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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아진>
항구가 빤히 보이는 앞바다에서 선내방송이 흘러나왔다.
“해군함 군사훈련 때문에 한 시간 후에 입항합니다”
전날 오후 속초항을 떠나 16시간만에 도착한 블리디보스톡이 러시아의 군항임을 새삼 깨닫게 했다.
러시아어로 ‘동방정복’이라는 뜻을 가진 블라디보스톡은 땅이 바다를 껴안듯이 만들어진 천혜의 항구로, 여객터미널에서 멀지 않은 곳에 군함 여러 척이 정박해 있었다.
“즈드라스트부이체(안녕하세요)”
입국 수속 창구에서 인사를 건네자, 뜻밖이라는 듯 안경 너머로 힐끗 이방인을 쳐다본 관리가 똑 같은 말로 답하며, 입국신고서의 기록을 꼼꼼히 살폈다.
보따리상으로 보이는 한 사람은 “러시아국민 우선”이라고 붙여진 입국 수속 창구 앞에서 “러시아인은 한 사람 수속에 15분이나 걸린다”며, “러시아인을 줄 속에 끼워서는 안된다”고 역설하고 있었다.
한러교류축제를 위해 속초에서 출정식을 치르고 출발한 우리측 방문단은 40여명.
민간베이스의 한러교류협력위원회를 이끌고 있는 김극기 북악포럼 회장(전 한국농촌공사 감사)을 위원장으로 해서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했는데, 이계익 전 교통부장관,
두시간에 걸친 입국 및 통관 수속을 마치고 숙소에 도착한 것은 현지시간으로
대부분 도요타와 닛산 등 일본제 승용차들이 도로를 메우고 있었는데, 최근에는 한국의 중고 SUV 차량들도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한다.
속초에서 열린 출정식에서 속초시장은 “지난해 블라디보스톡으로 선적된 한국 차량이 4000여대, 올해는 9월 현재 이미 6000대를 넘어섰다”고 밝혔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해주 일대에서 버스가 아닌 한국제 차량을 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숙소에서는 블라디보스톡 상공회의소장과 고려인대표 등과 함께 한 만찬 연회와 더불어 축제공연이 열렸다.
숙소 1층의 공연장에서는 극동국립대학 한국학대학 학생들이 출연해 사물놀이 공연을 했으며, 우리와 함께 간 비보이의 활기에 찬 춤 연출도 참석자들의 많은 박수를 받았다.
<2-드바>
처러내는 그늘뫼 아래로 흐르고,
하늘은 큰 지붕처럼 온 땅을 덮었구나.
하늘은 푸르고 땅은 아득한데
바람 불어 풀 누우니 소와 양떼가 보이네.
勅勒川陰山下(칙륵천음산하)
天似穹廬籠蓋四野(천사궁려롱개사야)
天蒼蒼野茫茫(천창창야망망)
風吹草低見牛羊(풍취초저현우양)
북방의 대평원을 그린 중국 북방민족의 노래다.
시야가 탁트인 드넓은 광야.
연해주를 달리는 차창 밖으로는 원시 광야가 이어졌다. 심지어 소와 양도 보이지 않는 드넓은 대지가….
아침에 블라디보스톡을 떠나 우수리스크를 거쳐 하롤지역에 있는 대순농장에 도착한 것은 막 점심때가 됐을 때였다.
대순농장은 러시아 국영농장을 정부로부터 임차해 쌀과 콩 밀 귀리 등을 경작하고 있는데, 올해는 2000만평의 땅에 작물을 심었다고 한국에서 온 농장관리인이 설명했다.
대순농장이 러시아 정부로부터 임차한 농장 면적은 연해주 각지에서 모두 4억평. 200평짜리 한국 논으로 따지면 모두 200만 마지기에 이르는 엄청난 크기다.
농장 관리인은 연해주 국영농장의 관개시설이 우리가 놀랄 정도로 잘 되어 있다며, 한 마지기에 2만4000평이나 되는 연해주 국영농장의 논에 물을 대기 위해 소비에트 정부가 과거에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입해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논들은 논두렁에 물꼬를 터며 물을 대는 우리의 전통방식으로는 경작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연해주에는 소비에트 러시아 시기에 조성된 국영농장 대부분이 소비에트의 몰락과 더불어 황폐한 채 방치되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이들 농장을 살리기 위해 중국의 방식을 도입해 농민들에게 경작지를 분할해서 갈라주기도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본래부터 대규모 기계식 경영에 적합하게 만들어진 농장이어서 소규모 분할 경영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하롤지역의 농장에는 가을 벼 걷이가 한창이었다. 콤바인 여러 대가 투입돼 수확을 하는데 지평선이 보이는 이 들판에서는 수확작업을 하는 데만 꼬박 가을 한철이 걸릴 것 같았다.
되돌아가는 길에 다시 우수리스크 시내로 차량이 들어섰다.
우리는 오전에 우수리스크를 들러 수이푼강 옆에 세워진
발해의 영화는 사라지고 주춧돌만 남은 게 감상적인 상념을 자극했을까. 버스 안에서는 만주와 연해주를 호령하던 동이족이니 고구려니 하는 얘기들이 한참이나 오갔다.
한때 니콜스크로 불렸던 우수리스크는 과거 우리 동포들이 모여살았던 곳으로 지금도 2만여명이 중앙아시아로부터 돌아와서 살고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연해주에서 독립운동의 주춧돌 역할을 했던
<3-드리>
오전에 극동국립대학을 찾았다.
이 학교는 무려 110년 전부터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온 대학교로,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 경제와 문화를 전문으로 연구하는 한국학대학이 설립돼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한국학대학은 전 고합그룹 장치혁 회장이 연해주에서 독립운동을 한 선친 장도빈선생을 기념해 세운 건물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1층에는 장도빈선생의 동상도 세워져 있었다.
