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28일 금요일 묵상
<23:1> 「이는 다윗의 마지막 말이라 이새의 아들 다윗이 말함이여 높이 세워진 자, 야곱의 하나님께로부터 기름 부음 받은 자, 이스라엘의 노래 잘 하는 자가 말하노라」
<23:2> 「여호와의 영이 나를 통하여 말씀하심이여 그의 말씀이 내 혀에 있도다」
<23:3>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씀하시며 이스라엘의 반석이 내게 이르시기를 사람을 공의로 다스리는 자,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다스리는 자여」
<23:4> 「그는 돋는 해의 아침 빛 같고 구름 없는 아침 같고 비 내린 후의 광선으로 땅에서 움이 돋는 새 풀 같으니라 하시도다」
<23:5> 「내 집이 하나님 앞에 이같지 아니하냐 하나님이 나와 더불어 영원한 언약을 세우사 만사에 구비하고 견고하게 하셨으니 나의 모든 구원과 나의 모든 소원을 어찌 이루지 아니하시랴」
<23:6> 「그러나 사악한 자는 다 내버려질 가시나무 같으니 이는 손으로 잡을 수 없음이로다」
<23:7> 「그것들을 만지는 자는 철과 창자루를 가져야 하리니 그것들이 당장에 불살리리로다 하니라」
<23:8> 「다윗의 용사들의 이름은 이러하니라 다그몬 사람 요셉밧세벳이라고도 하고 에센 사람 아디노라고도 하는 자는 군지휘관의 두목이라 그가 단번에 팔백 명을 쳐죽였더라」
<23:9> 「그 다음은 아호아 사람 도대의 아들 엘르아살이니 다윗과 함께 한 세 용사 중의 한 사람이라 블레셋 사람들이 싸우려고 거기에 모이매 이스라엘 사람들이 물러간지라 세 용사가 싸움을 돋우고」
<23:10> 「그가 나가서 손이 피곤하여 그의 손이 칼에 붙기까지 블레셋 사람을 치니라 그 날에 여호와께서 크게 이기게 하셨으므로 백성들은 돌아와 그의 뒤를 따라가며 노략할 뿐이었더라」
<23:11> 「그 다음은 하랄 사람 아게의 아들 삼마라 블레셋 사람들이 사기가 올라 거기 녹두나무가 가득한 한쪽 밭에 모이매 백성들은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도망하되」
<23:12> 「그는 그 밭 가운데 서서 막아 블레셋 사람들을 친지라 여호와께서 큰 구원을 이루시니라」
<23:13> 「또 삼십 두목 중 세 사람이 곡식 벨 때에 아둘람 굴에 내려가 다윗에게 나아갔는데 때에 블레셋 사람의 한 무리가 르바임 골짜기에 진 쳤더라」
<23:14> 「그 때에 다윗은 산성에 있고 그 때에 블레셋 사람의 요새는 베들레헴에 있는지라」
<23:15> 「다윗이 소원하여 이르되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을 누가 내게 마시게 할까 하매」
<23:16> 「세 용사가 블레셋 사람의 진영을 돌파하고 지나가서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을 길어 가지고 다윗에게로 왔으나 다윗이 마시기를 기뻐하지 아니하고 그 물을 여호와께 부어 드리며」
<23:17>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나를 위하여 결단코 이런 일을 하지 아니하리이다 이는 목숨을 걸고 갔던 사람들의 피가 아니니이까 하고 마시기를 즐겨하지 아니하니라 세 용사가 이런 일을 행하였더라」
(본문 해석)
10월 28일 금요일 사무엘하 23:1~17
1~7절
1절 다윗의 마지막 말이다. 이것은 다윗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마지막으로 한 말로 보인다. 이 시는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주신 말씀을 전하고 있기 때문에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주신 예언의 말씀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합할 것이다. 다윗은 이새의 아들, 높이 세워진 자, 야곱의 하나님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이스라엘의 노래 잘하는 자라고 소개한다. 2절 여호와의 영이 나를 통해 말씀하신다고 표현한다. 이것은 다윗 자신을 선지자로 생각한다는 뜻이다. 여호와의 말씀의 다윗의 혀에 있다고 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직접 자신의 입에 말씀을 주셨다는 것으로 자신의 말씀이 권위가 있음을 표현하는 것이다. 3절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고 하므로 자신의 예언을 시작한다. 다윗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반석이라고 한다. 이것은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보호자라는 의미다. 하나님은 다윗을 사람을 공의로 다스리는 자라고 부르시며.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다스리는 자라고 한다. 이스라엘의 이상적인 왕은 사람을 공의로 다스리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다스리는 자여야 한다. 