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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여행 시찰단 |
2007년 11월 26일 ~ 2007년 11월 29일 (3박 4일)
액체・젤류의 휴대반입 제한<공지>
- 1리터(ℓ) 규격의 투명 지퍼락(Zipper lock) 비닐봉투 안에 용기 보관
- 투명 지퍼락 봉투(크기: 약 20cm×약20cm)에 담겨 지퍼가 잠겨있어야 함
- 투명 지퍼락 봉투가 완전히 잠겨있지 않으면 반입불가 조치
- 승객 1인당 1ℓ 이하의 투명 지퍼락 봉투는 1개만 허용
- 보안검색대에서 X-ray 검색을 실시
※ 상기 조건을 모두 만족해야 함.
보안검색대 통과 후 또는 시내 면세점에서 구입 후 공항 면세점에서 전달받은 주류,
화장품등의 액체, 젤류는 아래 조건을 준수하는 경우 반입가능
- 투명 봉인봉투(Tamper-evident bag)로 포장
- 투명 봉인봉투는 최종 목적지행 항공기 탑승 전에 개봉되었거나 훼손되었을 경우 반입금지
- 면세품 구입당시 교부받은 영수증이 투명 봉인봉투에 동봉 또는 부착된 경우에
한하여 용량에 관계없이 반입가능
※ 상기 조건을 모두 만족해야 함.
※ 투명 봉인봉투(Tamper-evident bag)는 면세점에서 물품구입 시 제공되므로 별도 준비 불필요
Date |
Time |
Tranaport |
Itinerary |
11/26(월) |
09:10 10:50 11:30
13:30 13:40 17:51 18:10 18:40 |
KE775
전용버스 |
인천국제 공항 출발 고마츠공항 도착 고마츠고항 출발 (중식 : 도시락)
다테야마 도착 다테야마 출발 ◆다테야마 쿠로베 알펜루트 오기사와 도착 오기사와 출발
하쿠바무라 도착 하쿠바무라 내 호텔 숙박 |
11/27(화) |
08:30 09:45~10:45 11:30~13:00
14:30~15:30 16:30~17:15 18:00 |
전용버스 |
조식 후 호텔 출발 ◆국보․젠코지 ◆오부치마을 탐방 (중식 : ) ◆국보․마츠모토 성 ◇치노시 교육위원회와의 환담 쿠르마야마고원 도착 쿠르마야마고원 스카이 파크 호텔 숙박 |
11/28(수) |
08:30 09:15~10:15
13:00 |
전용버스 |
조식 후 호텔 출발 ◇치노시내 중학교 방문시찰
나고야 시내 도착(중식) 도요타 산업기술기념관 노리타케의 숲 오아시스21 ◆나고야 시내 관광(석식) 나고야캐슬 호텔 숙박 |
11/29(목) |
13:50 15:50 18:00 |
전용버스
KE758 |
조식 후 호텔 출발 ◆나고야시내 관광 아츠다 신궁 오스관음 거리 중부국제공항 도착 중부국제공항 출발 인천국제공항 도착 |
1도(都)·1도(道)·2부(府)·43헌(縣) 체제 10개 안팎 도(道)·주(州)로 통합
: 조선, 2009.09.10
일본도 120년 만에 행정개편 추진
현재 일본에서 진행 중인 '도주제(道州制)' 논의는, 성공하면 120년 만에 지방 행정조직을 전면적으로 개편하는 대개혁이다.2006년 2월 총리 직속 '지방제도조사회'는 '도주제의 올바른 자세에 관한 답신'이라는 보고서를 총리에게 제출했다. 현재 1도(都·도쿄)·1도(道·홋카이도)·2부(府·교토 및 오사카) 및 43현(縣) 등 47개로 나뉘어 있는 광역 지방자치단체를 10개 안팎의 도(道) 또는 주(州)로 통합·재설계하는 게 '시대의 흐름에 비추어 적당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중앙정부는 외교·안보 및 국가비전 설계만 하고 거의 모든 행정 및 재정권한을 도주에 이양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대도시를 중심으로 인구 1000만명 안팎의 도주를 9개·11개·13개 두자는 3개 시안도 제시했다.자민당 정권은 이후 내각과 당에 관련 추진본부를 설치해 검토작업을 계속해, 2008년에 9개·11개 시안을 잠정 확정했다. 이번 8·30 총선 때는 2017년까지 도주제 개편을 마무리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번에 집권하게 된 민주당은 도주제라는 개념을 공약에 담지는 않았지만 과감한 재정권한 이양 등을 공약했다.일본에서 도주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990년대 초반이었다. 당시만 해도 경제적 요인에서 비롯된 측면이 컸다. 버블붕괴 이후 국가 재정이 급속히 악화되면서 중앙정부의 보조금이 줄고 중앙정부가 발주하는 공공사업도 크게 줄어든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후 행정 효율성의 문제, 국제경쟁력 문제 등이 더해지면서 2000년 이후에는 게이단렌(經團連) 등 경제단체들도 본격 가세했다. 게이단렌은 2003년 이른바 '오쿠다 비전'이라는 것을 발표, 도주제 도입 필요성을 주장했다. 그러나 넘어야 할 산이 한두개가 아니다. 세입과 세출 조정, 중앙정부와 도주 간 권한 조정이라는 거대 난제가 도사리고 있는 데다 여론도 호의적이지 않은 상황이다.
제1일차 : 2007년 11월 26일(월)
05시 30분.
새벽을 헤치고 문을 나섰다. 하늘을 보고 땅을 보고 날씨의 축복을 기대했다.
05시 50분.
영종도공항 버스에 올랐다.
김포공항을 한 바퀴 순환한 버스는 곧바로 영종도 공항도로로 진입했다.
한낮에 비해 상대적으로 한산한 거리다.
06시 25분.
인천 국제공항 3층 G카운터로 들어섰다.
빈 의자에 앉아 일행들을 기다렸다. 분주하게 오가는 낯선 사람들의 표정을 흩으며 무료한 시간을 보냈다. 한참 후 김진길 교장을 필두로 일행들이 끌개가방과 함께 차례로 들어섰다. 여행에 동반할 강서교육청 소속 7명의 교장단 외에 경기도 소속 교장-교감 등 4명(청소년 연맹관계 2명, RCY관계 2명)과 수인사를 마쳤다. 일행들의 여권을 회수한 현대관광 교육여행부 조성영(趙成永)부장의 리드로 여행수속 절차를 밟아갔다.
08시 20분.
탑승로비로 들어갔다. 면세점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한가한 시간도 가졌다.
탑승 전까지 대체로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출국직전의 절차로 생각했다.
출발 20분전 인천국제 공항 출발, 고마츠행 KE775기에 탑승했다.
09시 10분.
창밖에 비친 활주로 바닥이 세우(細雨)로 축축하게 젖어있다.
빈자리 하나 없이 들어찬 기내좌석이다. 굉음과 함께 이륙이다.
어느새 내륙과 가까운 황해 상공에 진입했다. 구름을 뚫고 떠오른 비행기는 구름을 깔고 비행하고 있다. 폭설이 내린 고산의 풍광과 흡사한 창밖에 비친 구름 띠다. 점 하나 찍을 만큼의 간략한 기내식이다. 동해의 일본 연안이 내려다보인다. 이어 고도를 낮춘 비행기는 이시가와(石川)현 내부를 파고들었다. 전형적인 일본의 마을형태구조와 가옥, 그리고 바둑판을 닮은 경작지가 정연하게 들어왔다. 아파트라곤 눈을 씻고 봐도 보이지 않는 조용한 소읍(小邑)이다.
10시 50분.
고마츠(小松)시(市) 공항에 착륙했다.
입국수속 중 외국인은 지문을 받는 절차가 있다.
다소 불쾌했지만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1.고마츠
이시카와현은 혼슈 거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노토지방과 가가지방으로 나눌 수 있으며, 북부는 노토반도를 이루면서 일본해에 돌출해 있기 때문에, 해안선이 길어 약 580킬로미터에 달한다. 남북으로 가늘고 길게 뻗어있는 지형으로 인해 노토지방과 가가지방은 그 경관에 크게 차이를 보여준다. 노토에서는 일본해에 면한 외포구는 거친 파도에 의한 침식이 심한 해안선을 만에 면한 내포구는 온화한 해안선을 가지고 있어 대조적인 해안지형을 즐길 수 있다. 가가에서는 하쿠산을 최고봉으로 하는 산악지대가 이어지는 것이 특징으로 그곳에서부터 시작되는 하천을 중심으로 평야지에 도시가 발달해 왔다.
.....................................................................................[대한항공] <주간항공동향> 일본의 '살아있는 고도(古都)' 고마쓰 신규 취항 2006-03-30
- 인천∼고마쓰 노선 주 4회 신규 취항
- 제주∼후쿠오카 노선도, 일본항공과 공동운항 확대 등 한일노선 공략 강화
대한항공이 일본의'살아있는 고도(古都)' 이시카와현 고마쓰(小松)에 정기 노선을 개설한다. 3월 27일부터 인천∼고마쓰 노선에 주 4회(월, 수, 금, 토) 항공편을 취항하게 된다.
투입기종은 187석 규모의 B737-900 항공기이고, 출발편은 오후 1시 인천을 출발하여 고마쓰에 오후 2시 40분 도착하고, 복편은 오후 3시 55분에 출발하여 인천에 오후 5시 45분 도착한다.
고마쓰 공항은 일본 전통문화의 산실로 유명한 이시카와현의 관문일 뿐 아니라 동계올림픽으로 유명한 나가노현과도 인접해 있어 일본지역을 방문하는 여행객들의 편의가 크게 향상될 전망이다. 이로써 우리 회사가 취항하는 일본 내 도시는 모두 13개로 늘어났다.
특히, 고마쓰 공항이 위치한 이시카와현은 명치유신 직후까지 일본 5대 도시의 하나로 꼽혔으며, 제2차 세계대전 중에도 전쟁의 피해를 거의 입지 않아 에도 시대의 옛 거리나 주택, 문화유산 등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전통이 살아 숨쉬는 도시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곳이다.
또한, 일본의 알프스로 불리는 '구로베 알펜루트'를 비롯 일본 3대 명산의 하나인 하쿠산, 일본의 3대 정원으로 유명한 '겐로쿠엔'등의 유명 관광지 외에도 골프와 스키, 온천의 천국으로 불릴 정도로 볼거리, 즐길 거리들이 많아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곳. 지리적으로도 동해와 인접해 있어 우리 문화가 유입된 흔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데다, 윤봉길 의사의 묘가 위치해 있는 등 역사적으로도 큰 의미를 가진 도시다.
현재 대한항공은 3월 26일부터 일본항공(JAL) 운항편 좌석을 사용하는 코드세어 운항편을 인천∼나리타, 인천∼오사카, 인천∼나고야 등 주요 3개 노선에 대해 시행하고 있다.
또한, 오는 3월 31일 제주∼후쿠오카 노선에 주 2회 신규 취항하는 것을 비롯 6월경에는 인천∼하코다테 노선에 취항할 예정으로 있는 등 한일 무비자 시대를 맞아 여행객이 지속적으로 늘고 있는 일본 노선에 대한 공략을 강화해나가고 있다.
(社)新州-長野縣觀光協會 商品企劃部 요시미(吉味秀明)상과 長野縣企劃局國際課 이규영(李珪榮, 30세)씨가 출영을 나왔다. 이규영씨는 경기여고-중앙대일어과 출신으로 이곳 나가노현(長野縣)에서 3년 기한으로 채용한 공무원임을 알았다. 두 명은 2박 3일간 일행을 수행할 이무를 맡은 사람들이다.
공항밖엔 3박 4일간 일행들의 발이 되어줄 전용소형버스와 운전자인 이께다(池田)상이 대기하고 있었다. 쾌청한 날씨다.
11시 20분.
고마츠 공항 출발하며 수인사를 마쳤다.
일체의 통역은 현대관광 조성영씨 몫이다. 일본국토교통성과 나가노시-나고야시 관광협회가 출자해 한국의 교육관계자 초청투어사업 행사로 무난한 일정이 되어주길 바라며, 관광후보지로 나가노가 선정되길 희망한다는 부연이 있었다.
색다른 일본을 보여 줄 것이고, 싱글베드로 2일은 온천여관, 1일은 나고야 시내호텔에서 묶는다는 전갈이다. 중국과 달리 호텔비에 팁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염려하지 말라는 당부도 뒤따랐다. 왕복 4차선 해안도로를 따라 다테야마(立山)로 향하는 북행(北行)이다.
해안 마을 풍광은 예상 그대로다. 너무나 깨끗한 농-어촌은 정갈한 일본인의 성격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해안 방파석이 파선처럼 놓여있다.
여행시간절약을 위해 전용버스에서 준비한 도시락으로 배식, 중식을 대신했다. 금년 8월초 중국 황산-상해 여행시 중국음식에 적응 못해 어려웠던 식사기억이 떠올랐지만, 일본에서 맞은 첫 번째 식사는 한국음식과는 유사한 차림이었다. 다소 닝닝한 맛은 있었지만 대체로 무난하다는 생각이다.
아파트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 나가사와(金澤)시는 평면도시다.
나가사와 시를 관통할 즈음 차내TV를 통해 나가노시 관광을 소개하는 영상물이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의 포항과 동일한 위도다. 이곳 일대는 지금 막바지 단풍계절이다. 좌우 산록은 ⍙형 일본 삼나무가 가득한 단일수종 분포다.
12시 02분.
이시가와 현의 쓰비타(津幡)를 지나 도야마(富山)현 오야베(小矢部)를 차례로 통과했다.
우측 스즈끼자동차회사 주차장의 수 백 대의 주차모습이 열병을 받는 병사들처럼 질서정연하다. 어느 차량 한 대도 비뚤어 진 것이 없이 말끔한 주차다. 마치 일부로 꾸며 놓은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의 주차행렬에 혀를 내두를 정도다.
고속도로 중앙분리대는 잡초가 자랄 수 있도록 흙으로 메워있다. 그 위에 억새꽃이 만발한 자태가 자못 희화적이다. 생물 하나라도 머물러 살 수 있도록 공간을 허용한 일본인들의 여유를 생각해 봤다. 전면에 해발 2,500m 이상의 알프스 산맥과 흡사한 설산(雪山)이 병풍을 두르고 있다.
일본 나가노현의 <재팬 알프스>는 북-중앙-남 알프스로 구분한다.
저팬 알프스란 유럽의 알프스처럼 일본열도의 중앙을 뒤덮은 고봉(3000m급)의 산악을 말한다. 이 이름을 붙여준 이는 영국의 등반가이자 성공회 선교사였던 월터 웨스턴(1861∼1940)이다. 1888년 선교사로 처음 일본을 방문한 그는 이후 수차례 찾아와 산악을 등정한 뒤 <일본 알프스의 등산과 탐험>이란 책을 펴냈는데 저팬 알프스라는 이름은 예서 비롯됐다고 한다. 꿈속을 더듬는 환상(幻想)이 환시(幻視)같은 백산(白山)의 풍광 앞에 자지러져 버린 넋이다.
차량이 움직일 때마다 들어오는 주택 주변과 텃밭, 또는 너른 경작지는 이미 수확을 마쳤지만 쓰레기나 잡티 하나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급한 소피라도 이곳에서는 감히 용변을 보기조차 용기가 나지 않을 것이며, 아예 오줌 줄기가 멎어 버릴 정도다.
어린 시절 적산가옥을 보며 자랐던 세대라 대부분 2층으로 이뤄진 주택엔 별반 저항이 들지 않았다. 아담한 정원, 주택의 크기, 검은 기와지붕 색깔, 경차, 한적한 도로가 심볼마크처럼 다가왔다.
대륙성기후의 영향을 받는 우리나라 주택의 상징이 온돌이라면, 해양성기후의 일본은 유난히 고습도라 목재용 주택으로 전기카페트가 난방을 대신한다. 또한 고산줄기에 막혀 다설(多雪)지역이라 지붕의 경사가 급하다. 물이 좋아 좋은 쌀과 양주(良酒)가 많이 생산된다. 스노우파우더라 불릴 정도로 양질의 눈은 많은 스키장 등 겨울철 스포츠를 발달시켜왔다.
