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에 취임하자마자 만난 노조위원장은 “사장님 일감 좀 주십시오” 했다. 그동안 일이 너무 없어 힘들었다며 하소연하는 그의 목소리엔 진심이 담겨있었다. IMF 구제금융 시절 부도를 낸 이후 16년간, 법정관리와 위탁경영으로 근근히 명맥만 이어왔던 회사, 무기력한 분위기가 팽배할 것이라 생각했던 당초 걱정이 모두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회사를 살리기 위해 구슬땀 흘릴 각오가 돼있다고 말하는 직원들의 의욕 가득한 눈빛을 보니 저절로 힘이 솟아오르더군요. ‘그래 한번 해봅시다’ 손을 맞잡았습니다. 1980년대 혼수가구 시장을 풍미했던 46년 전통 가구 명가(名家)의 명성, 되찾아보자’고 말이죠.”
지난달 주인이 바뀐 보루네오가구를 맡아 이끌게 된 안섭 대표, 새로운 출발을 위해 스타트 라인에 선 그의 각오와 다짐을 들어봤다.
◇시장 불안, 과열된 측면 있다
안 대표는 보루네오가구의 최대주주와 대표이사가 갑자기 변경된 것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해소하기 위해 해명부터 하겠노라 했다. 자본시장에서 기업간 인수합병(M&A)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경제활동으로 현재의 불안은 분명 과열된 측면이 있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고 싶다는 것이다.
“보루네오가구가 오랫동안 매각설에 시달려오면서 악성 루머가 많았던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번에 최대주주와 대표이사가 변경된 이후 주가는 오히려 20% 가까이 올랐습니다. 주식시장에는 그동안의 불안감이 해소됐다고 보고, 호재로 받아들인 것이죠. 지금의 최대주주는 과거 최대주주와 달리 체계적인 투자 계획 아래 공격적으로 영업활동을 펼쳐나갈 방침을 확고히 하고 있습니다. 향후 회사 이익을 극대화해 실적으로 답하겠습니다.”
보루네오가구는 지난 5월 17일 전임 최대주주인 정복균 회장이 김승기 AL팔레트 대표에게 보유주식 320만주를 양도하고 경영권을 넘김으로써 최대주주가 변경돼 새로운 주인을 맞았다. 이후 한달여가 6월28일, 임시주주총회가 소집됐고 정성균 대표에서 안섭, 빈일건 각자 대표체제로 전환됐다.
안 대표는 영업 및 자금을, 빈 대표는 본사가 위치한 인천지역 대리점 관리 등 경영 전반을 총괄하기로 했다.
◇아파트 특판, 사무용 가구가 新성장동력
보루네오가구 이름 찾기의 구원투수로 나선 안 대표가 주력 아이템으로 삼은 것은 아파트 특판용 가구와 사무용 가구다. 주택경기 침체가 장기화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한 주택시장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기본 원리에 충실하기로 한 것이다.
“지금은 우리뿐 아니라 모두가 어려운 시기입니다. 이런 때일수록 기본을 따르는 것이 중요해요. 시류에 휩쓸리기보다 우리가 잘할 수 있는 분야를 발굴해 집중적으로 키워나갈 것입니다. 건설시장이 안 좋다고 특판용 가구사업에서 손을 떼버리면 나중에 경기가 다시 회복됐을 때는 어떻게 하지요? 당장의 이익 때문에 시류를 좇기보다 긴 안목으로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분야를 발굴해 집중적으로 육성해나갈 계획입니다.”
안 대표는 이전 최대주주가 추진하던 사업 중 알짜인 것들은 선별해 안고간다는 방침이다. 반값가구로 불리는 ‘나눔명작시리즈’와 기능성 의류기인 ‘에어샷’이 대표적이다.
“품질은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유통마진을 줄여 가격을 낮춘 ‘나눔명작시리즈’에 대한 반응이 뜨겁습니다. 올 하반기 출시될 예정인 무늬목 가구, 이탈리아 수입소파 등 모두 나눔명작시리즈의 일환으로 내놓을 생각입니다. 에어샷의 경우 아파트 특판용 가구에 빌트인 방식으로 매립할 수 있어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입니다. 이미 중국시장 진출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어요. 될성부른 떡잎은 자르지 말고 키워야죠.”
