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땀을 뻘뻘 흘리는 일들이 많았다. 비닐하우스 안의 블루베리 화분에 풀들이 올라오기 시작하면서 농장은 이제 비가 온다고 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언제나 일손을 기다리는 상태가 되었다.
은행나무 이파리가 굵어지고 초록이 무성해졌다. 그 아래 평상을 펴고 쉼터를 만들었다. 하우스 안에 마련된 쉼터는 봄까지는 추위를 막아줘서 쉴 수 있었다.
날씨가 더워지기 시작한 오월부터는 하우스 바깥의 은행나무 아래가 바람도 시원하고 초록빛으로 변해가는 앞산과 연둣빛 강물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농장 앞으로 펼쳐있는 지석천이라고도 부르고 지석강이라고도 부르는 이곳을 나는 한사코 지석강이라고 부른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라고 노래한 김소월 님의 시는 왜 그렇게도 반짝이며 내 마음에 슬픈 듯한 아름다움을 심어 놓았는지. 우리 가족의 놀이터로 만들어가고 있는 이곳엔 강물이 흘러야 제격이겠다.
남편은 흠뻑 돋아나 흘러내리는 땀을 훔치며 소꿉놀이처럼 차려진 점심상에서 망설임 없이 막걸리병을 추켜 든다.
첫 잔을 내게 따라주고, 나머지 두 잔은 자기가 마신다. 막걸리를 안 마시겠다고 해도 매번 첫 잔은 의식을 치르 듯 양손으로 병을 잡고 젊잖게 술을 따라 준다.
시큼한 냄새가 별로라서 받아 놓은 잔이니 겨우 한 모금 마시고 남겨 놓으면, 자기 몫을 다 마시고 내 잔을 도로 가져가서 자기가 다 마신다. 더위도 잊은 채 일하다 보면, 목이 말라서 시원한 맥주 한 잔 생각이 나기도 하지만 막걸리는 그냥 따라 주니까 마시는 것이다.
농부의 빼놓을 수 없는 또 한 가지가 막걸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힘들게 일하고 나서 새참이나 점심에 함께 마시는 막걸리는 나머지 일을 해나가는 원동력이다.
농부의 새참은 막걸리라는 공식이라도 있는 것 같다. 어렸을 적에 새참 막걸리 주전자를 들고 새참으로 먹을 것들이 담긴 바구니를 머리에 인 엄마 뒤를 따라 논두렁을 걷던 기억이 떠오른다.
애주가인 남편은 자기가 무척이나 아끼고 좋아하는 막걸리를 나눠 주는 것이 사랑의 표현이라고 농을 친다. 싫다는 막걸리를 굳이 따라 주면서 사랑 운운 하다니...
사랑은 주는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받는 사람이 원하는 것을 주는 거라오~
30년 가까이 살면서 미운 정 고운 정이 켜켜이 쌓여 이제야 겨우, 삶의 동지가 되어가고 있는 우리다.
"막걸리 한 잔 드실래요?"
땀 흘려 일하고 난 후, 물어보나 마나 한 말을 건네면
"좋~~ 지요."
가락을 맞춰 돌아오는 말이다.
주종을 가리지 않고 애주가인 남편이 농부가 되면서 막걸리 애호가가 되었다.
첫댓글 구수한 글 잘 읽었어요.
땀 흘려 일하다가 평상에 앉아 나눈 정스러운 모습이 눈에 선하네요.
행복 만들어가길 바래요.
아직은 한낮 더위가 있어서 시원한 평상이 좋습니다~♡
막걸리는 농부의 활력소 역할도 되지요!
언제 그곳에 찾을 때. 막걸리 들고가겠소^^♡
엄청 좋아할 사람있습니다. 더 좋게 꾸며야 개방을 할텐데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