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번호판을 단 서라벌 관광버스 뒤를 따라
산장 주차장에 2,000원을 내고 차를 세우니 12시다.
한강이 물에 빠진 날 같이 빠진 카메라의 전원이 불안한데
배터리도 보이지 않아 가게에 들러 전지 4개를 산다.
사람들이 길에 나와 차에게 손을 흔들며 자기 집 식당으로 오란다.
내게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
아스팔트를 벗어나 늦재 삼거리 쪽으로 길을 잡는다.
나무는 잎을 떨구기 시작한지 꽤 되었고, 단풍나무도 가지 한쪽만
붉거나 노랗게 물이 들어있다.
단풍나무 숲길보다 참나무 소나무 사이에서 옷을 바꿔입은
단풍나무가 눈길을 끈다.
나도 언제부터 색을 좋아하는가 보구나.
그 중에서도 붉은 색을 가장 인정하는가 보구나
내가 보는 형상이나 그 뒤의 이야기는
참 끈기도 없고 깊이도 없다는 생각을 한다.
빈 손인채로 두 노인이 오르다가 카메라를 보고는
좋은 취미를 가졌다한다.
글쎄 좋은 취미인가?
사진이 문제가 아니라 산에 가는 것이 취미라면
더 인정하겠다.
비엔날레가 막바지에 다다른지라 주차장엔 차들이 꽤 서 있다.
굴다리 앞 매표소쪽으로 가는데 빨간 모자를 쓴 노해병이
길을 막으며 안내한다.
비 올까봐 챙긴 우산을 그대로 차에 두고
한강이와 한결이를 데리고 집사람이 내린다.
갈등이 생기지만 난 여러 번 봤다고 한다.
그의 차가 없어 쓸데없이 콜택시 이야기를 하고 바로 산책기로 돌아간다.
오치 문흥동을 지나는 동안에 김밥집이 보이지 않는다.
증심사로 버스타고 가려던 계획은 비엔날레 들르는 가족 때문에
잊어버렸다.
2순환도로에 들어서 두암지구에 무등산 이정표가 있다.
두암타운 앞에 차를 두고 김밥 두줄을 산다.
늦재삼거리에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아이들을 손잡은 가족과 단체 산악회 등
부적합의 물을 마시고내가 가는 숲길로는 사람이 별로
따라오지 않는다. 다행이다.
오랜만에 토끼등 가는 너덜겅 나의 길을 가보고 싶지만
땀을 흘리자, 먼저 경사를 오르고 나중에 더 편하자
우리 동네의 대장은 선우후락이라고 했던가?
금방 땀이 솟는다.
기온이 낮아진다는데 그래서 숲에서 오는 바람은 차가움이 묻었는데
점퍼가 젖어온다.
동화사터 느슨한 경사와 굽이길을 오른다.
군데군데 붉은 단풍나무가 또렷하다.
동화사터 위에는 어느 산악회가 회장단을 뽑는지
손뼉소리와 호쾌한 웃음소리가 넘친다.
나무 사이와 벤취에 그리고 억새 사이에 혼자 혹은 여럿이
점심 시간이다. 시계를 보니 1시다.
잠깐 걷다 무등산 천왕을 보는 곳 바위를 돌아 앉아 배낭을 벗는다.
차에서 뒹굴던 맥주를 배낭에 담은 것은 아껴두고
김밥에 그래도 술은 마셔야 한다며 양주를 홀짝인다.
아침을 늦게 먹었는지, 어제의 과 행사에서 잘 먹은 탓인지
금방 배가 부른다. 좋은 일이 아니다.
먹은 만큼 소화시키고 때가 되면 먹을 것을 요구하는 것이
내 몸의 바른 자세다.
억새 뒤 바위에 기대고 누우니 길과는 1미터 남짓인데도
사람들이 모르고 지나친다.
어제는 술을 마시고 집에 어찌 온지도 모르고 지하철을 이용하여 왔다.
소위 과의 체력단련 산행하는 날이었다.
내가 소속된 팀은 모두 완도로 영광으로 감사를 나가고
괜히 나서서 계획을 세우고 장을 보고, 기념품을 샀다.
식당에 전화를 걸어 주문도 하고, 참석자들 확인도 한다.
김 선생을 대신하여 직속기관 평가편람을 '부사장'께 결재를 갔다가
한번 되돌아왔다. 이동네에서의 나의 일을 주제도 모르고
날뛰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처처교장 사사불공 맞나?
내가 하는 교육의 일이란, 그에서 벗어난 교육행정의 일이란
얼마나 편협하고 옹졸한가?
사람의 마음과 교류해야 하는 우리가 누구보다 더
폐쇄적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그게 직업으로 나타나는 살아가는 일의 수단인가?
자본주의와 관료체제는 누굴 위해 효과적인가?
한강이가 와서 떠나기가 참 힘들다.
그에게 반지가 들어있는 전화기 사탕과 과자 등을 사 주고
혼자 자고 있을 외사촌 형에게 보내고 부지런히
큰 배낭을 덜렁이며 555번을 타려고 내리막길을 달리다시피 한다.
빗방울은 몇개 떨어지고 바람은 찬데 차는 오지 않는다.
15분을 넘자 조바심이 나서 결국 택시를 타고 만다.
개인택시 기사의 세상살이 이야기를 들으며
잘 나가던 차는 목적지 못 미쳐 밀리기 시작한다. 내려 조금 걷는다.
주차장 부근은 사람으로 가득하고, 먼저 날 알아보는 직원이 있어
인원을 확인하고 물도 산다. 짐을 조금 나눠주고 팀을 둘로 나눠
새인봉팀과 약사사팀이라 한다.
새인봉 팀의 꽁무니를 따라 오른다.
지리종주 가방에 비하면 가벼운데, 몸에서는 땀이 흐른다.
뒤 따르니 거친 숨과 땀을 감추기는 쉽지만
속으로 참 우습다.
이 앞주에는 동문회 배구한다고 운동장에서 지내고
내내 술을 끊지 않았으니 벌은 당연하다.
겨우 2주만의 산행안한 것이 이렇게 쉬 약해지는가?
새인봉 지나 삼거리에서 3반장이 기다리고 있다.
약사사팀과 선발대가 진즉 지나갔다고 한다.
그는 참 몸이 가볍다. 산길을 평지걷듯 하고 싶었는데
정말 그가 그렇다. 생활습관이 무섭다. 1시간 달려서 사무실에 출근하고
찻길 사이로 자기만의 자전거 길로 출근도 하더니 대단하다.
서인봉에서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 역시 우리도 왁자지껄하며
술과 간식을 나눠먹는다.
어울리지 않게 유난히 큰 모양없는 나의 배낭에서
술과 귤과 오이와 감과 오징어와 초콜릿과 사탕이 나온다.
구경하는 사람들이 웃고 난 애기처럼 우쭐해진다.
산에 못간 마음에
지리산을 오르는 것에 비하면 새발의 피라는 생각을 한다.
중머리재에서 용추계곡으로 내려
뒤쳐지다 몇 사람과 더불어 용추폭포를 찾아간다.
중년의 부부팀 6-7명이 웃으며 점심을 먹고 있다.
된장에 상추그릇이 있는 걸 보니 참 좋게 보인다.
폭포의 물량은 한줄기만 남아 떨어지고 이끼도 말라간다.
바지에 튕기는 물을 무시하며 머리를 들이밀고 씻는다.
통에 남은 양주 몇 잔을 빨고, 최경수 선생은 담배를 한대 피운다.
다시 올라 너와나목장 식당에 닿으니 이미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