-동아건설산업에 몸담았던 이력이 특판 수주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건설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관련 인맥도 탄탄히 갖추고 있으니 부인할 수는 없겠네요. 그러나 인적 네트워크를 통한 효과는 단기적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핵심은 제품력 강화예요. 이게 최우선순위입니다.
-사무용 가구도 신 성장동력으로 꼽았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보루네오가구가 한샘이나 리바트 등 경쟁업체에 비해 사무용 가구가 많이 부족한 실정이더군요. 제품 라인업이나 디자인 등 모든 면에서 떨어진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사무용 가구에 대한 투자를 늘려 제품 구색을 더욱 다양화하고 디자인을 보강해 병원, 학교, 기업체 등 국내는 물론 해외 시장도 적극 공략할 것입니다. 우선 오는 8월 사무용 가구 ‘유피스 3’를 출시해 라인업 보강에 나섭니다. 이전 제품들에 비해 디자인과 기능이 획기적으로 개선됐다고 자부합니다.
-해외 시장 진출은 어느 곳에, 어떤 방식으로 진행됩니까.
중동 지역을 가장 유망하게 보고 있습니다. 중동 민주화 바람 이후 재건 수요가 굉장히 높습니다. 초기 시장을 선점하는 것이 중요해요. 북미 지역도 정성을 쏟고 있는 곳입니다. 방대한 규모 때문이라도 매력적인 시장이죠. 이달 초 미국 지사인 ‘BIF World’를 설립했습니다. 신사업 중 하나인 알루미늄 팔레트와 사무용 가구로 미국 시장을 적극 공략할 것입니다.
◇유럽 디자이너 고용해 디자인 능력 높인다
안 대표는 이제 내구성과 친환경성 등 품질은 기본, 디자인이 곧 경쟁력인 시대가 왔다고 말한다. 대표 취임 후 본사 전시장을 둘러본 뒤 ‘디자인에 많은 실망을 했다’는 것이 안 대표의 솔직한 고백. 예뻐야 잘 팔리는 게 인지상정인데 진열된 제품들은 너무 품질에만(?) 공을 들인 느낌이었다는 것이다.
“디자인 능력 높이자고 우리끼리 아무리 외쳐봐야 무슨 소용입니까.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가구 디자인은 유럽산입니다. 그렇다면 유럽 디자인을 배낄 것이냐? 그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는 직접 배우기로 했습니다. 유럽에서 유명한 디자이너를 영입하기로 한 것이죠. 현재 이와 관련해 그쪽과 얘기가 오가고 있어요. 조만간 긍정적인 결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합니다. 탄탄한 품질 위에 유럽산 못지 않은 디자인이 입혀진 합리적인 가격의 국산 가구, 구미가 당기지 않습니까.”
안 대표가 이케아를 경쟁상대로 보지 않은 것은 이 같은 맥락에서다. 뛰어난 디자인과 합리적인 가격으로 각광받고 있는 이케아에 부족한 것은 딱 한 가지, 내구성이다. 품질, 디자인, 가격 이 세 가지 모두를 갖춘 보루네오가구의 주요 타깃은 중고가 시장으로 이케아와 겹치지 않는다. 때문에 이케아의 한국 진출이 보루네오가구에 줄 타격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란 게 안 대표의 전망이다. 스웨덴 출신의 세계적인 가구기업 이케아는 오는 2014년 한국 시장에 본격 진출할 예정이다.
안 대표는 부임 첫 해인 만큼 올해 매출 목표치는 허황되게 높여 잡지 않기로 했다. 대신 투자가 본격적으로 효과를 내는 내년 이후로 기약해달라고 당부했다.
“올해 매출은 가구산업 1600억원, 팔레트 등 신규사업 250억원 등 총 1850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전년대비 약 20% 증가한 수치죠. 오를 산이 높은 만큼 너무 속도를 내진 않을 겁니다. 다만 꾸준히 성장해 내실을 키우고 이미지 제고에 힘쓸 것입니다. 과거 보루네오가 누렸던 가구 명가로서의 명성과 자부심, 반드시 되찾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