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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6월에 결혼한 집주인 씨는 4월에 25평 아파트를 계약하고, 5월 중순부터 개조 공사를 시작했다. 이전 주인이 이사를 나간 5월 초, 빈집에 가서 거실·안방·주방 등의 치수를 일일이 쟀다. 관리사무실에 평형별로 도면이 있긴 했지만 실제 공간을 익히는 것이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것 같아 줄자를 들고 나섰다. 벽과 바닥이 만나는 선을 따라가며 재는 일은 생각만큼 어렵지 않았다고 한다. 사실, 그녀는 섬유예술을 전공한 패션 브랜드 막스마라(Max&Mara)의 VMD(Visual Merchandiser) 출신으로, 그간 매장의 인테리어를 기획하고 소품 하나까지 챙겨가며 꾸미는 데 이력이 나 있기 때문에 수월했을 것이다. 결혼은 빈 공간에 숟가락 하나까지 모든 살림을 새로 골라 넣을 수 있는 기회. 기자였다면 평소 봐왔던 폼 나는 것들 중에서 그저 가격에 타협하며 차선을 선택해 나갔을 텐데 그녀는 디자인 이전에 치수의 문제에 주목했다. 인터넷으로 사전 시장조사를 해 치수를 체크한 후 매장을 돌아보며 실물을 확인하는 식으로 진행했다. 그 결과 하나부터 열까지 철저히 공간에 맞춰 ‘딱 떨어지는’ 신혼집이 되었다.
일단, 최근 개조 공사를 한 주변 사람에게 정보를 얻었다. 운 좋게도 몇 개월 전에 공사를 한 지인이 있었고, 인테리어 스타일도 마음에 들었다. 인터넷으로 찾은 개조 업체 3곳(지인이 알려준 곳도 여기에 포함된다), 강남 업체 1곳, 강북 업체 2곳에서 비교 견적을 받았다. 인터넷에서 찾은 업체는 검색과 게시판의 리뷰를 중심으로 선정하고, 일반 업체는 돌아다니면서 맘에 드는 곳으로, 주관적인 느낌을 기준으로 선택했다. 6개 업체에 견적을 받아보니 강남이 가장 비쌌고, 인터넷으로 찾은 곳이 저렴한 편이었다. 그 중에서 지인이 맡겼던 시공업체가 가장 저렴한 가격을 제시해서 망설이지 않고 그 업체로 결정했다.
비교 견적을 낼 때 주의할 점은 “25평 아파트를 고칠 건데 예산은 1천만원이에요”라거나 “작은 방에 붙박이장을 짜 넣을 것이고, 바닥은 온돌마루를 깔려고요”식의 뭉뚱그린 계획을 내밀면 제대로 된 견적이 나올 수 없다는 것. 바닥은 A사의 데코타일, 벽지는 B사의 실크벽지식으로 같은 조건, 같은 자재를 내밀어 견적을 내야 제대로 비교해 볼 수 있다. 즉 을지로며 논현동 등에서 발품을 팔아 바닥, 타일, 벽지, 붙박이장 문까지 구체적인 리스트를 뽑아놔야 한다. 구두를 살 생각이면 지나가는 사람 구두만 보이는 것처럼 당시 그녀는 자기의 첫 번째 집 꾸밀 생각에 친구 집에 가도, 옷 매장에 가도 바닥재, 가구, 타일 컬러 이런 것들이 눈에 띄었다고 한다. 물론 그 때마다 자재 명칭이 뭔지, 어느 브랜드인지를 기억해두었다. 서재와 화장실 사이의 빈 벽에는 리빙 디자인페어에서 봐두었던 대나무 벽지로 포인트를 주고 큰 액자를 걸었다. 인테리어에 관심이 있고, 관련일을 했던 터라 당시 챙겨두었던 전화번호로 연락해 구입했다. 그 위의 연꽃 액자는 그녀의 졸업작품. 안방에 걸린 로만셰이드도 같은 작품을 실사 프린트해 만든 것이다. 업체를 선정하니 모든 것이 한결 수월해졌다고 한다. 5월 15일 철거를 시작으로, 목공사를 하고 타일을 붙였다. 싱크대 윗벽에는 실버톤의 유리 타일을, 식탁 옆에는 펄감이 있는 투 톤 바이올렛 타일을 발랐다. 현관에는 블랙 베이스에 실버가 섞인 제품을 선택했다. 타일은 을지로에서 직접 구입해서 시공업자에게 갖다 주었다. 타일 공사가 끝난 후 칠 공사와 도배에 각각 하루씩 걸렸다. 바닥에는 데코 타일을 깔고 싱크대와 주방 수납장을 짜 넣었다. 원래 욕실 공사는 안 하고 ‘깨끗이’ 닦아 쓰려고 했는데, 욕실은 공사를 안 하면 가장 티 나는 곳이기도 하고, 이왕 하는 것인데 하는 생각이 들어서 추가 비용을 들여 욕실까지 공사했다. 화장실 타일과 욕조, 변기는 업체가 가지고 있던 것 중에서 골랐고, 욕실 액세서리만 을지로에서 직접 사왔다. 이 아파트의 경우 욕실 타일을 뜯어내니 안쪽이 비어 있어서 그 공간을 콘크리트로 메워야 했다. 욕실 공사는 도배를 하고 싱크대를 넣을 때 함께 시작했지만 콘크리트 굳히는 시간이 필요해서 총 공사기간이 8일, 예상보다 며칠 더 걸렸다. 보통 이 정도의 공사는 5일 정도면 가능하다고 한다.