이지메현상은 에도막부 때부터 발생했다는 소개다.
마을에서 비협조자(마쯔리 불참자나 공동생활거부 등)를 제재(무라지브)하는 데서 발생핸 것이 학생들 사회로 전이됐다는 것이다. 국가와 사회에 적이 되는 사람은 사형(사형)을 가해도 정당화된다는 일본식 사고방식의 결과다. 지금도 어느 마을에선 무라지브로 그 집안의 쓰레기를 버리지 못하게 하는 제재로 가끔 뉴스거리가 된다는 얘기다. 빨간 신호등도 모두가 건너면 무섭지 않다는 일본의 속담처럼 비협조자를 처벌하는 데는 너, 남 없이 용감하다는 지적이다. 일본인의 집단응집력은 공인된 바 있다. 한일 양국의 국가가사[애국가와 君(きみ)が代(よ)]를 보면 양국의 특성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
‘細石(さざれいし)の*巌(いはほ)となり [조약돌이 바위가 되어]
苔(こけ)の生(む)すまで [이끼가 자라날 때 까지 (계속 되기를...)]
전자가 대(大)를 소(小)로 나눈다면, 후자는 소(小)를 대(大)로 만든다는 내용이다.
이보다 더 확실한 실례가 어디 있겠는가.
일본인들의 집단응집력이 모두 좋다는 의미는 아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지나친 국수주의적 사고방식은 피아의 구분이 확실하고 획일적이고 건조한 생활인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나 메이와꾸(폐)로부터 아동교육은 경우와 예의가 바른 국민으로 발전시켰다.
12시 24분.
이런 저런 일본인의 문화와 생활을 이야기하는 사이에 평면도시 니시도야마(西富山) 시 입구를 지난 한적한 고속도로에 들어섰다. 전면 11시 방향에서 1시 방향으로 해발 2,500m 이상의 백설산맥(白雪山脈)이 신기루처럼 다가왔다. 마치 무슨 영상물의 배경장면이라는 생각이 든다.
12시 35분.
차창에 비친 이정표다.
<다테야마(立山) 11Km>
더 가깝게 다가든 전면의 백설산맥(白雪山脈)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의 가와바다 야스나리의 <설국(雪國)>이 결코 우연히 이뤄진 게 아니라는 판단이 쉽게 들었다. 동화보다 더 확실한 환상이다. 자신도 모르게 엉덩이를 올렸다 내렸다하며 차창에 비친 풍광에 매료됐다.
1시 0분.
다테야마(立山) 상시(上市)IC를 빠져나온 버스는 동향, 다테야마(立山) 시가지로 들어섰다. 오야마(大山)방향으로 우회전이다. 다테야마(立山) 산록(山麓)방향이다. 창가에 비친 석물(石物)공장, 잔 돌맹이 하나없이 말끔하게 정리된 주변과 앞마당이다. 이젠 혀를 내두를 계제가 아닌 당연한 환경이라는 생각이다. 함석(양철) 울타리가 눈에 띤다. 50년 전 어린 시절 어김없이 쓰던 주택 건자재가 친근한 시선으로 보임은 인지상정이 아니던가.
버스는 <다테야마(立山) 알펜루트>를 향해 점차 깊숙하게 들어가고 있다. 앞산은 보다 높은 산이 뒤에서 포옹하고, 좀 더 높은 산이 다시 그 앞산을 포옹하고 있다. 산은 수 없는 겹을 이으며 새로운 계곡을 흘리고 있다. 침엽수지대-활엽수단풍지대, 그리고 설산지대로 층을 보인다. 노년에 바라본 일본의 산풍광은 전연 낯선 느낌이다.
<國立公園 立山>
차창에 비친 정갈한 산림가옥, 활천(滑川)을 우측에 낀 북향이다.
추동이 공존하는 공원의 금일 기온은 영상 3도다. 밀집한 일본 삼나무를 바라보며 해발은 차츰 더해가고 잇다. 뿌리가 약한 일본삼나무는 뿌리를 서로 응집시키기 위해 단위면적당 밀집상태가 돼야 원만하다고 한다. 도로 갓길에 적설도 만만찮은 양이다.
1시 12분.
다테야마(立山) 역 앞 공터에 도착했다.
이곳 알펜루트 정상까지 운행할 다른 버스를 기다리기 위해 기다리는 시간이다.
무료한 시간이다. 파란 하늘에 줄비행기가 지나가고 있다.
“야 줄 비행기다.”
모두들 하늘을 쳐다보며 제각기 소년시절을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4월 중순부터 이듬해 11월 말까지 운영한다는 알펜루트, 5월 중순이 관광으로 최적기라고 한다. 평균 적설량이 20m 가량이라니 상상할 수 없는 다설(多雪)지대다.
1시 20분.
듬직한 노령의 운전자가 핸들을 잡은 고원(高原)버스는 구절양장의 알펜루트 도로를 타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2m 가량의 적설이다. 버스 지붕에 약 30~40Cm의 눈이 쌓여 있었다. 오카미상이 이곳 안내자로 인사를 했다.
다테야마(立山) 정상은 5월이면 봄과 겨울이 공존해 10월경이면 피크철이라 숙소구하기가 어렵다는 소개다. 도명천(稻名川) 다리를 막 건넌 T자 갈림길이다. 우측은 실당행(室堂行), 좌측은 칭명롱(稱名瀧)으로 올라가는 루트다. 버스는 느린 걸음으로 좌회전이다.
<國立公園 立山 入口>
정상까진 왕복 2차선 아스팔트 도로로 33Km 거리다.
우측 도명천(稻名川) 옆 도로변에는 야생원숭이 10여 마리가 놀고 있다.
느린 동작으로 버스를 피하는 품새로 미뤄보아 인도(印度)의 소 떼처럼 사람이나 차량을 겁내지 않는 모양이다. 차츰 경사가 더해가는 도로 양변에는 측량봉을 닮은 4~5m 막대기가 꽂혀있다. 설명에 따르면 폭설로 많은 적설량을 보일 경우 도로폭을 포시하고 제설차량의 방향을 제시하는 향도역할을 한다는 얘기다.
다테야마(立山) 유로도로 톨게이트다. 얼른 본 입장료가 왕복 50,400엔이다. 우리 돈으로 900대 1로 환산하면 45만원이다. 결코 약소한 금액이 아니다. 지난 주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진 적설로 통행이 금지됐다가 막 뚫렸다며 우리 일행들은 행운이라며 추켜세우는 오카미상이다. 갑자기 가파른 오르막길에 든 버스는 느린 걸음으로 꾸준한 속도를 유지한다. 시멘트막대기둥을 세로로 세운 갓길 가드라인이 이색적이다. 마치 목책으로 막은 성채(城砦) 울타리가 받침이 되고 상부는 복개된 반(半) 유개(有蓋) 터널이다. 1950년대 후반 유행했던 국민학교 교실의 낭하(廊下)와 흡사해 일제지배하의 유물이 그대로 잔존했던 1950대의 풍경이 자꾸 떠올랐다. 구절양장의 산 사면로는 중국 황산(黃山)도로 그대로다. 터널도로는 산 사면을 또아리처럼 휘감으며 해발을 더하고 있다.
2시.
해발 1000m 지점을 통과하는 미녀평(美女平)에서 동승했던 일본인 공원관리직원이 하차했다. 삼나무와 회백색 수피(樹皮)인 너도밤나무가 유명하다는 다테야마다. 너도밤나무 군락지대다. 우리나라 울릉도만 분포하는 너도밤나무는 오직 울릉도 성인봉의 높은 곳에만 자라는 특별한 나무다. 우리 땅에선 울릉도로 밀려나 버린 비운의 나무이지만 세계적으로는 널리 자라고 쓰임새가 많아 이름을 날리는 영광의 나무다. 조그마한 세모꼴의 도토리를 달고 있어서 상수리나무나 떡갈나무와는 같은 집안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으며 비슷한 열매를 달고 있는 밤나무와는 먼 친척뻘이다. 잎은 밤나무 보다 약간 작고 더 통통하게. 겼으니 전체적으로 밤나무와 매우 닮은 셈이다. 이 나무를 처음 본 사람들은 ‘너도 밤나무처럼 겼구나!’라고 조했을 것이다. 그래서 울릉도 사람들은 하나둘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 나무에 자연스럽게 너도밤나무란 이름을 붙였다. 너도밤나무는 잎뿐만 아니라 열매의 특징으로도 밤나무 무리의 유전자가 조금 섞였으니, 출세한 친척의 이름을 빌려 쓴 것에 대하여 이해해 줄만한 구석이 있다. 너도밤나무는 내륙으로 이식하면 생존할 수 없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비슷한 이름의 나도밤나무가 있다. 비슷한 이름을 빌려 쓰고 있지만 족보를 따지고 들어가면 밤나무와는 옷깃 한 번 스치지 않은 완전한 남남이다. 우선 콩알만한 새빨간 열매가 줄줄이 매달리는 점에서도 밤과의 인연을 더욱 상상할 수 없게 한다. 자라는 곳도 밤나무가 전국의 어디에나 가리지 않은 것과는 다르다. 나도밤나무는 남해안에서 섬으로 이어지는 따뜻한 지방에 만 가끔 볼 수 있을 뿐 조금만 추운 곳으로 올라와도 만날 수 없다. 다만 잎 모양으로는 진짜 밤나무보다 잎이 약간 크고 잎맥의 숫자가 조금 많아 언뜻 보아서는 또한 밤나무로 착각할 수 있을 따름이다. 한마디로 나도밤나무는 밤나무와 잎의 생김새가 닮아있기는 하나 실제적으로는 전혀 다른 나무다.
나도밤나무에는 이런 전설이 있다.
옛날 깊은 산골에 가난한 부부가 힘겹게 살아가고 있었다. 어느 날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 몇 월 며칠까지 밤나무 1천 그루를 심지 않으면 호랑이한테 물려 가는 화를 당할 것이라는 계시를 받는다. 그 날부터 부부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주위에 자라는 밤나무는 모조리 캐다가 열심히 심었다. 그러나 999그루를 심고 마지막 한 그루는 아무래도 채울 수가 없었다. 해가 지고 산신령이 말씀하신 운명의 시간은 다가오는데 어떻게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이런 이야기에 조금은 엉뚱하게 율곡(栗谷) 선생이 밤나무 지팡이 하나를 들고 나타나 가까이 있는 한 나무를 지팡이로 가리키면서 네가 밤나무를 대신하라고 이르시자, 이 나무는 냉큼 ‘나도 밤나무요!‘하고 나선다. 호랑이 눈으로서야 ’그게 그것‘일 가짜 밤나무 한 그루를 마지막으로 채워 1천 주의 밤나무 심기는 대장정의 막을 내린다. 그때까지 제대로 이름을 갖고 있지 않던 이 나무를 사람들은 나도밤나무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 한다.
이곳의 너도밤나무는 대개 가지가 적설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모두 밑으로 늘어져 있음 또한 이곳의 식생특성이다.
<미녀평 탐조회(美女平 探鳥會)>
팻말이 서있다.
라이초는 빙하기를 살아 나온 매우 귀중한 새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다테야마에는 현재 약 250마리가 서식하고 있는데 계절에 따라 깃털을 갈아입는 모습은 다테야마의 자연을 상징한다.
버스지붕에 두텁게 쌓였던 눈이 따사한 기온에 녹아 눈물처럼 앞창에 흘러내린다. 가끔 휴대용 마이크를 이용해 주변의 경관을 설명하는 노(老)기사다. 잠시 차량을 갓길에 정차시키고 약 3Km 떨어진 쇼요다키(稱名瀧) 원경(遠景)을 가리키며 자상한 설명이다. 일본 최고의 350m 낙차를 보이는 쇼요다키(稱名瀧)은 그대로 응고가 된 상태다.
낙차 350m의 일본 제일의 폭포로 겨울철이 아니라면 4단으로 나뉘어 떨어지는 쇼모폭포의 광음과 물보라에 압도당할 풍광이다.
문득 이곳 등반 욕심이 생겨 등산코스를 문의했다.
등산코스가 별도로 있고, 등산시간은 정상까지 약 8~10시간이 소요되고, 정상에 위치한 숙소에서 숙박한 후 다음날 하산하는 시스템으로 중국황산의 경우와 동일한 계획이 필요하다고 생각됐다. 차량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3,000m급 고산이 즐비하게 굽어보는 이곳 일대는 이름 그대로 입산(立山)이란 뜻이 절로 실감된다. 설산을 이룬 장엄한 대산(大山)의 풍광이 숭고한 성지같다.
2시 25분.
잠시 정차한 노기사가 버스 뒤를 보란다. 사막의 모래언덕을 굽이치며 올라가는 7곡도로는 보이는 그대로 사행로(蛇行路)다. 주변은 온통 백색시대다. 빙하기부터 살아왔다는 천연기념물 라이초(메조)가 보인다. 활강흔적이 보이는 사면지대다. 이어 스키어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2시 50분.
다테야마(立山) 호텔 앞에 하차했다. 20분간 주변관광시간이 주어졌다.
호텔 후문을 통해 입산(立山) 방향으로 이동했다. 고산답게 호흡이 멈칫한 찰라(刹那)였다.
<中部山岳國立公園立山, 海拔 2,450m>
표지석 앞에서 기념사진을 남겼다. 주변엔 방풍용 높이 1m 눈벽돌을 쌓아 만든 공간엔 텐트 네 개가 쳐있다. 스키어들의 숙소다. 경비감소를 위한 방책이며 로망을 즐길 공간이라 생각했다. 눈을 들어 해발 3,015m 다테야마(立山) 정상을 올려다 봤다. 고스락엔 오야마신사 구조물이 고깔처럼 얹어있다. 다테야마의 주봉 오야마(표고 3,003m) 정상에 세워진 신불 혼합의 신사로 오랫동안 다테야마 신앙의 중심이 되어온 신사다.
포근한 날씨 탓으로 고산에서의 시간은 정말 행운과 꿈의 지대였다.
미다가하라쇼묘타기 폭포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펼쳐져 있는 이 고원은 비조다이라로부터 버스로 40분 거리에 있다.
표고 2,000m, 60km에 달하는 고원은 7월~8월에 고산식물들이 꽃피어 그 자태를 자랑하고, 가을에는 단풍이 아름답게 물든다.
3시 10분.
무로도(室堂)역 구내로 이동했다. 전력으로 운행되는 다테야마터널을 트롤리버스에 올랐다. 옛날 전차를 연상하면 금세 이해가 된다. 마치 산상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 기분이다. 언젠가 다녀왔던 남침용 땅굴이 생각났다. 해발 2,316m 다이칸보(大觀峰)까지 연결된 수평터널을 통과하는 소요시간은 약 10분 내외다.
<立山直下 해발 2,400m>
해발 3,015m 다테야마(立山) 정상에서 수직으로 내려와 만나는 지점이란 의미로 노란 조명판에 쓰인 표시가 인상적이다.
3시 17분.
해발 2,316m 다이칸보(大觀峰)역에 하차했다.
다이칸보(大觀峰) 역 옥상 전망대로 이동했다. 산정호수라고 부를 검푸른 구로베코(黑部湖)가 거의 수직에 가까운 각도로 내려다보인다. 멀리 미쿠리가이케호수(御庫裡池)가 보인다.
5월경 까지 볼 수 있다는 설협(雪峽)이다.
7월 20일 이후 성수기에는 단체할인요금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한다.
雪國’으로 가는 길 높이가 무려 20m를 넘는 거대한 설벽통로를 통과하는 버스투어는 밖에서 바라보는 이나 버스안에서 즐기는 이 모두 감탄사를 내지르게 할 만큼 환상적으로 보인다. 이 알펜루트 설벽통로는 오는 4월 20일 개통된다. 사진제공 다테야마-구로베 알펜루트
3시 40분.
구로베(黑部) 케이블카에 올랐다. 설악산 권금성을 올라가가는 케이블카처럼 60도 이상각도를 보이는 내리막이다. 길이 1.7Km로 지주대 없이 운행되는 구로베(黑部) 케이블카 안에서 굽어보는 구로베코(黑部湖)가 절경이다.
