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투리를 쓰는 사람이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다. 사투리에 관심이 많다는 나만하여도 내가 사용하는 대부분의 말은 표준어이다. 시골에 가 보아도 사정은 비슷하다. 어지간한 사람들은 사투리와 표준어를 혼동하여 사용하여, 사투리를 채집한답시고 아무리 말을 걸어 보아도 사투리라고 할 단어는 몇 단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물론 70세 이상의 어르신들의 경우에는 뜻하지 않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하여, 그런 단어 하나를 들으면 금맥을 찾은 듯한 기분이 든다. 그러나 그러한 말도 가뭄에 콩 나듯이 들을 수 있는 것이고, 대부분의 경우에는 물건이나 대상을 가리키며 물어보아야 한다. 이때 주의를 해야 할 것은 먼저 표준말을 제시하면서 물었을 경우, 그것에 해당하는 사투리를 듣기는 어렵다는 사실이다. 그냥 대상만 지시한 채, 그것을 무어라고 하는지 물어보아야 한다. 많이 아는 사람의 경우에는 대개의 식물 이름이나, 새 이름까지 알고 있는 분들도 있는데, 그분들은 그야말로 사투리(토속어)의 보고라고 해야할 것이다.
표준말을 강요하는 사회이다 보니, 많은 사투리들이 사장되기는 하였지만 중앙에서 먼 지방일수록 사투리가 많이 남아있는데, 그것은 이유가 있다. 아무래도 중앙 말의 변화에 느리게 영향을 받은 탓이다. 그래서 중앙, 곧 서울에서 먼 지방일수록 고어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그리고 그중 변화가 유독 느린 것은 지명이다.
내가 태어난 마을은 전남 장흥군 장동면 만년2구 만수리라는 곳인데, 한 마을이더라도 마을을 가리키는 지명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각 골짜기나 들을 가리키는 지명이 따로 남아있다. 마을만 하더라도 여러 개의 작은 마을로 분류하여 이름이 붙어 있는데, 거기에는 나름대로의 내력이 있다.
먼저 내 고향 마을의 지명들을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다. 골안, 안고랑(혹은 골밖), 오구에, 원태(혹은 구싯골), 비까래, 주막거리 등은 사람이 살았던 곳에 해당하는 지명이고, 물마장골, 서당골, 절터골, 본남골, 조분골, 방애골, 박골 등은 골짜기에 붙은 이름들이다. 그리고 멍쟁이, 깽밴, 들녁, 물방애쓸배미, 수구랑배미, 바우배미, 비까래, 만손뜰 등은 들을 가리키는 지명이며, 멍쟁이보, 갱밴보, 비암실보, 들녁보 등은 보를 가리킴과 동시에 하천의 일부를 지칭하는 말이며, 노푸란질, 천지똥 등은 길의 특정 부분 내지는 일정한 특성을 지닌 지형을 중심으로 한 그 일대를 뜻하는 말이다.
간략하게 위에 열거한 지명들을 해석해 보면 다음과 같다.
* 골안 : 골의 안쪽이라는 뜻이다. 골밖과 상대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마을의 입구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제각이 많고 예전에는 서당과 절이 있었다. 용두봉에서 가까운 곳이다.
* 안고랑 : 골밖이라고도 불리며, 마을의 중심부이다. 흔히 골밖으로 불리다가 안골 혹은 안고랑이라는 말이 주로 쓰이지 않았을까 싶다. 안과 밖이라는 것은 마을의 중심부냐 아니냐는 뜻을 지니기도 하므로 골밖이라는 말이 불편했을 수도 있다.
* 오구에 : 골안과 골밖을 잇는 조금 비탈진 곳에 위치한 마을(여기에의 마을은 마을 안의 작은 마을)이다. 무슨 이유로 오구에라고 불리게 되었는지, 알려진 바는 없다. 전라도 말에 ‘어구차다’라는 말이 있는데, 그 말과 관련이 있는 듯 보이기도 한다. ‘비탈진 곳 = 어구찬 곳’이라는 등식이 성립 가능하므로 추론해 본 것인데, 정확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 원태 : ‘원터’가 변형된 말이다. 조선 시대에 ‘원’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데, 마을 중앙에서 바라보면 오른쪽에 위치한다. 반면 주막거리는 마을에서 바라보았을 때 왼쪽에 위치하는데, ‘원터’가 없어지고, 주막만 그쪽으로 이전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구도로는 원태에서 마을 쪽으로 돌아 들어와서 주막거리 쪽으로 빠져나갔는데, 일제가 신작로를 내면서 구도로의 의미는 상실되었다. 원태는 구싯골이라고도 하는데, 말의 구유 같은 형국이라서 그렇다고 한다. 말 그대로 구유의 터인지라 가난한 사람이 없다.
