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전기] 위험부담 있어도 오카다 감독 경질해야 하지 않을까?
14일 일본에서 열린 동아시아 선수권 대회 마지막 대회에서 한국이 일본을 3-1로 이겼다. 스코어만 놓고 보자면 완승이지만 한국 입장에서도 경기내용이 썩 좋다고 볼 수는 없다.
특히 투리오가 퇴장당한 후 2-1로 리드한 상황에서 공수의 핵을 담당하고 있던 김정우가 불필요한 파울로 퇴장당한 것은 월드컵 무대에서는 절대 있어서는 안될 일이다. 중원을 지휘하는 사령관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감정을 컨트롤 할 수 있는, 이른바 '철의 심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물론 신예선수들의 점검차원에서 보자면 괜찮은 성과를 얻었다고도 할 수 있다. 특히 중원과 공격의 윤활유 역할을 한 이승렬 선수의 민첩하고 과감한 움직임은 많은 기대를 가져다 주었다.
한국팀은 외형상 4-4-2 시스템으로 나왔지만 거의 4-5-1에 가까웠다. 이동국 선수는 전반 초반만 하더라도 두 명의 센터백인 투리오와 나카자와에 가로막혀 제대로 된 공격기회를 만들어 내지 못했지만 투리오가 퇴장당하면서부터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센터포워드 임무를 부여받은 이가 날개로 빠지면 상대수비수들은 당황하기 마련이다. 특히 일본은 애초에 나가토모, 투리오, 나카자와, 우치다의 포백으로 나섰지만 투리오가 빠지면서 맨투맨으로 바꿀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원톱이 골 에이리어 외곽으로 빠져버리면 그를 전담하던 센터백 나카자와는 혼란에 빠질 수 밖에 없다. 이동국은 흔히 타겟형 스트라이커로 알려져 있지만 크로스도 꽤 수준급이다. 그가 외곽으로 빠질 때 센터백이 같이 따라가면 중앙 수비가 약해질 수 밖에 없다.
게다가 나카자와는 A매치를 100시합이나 출장한 일본 수비의 핵이다. 나가토모나 우치다가 그를 대신하기엔 너무 부담이 크다. 수비형 미드필더(보란치) 이나모토가 그나마 수비까지 내려와 그 자리를 대신하기도 했지만 그럴 경우 이번엔 공격으로의 전환이 느려진다.
또한 전반전만 하더라도 활발한 오버래핑을 선보였던 나가토모와 우치다도 후반 중반께 체력이 소진돼 공격적인 경기운영이 어려웠다. 후반 25분 나온 김재성의 그림같은 중거리 슛도 사실 그를 마크해야 했던 나가토모의 커버링이 늦었기 때문이다.
반면 이런 일본팀에 비해 한국의 수비수들은 엄청난 체력과 파이팅을 선보였다. 특히 오범석과 강민수는 월드컵에서도 충분히 통용될 정도의 투지를 시합내내 보여줬다. 수비수들에게 옐로우카드는 전리품이다. 중요한 것은 옐로우카드를 받은 후의 모습이다.
강민수 선수는 옐로우카드를 받은 후에도 몇 차례 과격한 수비를 하기도 했지만 스스로 페이스를 조절해 적당한 선의 파울로 끝맺었다. 스스로 감정조절에 실패해 퇴장당한 투리오에 비한다면 그의 수비수로서의 이성적 대응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허정무 감독도 적절한 선수교체로 일본을 괴롭혔다. 허 감독은 후반 17분 이동국을 대신해 이근호를 집어 넣었다. J리거들로 구성된 일본팀의 선수들은 이근호의 무서움을 잘 알고 있다. 작년 시즌 초 하위권에서 맴돌았던 주빌로 이와타를 중상위권으로 끌어올린 '드리블러' 이근호다. 이근호가 투입됐을 때 엔도 야스히토가 얼핏 일그러진 표정을 보인 것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사실 일본축구의 가장 큰 문제는 골결정적 부족이 아니다. 골결정력 부족은 어쩔 수 없는 결과로서 나타나는 것일 뿐이다. 여기엔 사연이 있다. 1990년대 일본의 어린 축구유망주들은 대거 '미드필더'를 지원했다.
'골든 제네레이션'이라 불리웠던 시절의 스타들, 이를테면 나카다 히데토시, 오노 신지, 이나모토 준이치, 나카무라 순스케를 동경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미드필더였다. 바로 다음 후배들인 엔도, 오가사와라, 나카무라 겐고 등도 미드필더다. 이들을 선망해 축구를 시작한 유망주들이 이제 막 성인팀에서 뛰기 시작한다.
