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팔우회2080
 
 
 
카페 게시글
우리들 이야기 스크랩 경찰간부후보생시험 도전기
강기중 추천 0 조회 574 07.09.03 13:32 댓글 10
게시글 본문내용

 

<경찰간부후보생 졸업식 장면>

 

 

< 경찰과의 첫 인연 >

 

1989년 여름, 나는 작은 형의 권유로 군복무를 위해 의무경찰을 지원했다.

11월 30일 논산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마치고 12월에는 충주에 있는 중앙경찰학교에서 의경 기본교육을 받았다. 태어나서 처음 접하는 내용들 이었다. 범인체포술, 데모진압술, 유치장 관리법, 방범순찰법 등은 나에게 흥미진지하게 다가왔다. 열심히 익힌 덕분에  나는 전국의 동기생 중에서 전체 2등 이라는 우수한 의경(?)으로 중앙경찰학교를 졸업할수 있었다. 1990년 1월 당시 창원경찰서로 첫 발령을 받으면서 경찰관으로서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 경찰간부후보생시험, 그게 뭐꼬 ?>

 

의경으로서 처음 발령지는 파출소였다. 주로 순찰 돌고, 범인검거하러 경찰관과 함께 출동하고, 아침에는 교통정리를 하였다. 하루는 창원의 모 전문대학에 시험경비를 하러 갔는데, 경찰봉을 허리에 찬 내 모습이 얼마나 자랑스러웠고, 그런 모습을 아는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었던지 모른다. 그러던 중 그해 2월경 나는 내가 붙힌 경찰간부후보생 모집 전단지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합격 후 1년간 교육 받으면 경위계급(무궁화1개)으로 임용된다는 것이었다. 무궁화 하나면 그렇게 높은(?) 우리 파출소장님과 같은 계급 이었다. 순간 나는 그 시험에 흥분된 마음으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필요한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 경찰간부 시험은 사법고시 만큼 어려운 시험 >

 

그해 여름이 되자 대학생들의 방범아르바이터가 시작되었다. 우리파출소에 창원대학교 법학과에 다니는 대학생이 아르바이터 나왔다. 경찰간부 시험에 대해서 물어 보았더니 사법고시 만큼 어려운 시험이라고 했다. 약간 절망적으로 다가왔지만, 합격에 대한 나의 열정을 꺾진 못했다. 사법고시가 얼마 만큼 어려운 시험인지는 몰라도 나는 경찰간부 시험에 꼭 합격하겠다는 전의를 더욱 더 불태우게 되었다.

 

 <고등학교 책보며, 기초를 다지다 >

 

시험과목을 보니 거의가 다 법과목이었다. 헌법, 형법, 형사소송법,행정법,행정학은 들어보지도 못한 과목이었고 영어,윤리,국사, 제2외국어는 그래도 고등학교때 좀 들어봤던(ㅎㅎ) 과목이었다. 그래서 첫 외박을 받아 고성집에 가서는 고등학교 윤리책과 국사책을 가지고 와서 읽기 시작했고, 영어는 대학에서 보던 토플, 제2외국어도 대학에서 보던 일본어 책을 가지고 기초를 다져 나갔다. 책 본다는 분위기를 주지 않기 위해서 책을 단원별로 뜯어서 얇게 만들어, 틈틈히 몰래몰래 보았던 생각이 난다.

 

<화장실에서도 시간을 아끼며 책보다>

 

시간이 흐를수록 경찰간부시험에 대하 나의 열의는 더욱 강해갔고 그럴수록 독서량은 계속 늘어갔다. 화장실에 앉아 있으면서도 영어단어를 외우고, 방에서 휴식을 취할 때도 국사책을 외웠다. 나날이 나의 실력이 늘어감을 느낄수 있었고, 어느날 서점에서 경찰간부시험 기출문제 영어를 풀었는데 거의 맞출수 있었다. 희망적인 의욕이 더욱 생겼다. 이제 시험공부는 당시 나의 생활의 일부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나에게 주어진 일을 하나라도 소홀이 한 적은 없었다. 할 일을 끝내지 않으면 마음이 불안해서 공부를 할수 없었기 때문이다. 할 일을 최대한 빨리 끝내고 공부시간을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어려운 환경에서 더욱 단련되다>

 

파출소에서 근무하던 중 경찰서 교통외근으로 발령이 났다. 책 보기가 더욱 어려운 부서다. 그래서 나는 아침 일찍 점호를 마치면 다른 사람들이 잘 사용하지 않는 간부 숙직실에서 (약간은 마음을 졸이며) 30분 정도 책을 볼수 있었고, 밤 10시경 근무를 마치고 돌아오면 취침전에 약 1시간 정도 책을 보고 취침을 했다. 교통근무가 힘들었기 때문에 무리해서 책을 보아 몸이 상하지 않도록 노력했으며, 영어단어를 복사해서 쉬는 시간이나 식사시간을 이용해서 외우곤 했다 공부 할수 있는 환경은 더욱 좋지 않았으나, 나의 열정과 공부량은 늘어갔다. 그 당시 내가 영어단어 열심히 외운다는 소문이 고참과 경찰관들 주위에도 알려져 좋지 못한 시선을 받았고, 그럴수록 나는 그들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기 위해서 내 위치에서 더욱더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야만 했다.

