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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7년 사회문화 전망 및 문화선교트렌드[각주:1] 회고
참으로 다사다난한 한해였다.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파면에 이어 10년 만의 정권 교체를 이끌어낸 것은 광장의 촛불이었다. 국가적인 갈등과 혼란 속에서 시민들의 정치역량은 더욱 성숙해졌다. 이러한 “민주주의 2.0의 진화”를 이뤄낸 힘은 개인들의 느슨한 연대에 있었다. 온오프라인을 오가며 “따로 또 같이” 모였다 흩어지는 국민들은 북핵 문제에 전쟁가방을 싸거나 살충제 계란, 생리대 유해논란 등 일상을 위협하는 사건들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내기에 벅찬 서민들은 각자도생의 방식으로 자신만의 “진짜 중요한 것”을 찾아 나섰다. 그러나 포항 지진 당시 교회와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의 손길은 사회안전망을 뛰어넘는 공동체의 존재 의미를 일깨웠다. 갑질 논란과 직장 내 성폭력 논란 등, 존엄사 시범사업 시행은 우리 사회의 인권 감수성 성장을 확인할 수 있는 사건들이었다. 4차 산업혁명은 생각보다 우리의 삶 가까이에 다가와 있었다. 기존의 시스템과 새로운 변화들의 충돌이 때론 조용히, 때론 과격한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문화선교연구원이 [2017년을 전망]하며 주요 키워드로 ‘갈등’과 ‘생존’을 꼽은 대로 다양한 갈등 상황과 생존에의 모색이 빚어졌지만, 이러한 굴곡은 우리 사회의 회복과 상생의 과정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교회 역시 “갈등”과 “생존”은 중요한 키워드였다. 특히 가장 중요한 이슈였던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여 그 의미를 돌아보고 회복하자는 차원에서 각 교단 혹은 개교회 차원에서 다양한 행사가 열렸다. 종교개혁을 소재로 한 문화콘텐츠도 풍성했다. 한국교회총연합회(한교총)이 출범하는 등 교회연합을 시도하기도 했으나 종교인 과세 시행 준비나 교회 및 신학교의 리더십 교체 과정에서 빚어진 갈등은 복음의 본질 회복이라는 종교개혁의 정신을 퇴색시켰다는 일각의 지적도 있다. 개신교인의 증가라는 통계청의 발표와 달리, 나날이 위축되는 교세 가운데 교회의 대안 찾기가 다양하게 시도되었다.
2. 2018년 사회문화 전망 및 문화선교트렌드
문화가 급변하고 있다.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도 교회공동체는 문화를 통해 복음을 전하고 문화에 생명을 불어넣으며, 문화를 통해 교회도 새로워져야 한다. 그러기에 우리는 더욱 문화의 변화를 주목해야 한다. 2018년은 2017년 한국사회의 흐름을 주도했던 욜로 열풍의 다양한 모습들로 우리 가운데 더욱 나타날 것이다. 핵심은 “‘지금, 여기서’ 행복 찾기”이다.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대중들은 지금 여기서 내가 확인할 수 있는 만족에 몰두한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는 경구처럼, 지금, 나에게 기쁨과 위로를 주는 소소한 것들을 누리는 일에 사람들은 기꺼이 지갑을 열 것이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 찾기는 일과 삶의 조화를 통해 행복을 찾으려는 워라밸 세대(work life balance, wolable ganeration)의 관심과 맞물리며 예능과 소비시장, 나아가 교회의 변화를 주도할 것이다. 일에 파묻혀 살지 말자, 일과 삶의 균형을 찾고, 인생의 성장을 이루고자 하는 이들의 이야기들은 우리 사회가 더 많이 소통해야 함을 일깨워줄 것이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실에 저당 잡히지 않겠다는 이들, 기꺼이 미래를 위해 나와 지금을 희생했던 세대들이 공존하는 이 세상 속에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우리에게 더욱 필요한지 모른다.