공의와 경외함이 통치 원리가 된다. 4절 이상적인 왕이 일어날 때, 하나님의 백성이 누릴 은혜로운 상황에 관해 말한다. 공의로 다스리는 왕이 있을 때 이스라엘은 구름 없는 아침의 해가 떠오를 때 아침 빛이 비침 같고, 비 온 뒤 광채로 땅에서 나는 풀 같을 것이다. 즉 왕이 은혜와 공의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잘 다스려 그의 은혜가 골고루 땅에 미치게 되면 그 나라가 풍성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을 세우신 이유다. 5절 내 집은 다윗 왕조를 의미하는 것으로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과 영원한 언약을 세우시고 나라의 기틀을 세워주시고 지켜 주셨다고 말한다. 이 영원한 언약은 영원히 유효하고 구속력이 있다. 이것은 다윗 왕조가 계속 이어진다는 의미다. 6절 사악한 자는 손을 댈 수 없는 가시나무 같다고 말한다. 손으로 잡을 수 없다는 것은 포용하고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말한다. 7절 가시나무를 만지려면 철과 차 자루를 가져야 한다고 한다. 이것은 사악한 자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무력을 사용하고 전쟁을 치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가시나무는 백성들을 보호하기는커녕 오히려 백성들에게 재앙이 되는 왕으로 하나님은 결국 이들을 심판하신다는 것이다. 이것은 다윗 왕조의 영원한 언약과 대조를 이룬다. 즉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공의로운 왕은 백성들에게 복이 되지만 악한 왕들은 백성들에게 재앙이 되며, 결국 멸망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8~12절
8절 다윗의 용사들은 다윗이 왕이 되는 과정에서 다윗을 도왔던 사람들이다. 다그몬 사람은 요셉밧세벳이라고도 하고 에센 사람 아디노라고 하는 사람은 군대 지휘관의 우두머리이다. 그는 단번에 팔백 명을 죽인 용사이다. 9절 아호아 사람 도대의 아들 엘르아살은 다윗과 함께 한 세 용사 중 하나였다. 블레셋 사람들이 전쟁을 하기 위해 모였을 때 이스라엘 사람들이 전쟁을 하다가 퇴각한다. 그러나 세 용사가 남아서 상대를 조롱하면서 싸움을 돋우었다. 10절 엘르아살이 일어나서 블레셋을 공격하였다. 엘르아살은 칼을 들고 싸우다가 손에 힘이 풀려 칼을 들기 어렵게 되자 칼을 손에 묶고서 싸웠다는 것이다. 이렇게 그가 블레셋 군대를 무찌르자 비로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의 뒤로 되돌아와서 전리품을 챙겼다. 엘르아살의 용맹성과 이스라엘 백성의 비겁하고 얍삽한 행동이 대조를 이룬다. 11절 하랄 사람 아게의 아들 삼마는 블레셋 사람들이 사기가 올라 이스라엘을 치기 위해 녹두밭에 있는 들에 쳐들어오자 백성들이 도망한다. 12절 삼마는 그곳에 홀로 버티고 서서 블레셋 사람들이 더 이상 넘어오지 못하도록 블레셋 사람들을 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다. 이것을 여호와께서 큰 구원을 이루셨다고 표현하는 것을 보면 삼마는 불가능해 보이는 전쟁을 오직 여호와만 의지하고 싸워서 이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3~17절
13절 30명의 용사 중 세 명이 추수 때에 아둘람 굴에 이르러 다윗에게 나아갔다. 이때 블레셋 사람들은 베들레헴에서 멀리 않은 르바임 골짜기에 진을 치고 있었고 14절 다윗은 산성에 있었고 베들레헴은 블레셋 사람의 요새가 되었다. 15절 이때 다윗이 베들레헴 성문 곁에 있는 우물물을 마시고 싶었고, 누가 물을 떠다 주면 좋겠다고 무심코 말했다. 16절 그 말을 들은 세 용사가 르바임 골짜기에 진을 치고 있던 블레셋 진영을 뚫고 베들레헴으로 가서 우물물을 길어다 다윗에게 바친다. 물을 뜨기 위해 목숨을 걸고 적진을 오간 것이다. 이 사실을 안 다윗은 그 물을 차마 마시지 못하고 여호와께 부어서 바친다. 17절 그 물은 용사들이 목숨을 걸고 가져온 피와 같은 것이기 때문에 도저히 마실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여호와께 음료를 바칠 때는 주로 포도주를 부어서 전제로 드리는데, 다윗은 물을 용사들의 피라고 여기고 그 피를 여호와께 바친 것이다. 그러면서 다윗은 자신을 위해 다시는 이런 일을 하지 않겠다고 여호와 앞에서 맹세를 한다. 여기서 다윗의 세 용사의 충성심을 알 수 있다. 이들은 자신의 주군에 대한 충성심이 깊기에 다윗의 마음을 잠시라도 기쁘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에 목숨을 걸고 물을 길어온 것이다. 또한 이들이 길어온 물을 자신의 부하들의 피라고 여기며 다시는 이런 일을 하지 않겠다고 맹세한 다윗은 부하들을 매우 아끼는 지도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