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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로의 첫 산행이다.
가는 데 5시간, 오는 데 5시간의 먼 거리는 회원들 기를 질리게 했음에 틀림없었다. 오전 5시 50분부터 세 차례에 걸쳐 회원들을 ‘수거’한 뒤-쿤밍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돼 환경 적응이 안 된 가상이가 속 썩인 걸 제외하고는 스케줄대로 그야말로 척척- 서해안 고속도로에 들어서자 차 안은 일순 조용해졌다. 봉고가 영등포역을 출발하기 전 멍게가 야릇한 표정을 지으며 “화장실” 어쩌고 했을 때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왕복 10시간이 주는 다급함에 나는 인정사정없이 "출발“했다. 비극의 시작.
새벽 잠 설친 걸 보상이라도 하겠다는 듯 모두들 열심히 잠을 청했고 “역시 우리 산악회는 택일 잘 해”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아침 햇살은 좋은 날씨를 예고했다. 정말 휴게소 음식 답지 않게 바지락을 듬뿍 넣은 칼칼한 칼국수를 먹을 수 있던 행담도 휴게소 칼국수집 앞에 주차했는데 아뿔싸! 아직 문을 안 열었다. 시계를 보니 오전 7시 15분. 완전 식전 댓바람이구만.
잔치국수를 시켜놓고 나도 뒤가 급해 화장실에서 한창 힘 주고 있는데 손전화가 울렸다. “형, 바지 있으면 좀 갖다 주면 안될까.” “왜” “응, XX 나와” “알았어. 나도 급하니 일 보고 갖다 줄게. 좀 기다려”
기사 분께 키 달라고 해 차에 달려가 바지 끄집어내 문 너머로 넘겨줬다. 비박을 위해 솜바지랑 트레이닝복 준비했는데 아무래도 트레이닝복은 아니다 싶어 솜바지를 넘겨줬다.
문 앞에서 슬쩍 물었다.“버린 바지 담게 비닐봉투 가져다줄까?”
“아니오. 그냥 버릴래요.”
자리에 돌아와 보니 잔치국수는 그야말로 불어 터질 대로 터졌다. 그 친구는 국수 국물도 못 들이켰다. 나는 정말 맛있게 국수 처!먹었다.
아침 먹은 뒤 컴불 형이 잠들자 이제 차 안은 정말 침묵의 바다로 빠져들었다. 나란히 앉은 사니 형과 독짱 형의 나직하고도 도란도란한 대화 외에는,
한참 뒤 “여기 어디야”라며 자칭, 룩스 라이크 클라크 케이블 형이 깨어났다. “군산이요.” “그래, 그럼 다 왔네.”
나는 그때 파리의 명지산 발언 이후 또 한번 이 땅 '알티'들의 지리 정보 실력을 확인하기에 이르렀다.
이때부터 가히 컴불 형의 원맨쇼. 주제는 10월 첫째 주 설악 공룡능선 참가자 모집
이 아니라 거의 강제 할당에 인권 무시를 넘나드는 수위의 발언들.
얼버무리고 때론 저항해보았자 소용 없다. "너 가는 거지. 안 가면 죽어" 뭐 이런 식이었다.
그리고 목포가 가까워오자 “아침이 시원찮았다. 빨리 밥 먹자.”는 채근이 이어졌다. 목포 하면 장흥은 지척인줄 알았다는 컴불 형. 대한민국 알티들이 이 정도면 적화통일은 식은죽 먹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알티들이 현재 얼마나 군에 남아있을까 하는 허튼 걱정도 함께.
목포에 이르기 전 무슨 얘기 끝인지 몰라도 가상이가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 소리가 장난이 아니라는 점을 눈치 챈 컴불 형 “간단치 않네. 벌써 분위기 적응했다 이건가. 하기야 간단치 않으니까 우리 모임 들어왔겠지.”
형, 가상이 진짜 실력 파악하려면 아직 한참 멀었어요.
목포를 꺾어져 나와 방조제 건너 대불산업단지로 들어서자 이내 산들의 모양이 바뀌었다. 이곳 산은 경기와 강원,충청과 호남 이북의 산들과 완연히 다르다. 해안으로 처박힌 산, 내달리다 해안에 이르러 멈춘 산, 생기다 만 것 같은 산 등 제각각이다. 그러면서 아직 완연하지 못한 황금빛 들녘이 펼쳐진다. 내 고향이라 나만 이런 느낌인가 하는 생각이 어쩔 수 없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영암 월출산 뒤쪽을 보게 됐는데 모두들 저 산 간단치 않네. 영험하네 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그렇게 오전 11시 20분쯤 장흥 읍에 들어섰다. 영등포역을 6시 15분쯤 출발했으니 거의 시간표대로 진행돼 대장으로서 짜릿한 보람을 느낀다. 근데 큰일 났다. 이상하게 점심 먹자고 했던 식당 이름이 생각 안 나는 것이다. 인터넷에 안내하는 대로 가봤는데 눈에 띄지 않는다. 대원들 실망하는 눈치란, 그때 정말 캄캄했다.