로프웨이는 다이칸봉과 쿠로베다이라를 잇는 길이 1,700m의 움직이는 전망대다.
3시 47분.
해발 1,828m 구로베다이라(黑部)로 내렸다.
잠시 차량운행시간을 맞추기 위한 대기시간이다.
16시.
계단차를 타고 내려가는 터널이다.
알펜루트 관통은 이렇게 교통수단이 바뀌면서 해발을 낮추고 있다.
굉음이 그대로 전달되는 경사진 터널 이동은 스릴까지 맛보게 된다.
4시 5분.
구로베코(黑部湖) 옆구리에 내렸다. 구로베코(黑部湖) 댐 위를 보행으로 관통하며 이동했다. 고산 협곡의 태양은 이미 자취를 감추고 있다. 구로베(黑部) 댐은 관광용까지 어우른 다목적 댐이다.
< 구로베(黑部) 수고(水庫) : 높이 186m, 길이 492m, 표고 1,454m,
발전량 335천KW, 저수량 2억m3>
이규영씨의 친절한 안내와 해설이다.
구로배 혐곡과 댐
구로베 협곡은 다테야마 연봉과 우시로다테야마 연봉 사이로, 도처에 절벽·폭포 및 원생림에 둘러싸인 대협곡이다. 게다가 보기 드문 다우·폭설지대이면서 급경사 하천이기 때문에 수력발전에 극히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지만 사람이 접근하기 힘든 자연조건이 댐공사의 큰 난관이었다. 1963년 6월, 공사비 513억엔(당시), 노동인원 연 1천만 명이라는 인류사상 보기 드문 대규모 공사가 종료됐다.
구로베 협곡
대자연이 창조한 웅대한 대지의 예술. 일본에서 제일 깊은 최대의 협곡으로 단애절벽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구로베협곡철도는 협곡을 따라 크고 작은 46개의 터널과 27개의 다리를 도록코전차로 순회하며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방법이다.
암벽 터널 안 구로베(黑部) グム 역내다.
<黑部の太陽>
본시 전쟁용으로 만든 이곳은 영화에서 그린 바 있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희생이 초석이 되어 이룩한 역사(役事)로 지금은 관광용 알펜루트로 이용하고 있다. 역사(歷史)의 아이러니다. 우리민족의 희생도 이곳 어딘가에 묻혀있을 것이다.
무궤전차를 이용한 터널 운행이다.
해발 1,470m 구로베(黑部) 댐에서 해발 1,433m 오기자와(扇澤)로 이동했다.
오기자와에서 다테야마(立山) 역 앞에서 헤어졌던 이께다상 버스에 승차했다.
이미 푹 절어든 어둠이 덮은 시간이다. 강행군 일정에 맞춘 이국의 여정(旅程)이다.
버스는 어둠을 뚫고 하구바(白馬)를 향한 내리막길에 들었다.
이국의 첫 밤은 항상 낯설다.
우리와 달리 좌측통행하는 차량에 익숙하지 않은 밤 도로를 커브를 돌때마다 마주 오는 우측 통행차량과 정면충돌할 것 같은 착각으로 깜짝 놀라 몸이 오싹거렸다.
17시 40분.
하구바무라(白馬村) 소읍(小邑) 교외에 위치한 하구바 하일랜드 호텔(白馬 ハイランホテル Hakuba highland Hotel)에 들었다.
아담한 3층 건물로 한적한 주변이 맘에 들었다.
天神の蕩(露天風)을 겸하고 있는 호텔이다.
식당은 2층에, 방은 3층에 배정됐다. 저녁식사는 18시 30분, 모닝콜은 06시 30분, 아침식사는 07시, 첵크아웃 07시 50분, 08시 제2일차 일정에 들어간다는 주최측의 통보다.
명일은 치노시 중학교방문이 예정되어 있다. 가능하면 정장을 요청하고 있다.
‘저팬 알프스’의 고향인 나가노 현.
온통 산악인 나가노 지방. 그 산에는 곳곳에 온천도 많다.
온천이 많으면 료칸 역시 많게 마련인데 실제로 나가노 현은 일본의 지자체 가운데 온천 료칸이 많기로 홋카이도에 버금가는 온천향이다. 일부 동료들은 天神の蕩(露天風)에 다녀온 모양이다.
저녁식사에 이어 주석을 아우른 모임이 가졌다.
밤 11시 20분.
침실로 돌아왔다.
창밖의 밤이 이국인의 감상을 넘고 있다. 문득 절해고도에 혼자 떨어진 기분에 싸였다.
거친 찬바람이 차창을 때린다. 내일 날씨는 오늘 날씨보다 불순할 것이란 예상이다. 인구 9,000명의 하구바무라(白馬村) 소읍(小邑)이 밤빛에 젖어 깊은 잠에 빠진 야경을 멀거니 바라봤다. 늘 혼자였지만 이국에서의 혼자는 색다른 시간이다. 그냥 허전하고 잡히지 않는 감정에 휩싸인 지금이다.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
진정 혼자가 되고 싶었던 시간이 마냥 좋았지만 막상 만나고 보니 더 외롭다는 생각이다.
나이는 넘어섰지만 마음은 따르지 않나보다.
몇 잔 정신없이 마신 술이지만 편안하게 머물고 싶은 곳은 이곳이 아니다. 바람소리가 더 거칠게 들려왔다.
이국의 밤바람은 더욱 나약한 감상에 빠지게 하는 마력이 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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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테야마 구로베 알펜 루트(立山 黑部 Alpine Route)는 넉 달간의 깊은 겨울잠 끝에 4월 20일 개통된다.
총 88.7㎞의 관광루트 가운데 23㎞의 도로 구간(비조다이라∼무로도)은 현재 7∼15m 깊이의 눈에 파묻힌 상태. 제설작업이 끝나면 알펜 루트의 상징인 설벽 통로 모습이 드러난다. 이리로 고원버스가 다닌다.
설벽통로는 알펜루트의 상징. 높이는 최고 20m. 제설차량이 컴프레서로 뿜어낸 눈이 통로 가에 쌓여 실제 눈 두께를 넘어선다. 이 설벽통로를 통과하는 버스여행은 알펜루트 산악관광에서 백미다. 물론 눈이 녹지 않는 5월 중순까지만 볼 수 있다.
알펜루트의 매력은 이 밖에도 많다. 이용가능한 모든 교통수단을 두루 타 보는 것이 그 첫 번째(표 참조)다. 전차, 로프웨이, 케이블카, 트롤리버스, 터널버스, 버스 등 모두 6가지. 다테야마 연봉 아래 터널은 트롤리버스(무궤도 전동차량), 구로베 협곡은 공중의 로프웨이와 급경사궤도의 케이블카로 건넌다.
또 있다. 등산 아니면 도저히 접할 수 없는 고봉의 속살을 편안히 보고 만질 수 있다는 점. 비조다이라와 미다가하라, 무로도에 펼쳐진 고산평원의 광대 화려한 설경, 지척의 고봉(다테야마 오야마 등), 협곡의 댐과 호수 등등…. 유람선 투어도 즐기고(6월부터) 카멜레온처럼 눈속에선 하얗게 깃털 색깔을 바꾸는 라이초(雷鳥)도 본다. 눈 녹으면 들꽃 핀 고산평원의 연못과 구릉을 트레킹한다. 백두산 천지 못지 않은 이코투어리즘’(Eco-Tourism·생태여행)의 보고다.
알펜루트 여행길에는 도야마 나가노 두 현을 두루 둘러보는 것도 즐거움. 우나즈키 온천과 윤봉길의사가 순국한 가나자와(이시카와 현)가 주요 관광지다. 4월 중순 가나자와에서는 벚꽃 화사한 겐로쿠엔(일본 3대 정원 가운데 하나), 윤봉길 의사의 가묘(假墓)를 참배한다. 나가노 쪽에는 온천향 오마치(大町), 동계올림픽 개최지 하쿠바(白馬)가 있다.
다테야마 구로베 알펜루트 교통수단별 여행구간 안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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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수단 |
거리 |
시간 |
설명 |
| |
① |
전차 |
도야마 출발 |
34㎞ |
45분 |
철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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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나즈키 출발 |
67.7㎞ |
90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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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
다테야마 케이블 |
1.3㎞ |
7분 |
케이블을 이용한 급경사 궤도차 |
| |
③ |
고원버스 |
23㎞ |
55분 |
관광버스 |
| |
④ |
다테야마 터널버스 |
3.6㎞ |
10분 |
관광버스 |
| |
⑤ |
다테야마 로프웨이 |
1.7㎞ |
7분 |
케이블카 |
| |
⑥ |
구로베 케이블 |
0.8㎞ |
5분 |
케이블을 이용한 급경사 궤도차 |
| |
⑦ |
도보 |
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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댐 건너기. 기념관 유람선 관광 |
| |
⑧ |
트롤리버스 |
6.1㎞ |
16분 |
무궤도 전기버스 |
| |
⑨ |
노선버스 |
18㎞ |
40분 |
일반버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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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지점마다 자유관광하면서 탑승시각은 시간표로 확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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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야마·나가노현(일본)=조성하기자 summer@donga.com 다테야마 구로베 알펜루트에서 가장 해발고도가 높은 무로도(해발 2,450m)평원의 설경, 오른편 건물은 단 하나 뿐인 호텔 다테야마다. 이 순백의 설원에서 즐기는 트레킹은 알펜루트에서만 즐길 수 있는 매력이다. 도야마(일본)=조성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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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일본 北알프스산맥 '알파인 루트'
《추위도 눈도 없는 겨울, 황사로 찌든 우중충한 봄 하늘과 먼지투성이의 대기. 실종된 겨울에 이어 이젠 봄마저 빼앗긴 것일까. 눈도 그립고 맑은 하늘도, 따뜻한 햇볕도 아쉽다. 절대순수의 자연과 마주하고 싶다면 일본 기타(北)알프스산맥의 ‘알파인루트(Alpine Route·현지에선 ‘알펜’이라 발음)’로 여행을 떠나자. ‘순수의 바다’ 같은 자연의 품에 안길 수 있다.》
높이 18m의 설벽. 2차로 도로는 설벽에 갇혀 버스 두 대가 겨우 지나칠 정도로 좁다. 따사로운 햇볕에 봄기운이 진하게 느껴지지만 주변은 산을 온통 뒤덮은 흰 눈으로 아직 한겨울 풍경이다. 산 아래 도야마(富山)시는 연분홍 벚꽃으로 뒤덮여 화사하고 해발 2450m 고원의 무로도(室堂)는 흰 눈에 뒤덮여 설국(雪國)의 장관을 이룬다.
지난달 20일. 긴 겨울 동면에 들었던 ‘기타(北)알프스’가 잠에서 깨어났다. ‘알파인루트’가 개통된 것이다. 3월13일부터 중장비 수십대가 동원된 거의 두달간의 고된 작업끝에 15m 넘게 쌓인 눈을 파내고 비조다이라(美女平·해발 977m)에서 무로도(해발 2450m)에 오르는 23㎞의 ‘설벽도로’를 개통시킨 것이다.<그림 참조>
비조다이라를 출발한 관광버스는 구비구비 산허리를 감아 오르는 산악도로로 천천히 알파인루트를 오른다. 도로변의 눈은 고도가 높아갈수록 발목에서 무릎으로, 허벅지로, 허리로 점점 높아지더니 30여분 후에는 거대한 벽이 되어 버스에 탄 관광객의 시야를 막아선다. 간혹 설벽이 사라진 공간으로 해발 2000m 위아래의 눈 덮인 산악이 그 모습을 드러내는 데 별유천지의 선경이다.
드디어 무로도에 도착했다. 해발 2500∼3015m의 고봉에 둘러싸인 아늑한 고원의 평원이다. 온통 하얀 눈으로 뒤덮인 이곳 풍경은 고아하다. 하늘의 스카이블루, 설산의 흰색, 그리고 도야마쪽 산봉우리 사이로 아련히 보이는 바다의 파란빛. 그 순색의 극명한 조화에 감히 눈을 크게 뜨지 못한다. 다테야마(立山), 오야마(雄山)가 바로 지척이다.
알파인루트 개통 첫날 첫 버스를 탄 데는 이유가 있다. 아무도 밟지 않아 흠집 하나 없는 설원에서 스키잉을 해보고 싶은 욕심에서다. 그러나 그 대가도 만만찮다. 리프트도 없는 설원을 걸어 높은 산에 올라야 한다. 동행한 국가데먼스트레이터 한정재씨(26)가 오야마 중턱에서 다운힐을 시작했다. 회전 때마다 여인의 종아리처럼 매끄러운 눈위로 깊은 슈푸르(스키잉 흔적)가 생겼다. 조도산(淨土山) 산허리를 타고 오른편 아래로 보이는 설원의 알파인루트 설벽도로를 내려다보며 스키잉하기를 두시간. 두사람은 덴구다이라를 지나 미다가하라까지 내려갔다. 그 두시간 동안 기타알프스는 겨우내 감췄던 속살을 거침없이 모두 보여주었다. 알파인루트는 ‘스키는 알피니즘(Alpinism)’이라는 말을 실감케 한다.
▼알펜루트 알고 즐기기▼
‘다테야마 구로베(黑部) 알파인 루트.’ 세계적으로 희귀한 산악여행루트다. 비슷한 것으로 스위스의 융프라우요흐 산악철도가 있지만 그 운송수단의 독특함과 다양함에서는 알파인루트를 따르지 못한다.
이 루트는 ‘일본알프스’라 불리는 다테야마연봉 아래로 고원과 산악의 장대한 풍경을 감상하기 위해 뚫은 것(71년 개통)으로 산악을 중심으로 동서로 갈린 해안가의 도야마현(동편)과 산악지방인 나가노현(9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을 동서로 이어준다. 알파인루트에 동원되는 운송수단은 다양하다. 로프웨이(케이블카)와 케이블(급경사철로 상 하단의 궤도차를 중력을 이용해 운행하는 방식), 트롤리버스(무궤도·전기)와 관광버스, 그리고 유람선 등.
최고봉인 다테야마는 터널로 관통하며 구로베협곡은 해발 1470m의 구로베댐으로 건넌다. 환경보호를 위해 터널구간에서는 전기버스를 운행한다.
총거리는 88.7㎞. 횡단에는 4시간이 걸리지만 관광코스라면 8시간은 잡아야 한다. 운임도 만만치 않다. 도야마역∼시나노오마치(나가노현) 구간 총운임이 1만320엔(약 11만4000원)이다. 알파인루트는 매년 4월 중순 개통돼 11월 30일까지 공개된다. 비조다이라∼무로도 산악도로 구간의 설벽은 한여름에는 녹아서 사라진다. 구로베댐의 호수유람선(30분 소요, 930엔) 운행기간은 6월1일∼11월10일.
◇설원 트레킹◇
해발 2450m 고원인 무로도에서 즐길 수 있다. 5월에도 초겨울 날씨다. 등산화 방풍의 선글라스 햇빛차단크림 장갑 모자는 필수. 무로도의 호텔(1인당 1박에 1만4000엔 내외)이나 산장(1인당 1박에 7500엔·아침 저녁식사 포함)에서 하룻밤 묵기를 권한다. 요즘 산장에는 스노보더와 산악인 사진가가 주로 몰린다. 보더들은 설산을 하이크업(걸어서 산을 오르는 것)해 자연설에서 라이딩한다. 산장에서 일하는 보더들이 점프대 등도 설치해 둔다. 산장에는 작은 공중목욕탕도 있다. 스키 스노보드는 대여하지 않는다.
◇여행상품◇
박경숙여행사(02-3785-0127)는 무로도 산장에서 2박하며 설원 트레킹이나 스키를 즐길 수 있는 3박4일 알파인루트 여행상품을 판매한다. 가격은 87만원.