 

< 백골부대 발령, 기회가 찾아오다 >

 

1991년 6월경 나는 경남경찰청 제80중대로 발령이 났다. 이름하여 백골부대로 데모를 진압하는 부대였다. 방어부대가 아니라 데모 주동자 체포업무를 가진 부대였다. 훈련은 고되었지만 데모가 없는날은 낮에는 휴식을 취하고 밤에는 방범순찰 근무를 나갔다. 그래서 낮에 훈련을 마치면 제법 많은 시간이 나서 공부에 전념할수 있었고, 밤에도 근무지로 이동하는 버스안에서 책을 볼수 있었다. 데모 진압나가서도 투입되기 전에 대기하는 동안은 버스안에서 책을 볼수가 있었다. 어느날 통도사 데모진압 때 대기시간에 책을 보다가 고참으로부터 약간의 오해를 받아 그날 저녁 소대원 전체가 나 때문에 얼차례를 받았던 기억도 있다. 그후로도 나는 계속해서 다른 대원보다 1시간 일찍 일어나고, 1시간 늦게 자면서 책을 보았다.

 

< 법공부, 무식하게 읽고 외우다 >

 

1991년 12월 경부터는 처음으로 법과목을 공부하기 시작하였다. 시험정보가 거의 없었던 나는 서점에 가서 과목별로 읽기 쉽고 간결하게 쓰여진 책을 한권씩 구입했다. 법서의 어느 부분이 중요한지를 따지지 않고 무식하게 읽고 외우면서 이해하려고 노력하였다. 어느 단원도 소홀히 하지 않았고, 매일 10 페이지 정도를 읽어 나갔다. 영어는 매일 1시간 이상 계속해서 공부하였고 나머지 과목들은 이틀을 주기로 시간표를 짜서 꾸준히 공부해 나갔다. 한꺼번에 많은 양을 공부하기 보다는 매일 각 과목을 조금씩 읽어 나갔다. 그리고 각 과목마다 요점노트를 작성해 나갔다. 제대후에 보니 영어노트가 6권, 일본어 노트가 3권, 그리고 각 과목별로 1권 이상의 요점노트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경찰관들이 보는 경찰수험지(경찰고시,수사연구)에 있는 요점정리와 문제도 틈틈히 풀어보면서 실력을 배양해나갔다. 각 과목당 4~5번 숙독한 후에야 무엇이 중요하고 시험문제화 될수 있는지 감이 잡히게 되었다.

 

< 미니책상 만들고, 조명등 수건 씌워 공부하다>

 

공부하는데 최고로 적합한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내무반 침상은 불편하기 때문에 나무판자를 이용하여 미니책상을 만들었다. 또 저녁시간에  취침하는 다른 대원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 개인 스탠드등을 사서 수건으로 씌워서 빛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해서 책을 읽었다. 뒤에는 이게 유행이 되어 다른 고참과 쫄병도 따라서 하게 되었고, 제대후 많은 소대원들이 경찰관으로 입문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당시 체력이 약했던 나는 틈틈히 연병장을 돌았고, 역기들기와 체조로 체력을 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군대생활 내내 피곤했던지 잦은 코피로 아침마다 세수하면서 애를 많이 먹었던 기억이 난다.

 

< 제대후에도 열정과 공부는 계속되다 >

 

1992년 여름, 제대후 나는 집과 읍내에 있던 누나집에서 계속 공부를 해 나갔다. 그래서 내가 제대했다는 사실을 아는 친구는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매일 경찰간부시험 합격에 대한 열정으로 합격후에 기뻐하는 내모습을 스스로 상상하곤 했다. 그리고 방안에 있는 장롱 거울을 보면서, 면접관이 물어볼수 있는 내용에 대해서 답변하는 연습을 하곤 하였다. 하지만 그해 10월경 갑작스러운 누나의 죽음으로 인해서 나는 심적으로 흔들리기 시작했고, 책을 보아도 도무지 집중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돌아가신 누나를 위해서라도 꼭 합격하겠다는 의지를 다시 불지폈다. 그리고 당시 내가 경찰간부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가  전혀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드디어, 결전의 시험날이 다가오다 >

 

