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조선시대 사회상
조선 사회는 유교를 기반으로 하는 신분 구분이 엄격한 사회다. 양반, 양인, 상민, 천민의 구분은 일상의 모든 것에 영향을 미쳤다. 그것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 사회는 상민에 속하는 노비 같은 사람들은 숨 쉬는 것도 쉽지 않았을 법하다.
그런데 실상을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가난한 양반이 있었는가 하면 부유한 노비도 있었다고 한다. 아마도 양반이 부지런히 글공부를 하는 동안 노비는 나름대로 열심히 일을 해서 재산을 모았다는 말이다.
양반이 글공부를 열심히 해도 결국 과거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면 그 공부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을 뿐만 아니라 그 동안 집안일을 하지 않았으니 가난을 면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다. 그러다보니 여기에 묘한 문제들이 발생하고 그것은 자주 소송전으로 이어졌다.
그러니 조선시대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다양한 소송전이 줄기차게 존재했다. 조선 후기로 갈수록 소송전은 훨씬 많아졌다. 사회가 점점 발전하면서 사람의 욕구가 더욱 다양해지고 충돌도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소송은 양반의 전유물이 아니라 신분의 고하나 성별을 막론하고 이루어졌다고 한다. 관기가 양반인 사또의 횡포를 고발하고 임금은 그간의 사정을 듣고 그 양반을 벌하기도 한다. 조선시대의 이러한 소송의 대부분은 금전과 관련된 것들이다.
좋게 보면 조선시대에도 나름대로 민의가 숨 쉴 공간은 충분했던 것 같다. 어떷든 예나 지금이나 돈 앞에는 장사가 없는 법인 모양이다. 이 책은 이처럼 조선시대의 각종 소송들 가운데 돈과 관련된 부분을 발췌해서 에피소트처럼 들러준다.
소송은 전방위적이었다. 형제 간 그리고 친척 간 금전 거래, 이웃 간의 금전 거래, 노비 거래, 부당한 세금 등을 돈이 될 만 한 곳에는 소송이 있었다. 이렇게 소송을 누구나 할 수 있게 된 것을 저자는 순전히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덕분이라고 한다.
글을 쉽게 익혀 사용할 수 있었으므로 소송이 가능했다는 말이다. 이 책은 조선시대 민초들의 삶을 재조명해볼 수 있도록 해준다. 그들은 그저 양반들에게 당하고만 살지 않았음을 볼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이 책은 조선인들의 통쾌한 투쟁기로 볼 수도 있겠다.
어떻든 이 책은 저자의 상상이 아니라 당시의 소송 기록, 서찰, 개인 기록 등과 같은 자료를 토대로 엮은 이야기이므로 조선시대의 사회상을 더듬어 보기에 더 없이 좋은 자료 구실을 한다. 따라서 저자는 이 책 내용을 반면교사 삼아 시련들을 헤쳐 나갈 힘을 얻기를 기대한다.
나. 송사의 유형
소송이 많았기에 조선시대 행정의 가장 중요한 업무는 바로 백성의 송사를 처리하는 일이었다고 한다. 조선 시대는 최하위 지방행정구역 단위인 ‘현’의 행정관인 ‘현감’이 그 지역의 백성들을 다스리는 것은 물론, 재판까지도 도맡았다.
현감이 사서삼경에는 능통했을지 몰라도 법전까지 꿰뚫지는 못했을 것이다. 거기에 소송 건수가 엄청났다. 그러니 자연스레 재판이 허술해지기도 했다. 한때 곡산부사를 지낸 적이 있던 정약용도 <목민심서>를 통해 송사 업무의 번거로움을 토로한 바 있을 정도다.
송사에 이길 경우 주어지는 반대급부는 예나 지금이나 권선징악의 정의를 실현과 연관된다. 정약용은 송사의 종류를 여섯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결국 모든 다툼이 ‘돈’으로 귀결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1. 전답과 노비 다툼
2. 빚과 이자에; 관한 다툼
3. 경작권 다툼
4. 논에 물 대는 일에 대한 시시비비
5. 품삯 다툼
6. 시비가 붙거나 폭행이 일어난 사건
우리는 보통 양반이라고 하면 돈을 상스럽게 알고 자기 손으로 돈을 들고 다니지도 않았으며, 그런 일은 노비가 대신했다고 알고 있다. 그 때문에 조선 시대에는 상업이 발달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로 조선 시대의 경제를 이야기한다.
그것이 사실일지라도 조선 시대 역시 사람 사는 세상이다. 내 것에 대한 욕심은 예나 지금이나 별로 다를 것이 없다. 조선 시대의 많은 소송들 역시 재산과 관련된 것이다. 내 것은 내 것이고 남의 것도 잘 하면 내 것이 되는 세상이었던 모양이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로 ‘등 따시고 배부르게’ 살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농경시대였으므로 그 중에서도 단연 중요한 것은 ‘땅’이었다. 즉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밭이나 논이 재산 중 가장 중요했던 것이다.