처음에 잡은 예산은 1천만원이었다. 일단 비내력벽을 헐어 구조를 바꾸거나 베란다를 확장하지는 않기로 했다. 비용 문제도 있었고, 25평의 경우 베란다를 트면 거실이 기다란 직사각 형태가 되어 더 좁게 느껴진다는 이야기도 들었기 때문이다. 또 그런 이유로 25평 아파트는 베란다 확장 공사를 안 한 집이 오히려 매매 선호도가 높다고 한다. 방 3개짜리 25평의 답답한 감을 없애기 위해 화이트 컬러를 베이스로 하고, 특히 오픈된 공간인 주방과 거실은 심플함을 기본으로 잡았다. 그런 뒤 집 안 전체에 실버와 바이올렛 컬러로 포인트를 줘 로맨틱하면서도 세련된 이미지를 연출하는 것으로 취향과 현실의 타협을 봤다. 메인 콘셉트를 잡고 대강 시장조사를 해보니 예산 안에서 눈에 차게 고치려면 싼 곳을 찾아내는 길밖에 없었다. 양문형 냉장고를 넣은 공간은 공사 전, 거실 쪽은 트여 있었는데 거실에서 주방을 바라봤을 때 정돈된 느낌이 들드록 얇은 합판으로 막아주었다. 주방이 작아서 화이트 하이그로시의 핸드리스 디자인을 선택했다. 타일까지 화이트로 하면 밋밋할 것 같아 실버 유리타일을 붙였다, 1회배(헤베, 1㎡의 일본식 표현)당 11만원짜리로 3박스 들어갔다.
25평이라는 크기는 정작, 거실, 안방, 작은 방 등으로 분할하고 나면(방 3개인 경우에는 더하다) 하나의 공간이 그렇게 널찍하지가 않다. 특히 거실과 이어진 주방·전자레인지·밥솥 등 꼭 필요한 것들만 구입하더라도 수납할 곳이 마땅치가 않아 이곳을 잘 정리하는 것이 가장 큰 숙제였다. 싱크대나 가스레인지 위치는 기존 틀에 맞춰 시공하고 식탁 둘 곳에 수납 공간을 마련했다. 식탁 벽면에는 본래 격자 와인랙을 짜 넣으려 했으나 제작 난이도가 높아서 와인과 큰 접시를 수납하는 기능으로 심플하게 짰다. 식탁 위로 보이는 흰색 장이 전자레인지, 밥솥, 에스프레소 머신, 오븐 토스터 수납장. 식탁 아래에도 장을 짜 넣었다. 식탁 상판의 높이만큼 틈을 주고 상하로 수납장을 넣어 작은 주방을 위한 수납 공간을 확보한 것. 바퀴 달린 식탁은 리바트 리첸에서 75만원에 제작한 것. 브랜드 기본 디자인의 상판에서 10cm 정도 식탁 매트 등을 수납할 수 있도록 했다. 식탁은 평소에는 2인용, 사진처럼 돌리면 4인용, 당겨내면 최대 6인용이 된다. 수납장 뒤쪽은 투 톤 바이올렛 컬러 타일로 포인트를 주어 정돈된 이미지를 냈다. 을지로에서 ㎡당 10만원에 구입. 1. 와인 잔을 거는 철제 프레임은 을지로에서 8천원 주고 사서 드릴로 달았다. 생각보다 꽤 많은 와인 잔이 수납되고 장식의 효과도 있다.
안방은 집주인이 가장 맘에 들어 하는 공간. 바닥은 거실과 똑같이 가구는 핑크빛이 감도는 라이트 베이지 톤 데코타일을 깔고, 분당가구단지에서 찾아낸 릴랙스라는 업체에서 침대와 화장대 세트, 거울, 사이드 테이블까지 합쳐 총 2백80만원을 주고 구입했다. TV는 벽걸이로, 에어컨 역시 슬림한 디자인으로 골라 최대한 넓어 보이도록 했다. 원래는 화려한 샹들리에를 달고 싶었는데 천장이 낮아서 어울리지 않았다. 대신 꽃 모양의 유리 조각과 12개의 촛불 등이 박힌 로맨틱한 디자인을 을지로에서 직접 구입했다. 가격은 30만원.
그녀가 말하는 방 3개짜리 25평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거실 폭이 좁다는 점이다. 그래서 일단 TV는 벽걸이로 하고 논현동에서 짜맞춘 소파는 등받이를 없애 폭을 최대한 줄이는 대신 등받이 쿠션을 따로 제작했다. 또 집을 넓혀 이사 갈 때를 고려해 한쪽만 팔걸이를 만들었다. 나중에 똑같은 소파를 맞춰서 이어붙일 요량. ‘ㄷ’자 테이블 역시 소파 높이에 맞춰 안쪽으로 끼워 넣을 수 있도록 디자인해 함께 주문했다. 논현동을 지나가다가 맘에 드는 스타일이 있어 제작 의뢰. 소파, 테이블, 주방에 놓인 보라색 가죽 식탁 의자를 포함해 약1백20만원에 맞췄다(소파와 테이블 1백만원, 식탁의자 8만원씩).
천장까지 닿는 키큰장을 짜 넣어 수납력을 높였다. 개조 전에는 하단에만 장이 있고 윗부분에는 거울이 있었는데 전체에 장을 넣는 대신 신발장 옆면에 전신거울을 붙였다. 신발장 하단에 공간을 띄워 신발이나 실내화를 밀어 넣을 수 있다. 현관에는 1㎡당 5만원 하는 블랙 베이스에 실버가 섞인 타일을 깔았는데, 정작 하고 보니 흙이 묻은 것처럼 다소 지저분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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