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저자 유홍준 교수가 ‘남도문화유산 일번지’라고 한 전남 강진. 그 중에서도 월출산 남쪽 기슭에 있는 월남리(月南里)는 일번지 중의 일번지다.
- 빼어난 비경·유적 많아 -
강진군에 흩어져 있는 국보와 보물 18개 중 12개가 이 월남리에 있다. 월출산(809m)은 수석 전시장같은 빼어난 비경을 갖고 있고 차나무와 노송, 동백, 대나무는 단아한 면모를 자랑한다.
월남리에는 월출산 경포대(鏡布臺) 계곡과 월남사지(月南寺址)가 있다. 모전석탑(模傳石塔·보물 298)과 석비(石碑·보물 313)는 현존하는 백제풍의 석물 가운데 백미로 꼽힌다. 그 남서쪽 지근에 원효가 세웠다는 무위사가 있다. 극락전(국보 13)의 맞배지붕은 조선시대 목조물로 나무를 타고 내려오는 선의 아름다움을 매혹적으로 보여준다.
이곳에 다원(茶園)으로는 제주도에 이어 두번째로 큰 농장도 있다. 우리가 설록차라고 부르며 티백으로 마시는 태평양의 녹차재배단지로 수백개의 바람개비가 이국적인 정취를 자아낸다. 월남리에서만 볼 수 있는 특색이자 경관조망점이다. 사방 어디를 봐도 ‘와’ 하고 탄성이 절로 나오는 곳이다.
울창한 계곡 ‘밤같은 낮’차밭 중간엔 백운동(白雲洞)이라는 큰 동백나무숲이 있다. 워낙 울창해 숲속에 들어가면 한낮에도 밤처럼 컴컴하다. 이 숲 가운데 계곡이 흐르고 건너편엔 고풍스러운 집과 포석정과 같은 곡류(曲流)와 정자터가 있다. 이 정자가 1812년 9월 다산 정약용 선생이 차와 시와 풍류를 즐긴 곳이다.
이렇게 보면 월남리는 그린투어리즘을 꽃피울 최적의 환경을 갖고 있다. 하지만 실제 도시민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다. 연간 8만여명의 관광객이 찾고 있으니 방문객수로만 보면 적다고 할 수 없지만 남도문화유산 일번지라는 점에 비춰보면 모자라도 한참 모자란다. 그린투어리즘의 토대가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천혜의 차밭을 설명해줄 방문객 센터도 없고 도시민들이 머무를 민박도 10가구밖에 없다. 이 때문에 녹색농촌체험마을 등 정부의 지원을 받는 어떤 프로젝트도 따지 못했다.
서울대 양병이 교수는 “월남리는 지역적 특성을 살려 차 마시기나 불교문화 체험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농업기술자협회 최동주 박사는 “월남리에도 그린투어의 한 거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월남리 백운동 계곡에 있는 10가구를 민박집으로 가꾸면 주변의 차밭과 어울려 훌륭한 자산이 될 것이라는 제안이다.
- 다도·불교문화체험 적지 -
월남리가 자랑하는 문화유산, 즉 고혹적인 차잎따기, 월남사지와 무위사의 역사탐방, 월출산에서의 생태관찰 등을 통해 도시민들에게 재미와 감동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강진군청 최형택 농산과장은 “월출산 인근 마을을 그린투어 벨트로 연결해 강진의 역사유적과 농업이 도시민과 공유하는 체험교류의 장으로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도농녹색교류를 총괄하는 농림부 농촌진흥과 조원량 과장은 “지역 자원을 차별적으로 특화시키는 마을에 대해서는 정부에서 적극 지원할 태세가 돼 있다”고 말했다.
〈유상오 전문위원 3996359@kyunghyang.com〉
-월남리 ‘숲 해설사’ 김은규·강영석씨-
그린투어리즘이 본격화되지 않은 월남리에도 그린투어리즘의 지도자는 있다.
서울 남대문에서 액세서리 장사를 하다가 외환위기 후 월남리로 귀농한 김은규씨와 강진군 전 의회 의장 강영석씨가 주인공이다.
김씨는 월남리에 정착한 뒤 월남리를 이해하기 위해 먼저 공부를 했다. 숲 해설사, 문화유산해설사 등 지역을 소개하는 여러 강사 과정을 마쳤다. 이후 월남리와 월출산을 중심으로 도농교류와 자연체험학교를 열었다. 지금은 그가 운영하고 있는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음식점에서 ‘광주전남 팜스테이(farm stay) 정기 협의회’가 열려 ‘지역활성화와 도농교류발전방향’이라는 주제로 토론을 가질 정도가 됐다.
강씨는 월남리 토박이로서 월남리의 살 길이 물려받은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상품화하는 것이라고 지역주민들에게 설득한 인물이다. 그 자신은 숲 해설사 등의 교육을 받아 이론무장을 한 데다 의회 의장을 지내며 전통문화의 보전과 지역 자원 활용사업을 주창해왔다.
이들은 요즘 ‘월남리 서포터스’를 구상하고 있다. 월남리의 차밭을 한번쯤 들르는 단순 관광객이 아니라 마을을 지속적으로 찾아 실질적으로 교류할 수 있는 도시민들을 찾아나선 것이다.
〈유상오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