그렇다. 절대적으로 공격수 자원이 부족한 것이다.
또한 미드필더는 포지션 특성상 중원의 유기적 플레이를 강조한다. 일본은 그 유기적 플레이를 위한 요소로 '패스'를 도입했다. 그리고 아름답고 정교한, 마치 퍼즐과도 같은 패스축구는 일본축구의 대명사가 됐다.
문제는 이런 패스축구가 J리그에도 정착됐다는 점이다. 팀에서 패스축구만 했던 이들이 대표팀에 선발돼 갑자기 피지컬이 요구되는 압박축구를 할 수 없는 노릇이다. 패스축구의 폐해는 수비에도 영향을 미쳤다. 수비수들도 상대의 패스축구에 대응하기 위한 지역수비(Zone Defense) 전략을 짤 수 밖에 없다. 섣불리 맨투맨으로 나섰다가 뒷공간 털리면 큰일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일본축구에서 가장 껄끄러운 존재가 이근호같은 드리블러다. 그것도 자기팀 선수들의 체력이 거의 소진되고 있는 후반 중반 이후 이근호 같은 이가 투입되면 작전짜기가 버거워 진다.
실제 어제 시합에서 이근호는 날아 다녔다. 김재성의 멋진 골도 이근호의 발 끝에서 나왔다. 이근호가 우치다를 달고 다니면서 드리블하는 바람에 나카자와가 앞으로 튀어나올 수 밖에 없었고 그 뒷공간을, 세번째 골을 어시스트한 김보경 선수가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오카다 감독은 이런 상황에서도 아무런 공격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후반 37분 사토를 넣었지만 포워드를 포워드로 바꾼다는 건 뒤지고 있는 팀 입장에선 별 의미가 없다. 차라리 내내 '닌자모드'였던 나카무라 겐고를 바꾸었다면 어땠을까? 중원의 사령관은 엔도 한 명이 맡아도 충분했으니까 말이다.
▲ 2월 15일자 일본의 스포츠신문들. 오카다 재팬 해체, 월드컵 4강은 무슨...등의 표제가 보인다. ©JPNews | |
한편 일본 스포츠신문들(2월 15일자)은 일제히 오카다 감독을 비롯한 선수 비판을 쏟아냈다. 웬만해서는 선수비판을 하지 않는 <닛칸스포츠> 조차 시합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투리오(퇴장)에 대해 "상대방을 발로 차고 시합을 엉망진창으로 만든 투리오였지만, 반성의 기색이라곤 보이지 않았다"며 비판했다.
또한 <닛칸스포츠>는 6면과 7면 양쪽 지면을 통째로 할애해 '동아시아에서 못 이기는데 월드컵 4강이라니...'라는 비관적인 제목을 달았다. <스포니치>는 아예 1면 톱기사로 "오카다 재팬, 해체(解体)로"를 달았다. 하긴 어제 보여준 경기력으로는 절대 월드컵에서 싸울 수 없다. 축구팬이라면 전면재수술이 필요한 상황임을 누구나 알고 있다.
명해설자 세르지오 에치고 씨는 <닛칸스포츠>의 '쓴소리 재팬'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감독 교체를 포함해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월드컵에서 개망신 당할 거다. 올해 들어서 4번이나 싸웠는데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다. 지코 감독 때보다 약하다. 팀의 철학이니 컨셉이니 어쩌고 저쩌고 하지만 매번 이런 결과다. 오카다 감독의 축구에는 '지휘'가 없다. 맨날 같은 멤버다. 매번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면서도 매번 이 '슛을 안 쏘는' 포워드들. 이래가지곤 홍콩같은 팀한테는 이길 수 있을지 몰라도 조금 강한 팀한테는 두손 두발 다 들 수 밖에 없다. (중략) 일본대표팀는 지금 위기적 상황이다." 언론뿐 아니라 서포터들도 오카다 감독 경질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닛칸스포츠>는 국립경기장에 모인 서포터 50명을 대상으로 긴급앙케이트를 벌인 결과 94%에 해당하는 47명이 "오카다 감독 해임"을 주장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런 상황임에도 일본축구협회는 "지금 바꾼다면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며 월드컵까지 오카다 감독으로 밀고 갈 뜻을 밝혔다. 들끓는 여론과 고집불통 축협, 그리고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는 대표팀.
일본축구의 앞날은 칠흑같이 어둡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