재치 있게도 독짱 형과 멍게가 군청에 들어가 위치를 확인, 들어가 자리에 앉자마자 한 대원-누군지 정말 생각 안난다. 그런 어리석은 질문을 던진 이의 이름이-이 질문이랍시고 던진다. “이 집 유명한데, 정말 맛있어요?”
아주머니 흠칫 놀라더니 되받아치길 “우리가 어떻게 맛있다 얘기를 헌단요? 드셔보시고 여러분이 판단해야지.”
막상 나온 고기는 외관상으로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꼭 냉장고에 처박아둔 것처럼 색깔이 선명하지 않아서였다. 그런데 몇 점 집어먹은 이들 입에서 탄성이 나온다. 나는 주차에 어려움 겪는 아저씨 모시느라 한참 뒤에 맛을 보았는데 서울 어느 유명 음식점에서 먹은 것보다 훨씬 맛있었다. 거기에 부드러운 키조개를 질겅질겅 씹어먹으니 정말 질리지 않게 등심을 먹을 수 있었다. 불판 위에 신선초 듬뿍 올리고 조갯살 넣어 끓인 된장국물 맛은 또 어떻고? 된장국을 그렇게 시원하게 먹어본 적은 처음이었다. 그렇게 먹은 게 11명이서 무려 24만원 어치였다. (이번 장흥행에서 예산 초과된 것이 30만원을 넘는다. 나는 30일 번개팅에서 총무에게 연말 특별회비 징수를 제의했다)
식사 후 장흡읍을 빠져나와 관산읍으로 향하다 꼭 새끼손가락 치켜든 것같은 묘한 산이 나타난다. 장흥의 자랑, 억불산이다. 스치듯 지나 관산면 지나 조금 더 달리니 정상에 면류관을 쓴 듯한 묘한 모양의 산,천관산이 눈에 들어온다. 이 일대 해발 고도가 워낙 낮아 모두 상당한 높이로 위엄있게 여겨지지만 기실 천관산 높이는 723m에 지나지 않는다.
천관산 오르는 길은 여러 갈래다. 낮은 높이에 비해 차고앉은 자리는 꽤 드넓어 천관산 오르는 길은 여러 갈래로 뻗어있다. 장천채에서 산행을 시작하며 시계를 보니 오후 1시 30분을 넘어서고 있다. 오른편 암봉 많은 코스를 잡았다. 초입엔 조금 힘든 오르막이었지만 한 소끔 쏟아낸 뒤에는 쉽게 오를 수 있는 길인데도 사니 형은 여전히 허덕댄다.
근데 우리 일행 너무 빠르다. 이 좋은 암봉 능선길을 이리도 빨리 올라가누. 뒤를 돌아보면 황금 들녘이 구불구불 탐진강을 껴안으며 혹은 내치며 이어지고 바다와 간척지가 수를 놓는다. 왼쪽으로는 바다에 잇닿은 연대봉 아래쪽 능선이 이어지고 우리가 오르는 능선 사이 금수굴 오르는 구간도 훌륭한 암봉들의 잔치가 계속된다. 오른쪽으로는 사니 형과 난 바위 하나하나를 살펴보며 달빛 비추는 날, 참 아름답겠다 탄성을 지르며 올랐다.
다른 분들 보셨는지? 노승의 옆얼굴이 그대로 드러난 노승봉, 사니 형과 나는 우리 대원들 이것 못 보고 지나친 것이 틀림없다 어쩌구 하면서 천천히 올라갔다.
산행을 시작한 지 50분이 채 안돼 벌써 환희대가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그 앞을 불끈불끈 솟아오른 암봉들이 가로막고 있다. 중천에 뜬 해를 배경으로 솟아있고 그 뒤를 파란 하늘이 버티고 있다. 촬영을 계속하면서 오르다보니 일행보다 40분은 처진 듯 싶었다. 막바지 급피치를 올려 합류,연대봉에서 20분쯤 떨어진 암릉지대에 올랐다. 억새 물결이 펼쳐진다. 일행들은 "능선도 좋고 암봉도 좋았는데 보너스로 억새까지 맛본다"며 좋아했다. 이때의 보람이란.
천관산 정상인 연대봉까지는 키 높이로 자란 억새의 물결이 우리를 반겼다. 연대봉에 도착하니 4시가 조금 지났다. 한 일간지 사진기자의 지시에 따라 일행이 억새들 사이를 허우적댈 때 나는 헬기 착륙 표시장에 자리를 깔고 랜슬럿 17년산으로 정상주를 준비했다. 온 몸에 독기가 자르르 흘러내리면서 오랜 이동과 정상 등정의 기쁨을 함께 했다. 특히 우리 산악회에서의 처녀 산행을 무사히 마친 가상이와 예쁜 딸 해나의 기쁨이 각별했으리라 생각된다. 가상이는 해나 못지 않게, 오히려 해나보다 더 감격스럽게 고요히 잠겨 있는 듯한 다도해 섬들을 일람했다. 연대봉 왼쪽으로는 고흥의 팔영산을 비롯한 고흥반도가, 오른쪽으로는 완도 앞바다의 섬들이 바다에 점점이 떠있는 장관을 만끽할 수 있다. 올망졸망하다는 표현은 이런 데 딱 들어맞는 거다.