◇항공편◇
알파인루트 출발지는 도야마현의 도야마시. 서울∼도야마는 아시아나항공이 주 4회(월 수 금 토요일) 운항중이다. 소요시간은 1시간 40분, 요금은 47만2000원(왕복·10월까지). 예약 1588-8000, www.flyasiana.co.kr
▼100년전통 연어초밥 별미▼
◇마쓰노스시◇
도야마의 특미 생선초밥으로 개발된지 거의 100년에 가깝다. 연어의 한 종류인 ‘마쓰(찥)’만 사용한다. 대나무로 만든 동그란 도시락의 바닥에 댓잎을 깔고 그 위에 양념한 초밥을 담은 뒤 그 위에 연어살을 덮은 채로 압착시켰다가 먹는 게 특징. 초대형 전문식당이 시내 한가운데 있다. 만드는 과정을 직접 살펴 볼 수도 있다.
◇겐로쿠엔◇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17세기 일본 전통정원 중 한 곳. 냇물과 그 위에 놓인 다리, 정자와 언덕이 이루는 조화가 아름답다. 정원 산책 후에는 길 건너 ‘겐겐오친’식당에 들러 일본전통요리를 맛보자. 도야마에서 자동차로 1시간반 거리인 이시카와(石川)현청소재지 가나자와 시내에 있다.
◇마쓰모토◇
기타 알프스의 산악관광도시(나가노현). 해발고도가 높아 나고야 도야마의 벚꽃 끝물(4월20일경)에 여기 벚나무는 만개한다. 나고야 오사카성에 뒤지지 않을 만큼 건축미가 돋보이는 마쓰모토성만 보아도 다리품 팔아 찾아간 노력이 헛되지 않다.
◇아트힐즈(Art Hills)◇
나가노현의 유리공예품 전시판매장. 양식당과 아이맥스영화관, 18홀 퍼팅그린 골프장을 갖추었다. 유리제품은 공방에서 만들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유럽에서 수입해온 것. 예술품 수준에서 일용품까지 다양하다. 이고장의 명물인 와사비 제품도 다양하다.
<도야마나가노(일본)=조성하기자>summer@donga.com
제2일차 : 2007년 11월 27일(화)
05시 30분.
이국의 첫 아침이다. 눈이 녹으면 백마형태로 남는 지대가 드러나 하구바무라(白馬村)이란 지명이 유래됐다는 하쿠바의 아침은 상쾌했다. 그러나 밖으로 잠시 나왔다.
잿빛 하늘에서 다소 센 바람과 함께 진눈개비를 뿌린다. 예상은 했지만 음산한 아침이다.
07시.
식사시간이다. 하쿠바의 자랑거리 하나가 유기농으로 재배한 식재다.
출중한 자연경관을 갖춘 아담한 하쿠바다.
08시.
하구바 하일랜드 호텔(白馬 ハイランホテル Hakuba highland Hotel)을 떠나 나가노(長野)시로의 이동이다. 하쿠바 변두리의 야산은 모두 스키장 및 스키점프대로 차있다. 최근엔 한국스키족이 스키관광을 온다는 소개다. 406번 도로변은 집집마다 곶감을 말리기 위해 길게 엮어 매단 광경이 한국의 시골 정경과 너무나 흡사했다. 어느 곳이나 정리정돈이 말끔한 논밭과 촌락의 주택들은 아무리 찾아봐도 결함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도로 좌우 산을 덮은 연갈색 단풍과 상록수인 삼나무와의 조화는 아무리 봐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08시 36분.
하구바(白馬)-나가노(長野) 고속도로에 진입했다. 나가노현은 한국의 충청북도처럼 유일하게 바다에 인접하지 않은 내륙이다. 일본 본토의 한가운데 위치해 있고 면적은 1만3584㎡로 전국에서 네 번째로 크다.
일본 GNP의 20%를 점유한다는 아이치(愛知)현의 산업도시 나가노(長野)현의 자연, <다테야마(立山) 알펜루트>의 자연환경을 묶는 관광묶음을 소개하는 요시미(吉味)상과 長野縣企劃局國際課 이규영(李珪榮, 30세)씨 장황한 해설이 뒤따랐다.
일본 동쪽 해발 3000m의 고산지대 나가노(長野)현은 ‘일본의 지붕’이라 불린다. 1998년 이곳에서 열린 동계올림픽경기대회와 88년의 장애자올림픽개최지로 잘 알려진 곳이다.
무엇보다 아름다운 자연으로 대표되는 국립공원이 7개나 인접해 있어, 사계절 내내 스포츠와 레저의 거점으로 인기가 많아 방문객수가 연 1억 명이 넘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가노를 ‘자연과 역사, 문화의 보고(寶庫)’라 말한다. 북알프스와 남알프스, 중앙알프스의 관문이면서 봄부터 여름, 가을까지는 하이킹과 캠핑, 또 겨울에는 스키와 스케이트 등 모든 아웃도어 활동을 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인구 30만의 평면도시 나가노(長野)시의 풍광도 어릴 적의 적산가옥을 그대로 재현하는 세트장 같다는 느낌이다. 고층빌딩을 거의 보이지 않았다. 시내 한 복판을 가르는 강을 사이에 두고 남북으로 형성된 시가지다. 시내를 관통하는 차창에 <대한장료교회>라고 한글간판이 붙은 단층건물을 보았다. 이어 우리의 법원에 해당하는 <재판소(裁判所)> 건물이 낯익은 단어처럼 느꼈다. 강북지역으로 닿자 고층빌딩이 나타났다.
09시 06분.
비좁은 도로를 헤치고 찾은 젠코지(善光寺).
낭하구조처럼 젠코지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미리 대기 중이던 이곳의 60대 안팎으로 추정되는 공인(公人) 사찰안내해설자 후지하라상이 맞는다. 이곳 본당에 보존하는 본존불(一光三尊阿弥陀如来)은 1400년 전 欽明天皇13년(552년) 백제로부터 건너온 일본 최초의 불상으로 이곳만은 종파에 관계없이 신도들이 참배한다는 소개다. 또 서민들이 지은 사찰로 서민들이 많이 찾아온다는 설명이다. 남녀 1명씩 두 명의 주지가 있는데, 남자주지는 결혼을 하고, 여자 주지는 그들의 왕족 중에서 선발한 비구니라고 한다.
옛부터 젊은 연인들이 즐겨 찾아 참배한다는 신슈(新州)지방의 명찰로 이곳은 에도시대(?拇?4년·1707년)에 다시 지어져 2007년 올해(平成19년)로 재건 300주년을 맞고 있다.
인왕문에 이르기 까지 약 100여m 거리는 긴 복도같은 젠코지의 참배길이다. 좌우 에 이어진 39개의 작은 사찰은 마치 저들이 말하는 소위 황궁으로 들어가는 구조와 똑같다는 부연이다. 순례자들이 신고 가는 짚신이 나무에 걸려있다.
경내로 들어가는 길에는 아들을 잃은 대상인이 공양을 위해 기부했다는 7777장의 다다미 모양의 정사각형의 바닥돌이 깔려있다. 그 중 어떤 것은 표면이 반질반질하고 어떤 것은 울퉁불퉁하다. 전자는 수많은 참배객들의 발길에 닳아서 그러하다는 설명이다.
이곳에서 눈을 부릅뜨고 입시한 인왕상이 있는 5m 높이의 인왕문을 빠져나오면 토산품 가게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 이를 지나면 바로 젠코지의 메인 게이트에 해당하는 인왕문 정액산(定額山) 앞이다.
우리와 달리 일본 사찰은 단청을 않는 게 특징이다.
본디 단청(丹靑)이란 청색(靑色), 적색(赤色), 황색(黃色), 백색(白色), 흑색(黑色) 을 기본으로 색(色)을 배색(配色)하여 간색(間色)을 만들어 여러 가지 색을 표현하여 건물의 천장, 기둥, 벽과 같은 건축의 가구부재(架構部材)에 여러 색깔로 문횑하여그림을 그려 넣는 것하여조형품,공예품, 석조건축, 고분(古墳), 불화, 동굴 등에 彩畵(채화)하는 경우 등 회(繪), 화(畵)의 개념을 통틀어서 말한다. 자연현상으로 인한 부식과 충해를 방지하기 위하여 건축물에 丹靑이 필요하게 된 목적은 대력 몇 가지로 열거할 수 있다.
첫째, 궁전의 권위와 위풍 법당의 장엄을 위한 목적. (절대 권력의 왕권을 상징하기 위해 궁궐을 단청 장식하거나 종교적 의식을 위한 불교 사원, 도교 사원, 등의 장엄)
둘째, 재질의 단점을 은폐하기 위한 목적. ; 목재의 표면에 나타난 각종의 옹이나 흠집
등을 감추고 외관의 미려함을 꾀하기 위함
셋째, 건축물의 영구보존을 위한 목적 : 비바람이나 기후의 변화에 대비한 부재의
풍해, 부식, 건습 등을 방지하고 내구성을 강화
넷째, 기념물(記念物) 성격으로서 전시(展示), 기록(記錄)을 위한 목적 : 일반적인 것과 구분되는 특수 기념비적인 건축물의 전시와 기록을 위함
현재 100억 엔을 들인 산문공사로 경내는 산만한 분위기다.
정액산 앞에서 좌측으로 휘돌아 들어갔다. 음산한 날씨가 다소 쌀쌀하다.
본당에 걸린 선광사(善光寺)라고 종(縱)으로 내려쓴 현판 글자에 5마리의 비둘기와 소의 코뚜레모양이 숨어있다. 그런 탓인지 비둘기들이 유난히 많은 이곳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소에 이끌려 이곳 사찰을 찾는다는 의미가 숨어있다는 내용이다. 일본에서 3번째로 규모가 크다는 젠코지(善光寺) 본당의 30m에 이르는 기둥의 높이와 24m의 현관입구, 54m에 달하는 불단과의 거리는 일본 최대의 규모를 자랑한다.
본당 안으로 후지하라씨의 안내를 받아 들어갔다.
그들 식의 의식과 예절을 요구받으며 잠시 본존불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젠코지 본당에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불상이 안치돼 있고 그 아래는 성지라고 불리는 지하도로 내려갔다. 칠흑의 어둠터널을 따라 선두를 따라 움직이는 지하도 마지막쯤 어둠 컴컴한 벽에는 젠코지 여래와 연결되는 열쇠를 만지면 극락(아미타래의 낙원)으로 갈 수 있다고 한다. 암흑시대는 다분히 주술적 의미가 가미된 작은 의식이라는 생각이다. 나가노의 젠코지를 일본인들에겐 일생에 꼭 한번 가볼만한 곳이라 한다. 이는 가장 일본식 문화와 의식이 침전된 깊은 역사를 아끼는 그들의 희망이라 판단했다.
본당을 빠져나온 일행들은 종루(鐘樓)앞에서 집결했다.
경장(經藏, 우리식의 윤장대) 앞을 거쳐 본당 서북방향에 위치한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온난한 날씨로 동백꽃을 비롯한 이름을 분간키 어려운 꽃들이 만발한 상태다.
10시 07분.
젠코지(善光寺) 관광을 끝내고 오부치 마을 탐방을 위해 이동했다.
일본은 사무라이를 대표로하는 동적인 무사집단과 승려를 대표로 하는 정적인 문화집단으로 이뤄진 양면성의 문화를 소유하고 있다.
구라다 나이모찌.
백제문화를 숭상했던 일본인들이 만든 말로, 백제가 없는 물건, 곧 하찮은 놈이란 뜻이다.
콤플렉스시대를 거쳐 우월의 시대로 치닫는 일본의 혼네는 다소 인위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따라서 우리의 욕설문화보다 일본의 욕설문화가 덜 세분화됐다는 조부장의 얘기다.
오부세마치(小布施町)로 이동하는 차창밖 풍광을 멀건이 바라봤다.
신슈(新州) 도로변은 온통 밤 과수원과 사과과수원이 일색이다. 두 가지를 과수(果樹)를 모두 낮은 키나무로 개량한 과수원이다. 이어령님의 축소지향적 일본인의 성격이 과수에도 적용된 경우다. 도로 좌측에 <감정당(甘精堂)> 공장이 보인다. 달콤하기로 유명한 신슈 사과 맛을 보인다며 총합공원(總合公園) 주차장에 잠시 멈췄다. 신슈의 사과를 사람 수 이상으로 구입한 조부장이 어른 주먹 두 개 크기의 사과를 구입해 한 개씩 배분했다. 사과를 좋아한다는 양정중 유교장이 껍질 채 먹는다. 옆에서 바라만 봐도 침이 넘어갈 정도로 사과 맛에 대한 감탄을 뱉으면서 말이다.
10시 30분.
장곡천(長曲川)을 건넜다.
제법 너른 강이다. 전통적인 일본마을을 간직한 오부세(おぶせ, 小布施) 마을은 옛날 문화를 숭상하는 거상(巨商)이 유명한 예술가를 초빙해 마음껏 문화활동을 하도록 재정적인 지원을 해 많은 예술작품이 지금껏 전한다는 차내 소개다. 말하자면 르네상스시절 메디치가문의 예술가 지원이 연상되는 역사적 지역이다. 그 이후 마을을 보종해 관광지로 각광을 받는다는 소개가 이었다. 밤이 특산물인 이곳은 밤을 이용한 과자류를 만들어 에도막부시절 공물이었다고 한다. 지금 이곳은 밤을 재료로 하는 과자점과 그 음식이 숱하다.
10시 43분.
오부세(小布施) 마을로 들어섰다.
내국인을 비롯해 중국인 등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있다.
1950년대 말 한국 소읍의 저자거리와 너무도 흡사했다.
<호쿠사이(北齊館) 박물관>부터 입실했다. 전시된 많은 미술작품 중 니비징(にびじん, 二美人)이 가장 눈길을 끌었다. 북제(北齊)의 그림이 새겨진 손수건 2장(장당 1,000엔)을 구입했다.
11시.
박물관으로부터 약 50m 떨어진 유일시촌주조장(柳一市村酒造場)으로 이동했다.
정종종류로 알려진 3가지 술 시음장이다. 일본 청주 사케(酒)다.
동아일보에 실린 허진석 기자의 사케에 대한 소개다.
<사케는 알코올 도수(통상 15∼16도)가 낮아 와인처럼 오래 대화를 나누며 마시기에 적당하다. 프랑스 와인처럼 산지와 제조법에 따른 브랜드가 많아 술 제조법 자체가 ‘안주거리’다. 사케는 원래 술을 총칭하는 단어지만 쌀로 빚은 일본 청주를 지칭하는 뜻으로 통용된다. 일본에서는 ‘니혼슈(日本酒)’라고도 불린다. 국내에서는 한때 정종이라는 말이 많이 쓰였다. 이는 수천 가지나 되는 사케의 한 브랜드일 뿐이다. 일제 당시 국내에서 많이 팔렸던 사케가 정종(正宗·마사무네)이었다.
사케의 종류
사케는 정미율(쌀의 표피를 깎아 내고 남은 비율)에 따라 나누는 것이 일반적인 구분법이다. 쌀의 표층부와 씨눈에는 비타민과 단백질, 지방질 등이 많다. 누룩과 곰팡이의 증식에 꼭 필요한 물질이지만 너무 많으면 효모의 활동을 지나치게 활성화해 술 맛을 떨어뜨린다. 사케가 은은하고 깨끗한 향을 내려면 정미율이 낮아야 좋다. 사케용 쌀은 밥 짓는 쌀과는 다른 품종이다.
정미율 50% 이하인 쌀과 누룩으로 만든 술은 ‘준마이다이긴조(純米大吟釀)’급이다. 쌀알의 35%만으로 만드는 술도 있다. 50∼60%는 ‘준마이긴조(純米吟釀)’, 60∼70%는 ‘준마이슈(純米酒)’로 불린다. 향은 정미율이 낮을수록 은은하고, 높을수록 진하다.
여기에 양조 알코올을 첨가하면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정미율 50% 이하는 ‘다이긴조(大吟釀)’, 50∼60%는 ‘긴조(吟釀)’, 60∼70%는 ‘혼죠조(本釀造)’로 불린다. 양조 알코올을 첨가했다고 해서 저급한 술은 아니다. 오히려 맛이 부드러워지고 깔끔해진다.