* 비까래 : 마을의 중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마을이다. 산의 비탈에 협소하게 붙어 있는데, 예전에는 서너 가구가 살았지만 지금은 사라졌다. 논과 밭을 아울러 넓은 땅을 그렇게 부르는데, 마을 중심에서 보았을 때 동쪽에 커다란 비탈이 있는데, 그 너머의 땅은 대부분 비까래라고 불렀다.
* 주막거리 : 주막이 있었던 곳이다. 6-70년대만 하여도 서너 개의 주막이 있었는데, 지금은 하나도 없다.
* 물마장골 : 폭포가 있는 곳이다. 옛날에는 여름이 오기 전에 물 맞으러 가는 풍습이 있었는데, 지금은 행하지 않는다. 병을 예방하기 위해 폭포수를 맞는 것이었는데 대개의 마을에는 그런 풍습이 있었고, 그래서 많은 마을에는 ‘물마장골’이라는 지명이 있다. 물이 많은 곳이다.
* 서당골 : 서당이 있었던 곳이다. 지금은 아무 흔적도 없이 숲이 우거진 골짜기이다.
* 절터골 : 절이 있었던 곳인데, 몇 단계의 석축만 남아있고, 대숲이 우거져 있다. 기왓장은 많이 발견되지만, 다른 유물은 발견되지 않았다. 절터 아래에 꽤 넓은 땅이 버려져 있는데, 여름에는 접근하기 힘들다.
* 본남골 : 어원이 범나무골인지, 버드나무골인지, 본나무골인지 알 수가 없다. 범이 나온 골짜기에서 유래 했다고 하기도 하고, 버드나무가 많아서 버드나무골에서 유래 했다고도 하고, 본래 나무가 많은 곳이라, 본남골이라고 했다고도 하는데, 어느 것도 분명하지 않다. 나무를 하러 많이 다닌 곳이며, 범이 나왔을 만큼 골짜기가 깊다. 이곳에는 독특한 지명이 있는데, 쉼바탕이라는 것이다. 나무가 없고 잔디가 자라는 제법 넓은 터가 일정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데, ‘첫번째쉼바탕’ ‘두번째쉼바탕’ ‘세번째쉼바탕’ 그렇게 불렀다. 마을 사람은 누구나 알고 있으며, 다른 아이들과 나무를 하러 갈 때면 몇 번째 쉼바탕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하곤 하였다. 골이 깊은 탓에 나무 한 짐 해 오려면 쉬면서 내려올 수밖에 없었는데, 쉼바탕은 지칠만 할 때면 나타났기 때문에 쉼바탕과 쉼바탕 사이의 길은 인내의 길이었고, 쉼바탕은 일종의 마디 같은 것이었다. 특히 ‘두번째쉼바탕’은 ‘한대묏뚱’ 혹은 ‘한새묏뚱’이라고 불렀던 버려진 무덤이 있었는데, 누구나 쉬면서 담배 한 대 피고 가는 무덤이라고 해서 ‘한 대’ 묏뚱이라고 한다는 설과, 황새가 있었던 곳이라고 해서 ‘한새묏뚱’이라고 한다는 설이 있었는데, 그 두 용어를 혼재하여 사용하였다. 후송이 찾아오지 않는 무덤이었지만, 쉴 자리를 제공해준 탓에 해마다 벌초가 깔끔히 되어 있곤 하였는데, 얼마 전에는 재력을 갖춘 후손이 나타나 무덤을 정비하고 마을 사람들을 후하게 대접하였다고 한다. 버려져 있었지만 해마다 벌초가 깔끔하였으니, 어찌보면 명당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 조분골 : 좁은골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인천이씨들의 선산이다.