개인의 행복 찾기는 “공동체의 의미 찾기”로 진전되게 될 것이다. 2017년 문재인 정부의 조기 출범을 가능케 한 광화문 촛불의 힘을 경험한 이들은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서건, 집회 참여나, 소비를 통해서건 우리 사회의 문제점들을 드러내고 자신의 정치 사회적 신념을 드러내며 사회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하는 움직임이 더욱 가속화 될 것이다. 대중은 기존의 질서나 권위를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을 것이다. 지식은 상아탑이라는 권위의 성안에 머물지 않고 아닌 예능의 세계로 편입되어 대중에게 소비됨으로서 이른바 ‘잡학’의 전성시대가 도래할지도 모른다. 대중들의 인문적 소양이 풍성해질수록 자신들이 속한 사회와 교회에 대한 성찰과 변화를 더욱 요구하게 될 것이다. 그로 인해 교계의 갈등이 증폭되는 가운데 교회의 공적 책임을 묻게 될 것이다. 교회의 위기 극복을 본질 회복과 함께 시도하려는 움직임들이 나타날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의 결과들은 더욱 가속화 되어 AI 스피커와 홈스피커의 결합 등을 통해 우리 삶의 영역에 성큼 다가오게 될 것이다. 여전히 계속되는 경기침체 속에서 우리 사회는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오는 기하급수적인 변화를 맞이하면서, 두려움과 기대 가운데 이를 준비하게 될 것이다. 교회 또한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사회 문화의 변화 속에서 신앙의 의미와 교회의 역할에 대해 본격적으로 고민하게 될 것이다.
<사회문화편>
행복하고 싶은 사람들 – 경제불황과 성과사회, 불안의 만성화가 빚어낸 풍경들
경제불황과 양극화, 생존의 위기, 정치-사회-문화적 갈등, 불신, 안보위기와 재난.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해소되지 않은 한국사회의 불안요소들은 국민들을 계속해서 위협하고 있다. 희망과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 원치 않는 일들을 과도하게 하느라 누적된 피로감, 만성화된 불안심리는 행복으로의 갈망으로 변주되어 생존을 모색하고 있다. 불확실한 미래에 저당 잡히는 대신 소소하지만 실현 가능한 현재에 투자하고, 심리적 안정을 위해 소비하며, 삶의 위안과 즐거움을 찾는 것으로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경향이 더욱 늘어날 것이다. 2017년 한국사회를 강타했던 ‘욜로’는 또 다른 의미로 확대 재생산되며 2018년 역시 사회문화트렌드의 중요한 흐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한다. 오늘날 행복을 추구하는 모습들은 심각한 생존경쟁 속에서 도태 되지 않기 위한 몸부림으로 볼 수도 있다. 그 과정에서 소비를 통해 잃어버린 자신의 자아를 확인하고 자기계발도 한다. 너의 존재와 나의 존재가, 너의 안전과 나의 안전이, 너의 행복과 나의 행복이 상관없는 것이 되는 세상. 이런 개별화된 사회에서 진정한 행복이란 불가능하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사랑이야말로 행복에 이르는 지혜로, 행복이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사랑의 실천에서 온다고 보았다. 오늘날, 행복을 찾는 개인들에게 다름을 인정하며 자신다운 주체적인 삶을 살도록 격려할 뿐 아니라 울타리가 되어주는 공동체로 존재한다면, 비로소 교회는 세상의 대안이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의미의 투쟁 시대 – 무의미의 의미화 vs. 비정치의 정치화
진지하고 거창한 거대담론 대신 소소한 일상적 행위에서 의미를 찾는 사람들이 청소년과 청년 사이에서 늘어나고 있다. 독특한 점은 양극단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새로운 자극을 찾던 사람들은 의미 없는 것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훌륭한 사람이 되고,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자신을 옭아매기보다 맥락 없는 곳에서 유희를 찾고 비생산적인 일에서 힐링을 찾는다. 몇 년 전 화제가 되었던 ‘멍 때리기 대회’를 비롯해 올해 유행했던 장난감 ‘액체괴물’이나 SNS 대화 가운데 나오는 성의 없고 맥락 없는 이모티콘 등 의미 없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다. ‘무엇을 하겠다’보다 ‘무엇을 하지 않는 편을 택하겠다’는 바틀비적 수동성의 현대판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촛불 정국 이후 자신의 정치적·사회적 신념을 SNS 공간과 일상에서 표출하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다. SNS에 해시태그로 관심사를 적고, 축제에 참여하듯 광장에 나서며, 정치 관련 굿즈를 구입하거나 메시지를 담은 옷을 입는 등 자신의 의사를 놀이하듯 표현한다.