경찰간부 시험은 매년 2월 중순경에 있었다. 1993년 2월중순경부터 나는 시험이 공고되는 서울신문을 가슴 졸이며 쳐다보고, 경찰서 앞 게시판을 유심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며칠, 마침내 시험공고가 고성경찰서 앞 게시판에 나붙었다.  나는 약간 흥분된 마음으로 한동안 모집공고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집으로 돌아와 그동안의 공부내용을 마무리 정리하기 시작했다. 시험은 신체와 체력검사를 통과 사람에 한해 필기시험 기회가 주어졌다. 1차시험을 무난히 통과하고, 필기시험은 부산면허시험장에서 치렀다. 오전에는 객관식, 오후에는 주관식(논문형) 시험이었다. 오전 객관식 시험지를 받고난 후 나는 미친듯이 답을 적어 나가기 시작했다. 시험문제 대부분이 그동안 내가 공부해 두었던 내용들 이었기 때문에 단번에 답을 찍을수 있었다. 점심시간에는 일부러 밥을 먹지 않았다. 단 몇 분이라도 오후시간 공부를 하기 위해서 였다. 오후시험은 내가 처음 경험하는 법과목 논문시험 이었다. 행운이었는지 점심시간에 봐두었던 내용들이 몇 문제가 나와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동안 경찰관 승진시험 수험서를 통해 연습한 경찰관의 구미에 맞는 목차와 형식으로 답을 적어나갔다. 잘 기억나지 않는 부분이 있었지만 나는 혼신의 힘을 다해 마지막 답안지까지 채워나갔다.

 

< 합격통보, 가슴벅찬 맘으로 세상을 보다 >

 

합격발표가 있었던 1993년 3월말경, 나는 우선 전화로 부산경찰청에 합격문의를 하였다. "축하합니다, 합격입니다"라는 여직원의 전화말에 나는 한동안 멍해졌다. 마침내 그렇게 바라던 경찰간부시험에 내가 당당히 합격한 것이다. 그때의 기분, 말해서 뭘하랴...1주일후 부산경찰청에 가서 직접 합격자 명단을 확인하였다. 뚫어지게 내 이름을 쳐다보다가 순간 돌아본 부산 앞바다와 그위를 나는 갈매기가 얼마나 크게 와 닿던지... 지금도 그 감동은 잊을수가 없다. 나중에 경찰종합학교에서 안 사실이지만, 내가 경찰간부시험에서 최연소 수석합격을 하였다고 전해 들었다.

 

< 경찰간부시험은 내 인생의 등불 >

 

나에게 있어 경찰간부시험은 단순한 시험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시험 공부하는 내내 나는 "할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고, 이는 그후로도 내가 경찰생활하는 동안에도 힘들고 어려울 때면 나에게 힘을 주는 내 인생의 등불이기도 하다. 수험생으로서의 성실함과 겸손함은 평소 내가 생활의 신조로 삼고 있기도 하다. 시험에 합격하는 사람보다도 떨어지는 사람이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합격의 자신감을 가지고,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시간을 만들어 매진한다면 꼭 합격할 것이라 생각한다.

 

인생 또한 그런 이치가 아닐까 감히 생각해본다.

 
다음검색
댓글
  • 작성자 07.09.03 13:45

    첫댓글 제 블로그에 있는 글을 옮겨봤습니다. 벌썹 십수년이 지나버린 의경생활을 잠시나마 생각케 하는 글입니다. 당시는 고되었지만 희망이 있었기에 인내할수 있었습니다. 팔우회원 여러분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가지고 살아 갑시다. 참고로 이글에 댓글이 무려 38번이나 달렸답니다...ㅎㅎㅎ

  • 07.09.04 10:16

    행님 나는 순경시험 도전기 함 써보까예 ^^

  • 작성자 07.09.04 11:34

    그래보시요. 정말 좋은 글이 될썽 십소..

  • 07.09.05 00:46

    성근아 잘 지내고 있제??? 함안 군북 월촌에 수박체험관 건축공사를 전자입찰에서 낙찰받게 되었다. 함안 올라가면 한번 만나자!!

  • 07.09.04 10:27

    님의 힘던 시절이 있었기 현재의 님이 있는가 봅니다. 남몰래 흘렸을 땀과 눈물..... 항상 님앞에서는 작아지는 내 모습을 봅니다. 앞으로도 힘들었던 지난날을 생각하여 훌륭한 경찰이 되기를 바란다. 화이팅

  • 작성자 07.09.04 11:36

    회장님의 "경사시험 합격의 감동"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또다른 감동을 팔우회원들에게 전해주시길....

  • 07.09.05 00:35

    창원경찰서 간부숙직실에서 공부하던 강수경의 모습이 눈에 선하고 80중대에 와서는 일본어로 잠꼬대 하는 노력또한 눈에 선합니다. 아~~~~ 그 때 그시절 나는 무엇을 하였던가 술로 허송세월을 보내것 같아 씁쓸합니다. 다시 한번 강기중 고참의 열정에 감사드립니다. 軍시절 소대원의 한사람 으로서...

  • 07.09.11 12:53

    현종행님 함안 공사 시작하모 꼭 함 보입시더 그라고 행님은 부대생활때 물메기로 쫄병들의 윤택한 간식 시간을 책임지셨습니다

  • 07.09.11 19:48

    정말 내자신을 작아지게 만드는 간단 명료한 글들 이네요.

  • 작성자 07.09.12 09:12

    2소대가를 작사하시고, 릴레이에서 극적인 역전우승을 이끄신 님도 훌륭한 의경이었습니다.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