건물 5층에는 한국전통문화 체험실이 있었다. 장판지 마루바닥으로 된 이 체험실에는 한국 전통의상과 악기 그림 등이 비치돼 있었다. 러시아의 학생들이 이곳에서 한복을 입어 보고 큰절도 해보는 등 한국 문화를 체험하는 기회를 갖는다고 이 대학의
이 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교수로 있는 이 여교수는 “수교 초기에는
블라디보스톡에서 한때 우리 민족이 모여 살았다는 신한촌은 이 대학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산 언덕에 위치해 있었다. 지금은 아무런 흔적 없이 과거를 기려서 세운 기념비만 덩그마니 서 있었다.
나라를 잃고 고향을 떠나 천리 먼 곳의 이곳까지 와서 살았던 이들은 1937년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당하는 아픔을 다시 겪는다.
이 강제이주로 인해 17만명에 이르던 연해주 지역의 우리 민족이 중앙아시아로 옮겨가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이 죽는 비극이 벌어졌다고 한다.
블라디보스톡의 평양관에서 북한 음식으로 점심을 하고는 자루비노로 향했다. 비포장도로를 포함해 무려 5시간이 걸린 이 길도 마찬가지로 황야를 가로질렀다.
차창으로 비치는 원시의 대지를 보면서 이런 저런 상념에 잠겼다.
디아스포라. 일제 침략으로 인해 우리 민족은 중국 대륙과 일본, 미국, 연해주로 흩어지고,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으로 인해 연해주의 우리민족은 다시 중앙아시아의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지로 옮겨갔다.
고난에 찬 우리 민족의 이 비극적 디아스포라는 그러나 이제 우리의 새로운 발전을 기약하는 주춧돌이 되고 있다. 전세계 한민족 네트워크의 근간이 된 것이다.
일본이 ‘거봐 우리 때문에 잘 되고 있잖아!’ 하고 시샘할 정도로 일본이 갖지 못한 우리만의 ‘경쟁력’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할까.
연해주는 어떠한가. 이곳은 과거 고구려와 발해가 말을 달리고, 구한말 우리 민족이 다시 살기 시작했던 유서 깊은 땅이다.
이 넓은 곳이 황야로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중국에 비해 턱없이 밀도가 낮은 연해주의 인구, 자본집약적 기계식 영농에 적합하게 만들어진 거대한 규모의 국영농장, 러시아 정부의 현재의 자본부족 등이 어우러져 연해주의 드넓은 땅이 아직 황야로 남아 있고, 국영농장도 황폐한 채 방치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가운데 우리는 이미 세계 10위권 안팎의 교역을 자랑하는 나라가 되었다. 우리의 수출은 35개국 4억 인구의 남아메리카 전체 수출액을 능가하고 있다. 아프리카 52개국 8억 인구 전체의 수출액도 뛰어넘는다.
이런 국부를 자랑하면서도 우리는 과거와 아집에 발목잡힌 채 우리끼리 안에서 옥신각신 하면서 바로 앞에 주어진 천혜의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과연 연해주에서 활동했던 선조들에게 자랑스런 후손이 되고 있는 것인가.
자루비노 항에서 속초로 향하는 뉴동춘호의 기관 소리가 이어지던 상념의 꼬리를 끊었다.
모두 4박5일. 블라디보스톡에서 2박을 하고, 오가는 배안에서 2박을 하는 5일간의 짧은 여행이었다. 그러나 깊은 여운이 남았던 때문일까. 이날 저녁 뒷풀이 시간에는 이번 연해주 여행의 소회들이 샘물처럼 흘러나왔다.
많은 사람들의 뜻깊은 소회를 축약해서 정리해야 하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무순, 존칭생략)
김극기: 역사와 맥을 잇는다는 측면에서 이번 여행을 생각하자. 대륙과 연결되는 내일을 대비해서 길을 넓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이계익: 한국은 중국 일본과는 달리 러시아와는 악연이 없다. 우리의 진출을위해 러시아를 설득할 필요가 있다. 연해주에 투자하는 농업 축산 펀드를 만들자.
비보이:지금까지는 해외 여행하면서 소핑을 하고 외국 문화를 즐겼는데, 이번은 달랐다. 잊지 못할 것같다.
윤 식: 넓은 지역을 활용 못하고 있구나, 사람이 없구나, 우리가 할 역할이 있구나 하고 새삼 느꼈다.
우보명: 곳곳에 잡목(참나무)이 우거진 것 말고는 넓은 지역에 나무가 없다. 토지의 성분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성광선: 블라디보스톡의 은행금리가 많이 높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의 은행이 진출해야 하는 곳이 아닌가 싶다.
신승일: 물류와 한류에 이어, 인적교류가 활발해져야 한다. 학술교류 등 다양한 교류 프로그램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양용례: 시작은 미미하나 끝은 창대하리라는 말씀이 있다. 우리의 교류가 이처럼 되었으면 한다.
여태명:연변 일본의 재외 동포에게 서예와 그림을 가르치는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 앞으로 연해주에서도 하고 싶다.
이학춘: 신한촌을 둘러보며 과거 고려인의 아픈 역사를 되새겼다. 다음에는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참여하겠다.
<후기>
28일 오전 속초에 닿아서는 대포항으로 직행해 점심을 겸한 쫑파티를 가졌다.
싱싱한 회에다 소주를 곁들여서…. 충분히 풍성하게 나오는 바람에 유종의 미마저 거뒀다는 평가다.
추진위원들에게 갈채를….
첫댓글 좋은글 감사합니다. 다음번에 오실때는 꼭 한번 만나뵙기를 바랍니다, 서로 좋은 협력관계가 될 수 있을거 같으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