숨겨있었다.


9월 7일 일요일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다시 컴퓨터를 켜 검색을 시작하였다. 홈페이지를 찾아보았는데 큰 성과가 없어 다음카페를 검색해 보았다. 다음카페에서 518관련 카페를 많이 찾을 수 있었다. 518관련 카페를 다섯 곳 정도 가입하고 그곳을 둘러보았는데 대부분의 카페가 지금현제는 제대로 운영되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중에서 마지막으로 가입한 카페가 518기자클럽 카페였다.

이곳은 다른 카페들보다 운영도 잘되는 듯했고 그 당시 그곳의 상황을 사진으로 담으신 기자분이 운영하고 있는 카페였다. 518기자클럽 http://cafe.daum.net/518photoclub.(현재는 여러여건상 운영중지상태입니다 - 주코프 주)

그곳에서 당시에 이 분께서 찍은 많은 사진들이 올라와 있었다. 인터뷰를 이분과 했는데 이분께서 사진을 공개하신 이유가 사진은 진실만을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그 사진을 보고 자신은 잘못이다 잘못이 아니다를 평가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 사진은 후세가 보고 평가할 문제라고 하셨다. 기자분께서는 당시의 그 일을 누군가 찍은 사람이 있고 그것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하셨다. 이분께서 등록정보를 비공개로 해놓아서 닉네임과 나이, 메일 주소 그리고 성별밖에 알 수가 없었다. 이분의 닉네임은 우천산풍이었다. 우선 연락을....(중략)


- 인터뷰- 518당시 기자로 활동하시던 분


Q1. 1980년 당시 어떤 신문 어떤 면에서 기자 활동을 하셨으며, 어떠한 과정으로 518당시 광주에 취재를 하러 가게 되셨습니까?

→ 저는 당시 중앙일보 사진기자였습니다. 70~80년대 당시는 민주화를 부르짖는 데모가 참 많았는데요. 그 때마다 저는 그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었는데, 어느 덧 그게 일상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부-마 항쟁의 사진을 찍으러 부산에 내려가 있다가 동료기자에게 이번엔 광주가 심상치 않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바로 기차를 타고 광주로 갔습니다. 그 후 며칠 뒤 518사태가 터졌습니다.



Q2. 광주에서 무참히 쓰러지는 시민들의 모습을 본 순간 어떤 생각이 들었습니까?

→ 앞에서도 말했듯이 그 당시는 데모가 무척 많았기에 광주에서뿐만 아니라 서울, 부산, 마산 등 각 지역에서 각목과 돌멩이, 총 등에 맞아 쓰러지는 시민들의 모습을 많이 목격했습니다. 분명 '누군가' 총을 발포했기에 사망자도 생기고 그랬을 텐데 그 당시는 너무 자주 보던 모습이라 단지 처절하다는 생각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Q3. 공수부대는 광주를 포위하고, 그냥 길을 지나가던 사람, 버스를 타고 가던 사람 등 죄없 는 사람에게 총을 난발했습니다. 기자들도 5.18을 취재할 때 광주시민들처럼 아무런 이유 없이 공수부대에게 구타당하거나 목숨을 잃은 경우가 있었습니까? 아니면 기자들은 공수부대의 도움을 받으면서 취재를 할 수 있었습니까?

→ 기자들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저는 기자라고 해서 공수부대의 도움을 받아 사진을 찍은 적이 없었습니다. 특히 기자들은 공수부대이든 시민군이든간에 잡히면 양쪽 모두에게 얻어 맞았기 때문에 더 혹독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기자들은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그냥 지나가던 시민처럼 광주에 거닐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사진 기자이기 때문에 사진기를 들고 다니면 티가 나서 공격을 더 많이 받았습니다.