내 욕심은 낙조를 보고 6시15분쯤 하산을 시작해 미리 이동해있을 봉고가 기다리는 탑산사로 하산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정상주를 마시고 컴불 형이 한잠 때리는 동안, 서쪽을 응시하던 피엘 형이 "저쪽에 비 온다" 한다. 고개를 돌려보니 정말 그렇다. 5시 15분쯤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다시 돌아나와 탑산사 내려가는 길 들어서기 바로 전 왼쪽으로 20미터만 내려가면 콸콸 물이 쏟아져 나오는 샘이 있다. 억새에 가려 표지판이 잘 보이지 않지만 주의깊게 살펴보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암반수가 아니면 도저히 물을 모을 수 없는 이곳에서 목을 축이며 다도해를 조망해보라. 감칠 맛이 있다.
5년 전 보리가 한참 여물던 5월에 왔을 때 이 능선은 억새가 우거진 것과는 완전히 또다른 장관을 선사했다. 벌거벗은 정상이지만 광활한 맛을 선사했던 것이다.
사위가 어두워지는 가운데 억새를 헤치며 탑산사로 내려서기 위해 일행은 바다로 빠져드는 듯한 착각을 느끼며 내려갔다. 멀리 마을에 불이 하나둘씩 켜지며 먹장구름 밑에 잠들기 시작한 바다는 점점 고요해지고. 상당히 인상적인 하산이었다.
기사 분과 약속한 6시 30분보다 약 5분에서 늦은 이는 10분 늦게 탑산사에 내려섰다. 거의 완벽한 스케줄 진행이다. 봉고에 일행이 오를 즈음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했다. "기가 막히지 않냐. 정말 완벽한 타이밍이다"
탑산사 내려오는 길에 주민들이 정성들여 쌓았다는 돌탑들이 즐비하다. 마치 열병하는 병사들처럼. 정말 볼만했다. 근 3킬로미터 가까이를 돌탑들이 장식했는데 주민들 정성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어회가 기다리는 회진 포구로 향했다. 회진 포구는 마량만의 한 가운데 위치한 포구로 왼쪽으로는 한승원, 오른쪽으로는 이청준 선생의 생가가 있는 곳이다. 5년 전 이곳을 왔을 때 나는 이청준 선생의 생가 마을에 가서 보리밭을 촬영한 바 있다. 이제 가을인데 벌써 봄 바닷가, 보리 내음이 진하게 그리워진다.
회진 마을에 들어가 두명의 주민에게 확인한 결과 이곳에서 회를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식당으로 회진횟집을 추천받았다. 두 명의 의견이 일치했으니 틀림없지 않겠는가. 전어회 한 접시에 2만 5000원인데 정말 고소한 맛이 일품이었다. 워낙 전어를 좋아하는 나는 두점씩 집어먹고 싶은데도 눈치 보아가며 한점씩 집어 맛을 보는데, 가만 보니 다들 젓가락질이 영 시원찮다. 우리 회원들 낮에 폭식한 여파인가. 나만 신나 부지런히 먹었다. 두 점씩 집어가며.
붕장어탕과 고기매운탕을 시켰는데 붕장어탕 맛이 일품이었다. 끓일수록 칼칼하면서도 눅진한 맛이 우러나는 게. 나는 붕장어탕이 우리 테이블에 오른 것을 감사히 여기며 다른 테이블에서 남긴 전어까지 골고루 정말 잘 먹었다.
정상주 여파인지 술잔 비우는 속도가 영 붙지 않는다. 나는 피엘 회장 등의 만류와 권유를 뿌리치고 남기로 했다. 식사를 마치니 오후 8시 15분. 잠시 포구 옆에서 회원들 쉬다가 봉고에 하나둘씩 오르고 나는 짐을 끌어냈다. 그렇게 봉고는 8시 40분을 조금 넘겨 출발했다.
혼자 남은 나는 쓸쓸히 포구를 지켜보다 9시 조금 넘어 여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또 혼자다.
<2일 영암 월출산 산행기 올립니다>
첫댓글 월출산 사진 이제 다 올렸슴다. 300여 장 가까이 되는 사진 올리다 보니 걸리는 시간도 꽤 되누만요. 그라고 멍게 총무님, 두 폴더 밖에 있는 사진 13컷은 중복이니 지워도 되겠슴다.
나 ! 노승봉 봤다....천관산은 그 절경에 비해 너무나도 덜 알려진 산입니다. 집에 와서 곰곰 생각해보니 서울에서 너무 멀어 그런가 봅니다. 5시간을 가야 볼수 있으니 왠만한 용기가지고는 갈수 없는 산이지요. 다른 산악회에서도 천관산 산행기는 거의 없던데...억새밭에 길이 없습니다...사람이 자주 안 다녀서
글구 너 어저께 2차후 사라져서 나만 빼고 다들 엄청 걱정했다. 걱정준 죄로 인디언 밥 5회에 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