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같은 형태〉는 5월 26일까지 삼성생명빌딩 1층 플라토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김홍석 개인전 <좋은 노동 나쁜 미술(Good Labor Bad Art)>에서 미술관 바깥에 전시된 작품이다. 전시회에는 그 외에도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관람객으로 하여금 ‘현대미술이란 무엇인가?’ 다시 생각하게 하는 작품들이 놓여 있다. 미술관 입구에 들어서니 한 남자가 이불을 뒤집어쓴 채 벽에 머리를 찧고 서 있다. 얼굴을 가려 익명성을 보장받은 한 남자의 뒷모습에서 절대고독, 처절함이 묻어나는 듯해 가슴이 찡하다. 실제 사람이 퍼포먼스를 하고 있는가 했더니, 사실은 레진으로 만든 인체 모형에 옷을 입히고 신발을 신긴 것이다.
<개 같은 형태> |
가로세로 300×225cm 회화작품인 〈걸레질〉 〈빗자루질〉 〈닦기〉 〈젓기〉. 대형 화폭에 우레탄 물감으로 걸레질하고 빗자루질해서 완성, 미국의 추상표현주의를 연상시키는 이 작품들을 처음 전시할 때 그는 “시간당 임금을 주고 일용직 노동자가 그리게 했다”고 설명해 관람객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사실은 아니었다. 미술관을 찾은 관람객들이 추상화를 보면서 드는 의문, ‘이런 작품은 누구든 그릴 수 있지 않을까?’를 가지고 일종의 게임을 한 것이다. 〈기울고 과장된 형태에 대한 연구-LOVE〉라는 작품은 종이박스와 둥글게 만 매트를 쌓아 올려 ‘LOVE’란 형태로 만들어놓았다. 노숙자들의 잠자리를 연상시키는 재료를 미술관에서 전시하다니! 알고 보니 레진으로 만든 작품이다. 〈사람 건설적-단결〉이란 작품은 쓰레기봉투와 판지, 나무판을 차례로 쌓아 올리고 각목으로 받쳐놓은 것 같은데, 뒤를 보니 반짝반짝한 스테인리스스틸이다. 실제로는 브론즈와 스테인리스로 된 작품이다. ‘어, 이 허접한 물건들이 무슨 작품이지?’ ‘알고 보니 다른 재료였네.’ ‘그런데 대체, 현대미술이란 게 뭐야?’ 관람객들은 그의 작품을 보면서 이렇게 자신의 생각을 뒤집고 또 한 번 뒤집으면서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실은 그게 작가의 의도다. 미술가의 역할은 이렇게 기존의 관념, 관습을 뒤엎는 것이라고 김홍석은 생각한다.
그의 작품들은 여러 층위로 읽힐 것 같다. 현대미술에 정통한 관람객이라면, 그가 현대미술의 대표작들을 차용하면서 위트 있게 비꼬아놓은 것을 보고 웃음을 터뜨릴 것이다. 회화와 조각, 텍스트, 퍼포먼스, 사진과 동영상을 넘나드는 그의 작품들을 보면서 ‘장르 구분이 의미 없어진 현대미술의 현주소’를 확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미지가 사진, 복사물, 인터넷, SNS를 통해 무한 복제되는 지금, 원본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가?’같이 현대미술의 이슈에 대한 그의 강의도 들을 수 있다. 상명대 교수인 그의 강의록을 연기자가 작가인 것처럼 대신 말하는 것을 촬영한 동영상으로, 이를 다시 영어로 번역한 텍스트도 전시되어 있다. 작가의 강의록이 연기자의 목소리로, 또다시 영어 텍스트로 바뀌면서 어떤 ‘차이’가 발생하는 것일까?
주변에서 흔히 보는 기성품을 미술관으로 끌어들이는 작업은 1917년 마르셀 뒤샹이 도기로 된 변기를 전시하면서 〈샘〉이란 이름을 붙인 후 현대미술에서 흔한 작업방식 중 하나다.