그 상황에서 저는 기자라는 사실을 숨겨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습니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제 자신이 기자라는 것에 절망하고 있을 무렵, 광주를 떠날까 말까 생각하다가 마음을 굳게 잡고 이곳에 남기로 했습니다. 나는 역사의 현장을 살아가는 기자이기 때문에 이 사진을 남겨서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한다는 의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Q4. 신군부에서 광주항쟁을 비밀로 하고 싶었다면, 기자들이 광주에 들어가는 것을 막았을텐데요. 어째서 기자들을 파견하여 그 곳 상황을 기록하고, 기사를 쓰게 한 걸까요?

→ 당시 그곳에 기자들을 파견하여 기사를 쓰게 한 궁극적인 목적은 저도 잘 모릅니다. 굳이 기자들에게 기사를 쓰도록 한 것은 그 때 신군부가 너무 자신만만했던 거죠. '5.18사태'가 일어나기 얼마 전 '부-마항쟁'에서 쉽게 진압되었기 때문에 광주사태도 해결될 거라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그리고 왜곡된 기사만 인쇄되어 나갔기 때문에 아무리 기자들이 기사를 써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Q5. 신군부에 의한 언론 검열을 기자님 또한 피해가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당시 기자님이 보도한 내용 중에 언론에 검열을 받아서 삭제된 기사나 수정된 기사가 있습니까? 있으면 어떤 내용입니까?

→ 기사를 거의 쓰지 않았습니다. 그저 이곳의 현장에 관한 사진만 올려보냈죠. 일부러 무전기를 망가뜨려 쓸 수 없다고 한 적도 있죠.


Q6. 광주항쟁 당시 TV와 신문에 나온 왜곡된 기사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습니까?

→ 그 당시 광주에서는 TV나 신문을 볼 기회가 전혀 없었습니다.


Q7. 광주항쟁 당시 광주에서 일어나고 있던 사실을 기자분들이 다른 사람에게 말하거나 그런 일은 없었나요? 정말로 그 곳이 고립되어 있었다면, 그 곳에서 전해지는 생생한 소식을 언론이 완벽하게 왜곡할 수 없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이렇게 광주항쟁에 대한 비밀이 철저히 지켜질 수 있었을까요?

→ 비밀이 지켜질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대중들은 한 동안 광주사태 자체에 대해 전혀 몰랐죠.



Q8. 5.18과 관련된 언론검열 및 통폐합으로 해직됐던 기자분들은 광주항쟁이 끝나고 시간이 흘러 국민들이 진실을 알게 되셨을 때 다 복직되셨나요? 복직되지 않으신 분은 어떻게 되셨나요?

→ 그 당시 언론검열로 동아일보에서 저를 포함해 300명이 해직됐습니다.
사람들은 해직된 기자들이 독립투사인 마냥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언론사에서 사람을 해직할 때, 곧고 바른 기사만 쓰는 기자들을 해직하는 것이 아니라, 평소 회사의 말을 안 듣고 일을 태만히 하는 기자들도 다수 해직했기 때문이죠. 그 후 다시 기자로 복직된 사람은 저를 포함해 12명이었습니다. 복직되지 않은 기자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져서 출판사 일을 하는 사람도 있고, 다른 일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Q8. 언론이 처음부터 신군부(5공화국)와 완벽히 결탁하고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신군부는 정권을 장악하자마자 언론을 탄압하여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신군부의 예고된 언론탄압. 광주항쟁을 예상한 행동이었을까요? 아니면 단순한 우연이었을까요?

→ 정부의 언론 조정은 광주사태가 일어나기 훨씬 전인 박정희 정권 이전부터 계속 있었습니다. 그 당시 정부는 어떤 사건이든 언론을 조정하여 국가에 유리한 기사를 쓰게 했습니다. 그런데 모든 언론사가 정부의 탄압으로 진실을 외면한 기사를 내보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절대 아닙니다.
언론사에는 부정부패와 권력과의 유착등 수많은 약점이 있기에 정부와 결탁하여 이익을 얻으면서 기사를 쓴 언론사도 많았습니다.



