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촉사 증장천왕
금산사 증장천왕
경주기림사 증장천왕
내소사 증장천왕
무량사 증장천왕
무위사 다문천왕
범어사 증장천왕
보림사 증장천왕
사천왕은 갑옷을 입고 위엄이 충만한 무인상을 하고 동·서·남·북의 사천국(四天國)을 다스리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통일신라 초기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여 조선시대에는 사찰입구에 사천왕문을 세워 모시고 있다. 대웅전을 향하여 오른쪽에는 동방 지국천왕(持國天王)과 북방 다문천왕(多聞天王)이, 왼쪽에는 남방 증장천왕(增長天王)과 서방 광목천왕(廣目天王)이 위치하고 있다. 남방 증장천왕은 굳게 다문 입과 함께 근엄한 얼굴 표정을 하고 있고, 오른손에 칼을 들고 있고 있으며, 왼손은 무엇인가 쥐고있는 듯한 자세만을 취하고 있다. 당당해 보이는 신체는 수호신으로서의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다. 조선시대 사천왕상 대부분이 중국식 갑옷에 각기 다른 상징물을 들고 있으며 발 밑에는 악귀를 밟는 형태상의 특징을 갖는다. 또한 무장한 분노상에 화려한 보관을 쓰고 천의자락을 휘날리며 보관 밑으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이 귓바퀴를 돌아 어깨 위에서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자비로운 보살상의 모습이 추가되고 있다. 보림사의 사천왕상은 이러한 특성을 가장 앞서 선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불교조각사적 비중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의 조성시기는 천왕문에 걸린 목판과 『보림사중창불사기록』에 의하여 중종 10년(1515)에 조성되고 이후 2차례에 걸쳐 중수되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보림사 사천왕상은 현존하는 천왕문 목조사천왕상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임진왜란 이전의 것으로는 유일한 것이라 할 수 있으며, 각 부의 조각이 매우 우수할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사천왕상의 기본이 되는 귀중한 유물로 평가된다.
완주 송광사 증장천왕
사천왕은 갑옷을 입고 위엄이 충만한 무인상을 하고, 동·서·남·북의 사천국(四天國)을 다스리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통일신라 초기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여 조선시대에는 사찰입구에 사천왕문을 세워 모시고 있다. 대웅전을 향하여 오른쪽에는 동방 지국천왕(持國天王)과 북방 다문천왕(多聞天王)이, 왼쪽에는 남방 증장천왕(增長天王)과 서방 광목천왕(廣目天王)이 위치하고 있다. 남방 증장천왕상은 왼손에는 보주를 잡고 오른손으로 용을 움켜쥐고 있는데, 용은 입을 벌리고 천왕상의 얼굴을 향해 치솟고 있으며 꼬리는 팔뚝을 한번 휘감으며 올라가고 있다. 악귀는 꽃장식이 달린 모자를 쓰고 있는데, 발등의 근육과 발톱까지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실상사 증장천왕
구례 화엄사 증장천왕
대구용연사 증장천왕
첫댓글 오래전 영국 방문길에 대영박물관에 들렸다가 2층 계당 막 오르며 대리석 벽에 우람하게 장엄하고 걸려있는 우리사천왕 불화를 보는 순간..뜨거운 합장으로 눈물이 나던 일이 기억납니다// 임란대 갈취당한 유물로~ 하동 쌍계사의 남방증장천와과 북방 다문천왕이 후손을 맞고 있었지요 합장
400여년이 지난 현대에 와서 그 임란때의 왜장의 가문 후손이 문화유산의 가치를 인정해 두편은 본인이 소장하고 남방/북방 두편을 영국 대영박물관에 기증한 것이라는 가이드의 설명에 함께한 여행자들이 격분했던 일을 기억하면서~ 방야낙조님의 사천왕 사진을 소중한 마음으로 지켜 봅니다..합장
대영박물관에 하동쌍계사 사천왕 불화 전시중...! 이런 제하의 여행기 (소감)을 쌍계사 육조신문에 기재하고, 이어서 문화재 관계지와 하동 ㅅ지역 신문에 게재하여 국민의 관심을 유발한 적은 있지만 지금도 그 불화가 잘 게시는지 대영박물관 여행자의 소식을 많이 수소문 했었습니다. 합장
역사적으로 외국에 갈취와 도난당한 우리 문화재및 불교 유물들이, 특히 그 사천왕 불화가 일본과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었던 것이 오히려 영구히 보존되어온 결과가 된것이기도 하다는 후평도 있었지만... 어서 빨리 본 도량으로 되오소서 !!!간절한 기도로 불교방송국에서와 함께 간구하던 일... 생각하면 참으로 애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