* 방애골 : 물레방아가 있었던 곳이다. 얼마 전까지만 하여도 그 물레방아를 돌렸던 흔적으로 작은 둠벙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곳을 메워 밭을 만들었다.
* 마을의 뒷산은 용두봉인데, 그 용의 젖통에 해당되는 곳이다. 박이 많아서 박골이라 했다고 한다. 풍수가들에 의해 명당의 혈처가 있는 곳이라 하여 비싸게 팔린 땅이 더러 있다.
* 멍쟁이 : 마을에서 먼 곳에 위치한 들이다.
* 깽밴 : 논과 밭이 강변에 위치한데서 비롯된 이름이다. 들을 가리키는 말은 깽밴이었는데, 그곳에 물을 대기 위해 만든 보의 이름은 ‘갱밴보’였다는 것이 재미있다.
* 들녁 : 마을의 안산이 들녁산 아래의 들을 뜻하는 지명이다.
* 수구랑배미 : 저수지 바로 아래에 위치한 들인데, 항상 수렁 상태인지라 붙은 이름이다.
* 바우배미 : 큰 바위가 있는 논을 뜻한다. 흔히 고인돌이 많았던 탓에 고인돌이 있는 논과 밭을 바우배미라고 불렀다. 인력으로는 치울 수 없는 바위를 ‘천석’이라고 하였는데, 그런 바위가 있었던 곳도 마찬가지이다.
* 물방애쓸배미 : 물방앗간이 있었던 곳이다. 물방앗간터를 중심으로한 일대의 들을 뜻한다.
* 비까래 : 작은 마을 이름에서 나온 비까래와 같은 뜻으로 쓰이기도 하였다. 사람들을 가리킬 때는 그 마을을 뜻하였고, 논과 밭을 뜻할 때는 그 일대의 들을 가리켰다. 통틀어서 비까래라고 하면 집이건 들이건 그 일대를 뜻하는 말이었다.
* 만손뜰 : 마을의 이름이 ‘만수’인데, 사람들은 흔히 ‘만손’이라고 불렀다. ‘수(守)’ 자를 손 수(手)자로 오인한데서 비롯된 것 같다. 저수지 아래 중심을 이루는 뜰, 수구랑배미 아래에 있었다.
* 멍쟁이보 : ‘멍쟁이’ 들을 위한 보이다.
* 갱밴보 : ‘깽밴’ 들을 위한 보이다.
* 비암실보 : ‘들녁’ 들을 적시는 보이지만, ‘멍쟁이’ 들까지 그 물이 흘러가기도 하였다.
* 들녁보 : 마을에서는 가장 위쪽에 있는 보이다. 물이 맑고 깊어서 뗏목을 만들어 타기도 하였다. 자라가 많았던 곳이다. ‘들녁’ 들을 적신다.
* 노푸란질 : 멍쟁이보 옆의 언덕길을 뜻한다. 언덕이라 함은 비탈진 한 쪽을 뜻하지만 ‘노푸란질’이라는 말은 경사가 지되 오르내림이 다 있는 조금 높은 길을 뜻한다. 한 눈에 오르막과 내리막이 보이는 고개라는 해석이 더 적당할 것이다. 그런 곳을 ‘높장하다’고 하였는데, 그런 높장한 길이 ‘노푸란질’이다. 낮은 고개라고 보면 될 것이다.
* 천지똥 : 골안으로 가는 길에 있는 낭떠러지, 혹은 그 낭떠러지 일대를 뜻한다. 하늘과 땅이 동시에 있는 곳이라고해서 ‘천지동’ 즉 ‘천지똥’이라고 한 것 같다.
여기까지가 우리마을에 있는 지명들을 나름대로 해석한 것이다.
지명과 더불어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택호이다. 택호라는 것이 마을의 이름에서 따오기도 하지만, 그 지방의 어투에 따라 변형되기도 하고, 한자어 지명이 토속어로 바뀌기도 한다. 아무래도 한자어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쉽게 쓸 수 있게 굳어지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내가 태어난 마을의 이름은 ‘만수’이지만, 이 마을에서 다른 마을로 시집을 간 사람들의 택호에는 ‘만수떡’이 없다. 흔히 ‘마산떡’ ‘만손떡’이라는 택호를 사용하는데, 왜 이렇게 변형되었는지 이유를 알기는 어렵다. 하지만 ‘만수’나 ‘마산’이나 ‘만손’이 뜻하는 곳이 다르지는 않다.