Q9. 그리고 어쩌면 영원히 뭍혀 버렸을지도 모를 광주의 진실은 어떻게 드러나게 됐나요? 그 후 진실을 안 대중들의 반응이 어떠했을지 정말 궁금합니다.

→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광주의 진실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희생자의 목소리가 너무 크다'는 것입니다.

한 예로 원래 광주에 살지도 않았고, 우연히 거쳐가던 중 그 곳에 휩쓸린 정말 아무런 상관없는 사람들이 보상을 요구하는 경우도 숱하게 봤는데요.
그 사람이 5.18광주의 진정한 의미를 가지고 참여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살아남은 자들이 결탁하면, 그 사람도 독립투사'가 되어버립니다.

이렇듯이 80년의 광주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결탁한 사실도 셀수 없이 보았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정부에선 계속 무마시키려고만 한다는 것입니다. 적극적으로 나서서 '진실'을 밝히겠다고 하지만, 지금 밝혀진 진실이
진정한 '진실'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렇기에 흐지부지하게 끝나버리고 만 것입니다. 실로 광주의 진실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Q10. 신군부 공수부대의 의한 무차비한 살상에 대해 저항한 광주 시민들의 행동이 어떠한 과정을 통해서 민주화의 길로 나아갈 수 있었는지에 대해 궁금합니다. 그리고 한국 현대사에서 그것이 갖는 진정한 의미가 궁금합니다.

→ 아직 우리가 그것을 판단하기엔 이른 것 같습니다. 광주의 문제는 시대가 훨씬 더 지나서 진실이 밝혀진 후, 우리의 후세들이 판단해야 할 것 같습니다.



Q11. 광주항쟁을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가슴으로 이해하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 머리로 이해하면, 머리가 아프고, 가슴으로 이해하면 가슴이 아프죠.


Q12. 혹시 학생시절 학생운동에 참여했던 경험이 있으신가요? 광주민주화운동은 전남대학교를 시점으로 일어났기에 어떻게 보면 학생운동과도 크게 연관이 있습니다. 그 당시 학생운동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고, 어떻게 행해졌는지 궁금합니다. 혹시 참여하지 않으셨다면, 들으셨던 거나 아시는거라도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 저는 70년대에 대학을 다녔는데, 그 당시 대학에서 한 일은 데모밖에 없었던 걸로 기억할 정도로 데모를 많이 했습니다. 데모 때문에 수업 도중에 학생들이 박차고 밖으로 뛰쳐나가는 경우도 있었고, 몇 달 동안 학교를 못 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 학생운동의 목표는 박정희 정권의 부정을 고발하고, 민주화에 한 걸음 더 앞장서서 나가자는 것이었습니다.


Q13. 그리고 기자님이 생각하시는 좋은 언론이란 무엇일까요?

→ 제가 생각하기에 현재 좋은 언론이란 건 없습니다. 왜냐하면 회사가 언론을 쥐고 있기 때문에 언론이 자유로운 방향으로 나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언론이 누군가의 소유가 아니라 자유로운 것이라면, 그게 좋은 언론이 아닐까요?



Q14. 오래 전부터 '어떤 신문을 가장 많이 읽는가'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언론 왜곡에서 한 몫을 크게 한 조.중.동 신문이 전체 중 70%라는 큰 비율을 차지해오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그 신문들이 왜곡한 걸 뻔히 알면서도 굳이 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전부터 이 사회에는 조중동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조중동 신문을 보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Q15. 광주 민주화 운동 이후에도 우리 나라 사람들은 지역감정이라는 고질병 때문에 하나로 뭉쳐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도 총선이나 대통령선거를 보면 특정 지역 사람들이 특정 지역당에 몰표를 주는 일이 빈번한대요. 단일 민족인 대한민국에서 지금까지도 지역감정이 심각하게 나타나는 원인은 무엇인가요?

