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함양 안의
광풍루 - 안의면 금천리 (경남 유형문화재 92호)
조선 태종 12년 (1412) 안의현감 전우가 건립 , 숙종 9년(1683) 장세남이 중건
상무좌우사 접장 하경순 불망비 (광풍루 뒷뜰에 있음)
허삼둘 가옥 -안의면 금천리( 민속자료 207호 )
1918년 윤대홍이 진양갑부 허씨문중에 장가들어 부인 허삼둘과 지은집
가옥 이름이 여자주인이 이름을 따른 것에서 알 수있듯이 경제적 실권을 쥐고 있던 안주인의 의견이 존중되어 안채가 비중있게 지어졌다.
안채가 ㄱ자 집인데 정중앙에 부엌이 배치된 것이 특이하다.
박지원 사적비 -- 현재 안의초등학교에 있음
중국 여행기 열하일기로 유명한
북학파의 대표적 실학 사상가 연암 박지원이 55세 되던 1752년 안의현감으로 부임해 5년간 머물렀던 안의 현청이 있던 자리.
안의 초등학교 전경
2. 정여창 고택 -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
성리학의 대가로 조선 5현중 한분인 문헌공 일두 정여창은 세자 시강원설서로 연산군의 세자시절 사부다. 안음 현감을 지냈고 연산군 4년 (1498) 무오사화로 함경도 종성에 유배되어 사망. 1504년 갑자사화로 스승 점필재 김종직과 더불어 부관참시됨.
성리학의 대가로 경서에 통달. 그의 명성에 힘입어 함양은 안동과 더불어 경상도 최고의 양반골로 알려짐
고택 솟을 대문 - 5대의 충신 정려패가 걸려있음
충신과 정려패
안채로 들어가는 문
안채
안채 뒷문
사랑채 현판
정여창의 고숙인 풍천노씨 종가 솟을 대문
청계서원 - 김일손의 사당. 함양군 수동면 원평리
김일손은 정여창과 김종직 문하에서 수학. 세조의 왕권 찬탈을 빗대어 조의제문을 지은 것을 김일손이 사초에 적은 것이 화근이되어 무오사화가 일어나 연산군에게 참수당함
남계서원 - 함양군 수동면 원평리(경남 무형문화재 190호 )
정여창을 모신 서원
정문 - 풍영루
강당 , 명성당
사당 안내문 - 정여창과 함께 동계 정온, 정온의 외숙 강익선생을 모심
3. 함양 상림- 함양음 대덕동(경남 무형문화재 190호)
신라 진성여왕때 함양태수를 지낸 최치원이 조성한 인공림. 홍수의 피해를 막기 위한 방책으로 조성. 36,000 여평에 100여종 20,000여그루의 남무 가 식재됨
화수정
4. 학사루 - 함양군 함양읍 상동 ( 경남 무형문화재 190호)
최치원이 이곳에 자주 올라 시를 읊었다고 전해짐. 무호사화와 관련이 깊은 곳으로 김종직이 함양군수로 재직시 학사루에 걸려있는 유자광의 현판 시를 철거, 무호사화의 불시가 되었다고 전해짐
원래 동헌 자리였던 함양초등학교
김종직이 함양군수 재직시 심었다는 느티나무- 천연기념 13호
8명이 두팔로 손을 잡고 둘레 길이를 측정해봄
첫댓글 신라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겠습니다.
서원은 경상도에 주로 있다 들었는데 그런 것을 여실히 증명해 주는 것 같기도 하고요.
최치원 박지원 정여창 김일손 등..
당대의 큰 인물들이 함양과 많은 연이 닿아 있었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