모든 것이 넘쳐나는 과잉 시대에 어느 쪽이든 그것을 무위, 탈정치화로 풀어내든지 나름의 정치화 작업에 참여하든지 일상적인 행위들과 관련되어 전개된다는 특징이 있다. 무의미하고 무가치해보일 수 있지만, 촘촘하게 짜인 기성사회의 틀을 해체시키며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내는 저항의 방식으로 볼 수도 있다. 교회 안에도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이러한 모습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교회가 이들 세대에게 귀 기울이고 저항으로서의 의미화 작업이 가능한 공간을 내어줄 수 있다면, 이들도 끌어안을 수 있지 않을까.
‘워라밸(Work & Life Balance)’ – 세대/라이프스타일 변화
2017년 많이 회자된 단어 중 ‘워라밸’은 어떤 분들에게는 생소할지도 모르겠다.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Work and Life Balance)의 줄임말인 ‘워라밸’은 돈 많이 버는 직장보다 ‘일과 삶의 균형’을 중요시하는 젊은 세대의 가치관을 반영한다. 기독교인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직장 선택의 기준(1-2순위, 중복응답)이 근무조건(45.2%)이라는 설문결과(한기언, 2017)는 현재 다니는 회사가 좋지 않다고 응답한 경우가 10명 중의 7명[각주:2], 연봉이 적더라도 일과 삶의 균형을 원하는 경우가 75.5% [각주:3]라는 다른 설문결과와 맞닿아있다. 2017년 고용노동부에서 '대한민국 다함께 워라밸(Work and Life Banlance) 국민 참여 캠페인'을 진행했을 정도이니 ‘워라밸’이라는 이슈는 이제 무시할 수 없는 사회현상이 되었음에 분명하다.
일과 삶의 균형을 잡는다는 개념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이 없겠지만, 조직문화와 성과를 강조하는 기성세대와 개인의 삶을 최우선시하는 ‘워라밸 세대’가 일으키는 갈등에 대한 사회적 비용은 만만치 않다. 현 시대의 성장을 주도한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보기에 워라밸 세대는 쉽게 좌절하고 나약하며 이기적인 세대로 보일 수 있다. 젊은 세대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성과를 위해 헌신만을 강조하는 경직된 조직문화에 대한 반감은 여러 모습으로 갈등을 일으킨다. 따라서 당분간 우리 사회에서 ‘워라밸’이라는 이슈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세대 간의 갈등을 해소하는 일은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이것은 교회문화 안에서도 상당부분 적용될 수 있다. 이전에 한국교회에서 주로 통용되었던 설교내용은 ‘어려운 시절에 하나님을 붙들고 열심히 일했더니 이렇게 축복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의 워라밸 세대들에게 그러한 간증은 그다지 관심이 없는 주제일 수도 있다. 그들은 먼 훗날 부자가 되는 것보다, 오늘 여기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데 관심이 있다. 교회에 젊은 세대가 점점 줄어간다고들 걱정하고 있는데, 워라밸 세대에 대한 분석과 적절한 대응방식이 필요할 것이다.
잡학의 권위 - 인문학 열풍이 예능을 만났을 때
시끄러운 정치도, 고리타분한 인문학도 예능이 접수했다. <알뜰신잡>에서처럼 권위를 벗어던진 지식인‘아재’들의 수다는 멀게만 느껴지던 전문지식을 일상의 영역으로 소환하고, 보는 이들에게 웃음과 자기계발의 두 마리 토끼를 안겨줬다. ‘한 우물을 깊게 파라’는 조언이 무색해지는 크로스오버적 혁신의 시대에 넓고 얕은 지식들을 탐하는 대중의 호기심이 탈권위주의, 오락과 결합하면서 스스로 지식을 수집하고 콘텐츠를 생산해내는 ‘신지식인’들이 나타나고 있다.