이 책은 형제간의 유산 다툼에 대해 다양한 사례를 재미있게 소개하고 있다. 그 내용 중에는 우리가 익히 아는 인물들도 있어 그들의 뒤를 훔쳐보는 듯한 재미도 있다. 그러고 보면 예나 지금이나 상속에는 형제고 뭐고 없는 모양이다.
또한 상속과 관련한 다양한 소송 사례도 흥미롭다. <장화홍련전>의 실제 인물들의 송사, 자식이 없을 때의 상속과 관련한 송사 등도 흥미롭기는 마찬가지다. 율곡 이이는 제사를 지내는 조건으로 어머니 쪽 재산을 물려받았다. 지금이 오히려 진부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 노비와 양반의 소송
흥미로운 것은 노비와 양반의 소송이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기로는 노비는 양반의 재산으로 취급되어 소송 자체가 불가할 것 같은데 그것도 아닌 모양이다. 말하자면 노비들 중에는 주인 등쳐먹는 일도 다반사였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주인의 재산관리를 빌미로 재산을 빼돌리기도 하고 주인 재산을 팽개치고 자기 재산을 늘리는 데만 열중한 노비도 있었다고 한다. <어부사시사>로 잘 알려진 윤선도는 풍류나 읊던 시인 같지만 실상은 대단한 싸움꾼으로 집안 송사에 관여했다고 하니 놀랍다.
재산에는 명성이고 뭐고 없었던 모양이다. 한편, 윤선도로 인해 조선시대의 추노꾼이 알려졌다. 조선 시대의 종모법도 흥미롭다. 종의 아이는 그 어미의 신분을 따라간다는 것이다. 종이 양반과 통정해서 아이를 낳아도 그 아이는 종이다. 미국의 노예제를 보는 듯하다.
조선 시대는 고리대금업도 성행했었다. 여기에는 여염집 아낙네도 있었는데, 심청 어미 곽씨 역시 고리대금업으로 돈을 벌었다. 뿐만 아니라 정승들 중에서도 이러한 고리대금으로 재미를 본 사람들도 있다니 오늘날 정치인들의 더러운 뿌리가 그곳에서 비롯된 모양이다.
양인 여성들이 양반을 상대도 소송을 걸어 승소하기도 했다. 그런 것을 보면 조선 시대는 나름대로 공정성을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비슷한 죄를 지어도 누구 편에 섰는가에 따라 죄 값이 달라지는 오늘날보다 훨씬 정의로운 세상이 아닌가 싶다.
한편, 조선시대의 제도 중 기상(記上)이라는 제도가 있다. 원래 노비에게 자식이 없을 때, 즉 재산을 물려줄 사람이 없을 때 주인에게 재산을 바치는 것을 말한다. 이로 인해 극도의 가난에 시달리던 양반이 횡재를 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니 세상일은 들여다볼수록 흥미롭다.
가십거리가 충분한 이 책은 쩐의 전쟁이라기보다 그저 <조선 시대 소송전>이라는 이름이 더 어울려 보인다. 물론 대다수의 소송이 예나 지금이나 돈과 관련되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 책의 소송전은 그보다 훨씬 넓은 범위를 다루고 있다.
라. 소장을 대신 작성해 주는 사람들, 외지부
소송을 하려면 소장을 작성해야 하는데 조선시대 수많은 민초들에게는 그것은 부담이었다. 우선 글을 모르는 자들이 허다했을 뿐만 아니라 글을 알아도 격식에 맞는 글을 쓴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암암리에 이들을 위해 소장을 대리 작성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을 외지부라고 하는데 요즈음 말로 하면 변호사인 셈이다. 그러나 외지부는 당시에는 불법이었으므로 백수 같은 사람들이 주로 했다고 한다. 더러는 선달들이 하기도 했는데 선달이란 과거에 급제는 했지만 아직 임용이 되지 않은 사람들이다.
요즈음 말로 하면 임용고시에 합격을 했지만 발령을 받지 못한 상태에 놓은 사람들로 돈벌이가 마땅치 않았던 사람들이 이런 일에 주로 관여했다고 한다. 무슨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니다보니 별별 사람이 다 외지부 노릇을 한 모양이다.
더러는 까막눈인 이웃을 돕기 위해 나선 경우도 있지만 아예 이웃에게 송사를 부추겨 수입을 올리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러한 부추김으로 인한 폐해는 생각보다 심각했던 모양이다. <조선왕조실록>의 <중종실록>에도 그런 나온다고 한다.
그저 못된 짓은 예나 오늘이나 변함이 없는 모양이다. 오늘날에도 송사를 돈벌이로 여기고 상대방의 약점을 잡아 소송을 부추기는 경우가 많다. 이 책은 그저 흥밋거리로 읽을 수도 있지만 곱씹어볼만한 것도 많은 이유이다.
대체로 역사는 정치를 중심으로 엮어가기 십상이라 이처럼 사회의 한 부분을 조망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도 서민들의 애환이 가득한 쩐의 문제를 다루었다는 점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나름의 값을 한다고 생각된다. 온고지신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