‘날멀떡, 구틈떡, 내구떡, 오산떡, 신월떡, 동춘떡, 할멀떡, 새실떡, 홍두꿀떡’ 등은 보성에 있는 한 마을 사람들의 택호이다. 아마 날멀떡의 ‘날멀’은 ‘비동’이라는 마을에서 유래되었을 것이고, ‘새실떡’이라는 분의 고향 마을은 가마터가 있었을 것이다. ‘시’나 ‘실’로 끝나는 지명은 가마터가 있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홍두꿀떡’이라는 명칭은 ‘꿀’이라는 말 때문에 되새겨 볼만하나 아직은 부족한 내가 함부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보성의 한 마을에 있는 사람들의 택호를 알게된 것은 그 마을에 살았던 사람의 글을 통해서였는데, 자기 마을의 지명이나 택호 같은 것을 기록하는 것은 우리말의 어원을 찾는데 도움을 줄뿐더러, 말에 얽힌 내력을 푸는 데도 중요한 자료가 된다. 사소하다고 기록하지 않으면 후세 사람들이 근거를 들 만한 자료는 하나도 남지 않게 된다.
마을 사람들의 택호를 글로 올렸던 이분은 자기 마을의 지명들도 덩달아 소개를 하였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깐치쟁이, 잠매, 개매뚱, 안골, 구대박골, 열두네, 점뱅이, 점뚱, 목넹기, 건뜰, 방선쟁이’ 등이다. 지명을 뜻하는 말들인데, 다양한 어미가 흥미롭다. ‘쟁이’ ‘매’ ‘매뚱’ ‘골’ ‘네’ ‘뱅이’ ‘뚱' ‘넹기’ ‘뜰’ 등이 그것이다.
‘쟁이’는 ‘배미’와 유사한 말인데, 일정한 크기의 들을 뜻한다. 나는 이분의 마을에 가 보지는 않았지만, 어느정도 해석이 가능한데, ‘깐치쟁이’는 까치들이 많았던 들을 뜻하는 말일 것이다. 그러므로 마을에서는 좀 떨어진 곳에 위치할 가능성이 높다. ‘매’ 혹은 ‘묏뚱’ 등은 ‘묘’를 가리키는 말이다. 하지만 지명만 가지고 그 지명이 주는 의미를 해석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위에서 나온 ‘잠매’의 경우가 그것인데, ‘잠매’는 누에를 치는 잠실이 있는 산자락을 뜻할 수도 있고, ‘잔뫼(작은 봉우리들)’에서 왔거나 ‘잔묘(작은 무덤이 많은 곳)’에서 온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해석의 여지없이 분명한 것도 있다. ‘개매뚱’이 그것인데, 아마 이름 없는 작은 무덤이 있는 일대를 가리키는 말일 것이다. ‘골’이야 ‘골짜기’를 뜻하므로 어느 정도 이해가 쉬운 지명이고, ‘네’라는 말은 ‘곳’을 뜻한다. 흔히 ‘~에’ 식으로 쓰이기도 한다. 점뱅이의 ‘뱅이’는 ‘배미’나 ‘쟁이’와 다르지 않는 뜻을 가지고 있으므로 어느 들을 지칭하는 말일 것이고, ‘뚱'은 ’등‘ ’등성이‘가 변형된 말이므로 어렵지 않을 것이다. ’뜰‘이라는 달리 해석할 여지가 없는 말이므로 어림짐작 그곳이 어떤 지형일 것이라는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쉽게 해석이 되지 않는 것은 ‘목넹기’이다. 나름대로 분석을 해 본다면, ‘넹기’라는 말은 너머의 뜻을 지닌 것 같다. 전라도 말에 ‘넘기다’의 뜻을 지닌 ‘넹기다’라는 말이 있다. 그리고 ‘목’이라는 말은 ‘고개’라는 뜻이 있으므로 ‘고개 너머’로 해석할 수도 있고, 달리 보면 ‘넹기다’를 ‘남기다’로 해석하여 ‘몫을 남기’는 곳으로 풀어볼 수도 있다. 더 정확한 해석은 그 지역에 가서 이야기를 들어보고 지형을 본 후에 해야 할 것이다. 다만 이것은 하나의 추론에 불과하다.