한 분야에 천착해 일상과 동떨어진 담론을 생산하던 권위적인 전문가의 시대가 가고 융복합지식에 기반한 전문성에 더하여, 대중성, 다양성과 현실감각까지 겸비한 잡학지식인의 시대가 왔다. 엔터테인먼트 산업과 인문정신의 만남이 ‘인문학의 위기’ 속에서 이루어지는 힐링담론의 일부라거나 뉴미디어 문화산업의 식민화 과정으로 볼 수 있다는 일각의 비판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이 교과서 안에 갇혀 있던 주입식 교육이 미디어를 통해 일상과 연결 짓고 소통의 형식으로 변화하는 추세를 반영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CBS의 <다시 쓰는 루터로드>나 최근 늘어난 기독교 대안 아카데미 등 기독교문화콘텐츠도 이러한 경향 가운데 있다고 보인다.
신학과 성경에 지적 호기심을 가진 성도들은 많지만 신학교의 문턱은 너무 높다. 교회가 설교와 성경공부 등 선포 중심의 메시지 전달과 동시에 풍부한 신학적 보고들을 지금 여기의 현실과 이으며 성도들과 유쾌한 수다를 나눈다면, 오늘의 시대에 적합한 새로운 말씀의 권위가 세워지지 않을까.
AI스피커, 음성인식기술과 홈스피커의 결합
에코, 홈팟, 기가지니, 누구, 웨이브 그리고 미니까지. 국내외 유수의 IT기업들이 AI 스피커 시장선점에 총력을 쏟고 있다. 그동안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개발되었던 음성인식기반의 인공지능 기술들(빅스비, 시리, 어시스턴트, 코타나)이 본격적인 사물인터넷으로 그 무대를 옮겨가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AI 스피커는 여러 기술적인 의미를 갖는다. 첫째는, 터치와 화면의 제약에서 해방시키는 음성인식기술이다. 사용자의 목소리를 듣고 반응하게 만드는 음성인식기술 관련 시장은 2020년 3,700억 원 규모로 성장할 것이란 전망이 있다(로아컨설팅). 둘째, 사물인터넷의 구현이다. AI 스피커는 허브로서 집안 곳곳의 스마트 기기들을 유기적으로 연결시키며 사용자와 소통하게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공지능을 이용한 콘텐츠 제공이다. 음악 재생이나 날씨 검색 등[각주:4] 지금은 단순한 정보를 전달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지만, AI기술이 발전하면 사용자의 편의에 맞춘 양질의 콘텐츠를 제공해 줄 수 있게 될 것이다.
AI스피커는 인간과 기계간의 소통방식을 변화시키고,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을 우리의 삶 속에 더 쉽게 녹아들게 할 것이다. 영화 <아이언맨> 속의 ‘자비스’나, 영화 <Her>의 ‘사만다’과 같은 전혀 새로운, 그리고 이질감 없는 인공지능의 등장도 그려볼 수 있다. 이러한 기술의 발전 속에서 ‘대화’는 어떠한 의미를 가지게 될까? 사람과 사람과의 대화, 그리고 기계와 사람과의 대화는 동등한 위치를 가질 수 있을까? 더 나아가 신과 사람과의 대화는 기계와 사람과의 대화와 어떠한 차이가 있을까? 가속화 중인 4차 산업혁명 속에서 기독교 신학과 교회가 더 관심해야 할 부분이다.