○ 시음법
말린 복어 지느러미를 구워 넣은 뜨거운 사케(히레사케)만 즐겨 온 사람은 최근 사케 음용법에 낯설다는 느낌을 갖는다. 올해 10월 리노베이션을 통해 120여 종의 사케를 구비해 사케 일식당으로 변모한 서울 롯데호텔의 모모야마는 사케를 차갑게도 내놓는다. 미묘한 향과 맛을 즐기는 데 낮은 온도가 더 어울리는 사케가 있기 때문이다. 따뜻하게 즐길 때에도 뜨겁다고 느낄 정도가 아닌 섭씨 35∼40도로 데워서 내놓는다.
사케도 와인처럼 마시기 전 코로 향을 먼저 즐기며 입에 머금었을 때 입술을 다문 뒤 코로 숨을 내쉬면 후각세포를 자극하는 향기를 감지함이 향과 맛이 강하지 않은 사케를 시음하는 방법이다.
○ 와인처럼 음식에 맞추다
풍미가 약한 요리에는 은은한 맛의 사케가, 진한 맛이 나는 요리에는 향이 진한 사케가 어울린다는 게 원칙이다. 회에는 깨끗하고 드라이한 맛이 나는 다이긴조나 긴조, 준마이다이긴조, 준마이긴조 등이 좋다. 조림이나 구이에는 준마이슈나 혼죠조급을 추천한다.
기름이 많은 참치 뱃살 회에는 알코올 도수가 17∼18도인 사케가 좋다. 일반적으로 정미율이 낮은 술이 비싸다. 이런 사케는 섭씨 4∼5도로 만들어 차게 즐기는 게 현명하다.
정미율이 낮은 쌀로 만든 사케가 반드시 비싼 술은 아니다. 숙성기간 등에 따라 가격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브랜드에 따라서는 아예 등급 표시를 하지 않거나 자기들만의 표시 방법을 쓴다. 사케도 와인처럼 단맛과 드라이한 맛으로 구분한다. 병의 레이블에 ‘+’와 ‘-’가 붙은 숫자로 표시된다. -60은 달콤한 맛이 강한 디저트용 사케다. 통상 +3에서 +5 사이가 드라이한 것이 많다.
국내에는 준마이다이긴조급의 오토코야마(男山)와 준마이긴조급의 핫카이산(八海山) 등이 제법 알려져 있다. 사과나 삼나무 향 등이 나는 사케도 있다. 강한 풍미에 길들여진 한국 사람의 입맛에는 향이 짙은 술이 더 맛있게 느껴진다.
회 복어국 어묵탕, 사케와 궁합이 딱
사케와 일식 요리를 항상 접하는 호텔 일식당의 주방장들은 사케와 함께 즐기는 요리로는 맑은 국과 회, 구이, 전골, 초밥, 닭고기 샐러드 등을 추천했다. 르네상스서울호텔 김보성(42) 주방장은 복어국이 좋고, 복어국이 여의치 않을 때는 대구 맑은 탕(지리)을 애용하라는 충고다.
해물모듬냄비를 추천한 사람은 서울 롯데호텔 안중호(50) 조리장이다.
맛이 담백하고 집에서 만들기도 쉽다는 것이 추천 이유다.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의 강부식(41) 주방장은 역시 집에서 만들기 쉬운 스키야키를, 밀레니엄서울힐튼호텔 정재천(40) 주방장은 회, 도미찜, 어묵탕을 추천했다.
그랜드힐튼호텔 장철호(53) 과장은 소내장 전골 같은 독특한 요리와 사케를 함께 즐겼다.
즐겨 마시는 사케는 사람마다 달랐다. 신라호텔 이태영(41) 과장은 ‘오쿠노마쓰’를 추천했다. 은은한 과일향에 자연스러운 단맛이 좋으며 뒷맛이 깔끔하다는 이유를 들었다.
쉐라톤그랜드워커힐호텔의 이강욱(46) 조리장은 ‘쿠보다 만주’를 맛이 부드러워 사케에 거부감이 있는 사람도 마시기 좋은 술이라고 권했고 ‘핫카이산’은 사케 특유의 강한 풍미 덕분에 좋아한다고 밝혔다.
백화수복을 즐겨 마시는 서울프라자호텔 임홍식(47) 주방장은 사케를 계란과 함께 즐기는 법을 소개했다. 감기 기운이 있을 때 잔에 계란 노른자와 설탕 1큰술을 넣고 사케를 부은 후 잘 저어 마시면 원기회복에 도움이 된다며 권했다.>
이어 점심식사 식당으로 이동했다.
<앵정감정당(櫻井甘精堂)>
7대 200년간에 걸쳐 대물림하며 이어온 밤으로 만든 과자가게 겸 밤밥 식당엔 여러 종류의 밤과자와 밤떡을 판매하고 있다. 한 차례 권할만한 식사다. 화장실 문 에 걸린 전(殿)은 남자용 화장실을, 희(姬)는 여자화장실을 알리는 글자다.
오후 12시.
신슈(新州)에 소재하는 국보, 마츠모토(松本) 성(城)으로 이동하는 강행군이다.
고속도로에 진입해 바라본 조용한 도시 신슈의 풍광이 아름답다.
지형상 바람 빠진 튜브처럼 착 가라앉은 너른 벌판의 도시의 분위기가 숙연할 정도다.
일본의 <야(野)>란 글자가 든 지명이 허다하다. 우리의 벌(伐)에 해당하는 용어일 것이라 짐작했다. 긴 터널을 빠져나왔다.
12시 53분.
<마적(麻積) 2Km, 마츠모도(松本) 29Km, 나고야(名古屋) 243Km>
고속도로상이다.
풍과(豊果)-재천(梓川)을 통과했다.
오후 1시 12분.
마츠모도(松本) ETC를 나와 시내로 들었다.
마치 잠자듯 조용하기는 마츠모도(松本)도 예외는 아니었다.
1시 23분.
마쓰모도니시(松本城西)주차장에 섰다.
시청관광과 직원인 젊은 안내양인 아야노다케이리(竹入文乃)씨가 마중 나와 있다.
나가노현의 현청 소재지 마츠모토시내 에 위치하고 있는마츠모토 성(松本城)은 일본 열도의 정 중앙이다. 서쪽으로는 표고 3,000m급 산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잇고, 동쪽으로는 표고 2,000m 시야 360도를 점망할 수 잇다는 우쓰쿠시가하라(美ケ原高原) 고원 등 아름다운 자연에 둘러싸인 역사와 문화를 고히 간직한 신슈 마쯔모토시다.
검은색 외양 때문에 까마귀성이라는 뜻의 카라스죠[鴉城]라고 불리는 마츠모도성은 해자를 품고 있는 매교(埋橋, 해자와 성을 잇는 다라)를 건너 구로문을 통과, 천수각 너른 안마당으로 들어섰다. 50대의 관광과장인 아오키가 급히 다가오며 인사를 한다. 이어 마츠모도 성에대한 개관을 설명을 장황하게 들려준다.
일본 성의 수난
일본역사에서 성은 해당 지역을 다스리는 영주의 권력을 상징하는 중요한 건축물이었다. 물론 이러한 상징적인 의미 이외에도 행정적인 거점, 군사적인 방어기지 역할 등 실용적인 기능도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각 영주 간의 세력다툼이 잦았던 일본에서는 각 지역마다 성이 발달하게 되었으며, 특히 전국시대에 이르러서는 가히 일본 성의 전성기라고 할만큼 곳곳에서 축성이 잦았다.
그러나 에도 시대로 접어들면서, 점차 권력은 중앙정부로 집중되어 가기 시작하였다. 때문에 지방영주들의 권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일환으로 성의 파괴를 시도하기 시작했다. 이를 위하여 에도 막부는 일국일성령[一国一城令]을 발표하였는데, 한자 그대로 하나의 쿠니[国, 당시 일본의 행정구역]에 단 하나의 성을 제외하고는 다른 성을 존재하지 못하도록 한 명령이었다. (단, 막부에 대한 공적이 있는 영주의 성은 제외되었다.) 이로 인하여 전국적으로 3만 4천에 달했다고 여겨졌던 성의 개수가 300여개로 줄었다.
화재나 자연재해로 인하여 성이 훼손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이미 지방영주들은 정치적으로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쇠약해진 상태이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훼손된 성을 재건할 경제적 능력이 없었다. 더군다나 재건할 능력이 있다 하더라도, 막부에서 이를 허락해 줄 가능성은 극히 낮았다.
메이지 시대로 접어들면서 일본은 근대화의 급류를 타게 되고, 이 과정에서 일본 근대화의 주력인사들은 완전한 중앙집권형 국가를 지향하게 된다. 그리하여 1873년, 폐성령[廃城令]이 발표되어 일본 전역의 모든 성이 성으로서의 기능을 잃게 된다. 이후 많은 성들이 파괴되고, 일부는 경매에 붙여져 매각되는 등의 수난을 겪는다.
그러나 그 다음에 일본의 성들에게 주어진 시련은, 그들의 운명을 판가름짓게 된다. 바로 일본이 일으킨 태평양 전쟁이었다. 일본의 성들은 대체로 도시의 정중앙에 넓은 면적을 확보하고 건설되어 있었는 데다가, 지리적으로 전투에서 유리한 고지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육군에게 있어서는 최고의 주둔지였다. 때문에 일본의 성은 미군에게 있어서는 주요 폭격대상이었다. 이로 인하여 나고야성, 와카야마성등 거센 역사의 흐름 속에서 끝까지 살아남았던 수많은 성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일본 성 수난사의 마지막 희생양은 히로시마성이었다. 그것은 바로 태평양 전쟁을 종결시킨 원자폭탄으로 인해서였다. 그리고 이를 마지막으로 일본 성 파괴역사는 종료되었다. 그 다음부터는 보존과 복원의 역사가 이어진다.
종전 이후, 파괴되었던 수많은 일본의 성들은, 문화재적 가치가 재발견되고, 도시공원의 역할로 탈바꿈하여, 다시 재건되고 복원되었다. 그러나 그 대부분은 화재 및 자연재해에 의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하여 철근 콘크리트 구조로 재건되어, 본래의 의미를 많이 상실하였다. 물론 그 이외의 많은 성들은 건설 당시의 공법과 재료를 그대로 이용하여 복원을 시도하고 있지만, 여행자의 입장에서는 성의 원형이 아닌 이상 의미를 찾기 어렵다.
현재까지 천수각이 남아있는 일본 성
일본의 성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텐슈[天守], 흔히 천수각이라고 불리우는 최상단 부분이다. 그러나 하늘 높이 솟아있는 천수각은 지방영주 권력의 상징이기도 하여서, 위에서 설명한대로 일본이 점차 중앙집권적 국가형태를 가지게 되면서 파괴대상 1순위가 되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12개의 성에서는 아직도 건설 당시의 천수각을 그대로 볼 수 있다.
1504년에 축성되었다고 추정되고 있는 5층 높이의 국보인 마츠모도성은 일본 전국시대인 에이쇼오시대 처음으로 건립된 후카시 성이 기원이다. 어지러운 전국시대에 접어들자 시나노후츠라라는 마츠모도다이라 중심의 이카와에 거처를 두고 있던 시나노의 수호 오사가와라씨가 거처를 동북산록 숲 지구로 이전하자, 그의 가신들은 숲의 성을 에워싸듯 지성을 쌓고 방어선을 구축했다. 후시카 성도 이때 숲의 전면을 방어하기 위해 구축됐다. 그 뒤 카하의 다께다신겐이 오자사와라나가토기를 몰아내고 이 지역을 점령하여 시나노 지배의 거점으로 삼았다. 그 뒤 텐소 10년(1582년) 오가사와라 사다요시가혼노오지의 변에 의한 동란의 허점을 딛고 일어서 후지카성을 반화하고 그 명칭을 마츠모도 성이라 개칭하였다.
토요도미 히데요시는 <별도 책자 참조>
기타 60도 경사의 층계를 올라갈 때의 주의사항과 천수각의 구조내용을 소개했다.
<별도 책자 참조>
대천수(大天守), 건소천수(乾小天守)
해자폭은 당시 소총의 최소한 유효사거리다.
전국시대를 거친 일본인들은 생존을 위해 그들 나름대로의 독특한 생존방식을 터득했는데 오늘날 섬나라 일본인들의 근성인 <혼네>와 <다테마에>가 이런 결과가 아닌가 생각해봤다.
창검으로 치르는 무술의 싸움에서 소총으로 변한 전술의 전쟁으로 변한 당시 일본의 상황은 가히 혁명적이었다. 무대포(無大包)라는 말은 대포를 무서워하지 않은 당시 사무라이를 빗댄 말이라는 설명이다.
2시 20분.
관광을 마쳤다. 7분 후 주차장으로 이동한 일행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차량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90도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일본인들의 태도는 여일했다.
스와시로 이동하며 조부장의 긴 설명이 이었다. 서양 선교사로부터 선진 문물을 도입, 병농일치의 직업군인제도가 확립되면서 군인양성을 위한 자원을 확보하기위해 물류를 장악하게 된다.
모두 다 나고야 출신인 전국시대 3대 영웅의 성격을 표현하는 말이 흥미롭다.
40대에 암살당한 오다노부나가는 ‘새가 안 울면 새를 죽인다’
50대에 병사한 토요도미히데요시는 ‘안 우는 새는 울게 만든다’
60대에 사망한 도쿠가와이에야스는 ‘새가 울 때까지 기다린다’고 했다.
복종과 기다림의 어린 시절에 포로생활을 하며 경험하고 얻은 도쿠가와의 성격이다.
에오를 모르면 일본인을 알 수 없다고 한다. 장인정신, 직업정신과 직업관도 전국시대를 소상하게 파악하면 쉽게 이해가 된다. 신용하는 사람은 버리지 않는다. 구심점을 찾고 싶은 일본인들의 기질을 이해하는 기회다. 보스는 상명하복의 집단을 보호한다. 회사적 인간이란 말이 있다. 00증권회사사장이 매스컴을 통해 남긴 유명한 말이 있다.
‘회사는 망했다. 그러나 우수한 부하직원을 살려 달라.’
3시 05분.
세이코 본사로 유명한 스와(諏訪)와 스와코(諏訪湖)를 지났다.
일행들이 강행군에 잘 따른 탓인지 1시간의 여유를 쇼핑시간으로 채웠다.
The super sports 매장과 Mont-Bell 등산용품 매장을 휘둘러보는 시간을 가졌다.
오후 4시 03분.
나가노(長野) 현 정 중앙부에 위치한 치노(茅野) 시청을 향한 이동이다.
해가 서쪽 하늘 끝에 걸려있다.
4시 12분.
해발 800m 고원에 위치한 치노(茅野) 시청 안으로 들어섰다.
본청 옆 교육위원회 건물 3층 회의실로 들어갔다.
사각을 이룬 회의장에 시장 유평천대일(柳平千代一), 2명의 시청 과장, 2명의 교육위원이 배석한 간담회다. 시장의 답변은 조부장이, 시청과장의 답변은 이규영씨가 통역을 맡았다.
일찍부터 지방자치가 발달한 일본이라 행정은 물론 교육도 자치단체가 관리한다.
초-중등학교는 시(市)가, 고등학교는 각 현이 관리하는데, 교육의 수장은 각시나 현의 장(長)이다. 따라서 우리일행들을 영접하는 임무도 시장의 몫이다. 명함을 주고받는 일본식 인사과정을 거쳤다.
아리가또오 고자이마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죠몽문화 발상지라는 자부심을 갖는다는 시장의 자상한 소개와 인사가 있었다. 이어 우리일행의 대표인 유교장의 인사와 기념품 교환이 끝난 후 치노(茅野) 시 교육일반에 관한 간담시간을 가졌다. 놀랄만한 일본교사들의 성실함과 태도가 감복할만하다. 정규 출퇴근 시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지만, 방과 후 특활지도 및 교재연구와 잔무처리 등으로 밤 8~9시경 퇴근한다고 한다. 학생들이 교실-화장실-교내외 담당함은 물론 교사들도 교사화장실을 교사들이 당번을 정해 청소한다는 대목에서 심한 문화충격을 받았다.
회사가 어여울땐 노조가 스스로 잔업에 종사하고 강성노조는 시민들의 저항에 부딧쳐 왕따당하기 십상이라는 일본이다. 우리나라 노루표페인트 공장이 사용주가 제시한 5% 임금인상을 거부하고 #%로 삭감해 줄 것을 요구했다는 천연기념물적인 경우는 있지만 우리와는 격심한 대조다.
