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수의 미술접근법 431 - 기호(sign)와 상징(symbol)
아이는 엄마의 표정을 보고 화가 났는지 안 났는지를 알게 된다. 웃으면서 야단을 치면 야단인줄 잘 모른다. 남자가 여자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가슴에 양손을 모아 하트를 날린다. 표정이나 양손으로 만든 하트는 하나의 표현형식이다. 이를 기호라 말한다. 보통 사람들은 기호와 상징을 많이 사용한다. 기호(sign)와 상징(symbol)은 종류가 다르다. 기호는 개인적이지만 상징은 보편적이며 사회 통합적이다. 기호는 직접적이지만 상징은 어떤 의미를 전달하는 매개체이다. 기호는 사물의 성질이지만 상징은 사물의 의미를 숨기고 있다.
가벼운 미술은 기호가 주축이 된다. 가볍다는 것은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표현된 미술작품을 소비되는 방법을 의미한다. 어떤 이미지 언어가 직접적으로 감상자에게 개입하는 것과, 어떤 이미지 언어가 그것을 통해 또 다른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것의 차이를 이야기 한다. 인간은 어떤 상징과 기호를 사용하지 않아도 의미를 추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여러명이 모여 있을 때 누군가 몹시 화를 내고 있다면 분위기가 솨 해진다. 말도 안했는데 그러한 분위기를 감지한다. 그가 누군지 모르고 뒷모습 밖에 없음에도 감지할 수 있다.
상징에는 역사와 사회의 약속이 숨어있다. 교회의 상징은 십자가, 불교의 상징은 만(卍)이 있다. 프랑스의 상징은 에펠탑, 미국의 상징은 자유의 여신상이 있다. 우리나라의 상징은 무엇일까. 예전에는 추녀의 곡선, 버선코의 곡선, 맑은 가을하늘이라 하기도 했다. 그러다 부채춤 추는 모습, 남대문을 선두 주자로 내세웠다.
미술가는 기호와 상징을 두루 섭렵하여 새로운 상징을 만드는 일을 한다. 미술가가 만들어내는 상징이 사회에 소통되기도 하고, 사장되기도 한다. 미술가들이 가장 쉽게 만들어 낼 수 있는 상징이 사람들이 사용하거나 오랫동안 의미를 담고 있는 사물들의 재현이다. 이들을 재현하면 기본적인 상징성으로 이해한다. 예를 들어 꽃은 무한의 상징성이 있다. 다산과 유복, 행복과 신성성, 즐거움 등 인간의 역사와 함께한 온갖 상징이 있다. 또 다른 것으로 어떤 문양을 차용하는 방법이다. 문양 역시 역사의 상징이 있다.
기호는 상징과 비슷하게 쓰이지만 짧은 역사와 단순한 의미가 부여되어 있다. 기호가 오래 묵으면 상징이 된다. 현재 많은 젊은 미술인들이 기호를 생산하고 있다. 무척 고무적인 일이다. 그들의 기호 중에 반드시 몇몇은 사회의 상징으로 전환 될 것이다. 다만, 늘 비슷한 이미지 언어로서 비슷한 의미, 비슷한 상황과 같은 자기표절을 지적하고 싶을 뿐이다. 자신이 만들어 놓은 기호를 자주 쓰더라도 상징성으로 전환하면 다른 의미가 되지만 기호 자체만 생산하면 자기 표절이 되고 만다.
자기표절은 논문에만 있지 않다. 미술가들 또한 자기표절에 민감할 필요가 있다.
정수화랑(현대미술경영연구소) 서울시 종로구 사간동 41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