→ 지역감정은 우리 나라가 아닌 세계 도처에도 존재하는 현상입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인도와 파키스탄 등에서 존재하는 지역감정은 문화적 차이와 종교의 차이 등 그 원인도 각각입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지역감정이 심하게 나타나는 이유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섞여 들어가서 생기는 것입니다. 그 복합적 요소로는 해방 후 국토불균형 개발과 경상도와 전라도 사람들 간의 불신을 들 수 있겠죠.




Q16. 지역감정은 특정 지역사람들의 문제가 아닌 국가 전체와도 연결되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지역감정에 대한 궁극적인 해결점은 없는 걸까요?

→ 제 생각에 지역감정의 궁극적인 해결점은 없습니다. 한 쪽에서 없애라고 소리를 쳐도 사람들은 꿈쩍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지역감정이 없어지지 않는다면, 오히려 우리는 이것을 잘 이용해서 선의의 경쟁으로 발전될 수 있는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독설과 폭력이 난무하는 것이 아닌 선의의 경쟁은 국가를 발전시킬 수 있는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Q17.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힘들게 얻어난 민주화의 모습이 지금 현재는 많이 일그러져 있습니다. 그 때와 마찬가지로 부정부패와 비리는 만연하고, 시민들은 더 이상 국가를 신뢰할 수 없는데요. 이런 현실에 진정한 민주화의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 민주화는 정지되어 있는 것이 아닌 흐름의 연속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이 시대의 민주화가 일그러져 있더라도 그 흐름은 멈추지 않고, 계속 흘러갑니다. 우린 그 민주화를 바라봐야겠죠.


Q18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혹시 기자라는 직업을 선택해서 자부심을 느꼈거나 후회했던 적은 있으셨나요?

→ 하루에도 수십 번 후회하고, 자부심을 느끼고 그랬습니다.



Q19. 그리고 민주화 운동에 대한 교육이 꼭 이루어 져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특히 어른들이 아닌 학생들에게 민주화 운동을 교육시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 학교에서는 눈에 보이는 것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교육시킵니다. 그 중 눈에 보이지 않는 민주화는 아직도 미완성상태입니다. 이걸 꼭 교육시켜야 할까요? 물론 우리는 학생들에게 민주화 운동을 교육시키는 의무는 있겠죠. 하지만 자신이 실천하려 하지 않고, 서로 떠넘기려고 하기에 잘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Q20. 사실 저희가 이렇게 기자님을 만나 뵐 수 있게 된 것은 '한국 현대사 산책- 1980년대 편, 강준만 저서' 란 책을 읽고 전혀 인식하고 있지 않았던 5.18에 대해 가슴 깊이 생각하게 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욱 알고 싶은 것이 많아 다음 까페에서 5.18민주화 운동에 관련된 까페를 검색하다가 기자님께서 운영하고 계신 '518기자클럽'에 가입하게 됐는데요. 518도 20년의 세월이 지나 사람들 속에서 점점 잊혀져 가고 있는데 굳이 이 까페를 만들어서 운영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 제가 까페를 개설하여 사진을 공개한 것은 사람들이 이 사진을 보고 ‘광주사건이 이런 모습으로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생각하도록 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그 사진에 대해 아무런 설명을 달아놓지 않았는데 그건 사진을 보는 주체가 그것을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진은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보는 사람에 따라 그 의미와 해석은 달라집니다. 하지만 우리 나라 사람들은 ‘기록’에 무관심합니다. 누군가 자신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언젠가 이 나라의 부정부패도 줄어들 것입니다. 저는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광주사태에 관해서 왜곡하고, 거짓을 말하고 있을 때, 사실을 찍어내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출처:http://blog.naver.com/ilovepekr/70022186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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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8.04.12 21:43

    첫댓글 광주사태는 당시 보안사령관과는 무관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위로 대통령,국무총리, 국방장관,참모총장등 여러분이 계셨기때문 보안사령관이 마음대로 할 위치에 있지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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