5시 42분.
시장과 시청공무원의 배웅을 받으며 캄캄한 일본의 밤을 관통하는 시간에 들었다.
서비스업 종사자도 아닌 공무원들이 버스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90도 각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그들로부터 진정한 프로페쇼널 직업정신을 엿보는 좋은 기회다.
밤을 실은 버스는 점차 해발을 높이며 이동했다. 전조등에 비친 사슴들이 좌왕우왕하는 모습이 보였다. 밤빛에 비친 스와코(白樺湖)가 적막하기 이를 데 없다. 고독한 밤이다.
캄캄한 초겨울 밤 6기 25분.
해발 1,925m 쿠르마야마(車山) 고원의 스카이 파크 호텔 앞에 도착했다.
식사시간은 7시 30분, 내일 아침 모닝콜은 7시, 아침 출발시간은 8시 30분이라는 전갈을 받았다. 각기 배정받은 침실에서 여장을 정리하는 시간이다.
밤 7시.
호텔 내 식당으로 모였다.
20명 정도가 모일 수 있는 룸엔 기초 음식이 세팅된 상태다.
나가노(長野)현 관광공사가 제공하는 홍보물이 놓여있다. 먼저 호텔지배인의 인사가 있었다. 메밀과 국수로 유명한 대표적 숙박시설인 이곳 치노시 수학여행지로 선택될 것을 희망한다는 멘트에 이어, 나가노(長野)현 관광공사의 에자키 료타로(惠崎良太郞)상무이사와 탓수미요코카와(橫川辰美 )사무국장의 인사가 있었다. 한국을 30여회 방문한 경력이 있다는 상무이사는 온천과 스키장의 왕국인 나가노의 자연환경을 자상하게 소개하며 해외수학여행의 적격지인 이곳에 이미 대만과 중국에서 약 50여개교가 다녀갔다는 PR을 덧붙였다. 타 현에 비해 미흡한 양국간 학교접촉과 상호교류를 희망하며 그들이 준비한 보리소주와 쌀소주를 겻들인 건배를 마치고 샤브샤브식 식단의 식사시간을 이어갔다.
뻐근한 식사와 수작(酬酌)을 나누며 밤 8시 이후에 자리를 파했다.
양정중 류교장 침소에 모인 일행들 간의 시간이 길게 이어갔다.
제3일차 : 2007년 11월 28일(수)
7시 30분.
깔깔한 입맛의 조식을 마쳤다.
어제 밤 늦은 시간까지 음주가 이어졌나보다.
그러나 피곤한 기색은 생각보다 덜했다.
8시 40분.
예정대로 체크아웃을 마치고 호텔을 떠났다.
밤새 얕은 눈이 내렸다. 호텔 앞 주변 숫눈길을 밟으며 몇 차례 심호흡을 했다.
2천m 가까운 산정은 온통 운무(=개스)로 사위 분간이 어려웠다. 우리나라의 한라산 정상과 유사한 자연의 변화다. 배웅하는 호텔관계자들의 정성을 고개를 돌린 차창에 시선을 오래도록 정지했다. 일본인과 헤어질 땐 최소한 3회 정도는 돌아보고 인사를 나눔이 통례다. 흐니 수피의 자작나무과 거제수나무가 주목(主木)처럼 들어차있다. 정상에서 치노(茅野)시로 내려가며 바라본 창밖 엷은 개스 사이로 드리운 풍광은 서서히 그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쿠르마야마(車山) 고원을 휘감으며 지나가는 구절양장의 비너스라인(ビーナスライン)도로를 미끄러지듯 내려가는 버스는 치노(茅野)시립 북중학교를 향하고 있다. 수학여행의 필수코스라는 비너스라인(ビーナスライン)도로 주변은 고원지대답게 강풍으로 수목성장이 어려운 식생조건이다. 후지산 봉우리가 조망되는 지점인 야쯔다다께(ハケ岳)를 지났다.
오전 9시.
시라카바 호수(蔘科湖) 옆에 잠시 멈췄다.
중학교방문 시간이 조금 이르다는 핑개다. 평화로운 수면을 바라보며 기념사진을 남겼다.
다시 버스가 움직였다. 12월 4일 저녁 6시 30분 동행하고 있는 안내자 (社)新州-長野縣觀光協會 商品企劃部 요시미(吉味秀明)상과 長野縣企劃局國際課 이규영(李珪榮, 30세)씨가 김포공항을 통해 방한한다는 조부장의 전달이다.
미팅이 가능하면 저녁식사를 같이했으면 하는 의사다.
9시 22분.
표고 980m에 위치한 치노(茅野)市立 北部中學校, 치노(茅野)市 北部生涯學習セソタ에 들어섰다. 정갈한 사찰에 들어선 분위기다. 미리 연락을 받은 50대 중반의 쿠보타 마사노리(窬田正典)교장 등 관계자들이 본 건물 앞에 마중을 나왔다. 본관 안으로 들어섰다. 마루를 깐 복도와 교실이다. 교장은 물론 교사와 직원들 모두 명찰을 달고 있다.
<自主 忍耐 審美>
교훈을 힐끔 봤다. <심미(審美)>라는 교훈에 한참 시선을 멈췄다. 코보다교장의 교육관의 하나이리라. 어제 오후 들렸던 치노(茅野) 시청 회의장과 유사한 사각탁자를 두른 원탁회의장으로 들어갔다. 쿠보타 학교장과 본 방문단 대표간의 인사를 나눴다. 이어 학교 전반에 관한 질문과 답변이 이어졌다.
교감선생님의 안내를 받으며 교내를 시찰했다. 호텔과 다름없는 깨끗한 실내다.
영어-수학-역사-과학 등 실제수업참관 시간이다. 20~25명 남녀합반이다. 능력별-수준별 수업이 진행 중이란다. 남학생들은 우리들이 착용했던 1960년대 검은 교복차림이다. 교복에 명찰을 붙인 학생은 절반이다. 바지길이가 제키보다 약 10여 Cm 이상 길어 물어 봤더니 저학년에서 고학년이 될 때까지 입히려는 부모들의 뜻에 따른다고 하지만 너무 길어 바닥에 질질 끌고 다니거나 바지 끝자락의 조직이 풀어져 보기에 민망했다. 두발은 자유지만 정발한 학생이 많았다. 교사복장과 두발은 자유다. 교실엔 그들의 국기가 보이지 않았다. 개인의 삶과 개성을 존중한다는 그들의 논리다. 수영은 섬나라 특유의 사정인지 필수과목이란다. 이과(理科), 즉 우리네의 과학수업이 진행되는 과학실을 참관했다. 20년 전부터 가정과 기술이 합친 과목으로 운영된다고 한다. 콧수염과 턱수염을 기른 과학담당교사의 용의가 눈에 거슬렸다. 우리네 정서와 다르기 때문이리라. 합창대회를 앞두고 열심히 연습하는 음악실도 참관했다.
옥상 아래 층에엔 치노(茅野) 시에서 기증했다는 2,700만 엔의 직경40Cm 천체망원경을 관람했다. 평생학습의 일환으로 치노(茅野) 시민들에게도 개방된다는 천체망원경을 실험하는 실험교사의 눈빛이 당당하고 자랑스럽게 비쳤다.
약 60분간에 걸친 수업참관을 마치고 회의실로 집결했다.
복도는 미끄러운 마르바닥이지만 뛰어다니는 학생이 하나도 없어 물어봤더니 안전사고는 전무(全無)란다. 중학교까지 급식실이 있고 교내 매점은 없다. 교실청소는 수행의 의미로 학생들 스스로 담당한다. 교사화장실은 교사들이 당번을 정해 교사스스로 청소한다는 대목에선 말문이 막혔다. 교사근무시간은 오전 8시 15분부터 오후 5시지만 대개 밤 7시~9시까지 근무하고 퇴근한다. 그렇다고 한국처럼 초과근무수당을 요구하는 경우가 없다. 철저한 지방자치제도가 발달한 일본은 부적격교사는 학부모들과 시민들의 저항에 부딧쳐 퇴진한다고 한다. 50분 수업으로 5~6교시를 마친 학생들은 각기 동아리나 특별활동시간을 갖으며, 교사들이 이를 관리하고 지도한다. 자유분방한 학생들의 표정이 퍽 인상적이다. 이곳 치노(茅野) 시에도 12명의 등교거부학생이 있어 시에서 지도하며, 이지메현상(집단따돌림)을 관리지도하는 상담교사가 있다고 한다.
실내에 휴지나 씹다버린 껌 하나 없는 학교, 울타리 없는 학교, 과공비례(過恭非禮)가 무색한 정성된 손님맞이, 깔끔한 매너 등 어느 것 하나 흘릴 수 없는 인상이 각인된 오늘이다.
과수원 농사를 짓는 84세의 노부(老父)에게서 가지고 왔다는 쿠보타 마사노리(窬田正典) 학교장으로부터 사과를 선물 받은 일행들은 기념촬영을 마치고 이별의 인사를 마쳤다.
10시 55분.
예정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는 학교방문을 끝내고 다음 목적지인 나고야(名古屋)시를 향해 출발했다. 나고야까진 약 2시간 30분이 소요된다고 한다. 소담한 치노(茅野) 시내로 진입했다. 평화롭고 조용한 맑은 시내다. 사정이 허락된다면 오래 동안 머물고 싶은 작은 도시 치노(テの, 茅野)시는 일본의 여타 도시처럼 기억에서 사라지질 않을 것이다.
11시 11분.
헤어지는 시간이다. 11월 26일 오전 11시에 만나 만 48시간 동안 침실을 제외한 나머지 시공을 같이했던 안내자 (社)新州-長野縣觀光協會 商品企劃部 요시미(吉味秀明)상과 長野縣企劃局國際課 이규영(李珪榮, 30세)씨와 이별하는 치노(テの,茅野)시 역전.
회자정리 이자정회(會者定離 離者定會)라.
그들은 다시 그들의 직장인 나가노(長野)시로 돌아간다.
차창에서 눈물을 훔치는 이규영(李珪榮, 30세)씨의 모습이 자꾸 걸린다.
12월 4일 오후 미팅에서 합류한다던 이규영(李珪榮, 30세)씨는 사정상 어렵다는 조부장의 전갈이다.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내릴 손님을 부려놓고 떠나듯 무심한 버스는 나고야시를 향해 움직였다. 학교교류는 1차로 학교간 방문-신뢰감-자매결연이라는 등식을 이야기 하는 조부장의 조언이다.
11시 28분.
고속도로에 들어섰다.
<나고야(名古屋) 198Km>
스와코(白樺湖)를 우측에 끼고, 호수를 안고 있는 평면도시 스와(白樺)시를 다시 차창으로 굽어보는 시간이다. 시키는 것-받으려는 것-공부 않는 것 등 한국초등학교교사의 3대 습성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하는 일행인 일산 흥진초교 김용대 교장의 말에 어느 정도 수긍이 갔다.
12시 12분.
중앙알프스와 남알프스를 좌우에 낀 츄오자동차도(中央自動車道)를 달리는 버스는 코마가네(驅 ケ根)시를 통과했다. 질서정연한 시가지와 좌우에 즐비하게 늘어선 고산군들을 바라보는 마음은 전시실에 안치된 맛있는 음식을 멀건이 바라보는 기분이다. 화중지병(畵中之餠)의 경우다. 언제 한 번 이곳 알프스를 모두 섭렵할 수 있을까를 골돌히 궁리해봤다. 2500m 급 고산줄기를 따라 눈이 머물곤 하는 시간이 반복됐다.
12시 48분.
츄오자동차도(中央自動車道)를 달리는 버스는 야마구찌(山口)시를 거쳐 에나산터널(惠那山トンネル)를 빠져나와 기후(岐埠)현에 들엇다. 나가츠기가와(中津川)시를 막 지난 2분 후에 멎은 휴게소다.
나고야 시내를 관통하는 시간과 맞물려 점심시간이 예정보다 늦을 것을 감안한 조부장이 일본식 찹쌀떡(모치)를 사들고 와 배부했다. 조용한 휴게소지만 주변엔 방금 청소라도 한 듯 쓰레기 하나 눈에 띠지 않았다.
오후 1시.
휴게소를 출발했다.
앞좌석으로 옮겨 조부장과 이야기를 나눴다. 2008년 교직원 일본연수 때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한 질문이다. 교토시 비와코(琵琶湖) 담수어 박물관, 와타시노시고토관(나의 직업관 시뮬레이션 시설, 약 2시간 30분소요)에 대한 소개다.
1시 20분.
버스는 다미지(多治見)시를 통과, 아이치(愛知)현에 접어들었다.
이제 나고야시는 지척이다. 그러나 나고야 시가 가까워지며 통행차량의 증가로 속도는 느려졌다.
1시 35분.
나고야 시 외곽 小木IC에서 시내를 관통하는 도로로 들어섰다.
나고야(名古屋) 시는 토쿠평야에 자라잡은 해양성 기후답게 따사롭게 비쳤다.
인구는 210만명, 아이치현의 현천소재지로 일본의 주요산업지역의 하나로 교통의 요지로 발전되어 왔다. 시역(市域)은 동고서저(東高西低)로 동부의 대지로 서부의 충적지 및 남부의 간척지 위에 펼쳐지며, 기후는 온화하여 여름(8월)에는 기온이 약 26.6℃, 겨울(1월)에는 2.9℃정도이며 연평균강수량은 1,535mm이다.
일본의 명장 오다 노부나가와 도쿠가와 이에야스,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배출한 일본 3대 도시 중의 하나이다. 17세기 초에 일본을 통일한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나고야성(城)을 축조하고, 그 제9자(子)를 성주로 봉한 뒤 대영주(大領主)의 거성(居城)을 중심으로 발달한 도시다.
세계 제1차 대전 후 경제부흥정책으로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이루었고, 2차 세계 대전 중에는 모든 공장이 군수품 공장으로 전환되면서 연합군의 집중 공격을 받아 큰 피해를 입은 곳이다.
패전 후 침체의 늪에 빠져있던 나고야는 한국전쟁으로 말미암아 화려하게 부활했으며, 이후 대대적인 복구사업에 힘입어 지금과 같은 산업도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전쟁으로 인해 유적지가 파괴가 되어 도시 규모에 비해 볼거리가 그다지 많지 않다. 나고야의 상징인 나고야성은 전후 재건된 성으로 웅장한 위용을 갖추고 있다.
가라오케와 빠징꼬의 원조도시 나고야엔 우리의 맨션에 해당하는 아파트는 대개 2층 정도이며 모두 월세다. 일본의 거품경제 이후 일본 대졸자들의 구인난이 심각하다고 한다.
2시 05분.
저녁 식사준비로 접어야 할 식당에 가까스로 도착한 시각이다.
재단법인 나고야관광 컨벤션뷰로[(財)名古屋 觀光 コンベンションビューロー]관광부 국제담당부장 쿄수케 카와조에(川添恭介. 50대 초반), 주사(主事) 나가오 사토코(永尾知子, 49대 후반 여성)상 두 분 안내자가 마중을 나왔다.
아사히 비아 레스토랑 스퍼도라이(ビアレストラン スパードライ) 식당에서 뷔페식 음식으로 중식시간을 가졌다. 다음 스케쥴이 바빠 분주한 식사를 마쳤다.
2시 35분.
식당을 나와 도요다 산업기술관으로 이동이다.
초등학교 1학년생으로 보이는 20명의 학생들과 하교를 지도하는 여교사의 모습이 보였다.
2시 47분.
나고야시 西區 則武新町 4-1-35 도요타 산업기술기념관(TOYOTA 産業技術記念館)에 닿았다.
기념관 안내를 맡은 다케오상의 인사다.
도요타 자동차의 발상지이며 본사건물이었던 이곳을 13년 전 기념관으로 변경했다고 한다.
대지면적 41,600m평방, 건평 27,100mㅇ평방, 전시장 면적 14,300m 평방의 전시관이다. 환상직기에서 시작한 방직기를 시현하는 거대한 내부다.