<교계편>
꺼지지 않는 교계 갈등
2018년 교계 전망은 여전히 그리 밝지 않다. 종교개혁 500주년인 2017년 말 이루어진, 한 교회의 리더십교체에 따른 갈등과 논란이 지속될 가능성이 많다. 논란에 대해 예장통합교단의 수습과정과 해당 교회의 대응이 더욱 주목된다. 이외에도 2017년에 불거진 갈등 양상들, 곧 신학교 분규사태, 총회 결과에서 드러난 정책 보수화 경향, 동성애 대응 문제, 주요 대형교회 리더십 교체 등 갈등 잠재요인들이 그 처리과정과 진행경과에 따라 2018년도 교계의 명암을 좌우하는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최근 국민들의 정치/사회참여 역량이 성장한 것과 관련이 있다. 촛불 정국 당시, 시민들은 자신의 목소리가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다. 소셜미디어의 발달은 이러한 변화를 뒷받침했다. 한국교회 역시 이러한 사회문화적 변화 안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여전히 소수의 지도자들에 의해 교회의 정책과 방향이 결정되는 가운데, 커뮤니케이션이 평등화된 사회에서 자신의 신학과 신념을 토대로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교회가 한국사회에 화해의 비전을 제시하며 국민통합에 일정한 역할을 감당하는 공동체로 진일보할 수 있을까. 이는 내부의 갈등을 어떻게 봉합할 것인지에 달렸다.
잃어버린 것들을 찾아서
교회는 세상 속에서 존재해왔다. 한국교회는 민족의 역사와 정치 사회 문화적 흐름 속에서 관계하며 민족과 한국사회의 소망으로 자리매김해온 전통과 신앙유산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한국교회는 사회로부터 유리되는 게토화의 유혹을 벗어나지 못할 뿐 아니라 지지와 신뢰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 목회자 납세 시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불협화음과 한 대형교회의 리더십 교체 과정이 주요 언론에 보도되면서 한국사회의 번영의 비전을 제시해야 할 한국교회가 오히려 이익집단으로 비춰지는 결과를 낳았다.
세속화 이후, 종교를 개인적이며 사적인 것으로 제한해 왔지만, 복음은 본질적으로 공적이며 공동체적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공동체의 일부로 지으셨다는 점은 우리의 신앙이 수많은 관계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공적인 자세를 취해야 함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간 한국교회가 신앙인으로서 이러한 공적인 삶의 자세를 소홀히 해온 것이 사실이다. 교회의 리더십, 재정 투명성, 목회자와 기독교인의 윤리와 도덕 실천 등 교회의 공공성은 오늘날 교회가 회복해야 할 신뢰 회복의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2018년은 목회자 납세 시행과 대형교회의 리더십 교체 등 더욱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되물으면서 신앙회복과 한국교회의 신뢰&공공성 회복을 향한 자성과 제도개혁, 교회 문화변혁을 향한 논의와 움직임들이 본격화할 것이다.
이제 교회도 ‘워라밸’(Worship & Life Balance)!
최근 들어 교회 예배 형태 및 프로그램의 변화가 눈에 띈다. 수요기도회가 오전에도 이루어지는 교회들이 많아지고 있고, 주일 저녁 예배가 대부분 오후로 옮겨지더니 이제는 없어지는 경우나 가정예배로 대체되는 움직임들이 나타나고 있다. 교회에도 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젊은 세대의 가치관[각주:5]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
소속된 공동체에 가치를 두던 기성세대와 달리 젊은 세대는 개인시간 확보와 성장, 여가에 의미를 둔다. 예전처럼 주일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 교회에서 머무르며 헌신하기보다 주말만큼은 편히 쉬고 싶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이를 반영하는 교회가 늘고 있다. 바쁜 일상에 대한 보상, 아이에게 좋은 경험을 주고 싶다는 젊은 부모들의 바람이 빚어낸 여행 및 여가문화의 발달은 교회조직보다 개인생활과 가족 중심의 삶을 추구하는 현상을 더욱 가속화시킬 것이다. 교회는 이러한 문화의 변화를 주목하고 대안을 모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교회 중심의 신앙 패턴에서 벗어나 새로운 목회전략이 시도될 것이다. 일에 대한 피로도가 증가하는 현대인에게 교회가 주일 성수와 헌신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안식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성화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예배형태 변화나 교회라는 장소를 떠나 개인/가정과 연계되는 신앙 프로그램의 모색, 나아가 쉼과 회복이 있는 수련회, 영성훈련 등 일상과 여가, 가정과 교회를 아우르려는 통합적 목회 패러다임이 주목받을 것이다.