“미국에서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할 때 보니 망가지기 쉬운 값싼 재료들로 작업하는 작가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그런데 미술관 관계자나 운송회사 직원들은 운반 과정에서 그 작품들이 손상될까봐 귀금속을 다루듯이 쩔쩔맸지요. 그들의 근심과 노동을 덜어주기 위해 튼튼한 재료로 바꿨습니다.”
<기울고 과장된 형태에 관한 연구-LOVE> |
그의 작품은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처럼 아무도 실상을 파헤치려 하지 않기 때문에 신화화되면서 천정부지로 값이 올라가고 있는 현대미술에 대한 조롱, 농담으로도 비친다. 그런데 현대미술에 문외한인 관람객이라도 그의 작품을 보면서 마음에 남는 게 많을 것 같다. 그의 관심이 인간과 인간의 관계, 소통에 있기 때문이다. 벽을 뚫고 손을 내미는 〈수줍게 악수를 청하는 남자〉의 손을 잡아주면서, 허접한 재료들로 쌓아 올린 〈LOVE〉라는 작품을 보면서 ‘서로의 허접한 내면을 받아들이면서 손을 잡아주는 게 사랑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의 작품에는 사회적인 함의도 빈번하게 들어간다. 2008년 국제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에서는 사람 크기의 토끼 인형이 소파에 누워 있고, 차렷 자세로 서 있었다. ‘사람이 인형 속에 들어가 연기하는 것 아니야?’ 하는 의문이 들 즈음, “불법체류자인 북한 출신 노동자가 시간당 5000원을 받고 연기하고 있다”는 설명문이 눈에 들어온다. 당황해할 즈음, 안내인이 “사실이 아니다”라고 알려준다. 동티모르 출신 노동자가 외국인노동자의 인권에 대해 동티모르 말로 이야기하고 한 여자가 옆에서 통역해주는 동영상도 있는데, 이도 사실이 아니다. 두 사람 모두 우리나라 연기자로, 분장을 한 채 엉터리 동티모르 말로 연기를 한 것이다. 그는 이렇게 게임 같은 픽션을 통해 사회적인 이슈를 돌아보게 하면서 관람객에게 말을 건다.
“어린아이들은 순수해서인지 픽션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요. ‘저 아저씨를 돕고 싶다’며 부모를 졸라 돈을 놓고 가게 하죠. 덕분에 돈이 많이 쌓였습니다.”
<미스터 김> |
그의 전시회 제목은 의미심장하다. 장르를 넘나드는 작품들로 하나의 무대처럼 꾸미면서 제목에 담긴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번에는 왜 ‘좋은 노동, 나쁜 미술’일까?
“<개 같은 형태>를 만들 때 제가 한 일은 쓰레기봉투를 찾아서 건넨 것까지입니다. 제 작업실이 있는 공단지역이나 동대문시장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지요. 쓰레기를 잔뜩 넣어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그대로였습니다. 브론즈로 캐스팅하는 것은 공장에 맡겼으니, 작품 공정의 90%는 공장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쓰레기봉투 그대로를 미술관에서 전시할 수도 있지만, 브론즈로 만들어졌을 때 사람들은 안심하죠. 옮길 때 원작을 훼손할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비싼 가격에 팔릴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캐스팅한 사람에게는 그만한 대가가 돌아가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게 윤리적으로 옳은 것인가, 사회적으로 합의된 것인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싶었습니다. 미술작품을 작가 혼자 만들지 않는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공장에 맡기기도 하고, 어시스턴트의 도움을 받기도 합니다. 제프 쿤스의 작품은 크롬 도금을 하는데, 이를 위해 따로 용광로를 제작해 어마어마한 비용이 들지요.”