이어 자동차 제작 역사를 소개하는 실내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일본인의 성격대로 혼네(속, 즉 건물내부)와 다테마에(겉, 기념관 외부)를 읽을 수 있는 전체적인 평가다.
3시 53분.
이웃한 노리다케(ノリタケ食器, 安曇野 アートヒルズミュージアム) 전시관으로 이동했다. 당당직원의 소개와 그가 리드하는 관람절차를 거쳤다. 100주년 기념의 해인 2001년에 개설했다는 전시관은 우리의 자기와 도공들의 수난사가 상기되는 계기가 됐다.
본차이나(우골 30%)와 관계를 생각해 봤다.
4시 48분.
노리다케(森村 大倉 記念館)을 일별하는 시간도 가졌다.
일행들의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지금이다.
5시 10분.
나고야 캐슬(Nagoya Castle) 호텔로 돌아와 여장을 풀었다.
일행 모두 호텔건물 5층에 배정됐다.
쿄수케 카와조에(川添恭介. 50대 초반), 主事 나가오 사토코(永尾知子, 49대 후반)상이 리드하는 저녁식사를 위해 다시 라운지로 모였다.
5시 39분.
시내로 들었다. 1시간 20분간의 시간이 주어졌다.
햐큐엥(백 엔)짜리 상품시장인 名古屋榮スカイル店이 있는 7층으로 올라갔다.
한국의 천 냥짜리 매출 상점이다. 남녀노소 일본인 구매자들로 가득했다.
밤 7시.
두 사람의 안내자의 안내대로 나고야의 명물이라며 燒(赤から鍋辛さ) 식당에 들었다.
두 사람이 일행들에게 대하는 세심한 배려, 그리고 부하인 나가오 사토코(永尾知子)상이 상사인 쿄수케 카와조에(川添恭介)상에 대한 일본인들만이 갖는 깍듯한 예우가 돋보였다. 쥬니치와 선동렬-이종범 선수, 그리고 호시노 감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공통대화에 무척 반기는 표정이다. 일본 라면은 우리에겐 다소 느끼하고, 우동은 칼국수와 유사하다. 일본의 칼국수는 나고야의 명물로 기스면과 흡사하다고 한다.
오랜만에 만난 동창생들 간에 나누는 정겨운 대화가 오갔다.
8시 55분.
식당 밖으로 나왔다. 두 사람의 안내자는 이국의 밤을 즐겁게 보내라며 내일 아침 뵐것을 약속하며 헤어졌다.
일행들은 2차 생각과 나고야의 빠징꼬 생각이 있었나보다.
양정 유교장, 등촌 강교장과 함께 택시를 타고 일행에서 떨어져 나와 숙소인 나고야 캐슬(Nagoya Castle) 호텔로 돌아왔다.
피곤에 절은 전신을 침대위에 내던진 시각은 10시 20분이었다.
제4일차 : 2007년 11월 29일(목)
새벽 4시 기상 후 뒤척거리다가 6시 10분이 넘어 호텔 밖으로 나왔다.
오늘 오후는 귀국하는 시간이다.
호텔 맞은편은 해자(垓字)를 낀 나고야 성 후면이다.
해자를 따라 좌측으로 잠시 가다보면 코너다. 코너에서 북쪽방향으로 이어진 해자를 따라 나고야성 우측을 걸어갔다. 새벽 운동을 나온 사람들이 간혹 보인다.
나고야 성.
나고야 성 대천수나고야 성 (일본어: 名古屋城, なごやじょう)은 오와리 國 아이치 군 나고야에 있는 성이다. 오와리 도쿠가와가 17대의 거성으로 긴코조(金鯱城: 금 샤치호코 성), 긴조(金城: 금 성)으로도 불린다. 성이 있는 곳은 현재 아이치 현 나고야 시 나카 구=기타 구의 메이조 공원에 있다. 이세 민요에도 『이세는 나루를 품고, 나루는 이세를 품고, 오와리 나고야는 성을 품네』라는 대목이 나온다. 오사카 성, 구마모토 성과 더불어 일본 3명성이다. 천수에 놓인 긴샤치는 성뿐만 아니라 나고야의 상징이다. 이마가와씨, 오다씨의 나고야 성(那古野城)은 지금의 나고야 성의 니노마루에 위치한다.
옛 나고야 성은 오다 노부나가가 태어난 곳이다.
나고야 성의 성터는 쇼나이 강이 만들어낸 노비 평야에 서북단에 위치한다.
그리고 그 장소는 북쪽에서 노비평야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군사적 요충지다.
축성전, 대지(臺地)는 서쪽면과 북쪽면이 깎아지는 절벽이다. 그 절벽 밑에는 저습지가 있어 천연의 방어라인을 형성했다. 또 대지의 서쪽 끝에 접해있는 호리가와 강을 굴착해, 이세 만에 인접한 항구(아쓰타 신궁 앞마을)로부터 축성물자 수송과 나고야 성하 마을의 서쪽을 지키는 역할도 겸하고 있다.
이와 같이 나고야 성의 입지는 서쪽으로부터의 공격을 고려해 지어졌다. 오사카 성의 도요토미씨 등 서국 다이묘가 도카이도를 통해 에도로 진격했을 때, 그것을 저지하는 역할을 일정부분 기대했다고 보았다.
나고야 성의 방어라인은 각각의 성곽이 곧게 뻗은 직사각형태인 성벽을 많이 가지고 있다. 각 모퉁이는 단순한 직각형태다. 따라서 히메지 성과 같이 복잡한 굴곡을 많이 가진 구조를 좋아하는 에도 시대 군사학자에게는 썩 좋게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어느 군사학자는「방어라인이 좋지 않다」라고 혹평했다.
그러나 현대의 성곽 연구자들로부터는 다음과 같은 의견을 나타냈다. 즉, 나고야 성이 축성된 에도 시대초기는 공성전술과 기술이 성숙된 시기다. 이 시점에서 볼 때 서쪽으로부터의 공격에 대비해 도카이도 방위의 최대 거점으로 나고야 성을 선정했던 것을 감안하고 방어라인을 평가해야 된다. 당시 성에서 농성전을 할 때, 방어, 전략, 전술을 어떻게 기획, 분석, 판단했는지를 생각한다면 단순히 방어라인이 좋다 나쁘다라고 단언할 수 없다.
구조는 전형적인 제곽식 평성으로 혼마루를 중심으로 해서 남동쪽을 니노마루, 남서쪽을 니시노마루, 북서쪽을 오후케마루가 둘러쌌다. 더욱이 남에서 동으로 걸쳐 산노마루가 덮어 있다.
혼마루의 3개의 호구(성곽의 출입구) 안에는 남쪽의 오테 입구와 니노마루의 2개소의 가라메테 입구가 있다. 그리고, 해자 안쪽에는 2중 성문으로 된 원통형으로 된 문이 있고, 해자 바깥쪽에는 우마다시(성곽의 호구 앞에 설치된 방어시설, 개구부를 성측으로 향해있고, ㄷ자 모양 또는 C자형의 벽으로 둘룬 구역)가 있어 입구를 2중으로 두텁게 했다. 원통형내 통로를 굴곡시켜 주위를 다몬 망루로 둘려져 행군을 어렵게 했다. 또, 외성곽으로 부터 토교(土橋)를 통해 우마다시로 들어오는 통로에는 장해가 되도록 직선형태의 작은 석축이 있으며, 혼마루 뒤쪽으로 향할 수 없도록 했다. 우마다시의 배치도 정교해서 일부 성곽을 점령하더라도 혼마루에는 쉽게 진입할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다. 또 어느 호구를 공격해 다른 호구로부터 출격해 격퇴하도록 설계되었다.
서쪽과 북쪽에는 해자 및 저습지로 막혀있고, 남쪽과 동쪽으로는 산노마루가 니노마루와 니시노마루를 둘러싸 막고 있다. 그리고 그 바깥쪽에는 폭이 넓은 물이 채워지지 않는 해자와 물이 채워진 해자로 방어된 외성곽으로 구성되었다.
더욱이 그 외측에는 소가마에 또는 소가 구루와라고 불리는 성과 성하 마을이 자리잡을 계획이었다. 서쪽에는 히와지마하시(枇杷島橋), 남쪽은 옛 후루와타리 성부근(古渡旧城下), 동쪽으로는 야다가와하시(矢田川橋)에 이르는 광대한 면적을 가졌지만, 오사카 전투가 끝난후에 건설은 중지되었다. 이로 볼 때 나고야 성의 축성목적이 무엇이었는지 명확히 알 수 있다.
천수
천수는 혼마루 북서쪽 구석에 있다. 에도 시대초기 성곽을 대표하는 것 중 하나다. 대천수와 소천수를 연결하는 형태이고, 대천수 지붕위에는 도쿠가와가의 영화를 나타내는 긴샤치로 장식되었다.
대천수는 5층5계, 지하 1층으로 된 건물로, 높이 55.6m(석축 19.5m, 본체 36.1m)로 18층 고층건물에 상응한다. 높이야 말로 에도 성과 도쿠가와씨가 다시 축성한 오사카 성의 천수에는 미치지 않지만, 면적으로 치자면, 두 천수를 능가하는 4,424.5m2을 자랑한다. 그 내부에는 1,759장의 다다미가 깔려있다. 천수의 구조는 승탑형이라 불리며, 천수 받치는 아래층에 지붕은 팔짝 지붕이 아니다. 따라서 천수 자체의 균형을 잡기위해, 천수 한층의 평면이 대체적으로 정사각형의 형태를 띄게 되었다.
소천수는 2층2계, 지하 1층으로 대천수의 현관 역할을 한다.
평면은 직사각형으로 외견상 천수는 1612년에 완성되었고, 이후 333년간 나고야에 그 위용을 뽑냈다. 도중, 몇 번의 지진과 화재로부터의 소실을 모면했고, 메이지 유신 후 폐성의 위기도 벗어났다. 그리고 진도 8.0의 노비 지진도 잘 견뎌냈지만, 1945년 공습에 의해 석축만 남긴 채 소실되었다.
천수의 재건을 시작한 것은 1957년 나고야 시 제정 7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재건이 시작되었다. 이 때, 대천수를 목조건물로 지을지를 결정하는 논의가 있었지만, 결국 석축내에 케이슨기초를 설치하고, 그 위에 철골철근콘크리트(SRC) 구조로 대천수를 짓게 되었다. 석축자체만으로 건물의 중량을 이겨낼지 우려도 있었기 때문에 기공식은 1958년 6월 13일, 준공식은 1959년 10월 1일에 했다. 그에 앞서 6일전에는 태풍 베라의 영향으로 나고야 시를 비롯해 도카이도 지방 전역이 큰 피해를 입었다. 재건된 대천수 내부에 승강기를 설치했다. 외관은 충실히 재현했지만, 최상층에는 전망대로서의 역할 때문에 소실전보다 창이 더 커졌다. 그래서 아랫 층과 비교하면 약간의 위화감이 존재한다.
외침을 당한 적이 없던 일본은 제2차 대전 말 폭격으로 파손된 나고야 성을 주민들의 성금으로 재건했다고 한다.
역사적 흔적을 맡아보는 새벽공기는 차분했다.
조용한 도시의 정취가 제대로 묻어났다. 해자 수면 위로 백조 몇 마리가 노닐고 있다.
호텔조식을 마치고 로비로 내려왔다. 로비 화장실에 들렀을 때 열심히 소변기를 맨손으로 쑤세미에 비누칠을 해서 닦고 있는 여자종업원의 손길이 무척 아름답고 성실해 보였다. 직업관이 뚜렷한 그들의 성실한 직업정신을 한참이나 응시했다. 자신이 맡고 있는 일에 열중한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
호텔주변을 거닐었다. 호텔 후면 응장교(鷹匠橋) 아래로는 굴천(堀川)이 흐르는 겹해자다. 말하자면 굴천(堀川)은 1차방어선이고 호텔 앞면과 나고야 성 사이의 해자는 제2차방어선인 셈이다.
<My toun my river. 堀川を淸流に !>
하천오염을 막자는 프레카드가 걸려있다.
하천의 일부구간이 복개된 공간에서 안전모를 쓴 근로자들 10여 명이 작업 전 체조를 하고 있는 장면이 이채롭다. 지나가는 택시는 운전석에서 우리의 버스처럼 앞, 뒷문을 여닫는 개폐장치가 되어있다.
오전 8시 56분.
쿄수케 카와조에(川添恭介)-나가오 사토코(永尾知子)상이 벌써 나와 대기하고 있었다.
인사를 나누었다. 체크아웃을 마치고 호텔을 떠났다. 우리에게도 친숙한 쥬니치 신문사 앞을 지났다. 신도를 누르기 위해 캐톨릭을 끌어 들여 이이제이(以夷制夷)의 정치적 수완을 보였던 토쿠가와다. 대화기법에서 우리는 이분법적 사고가 발달해 직설적표현을 한다면, 일본은 은유적 표현을 즐긴다. 일본인들@토쿠든 사물엔 혼이 있다는 에니미즘적 사고를 갖고 있다. 직하여 뛰어난 사람을 신격화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여몽연합군의 일본 원정당시 불었던 태풍을 제1신풍(神風), 한국동란을 전후복구의 기회로 삼았다하여 제2신풍(神風)으로 호칭하는 것도 무관하지 않다.
<고려사(高麗寺)>
차창 밖 스친 간판이다. 잠깐 비친 간판이지만 반갑다.
우리의 교육열과 고급두뇌를 일본은 두려워하고 있다. 일본이 강하면 한국도 강하게 된다는 이론은 남미 모든국가의 축구가 강한 것과 동일하다는 얘기다. 설왕설래 끝에 오전 일정에 따라 신궁을 찾아가는 버스다.
9시 18분.
아츠다신궁(神宮) 서문 앞에 도착했다.
신궁입구 대리석 제단위의 헌등(獻燈)이 있다.
<승입금지(乘入禁止)>
탈것을 타고 들어갈 수 없다는 경구다. 별로 쓸 것도 없는 입구마당을 빗자루로 쓸고 있는 노인이 보였다. 정면으로 약 50m 쯤 직선으로 들어가다 좌측 직각으로 꺾었다. 손씻는 곳, 헌주(獻酒), 아까부터 방목하는 수탉 한 마리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일행 앞을 안내하고 있다. 마치 기르는 강아지처럼 능청스럽게 앞서가고 있다.
일본의 화장률은 약 99%다.
단 일왕(日王), 즉 그들이 말하는 텐노오(天皇)는 제외한다고 한다.
<創祀千九百年神と人心を結ぶ こ造營, ご奉贊のお願い>
1900년 전에 신궁을 만들었다는 프레카드가 걸려있다.
나무 창틀 사이로 신궁 내부를 일별하곤 뒤돌아섰다.
9시 40분.
신궁을 떠나 두 번째 코스로의 이동이다.
수고하는 조부장에 대해 찬조금을 모아 주자는 모교장의 제의가 있었다. 이미 안내인의 자격으로 팁을 받으면 스스로 무너진다는 본인의 의사를 들은 바 있어 없던 일로 치부하기로 했다. 시가지 사이를 이동하며 점심은 나고야의 명물요리인 살모사라고 불리는 히츠마부시(櫃まぶし), 장어덮밥으로 예약했다고 한다.
오오츠도리(大津通)을 지나갔다. 1989년 당시 일본 여행 당시 들은 얘기지만 단까이세대로 불리는 현 일본 남자들은 황혼이혼을 요구하는 부인네들의 등쌀로 어려운 처지라고 한다. 이혼한 부인에게도 연금혜택을 주자는 법안의 발효로 빚어진 남자들의 수난이 이웃 일본만의 사정이 아닌 우리나라에도 불고 있다.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문제다.
일본엔 노숙자는 있어도 걸인은 없다고 한다. 노숙자도 폐품을 수거해 생존을 해결한다고 한다. 버블경제 붕괴이후 가족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사장출신 노숙자가 흔하다고 한다. 아침 식사 후 호텔 뒷면에서 폐품을 가들 담은 포대를 어깨에 매고 지나가는 노숙자 한사람을 목격한 바 있다.
일본인들은 물건을 버리더라도 리사이트해 버린다.
또 요일별로 버리는 물건이 정해져 있다.