광양의 어느 분이 올린 자기 마을의 지명도 재미있다.
‘고리밑고개, 고르메, 고리미뻔덕, 쇠죽골, 북멧골, 대밭골, 옻남골, 불랑골, 얼헝골, 못안골, 소탯꺼리, 패래보’ 등이 그것인데, 여기에서 얼헝골은 어름골에 다름 아니고, 대밭골은 대밭이 있었던 곳을 뜻할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고리밑고개’와 ‘고르메’ 그리고 ‘고리미뻔덕’인데, 이것들은 모두 ‘고르메’에서 파생된 말들이다. ‘고르메’는 ‘고르묘’인데, 고려의 옛말이 ‘고리’였으므로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고르메’는 ‘고려묘’를 뜻하는 말이다. 그 마을에는 고려의 묘가 있었다는 뜻이므로 그 분에게 혹시 고려장터가 없었느냐고 물었더니, 있었다고 한다. 그 고려장터가 있는 곳의 지명이 ‘고르메’이므로, ‘고리밑고개’는 고려 장터 아래의 고개일 것이고, ‘고리밑뻔덕’은 고려 장터 아래의 언덕빼기를 뜻하는 말일 것이다.
이왕 길어진 이야기, 전북의 예를 하나 더 들어보자.
전북 정읍시 산내면 예덕리라는 곳에 가면 ‘상례’ 마을이 있다. 박성우 시인의 고향이다. 그런데 이 상례 마을의 옛지명은 ‘윗보리밭’이었고, 그 마을 아래쪽에 있는 하례 마을은 ‘아랫보리밭’으로 불렸다고 한다. 그런데 대개의 지명이 토속어로 불리는 것을 따라가기 마련인데, 이 마을의 경우에는 달라져도 너무 달라졌다. 대개의 마을 지명이라는 것은 토속어로 불리던 이름을 한자어로 바꾸면서 바뀌고, 일제 강점기가 시작되면서 그들에 의해 한자어마저 다른 말로 바뀌면서 본래의 뜻을 상실하게 된다. 이 마을의 경우도 그런 예에 속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윗보리밭’을 한자어로 바꾸면 상맥(上麥) 정도가 될 것이다. 하지만 한자를 조금 아는 사람이 상맥이라는 발음이 어색할뿐더러 의미가 단조롭기 때문에 뒤져올 치(夂)를 빼고, ‘來’ 자만 취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상래(上來)였던 것을,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면서, ‘來’를 ‘禮’로 바꾸었을 가능성이 크다. 좀더 정확한 것은 자료를 뒤져본 후에 가능한 것이겠지만, 다른 마을에도 그런 예는 충분히 있다.
본래의 지명을 잃어버리는 것이 무어 대수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불순한 의도로 지명이 바꾼 것은 수천 년 간 내려온 우리의 정서에 쇠말뚝을 박은 행위나 다름이 없다. 그래서 잊혀져 가는 말을 찾는 것, 잃어버린 지명을 찾는 것은 민족혼을 찾는 것에 다름 아니다.
윗보리밭에는 또 여러 가지의 지명이 있는데, ‘언다꺼티, 아래꺼티, 우꺼티, 치매밭골, 재까티, 가재실, 정골, 피아골, 반애미, 능긴네, 중산골, 새나틀(털), 매약수재, 능다리재, 사근다골’ 등이다. 남도의 지명들에 비해 두드러진 것은 ‘꺼티’나 ‘까티’라는 어미인데, 이것도 마찬가지로 ‘곳’이나 ‘곁’을 뜻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아래꺼티’는 아랫곁이나 아래쪽의 땅을 뜻하고 우꺼티는 윗곁이나 위쪽의 땅을 뜻한다. 그리고 ‘언다꺼티’는 ‘언덕곁’이나 ‘언덕쪽’ 혹은 ‘응달곁’으로 보는데, ‘언다꺼티’는 한 마을에서 응달이 가장 잘 지는 곳이라고 한다.