그는 현대미술의 제작과정을 일부러 노출하면서 작품이나 작가의 신화화를 경계한다. 미술관은 보통 어느 정도 사회적 지위나 지식을 가진 사람이 찾는 공간인데, 김홍석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은 이에 어울리는 노동자로 보인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는 남자가 신고 있는 신발은 동대문시장에서 2만원에 팔리는 것으로, 노동자층이 많이 신는 신발이라 한다. 미술관에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재료들(사실은 이 재료들을 브론즈나 레진으로 캐스팅한 것이지만)도 빈번하게 등장한다.
“미술가는 ‘무엇을 아름답다고 볼 것인가’에 대한 고정관념을 전복시키고 새로운 미의 기준을 제시하는 존재입니다. 쓰레기봉투나 종이박스도 미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제 작품에서는 그런 재료들이 고도의 기술을 통해 새로운 신분으로 바뀌었지만요.”
<수줍게 악수를 청하는 남자> |
그의 작품에 ‘번역’ ‘차용’의 문제가 빈번하게 등장하는 것은 독일 유학시절에 겪은 심리적인 갈등에서 연유한다. 서울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독일 뒤셀도르프 쿤스트아카데미에서 공부하던 시절, 그는 ‘너는 한국에서 왔으니, 독일 것을 흉내 내지 말고 한국적인 것을 해야 하지 않느냐’는 무언의 압력을 받았다. 한국의 기와나 색동, 수묵화 같은 게 그들 눈에는 ‘한국적인 것’이었다. 한국에 들어와 대학 시간강사가 되었을 때는 ‘서양문화를 접하고 왔다’는 이유로 서양문화를 전하는 대리인이 되어야 했다. 다른 문화를 수입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번역’은 세계 속의 한국작가로서 정체성을 고민하는 그에게 절실한 문제가 되었다.
“‘번역’은 사실 국가 전체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1945년 대한민국 건국 이후 법과 제도, 정부, 군사, 경찰, 교육 모두 서구의 시스템을 들여와 우리 것으로 번역하는 과정을 거친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만의 잡종이 만들어졌고요.”
그는 김수영의 시를 영어로 번역하게 한 후 번역문을 다시 한국어로 옮긴 과정을 그대로 전시하면서, 원문이 두 번의 번역을 거치자 다른 글이 되는 것을 통해 번역에서 생기는 ‘차이’를 역설하기도 했다. 현대미술의 대표작을 차용하는 그의 전략도 여기에서 출발한 것이 아닐까?
<사람 건설적-단결> |
“세계 미술계는 서구 출신이 아닌 미술가가 현대미술의 메인스트림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너네 이야기나 하라’는 식이지요. 어릴 때 미국으로 이민 가 미국에서 성장한 이란의 여성미술가가 있는데, 그가 이란으로 돌아가 이란의 여성인권을 파헤치는 작품을 했을 때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식이지요. 그의 작품에 등장한 이란 여성들은 그 후 삶이 바뀌었을까요? 그 역시 백인 남성의 시각과 다를 바 없이 이란의 여성들을 수단으로 삼고 타자화시킨 게 아닐까요? 그 자신 이란 여성작가라는 이유로 도덕적 비난을 받지 않았지만, 여기에 윤리적인 문제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부 고발자’처럼 현대미술의 윤리적인 문제를 들추어내고, 차용을 통해 현대미술의 신화화에 가격(加擊)을 하고 있는 그는 자신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국내외에서 주목받는 작가가 되었다. 베니스비엔날레 등 세계적인 비엔날레에 연달아 참여하고, 국내외 전시가 줄을 잇는다. 호주 국립미술관과 미국 컬렉터가 그의 작품을 비싼 가격에 사가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후보에 올랐다. 그는 그러나 앞으로도 스스로를 신화화의 성으로 유폐시키지는 않을 것 같다.
“제가 대학에 다니던 1980년대, 밖에서는 매일같이 데모가 벌어지는 데 미대 학생들은 평온하게 작업만 하는 불일치가 불편했습니다. 제가 하는 작업이 우리 사회의 현실, 보통사람들의 삶과 유리되지 않도록, 누구든 미술관에 들어와 함께 즐길 수 있도록 끊임없이 ‘말 걸기’를 할 작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