9시 55분 ~11시까지.
약 한 시간 가량 물품구입시간을 갖기 위해 나고야(名古屋) 熱田區 六野一目町에 위치한 Family style park 주차장에 멎었다. 구입품에 대해 후회 없도록 할 것이며 면세점과 가격을 비교하지 말라는 당부가 있었다. 낯선 상품들로 어지러운 매장풍경이다. 상점점원의 따뜻한 안내와 서비스가 기분좋은 오늘을 만들었다. 아내가 부탁한 화장품을 여기저기 찾아봤지만 구하지 못했다. 손자손녀들이나 가족들 몫으로 몇몇 상품을 구입한 일행들이 다시 모였다.
11시 32분.
中央三井信託銀行 빌딩 지하인 식정(料亭 大森)으로 이동했다.
나고야의 명물요리인 히츠마부시(櫃まぶし)는 장어의 복부를 열어 찌지 않고 한 마리를 통째로 구어 내는 나고야식 장어덮밥이다. 생각보다 맛이 괜찮았다.
220v를 사용하는 우리에 비해 일본의 호텔은 대부분 110v로 사용하는 이유를 물었다.
전자는 효율성은 높으나 인체에 유해한 면이 있다는 견해다.
동양 삼국의 젓가락 문화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12시 15분.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약 40분간의 짬이 있다고 했다.
이웃한 마츠자카야(マツザカヤ 松板屋) 백화점으로 들어가 아이쇼핑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여기서도 아내가 부탁한 화장품은 없었다.
오후 1시 5분.
중부국제공항으로의 이동이다.
하구마도로를 관통하며 일본프로야구의 구단빌딩인 쥬니치빌딩을 가리킨다.
나고야 박물관과 미술관은 초중생은 무료다. 인프라에 이용하면 유리하다는 정보다.
이동버스 내에서 쿄수케 카와조에(川添恭介)-나가오 사토코(永尾知子)상의 이별인사말이 있었다. 얼마 후에 있을 헤어진다는 사실은 항상 무겁다.
나고야의 명물 된장요리에 대한 소개다.
미소니코마 우동, 미소가스, 덴가꾸, 미소오뎅, 미소도테 등 나고야만의 맛을 살린 각종 음식이 있다.
키시멘
폭이 넓은 면발의 우동으로 엷은 간장(쇼유)으로 맛을 낸 국물에 튀김, 푸른색 야채에
얇게 썰은 가다랭이(가쯔오부시)를 가미한 우동이다.
붉은 된장요리(미소가쓰)
메주 100%의 붉은 된장은, 나고야지방의 특산물로, 된장삶은우동, 된장돈가쓰, 된장오뎅등을 가미한 산뜻한 맛은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카시와요리(나고야코친)
닭고기요리를 나고야에서는 이렇게 부른다. 사육일수가 2.5배정도 걸리는 나고야 코친요리는 씹이는 맛이 있고, 독특한 향이 있어서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미즈타키,토리스키, 야끼토리등의 요리법은 다양하다. 군제와 푸른된장등의 가공품도 있다.
텐무스
새우튀김이 들어간 김밥에 가지를 넣은 요리로 이름있는 연예인이 거론해서 화제가 되어, 눈깜짝할 새에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나고야 명물이 되었다.
한국처럼 대단위 아파트는 보이지 않고, 거의 평면에 가까운 나고야시는 서울면적과 비슷하다. 시 외곽의 작은 구릉마저 없었다면 더 삭막했을 것이다. 東海大部-半團(Handa)시를 지났다.
1사 50분.
나고야시 외곽 해변의 중부(中部)공항에 도착했다.
이별의 시간이다. 3박 4일간 우리들의 발이 되어준 이께다 기사님께 작은 성의를 표시하고 인사를 나눴다. 여타공항과 비교해 한적한 공항분위기다. 출국수속을 했다. 수많은 여학생들이 질서정연하게 대합실 바닥에 앉아있는 모습이 얌전하다. 내용을 물어보니 한류스타의 한 사람인 이병헌씨를 맞기 위한 환영인파라고 한다. 교육적인 시각으로는 씁쓸했지만 한류스타에 대한 인기를 직접 목격하고 보니 싫지만은 않았다.
2시 08분.
출국장으로 나서며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쿄수케 카와조에(川添恭介)-나가오 사토코(永尾知子)상과의 악수와 함께 눈으로 이별인사를 나눴다. 일본인과 헤어질 땐 최소한 3회 정도는 돌아보고 인사를 나눔이 통례라는 말을 재차 경험했다. 그들은 공항에서 전철을 타고 직장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조부장의 귀띔이다. 우리로 말하면 서울시내에서 대접해주고 인천공항까지 배웅하는 경우다.
회자정리 이자정회(會者定離 離者定會)를 곱씹는 지금이 저릿함은 인지상정이리.
공항 내 면세점 쇼핑시간이다.
1,300엔짜리 산요면도기, 3,000원짜리 화장품을 일행들의 권유로 얼결에 구입했다.
3시 25분.
21번 Gate를 통과해 중부국제공항 출발 KE758편에 탑승.
만 4일 만에 접하는 한국신문을 받았다. 마치 대기권 밖에서 안으로 들어선 기분이다. 뉴스실조(失調)이며 정보실조(情報失調)였던 4일간은 어쩌면 스트레스 없는 편안한 생활이었다. 국내정세를 한눈에 접하는 지금이 착잡하다. 잃어버린 10년을 보상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기를 비는 마음 간절하다.
3시 50분.
KE758기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본 동해를 거쳐 상공으로 진입, 우리의 남해안-서해안을 거쳐 비행할 비행시간은 대략 2시간이라고 한다. 운해(雲海) 속으로 진입한 KAL기는 서북방향으로 움직였다. 창 아래에 깔린 운해를 내려다보는 지금은 손오공이라도 된 양 가뿐하다. 멀리 구름띠가 보인다. 운평선(雲平線)은 음양의 경계를 보인다. 구름의 위에는 석양이, 아래는 새털구름이다.
4시 02분.
기내식을 분배받았다.
발아래 부운(浮雲)의 흐름이 마치 오염된 하천의 오염물질처럼 보였다.
때론 구름바다로, 양극(兩極)의 바다에 흐르는 빙괴(氷塊)와 유사하다.
5시 10분.
비행기는 맑은 한국의 남해마을 상공을 지나가고 있다.
옆자리에 앉은 덕원 윤교장과 신상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신임교사 채용논술과 면접시 시국문제나 사회봉사 실적을 활용하면 좋다는 그의 의견이다.
5시 30분.
황혼이 밀려드는 경기도 상공이다.
마음이 착 가라앉은 지금이다.
5시 52분.
인천국제공항에 착륙완료다. 비행시간은 1시간 50분간이었다.
상당한 어둠이 내려앉은 활주로와 출구다.
입국수속을 마친 후 일행들과 각기 인사를 나눴다. 생존의 이별의 연속인가보다.
6시 25분.
출영 나온 윤교장 교직원 승용차편에 편승했다.
공항도로가 한산했다.
7시 05분.
발 빠르게 내발산동에서 하차했다.
마침 내린 지점이 김장숙씨네 가게 앞이다. 마른 목을 축이려고 잠깐 들렸더니 이희용씨 일행들이 거나한 식탁을 차지하고 있었다. 구면인 사람도 끼어있었다. 합석해 건했던 목을 축이는 과정을 보냈다.
8시 30분.
귀가했다.
<여록>
12월 4일 오후 7시.
막 김포공항에 내린 (社)新州-長野縣觀光協會 商品企劃部 요시미(吉味秀明)상과, 동연배인 (社)新州-長野縣觀光協會 新州道樂 학습여행유치추진협의회 事務局長 나카자와(中澤孝史)을 대동한 현대관광 교육여행부 조성영(趙成永)부장, 그리고 명덕 김교장 등 5명이 발산역 부근 <대박집>에서 저녁식사와 노래방 순례 등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일본 체재 중 받았던 대접에 대한 작은 보답이라도 되었으면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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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 28일 (일) 19:20 매일경제
[단풍여행]일본 알펜루트ㆍ구로베협곡을 따라서
찬바람과 함께 찾아온 반가운 손님이 있다. 거리를 붉게 물들인 단풍이다. 좀 더 진한 가을 정취를 만끽하기 위해 단풍나들이를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늘 보는 익숙한 풍경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일본 도야마현의 알펜루트와 구로베협곡 일대를 추천한다. 우리나라에서 보는 단풍과는 또 다른 멋과 맛이 있다.
◆웅장하게 펼쳐진 대자연의 파노라마 =
일본인들은 물론 외국인들에게 단풍여행지로 사랑받는 도야마현은 사시사철 매력을 뽐낸다. 여름날 푸른 숲부터 한 겨울의 얼음벽과 보드라운 눈이 만들어내는 장관, 그리고 가을철 단풍과 온천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다채로운 풍경을 자랑한다.
도야마현은 웅장한 대자연의 파노라마를 마주할 수 있는 곳이다. 다테야마 산맥을 중심으로 3000m가 넘는 준봉들이 이어지는 산악루트가 알프스를 연상시킨다고 해서 '알펜루트'라 불린다. 알펜루트는 '알프스로 가는 길'이라는 뜻으로 도야마현 다테야마역에서 나가노현의 오기사와역까지 총 86㎞ 길을 일컫는다.
이곳은 전차와 케이블카, 로프웨이, 고원버스, 트롤리버스 등 다양한 교통수단을 이용해 이동하는 재미가 있다. 케이블카를 타고 알펜루트를 오르다 보면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에 넋을 잃을 정도다. 360도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이 황홀함으로 다가온다.
알펜루트 중간에는 거대한 암벽 '아쿠시로노카베'를 비롯해 낙차 350m로 일본 최대급 위용을 자랑하는 소묘폭포 등 명승지가 있어 여행 재미를 더해준다.
알펜루트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무로도고원은 높이가 해발 2450m에 달한다. 무로도고원에서 다테야마 정상까지 오르며 트레킹을 즐겨보는 것도 좋다. 그러나 고산지대이기 때문에 빠르게 걷거나 뛰면 다소 어지러울 수 있으니 적응하기 전까지 천천히 걷도록 한다.
◆열차 타고 탐험하는 협곡 =
일본에서 가장 깊은 협곡으로 일컬어지는 구로베협곡은 다테야마 연봉과 우시로다테야마 연봉 사이에 위치해 있다. '구로베'라는 이름은 이 일대를 둘러싸고 있는 준봉에서 많이 볼 수있는 구로베(노송나무) 원생림에서 비롯된 것이다. 협곡을 둘러싸고 있는 삼림의 경관은 광대함 그 자체다. V자형으로 깊게 파인 협곡을 따라 구로베강이 흐르고 그 강을 따라 구로베협곡 열차가 다닌다.
과거 일본의 전력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눈과 비가 풍성한 이곳에 수력발전댐을 건설했다. 터널을 뚫고 철교를 놓아 광산에서 사용하는 작은 열차인 도로코 열차를 개통시켰다.
댐 건설을 앞두고 바쁘게 건설 자재를 실어날랐던 열차는 오늘날 수많은 여행객을 실어 나르며 여전히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거친 협곡을 넘나드는 도로코 열차 속도는 시속 13.4㎞에 불과해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며 자연이 만들어 놓은 붉은 걸작품을 눈앞에서 볼 수 있다.
도로코 열차는 우나즈키온천역에서 출발해 종착역인 게야키다이라역까지 총 20.1㎞ 거리를 운행한다. 운행시간은 1시간20분가량 소요된다. 41개의 터널과 25개의 다리가 놓여 있는데 그 중에서도 협곡 내에서 가장 깊은 계곡에 놓인 우시로비키 다리는 길이 55m, 높이 56m에 이르는데 이곳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일품이다.
구로베호수는 구로베강에 댐을 쌓으면서 조성된 인공호수다. 유람선을 타고 다테야마 준봉과 주변 경관을 충분히 감상할 수 있어 관광객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63년 완성된 구로베댐은 높이 186m, 폭 492m를 자랑하는 세계 최대급 아치식 돔형 댐이다. 댐 상부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박력 넘치는 방수 모습은 또 하나의 장관이다.
△항공=아시아나항공에서 인천~도야마현 직항편을 운항한다.
비행시간은 약 1시간40분 소요된다.
△기후와 옷차림=우리나라와 대체로 비슷하다. 우리나라의 가을철 옷차림에 맞춰 준비하되, 고지대는 기온이 낮을 수도 있으니 두툼한 점퍼를 챙겨가는 것이 좋다.
△상품정보=호도투어는 '고마츠ㆍ알펜루트ㆍ구로베협곡 4일' 상품을 판매한다. 알펜루트를 따라 구로베댐, 구로베호수, 다테야마 등을 관광하고 구로베협곡 도로코 열차에 탑승해 경치를 감상한다. 온천욕도 즐길 수 있다. 각종 세금, 유류할증료, 관광지 입장료, 여행자보험 포함 요금 89만9000원. 10월 31일, 11월 4ㆍ7일 출발. (02)6900-9202.........................................
[편집자에게] 여행 서비스는 무료가 아니다
양무승·한국일반여행업협회 부회장 : 2009.11.18
2008년 지난 한 해 동안 한국을 찾은 외래 여행객은 690만여명에 달하며 해외를 찾은 국민은 약 1200만여명에 이르고 있다. 또한 국내 여행객이 약 3500만명으로 추산되어 총 5400만여명이 국내외 여행을 다녔다. 전 국민이 평균 1회 이상의 여행을 하고 있다는 통계로 미뤄 볼 때 이미 여행은 생활화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의 여행수준은 아직도 선진국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으며 여행과 관련된 제도와 인식이 열악해 여행과 관련된 서비스도 선진화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선진화된 여행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몇 가지가 개선돼야 한다.
그 첫 번째가 여행 서비스는 곧 무료라는 잘못된 인식을 버려야 한다는 점이다. 유난히 한국에서는 서비스라는 개념이 공짜로 많이 인식되고 있으나 서비스는 결코 무료가 아니다. 여행 서비스를 굳이 정의한다면 '고객을 기쁘게 하고 기분 좋게 만드는 모든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여행 서비스는 의당 받아야 하는 의무로 잘못 생각하고 있다. 우리가 의사에게 진찰료를 내고, 변호사에게 변호 요금을 내고, 부동산 중개업자에게 중개료를 내는 것도 서비스에 대한 당연한 대가이다. 여행사에 내는 취급수수료도 똑같은 형태의 서비스이다.
두 번째, 다양한 상품의 선택을 통해 고객의 만족도를 높여야 한다. 누구나 고품격 여행 상품을 저렴한 가격으로 다녀오고자 한다. 잘못된 생각이다. 여행상품 안에는 항공료, 호텔 이용료, 버스 이용료, 식사 이용료 등 기본적인 비용을 계산한 여행상품 가격이 책정돼 있다. 여행을 기본비용으로 다녀오겠다며 A급 대우를 원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기본 상품에 좀 더 나은 여행상품을 원한다면 추가 비용을 더 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러나 여행상품은 사과나 배처럼 좋은 물건을 육안으로 고르기가 어렵다. 여행사가 좋은 상품과 고객에 믿음을 주기 위해서는 정부가 인증하는 '우수 여행상품'을 다양하게 선보여야 한다.
세 번째, 선진 서비스와 제도를 벤치마킹해야 한다. 여행업은 사전 예약을 전제로 하고 있어 사전에 좌석이나 객실을 선점할 수 있도록 제도를 뒷받침해야 한다. 여행업자가 여행약관에 여행 서비스 취급수수료를 자유롭게 명시하지 못한다면 선진 여행 서비스를 기대하기 어렵다. 뿐만 아니라 정부 기관이 운영하는 관람시설도 단체 인원산정과 할인율 적용 방법을 대폭 개선해야 한다. 여행 서비스의 검증과 체계화를 위한 '여행 상담사' 제도 도입과 소규모 여행사를 통한 다양한 여행상품 제공을 위한 '기획여행' 규제 완화, 소비자 보호를 위한 사업자 단체의 공제 사업 운영허가, 여행업종의 분류 단순화, 녹색여행상품 인증제 도입 등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