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며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영화는 이미 시작되어 화면에는 한 남자가 잔잔한 목소리로 오래전 자신이 겪었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의 이름은 알렉상드르, 다섯 아이들의 아버지로 사회적으로 성공한 삶을 살고 있다. 별로 부러울 것이 없어 보이는 이가 30년 전에 자신이 속해 있던 가톨릭교회의 보이스카웃에서 겪었던 일을 이야기 하는 중이다. 그가 교구의 사무실에 찾아와 오래전 자신이 겪었던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은, 자신에게 성폭력을 저질렀던 프레나 신부가 아직도 아이들을 맡아서 지도하고 있다는 것에 충격을 받은 것에서 비롯된다. 그는 리옹교구의 베르베댕 추기경에게 더 이상 프레나 신부가 아이들과 접촉해서는 안 되도록 조처를 취해 달라는 편지를 보냈다. 교구 본부에서는 친절하게 일을 수행하는 것 같이 하면서, 떠올리기조차 싫은 그 때 일을 상담사 앞에서 이야기 하도록 한 것이다.
알렉상드르는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그동안 밖으로 내어놓지 못하고 감추었던 일을 밖으로 드러내어 조처를 취해야 한다고 믿고 있기에, 바쁜 와중에도 열심히 교구 사무실을 드나들고, 끊임없이 이메일을 보내며 문제해결을 요청하는 중이다. 리옹 추기경인 베르베댕은 알렉상드르를 위하는 척하면서 30년이나 되어 공소시효도 지난 일을 왜 들추어내는지 적당히 무마하고 끝내려고 한다. 부모들도 ‘20년도 더 지난 일들을 왜 끄집어내느냐, 공소시효도 지났다. 왜 신부를 괴롭히느냐’고 하지만 그러나 알렉상드르는 포기하지 않는다.
그가 공소시효가 지나지 않은 피해자들을 찾아 이 일을 밖으로 알리고 가톨릭교회가 바로 서기를 바라며 일을 진행하던 중 프레나 신부를 고소하겠다고 행동에 나선 이가 프랑수아다. 그도 교회 보이스카웃 캠프에서 같은 일을 겪었고, 그 때의 상처를 잊지 않고 있다. 처음에는 자신이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부인이 “우리 아이들이 그런 일을 겪는다고 해도 가만히 있을 것인가?”하는 물음에 되돌아서서 고소인으로 나서겠다고 목소리를 낸다. 그리고 또 다른 피해자가 결심하고 나선다. 그의 이름은 에마뉘엘이다. 그는 그 때의 상처로 발작 증세를 가지고 있고 안정된 직장도 구하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다.
사건을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으면서도 침묵하고 있으면서 은폐하려는 교회와 고위 성직자들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세 사람은 ‘라 파를 리베레’(해방된 목소리)란 단체를 만들어 이 문제를 가시화 시키고 공론화 하여 프레나 신부의 파면과 베르베댕 추기경의 알면서도 덮으려했던 죄를 추궁하고 나선다. 이에 마지못하여 언론 앞에 나선 베르베댕 추기경은 ‘신의 은총으로, 공소시효가 지났다.’고 말한다.
그것이 진정으로 신의 은총일까? 진실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영화는 침묵할 것인가? 정의로울 것인가?를 모든 이들에게 묻고 있다.
이 영화는 실명 프레나 신부가 1979년부터 1991년까지 보이스카웃을 지도하면서 70여명의 아동성폭력을 저지른 것을 교회와 사회가 은폐해왔던 실제 사건을,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어 목소리를 내면서 모두에게 알리며 다시는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준 영화이다. 그러나 가해자들은 여전히 힘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엄청난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세계 이곳 저곳에서 지금도 범죄가 진행되고 있다.
늦게 도착한 극장에서 제목도 모르고 본 영화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진정으로 신의 은총이란 무엇인가? 이 말은 어디에서 어떻게 써야 하는 말인가? 가슴이 답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