가만히 지명을 늘어두고 상상하는 재미가 어지간하다. 하지만 어지간한 지명 해석에는 현지인의 도움이 필수이다. 다음은 ‘이랑’이라는 닉네임을 쓰는 분이 자기 고향 마을의 지명에 대해 쓴 글이다. 편의상 행의 배열만 약간 달리 했음을 밝힌다.
제 고향은 보성 율포입니다. 인근 마을사람들은 '율포'라는 행정명보다 밤 '栗' 개 '浦'의 음을 따서 '밤개'라 불렀지요. 가끔은 짐짓 '밤개껏들'이라고 비하해서 부르기도 하구요(갯가에 산다고)
꼴 따라 지어진, 그래서 더 다정하게 불리었던 마을. 너무도 정겨운 이름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기억하는 이 거의 없고, 간혹 나이든 어르신의 택호에나 붙어있으니, 애석하기 짝이 없군요.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오래 전 고향 마을 옛 이름들을 적어본 기억이 있어, 제 고향 이름 몇 개를 소개하지요.
갯몰 : 율포 마을이름
복갯들 : 율포리와 동율리에 걸쳐있는 들로 복개(주발뚜껑)형국임.
불등 : 율포 서쪽들(모래 벌판)옆에 있는 마을
샛터 : 교회 옆마을
서그테 : 면사무소 에서 선창쪽으로 서쪽에 있는 마을
동그테 : 면사무소에서 삼거리쪽 동쪽에 있는 마을
장구배미 : 갓골 북쪽에 있는 논, 장구처럼 가운데가 잘록 하게 생겼다.
하마정 : 명교 동쪽에 있는 골짜기
독끝 : 소바위 북쪽에 있는 골짜기.동백나무가 많다.
소바우 : 동율 동남쪽 바닷가 마을.
소바우개 : 소바우 앞에 있는 개
쌍가매 : 우암 서쪽에 있는 들. 소금 굽는 가마 둘이 나란히 있었음.
외가매 : 쌍가매 동쪽에 있는 들. 소금 굽는 가마 하나가 외따로 있었음.
처녀바우 : 소바우 앞, 바다에 있는 바위. 밀물 때 물 속에 잠김.
목골 : 동촌 동북쪽 고개 밑에 있는 마을
밭골 : 상율 바깥 쪽에 있는 골짜기
세골내기 : 상율 북쪽에 세 갈래로 된 골짜기
진등 : 상율 동쪽에 있는 긴 등성이
감장골 : 군지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
강변 : 군지 동쪽 바닷가에 있는 마을
군지사터 : 잠두에 있는 터, 옛 군자사의 자리임.
누에머리 : 군짓개 서쪽에 있는 산. 누에가 머리를 쳐든 형국임.
뱀고랑 : 군지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 뱀이 기어가는 것처럼 길고 꾸불꾸불한 형국임.
큰골 : 화동 북쪽 큰 골짜기에 있는 돌
화동제 : 화동 앞에 있는 못
사뚜정이 : 분매와 당산 경계에 있는 등성이
장개골착 : 분매 앞에 있는 돌
큰골 : 당산과 분매사이에 있는 큰 골짜기
하건방 : 분매와 화동사이에 있는 등성이. 판잣집이 있었음.
대통정이 : 독트미 동쪽에 있는 등성이
독트미 : 당산 동쪽에 있는 마을. 큰 돌더미가 있음.
지와목(와리) : 지와막등 밑에 있는 마을
여기 까지가 그분의 글이다. 그분이 해석을 달아둔 것을 보면서 자기 마을의 지명이 지닌 뜻을 나름대로 가늠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언어는 쉽게 바뀌지도 않지만 특히 지명이라는 것은 땅과 돌 위에 새긴 말이라서 그것을 소멸시킬 수는 없는 법이다.
땅에 묻은들 그 말들이 잊혀질까, 물에 수장을 시킨들 그 지명이 사라질까. 아래의 지명들은 탐진댐 건설로 인해 사라질 곳들이다. 설령 물을 채우기 위해 사람들을 떠나 보낸들, 지명이야 갈 곳이 어디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