나에게 교회란?
이른바 ‘가나안’ 성도 담론, 즉 기존 교회의 시스템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교회문을 나선 사람들에 대한 논의가 탈종교화 현상과 맞물려 최근 대두되어 왔다. 이들을 위한 대안적 신앙공동체도 다양한 형태로 시도되는 중이다. 그런데 탈교회적 성향을 지닌 이들 신앙유형 외에도, 교회 밖으로 나가지는 않지만 교회 안에서 나름의 비판적 대안을 모색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지금껏 교회공동체가 ‘진리’처럼 제시해왔던 교회생활의 방식을 따르는 대신, 의문을 제기하며 자신만의 교회론을 써나가는 것이다. 교회 모임에는 참여하지 않고 주일예배에만 참석하는 것을 넘어서 교회 밖에 있는 취미 혹은 봉사 그룹에 더 의미를 두거나, 교회가 신뢰를 확보하지 못하면 헌금을 자신의 신념과 관심사가 맞는 NGO 등에 기부하는 경우를 예로 들 수 있다.[각주:6] 이러한 모습들이 성도들의 사회참여의 확대라는 점에서 의미 있는 변화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으나 교회공동체가 성도들에게 물질과 시간을 통한 헌신의 의미를 제공하지 못할 때 성도들의 스스로 대안 찾기 움직임이 활발해질 것임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교회는 복음 전파라는 본래의 사명에 충실해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의사결정구조의 민주화, 교회 재정 및 운영의 투명성 확보, 소외된 이웃, 지역과 함께하는 섬김의 공동체로의 노력에 더욱 힘쓰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작은교회에서 좋은 교회로
2017년 기독교인이 꼽은 한국사회의 가장 중요한 경영경제 이슈는 양극화와 빈부격차(성도 47.6%, 목회자 61.6%)였다. 이러한 양극화는 한국교회도 예외가 아니다. 기독교인의 80.7%가 한국교회의 양극화 현상에 대해 심각하다고 여긴다[각주:7]는 설문결과는 교계가 전반적으로 침체 가운데 있기에 더욱 시사하는 바가 있다.
한 통계에 의하면, 개척교회의 개척 3년 후 생존율이 2%다. 물적, 인적 토대가 취약한 작은 교회들은 ‘생존’도 어렵거니와 ‘존엄’을 지키며 목회하기란 더욱 어렵다. 소형교회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목회자의 47.1%가 교회 존립을 걱정한 적이 있으며, 29.6%가 목회를 포기하고 싶은 적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47.1%가 영적 고갈을 경험한 적이 있으며 중대형교회 목회자에 비해 열등감을 느낀 경우가 38.8%, 작은교회 목회를 실패로 보는 주변의 인식이 부담스럽다는 경우가 41.3%로 조사되었다.[각주:8] 그 가운데 생존과 존엄을 지키기 위해 작은 교회들의 사역 연합 움직임이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농촌교회와 도시교회, 중소형교회와 대형교회 간에 계속되어 왔던 상생의 노력들에 더하여 작은교회 간의 협력의 움직임들이 시도되는 것이다. 특히 저출산 경향과 더불어 대두되고 있는 교회학교의 문제가 개교회 차원에서 해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서, 교회학교를 중심으로 연합의 양상이 더욱 다양하게 펼쳐질 것이다. 강원도 홍천에 위치한 네 교회가 연합 교회학교를 공동으로 운영하거나[각주:9] 뜻을 같이하는 목회자들이 함께 성경학교나 수련회 등 단기행사를 진행하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는 것이 그 사례다.
교세 축소가 가져온 생존적 현상이기도 하지만 공교회성의 회복과 신앙의 계승 차원에서 본질 회복의 실현으로 볼 수도 있다. 리처드 세넷은 불평등하고 불안하며 불안정한 사회일수록 공동체 회복을 위하여 협력의 기술이 필요함을 역설한 바 있다. 이러한 상생의 정신이 시도된다면 한국교회의 위기 속에서도 교회 정신의 회복과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