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차장 근처
박남희
이곳에 있는 바퀴들은 이미 속도를 잃었다
나는 이곳에서 비로소 자유롭다
나를 속박하던 이름도 광택도
이곳에는 없다
졸리워도 눈감을 수 없는 내 눈꺼풀
지금 내 눈꺼풀은
꿈꾸기 위해 있다
나는 비로소 지상의 화려한 불을 끄고
내 옆의 해바라기는
꿈같은 지하의 불을 길어 올린다
비로소 자유로운 내 오장육부
내 육체 위에 풀들이 자란다
내 육체가 키우는 풀들은
내가 꿈꾸는 공기의 질량만큼 무성하다
풀들은 말이 없다
말없음의 풀들 위에서
풀벌레들이 운다
풀벌레들은 울면서
내가 떠나온 도시의 소음과 무작정의 질주를
하나씩 지운다
이제 내 속의 공기는 자유롭다
그 공기 속의 내 꿈도 자유롭다
아무 것도 가지고 있지 않은 저 흙들처럼
죽음은 결국
또 다른 삶을 기약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이곳에서 모처럼 맑은 햇살에게 인사한다
햇살은 나에게
세상의 어떤 무게도 짐 지우지 않고
바람은 내 속에
절망하지 않는 새로운 씨앗을 묻는다
-199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감상*
파랑 같은 삶을 다 지우고 영원한 휴식처로 영혼을 잠재우는 시공간. 육신과
정신을 속박했던 삶의 틀 속에서 졸리워도 감을 수 없는 화려했던 지상의 불.
꿈같은 지하공간에 육신을 누이고 속박이 풀어지는 사슬에서 무성한 풀들이
자란다. 자라는 풀들에서 풀벌레 운다. 자유롭게 운다. 그 울음소리는 영혼의
공기조차 자유롭게 한다. 세상의 버거웠던 무게도, 속에서 자라났던 절망도
모두 지워진다. 이 세상의 종착점이자 새 삶의 출발점인 햇살과 바람이 자란다.
(강수진)
*약력*
경기 고양 출생
경인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1996)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1997)
고려대 숭실대 강사
일산 문학학교 시 창작반 강사
시집<폐차장 근처>(현대시, 1999/문학과 경계, 2002)
<이불 속의 쥐>(문학과 경계, 2005)
*사진* 네이버 검색
*음악* Moldova - Sergei Trofan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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