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맞이꽃
1970년 5월 11일 21살의 어린나이에 첫 발령으로 아산 관대초등학교 근무를 명 받았던 젊은 병아리 교사 시절, 나는 천방지축 실수투성이의 교사생활을 했었다.
천방지축인데다 별 경험이 없는 점을 감안하여 학교에서는 중요한 업무는 중견교사에게 맡기고 나에게는 물품수집, 비품관리, 화단관리 등 잡다사소한 것들을 맡겨 주었다.
그 당시는 지금처럼 학교 근무시간외의 시간에는 경비업체에서 학교경비관리를 맡는 것이 아니고 교장, 교감을 제외한 교사가 돌려가면서 휴일 낮에는 일직(남녀교사), 평일에는 퇴근시간 기준하여 저녁에는 숙직(남교사)을 학교 잡일을 맡아서 하는 소사아저씨와 같이 하였다.
시골에는 아직 전기도 전화도 없던 그 시절, 가정을 가진 소사아저씨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날마다 학교에서 잘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교사 혼자 자게 되는 일(사실 근무규정 상으로는 둘이 번갈아 자지 않고 학교를 순회하며 경비하도록 되어있음)도 많았는데 마을에서 떨어져 외진 곳에 있으며 교문, 울타리도 허술한 시골 그 넓은 학교에서 혼자 자려면 좀 무서울 때도 있었다.
그런데 아무것도 모르는 나이지만 그 학교에 이상하게 생각되는 것이 몇가지가 있다.
그중 대표적인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숙직실 방이 부엌을 통해서 들어가도록 문이 나 있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내가 맡아 관리하는 화단 중 숙직실 바로 앞의 화단 하나가 좀 이상했다.
키가 1m 이상 자라는 꽃나무 한 종류가 빼곡하게 심겨져 있는 화단인데 언제나 보면 피어있는 꽃은 하나도 없고 시든 꽃만 수두룩하다.
그래서 다 뽑아 버리고 다른 꽃을 심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내 바로 위의 젊은 선생님에게 물어봤다. 그랬더니 이렇게 알려 주었다.
이 학교에 전에 오래 근무하시던 교장선생님이 한분 계셨는데 이분 고향이 북한이라는 것이다. 가족들은 서울에 살고 혼자서 숙직실에 기거하시면서 손수 자취를 하셨다고 한다.
교육청에서 숙직실을 지어준다고 했을 때 교장선생님의 요청으로 숙직실을 설계 건축을 하였는데 그래서 추운 북한지방의 주택 구조처럼 부엌을 통하여 방을 들어가도록 문이 만들어 졌다고 한다.
또 자기 고향에는 달맞이꽃이 사방에 지천으로 피어 그 꽃을 무척 좋아하였는데 이곳에선 많이 볼 수는 없지만 여기저기 조금씩 있는 달맞이꽃을 모아 숙직실 앞에 화단 하나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저녁이면 의자를 화단 앞에 갔다 놓고 이 꽃을 바라보며 고향생각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는 것이다.
나는 ‘달맞이꽃’을 그때 처음 알았다.
그리고 그 선생님 말씀이 저녁 해가 져 어둑어둑해지면 달맞이꽃 피는 모습을 직접 볼 수도 있으니 한번 보라고 얘기도 해 줬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달맞이꽃을 뽑아버리는 것은 유보를 했다. 그리고 직접 꽃이 피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나도 그 교장선생님처럼 저녁에 의자를 화단 앞에 갔다 놓고 오래도록 앉아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꽃 피는 광경을 목격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시골에서 태어나서 평생을 시골서 자라면서 주변 많은 꽃들을 보아왔으나 꽃이 피는 광경을 직접 본적이 없으니 아마 꽃은 사람이 보지 않는 한 밤중에 피는 것일 것이고, 피는 속도도 조금씩 조금씩 아주 느려서 보기 어려울 거라 생각하고 포기를 했다.
그리고 의자를 치우려고 일어나 의자를 들면서 화단을 마지막으로 살펴보니 어라? 진짜 어라다!
여기저기 꽃이 핀 것이 많이 있네? 조금 전 까지는 한 송이도 핀 것이 없었는데?
다시 앉아서 꽃망울 중에서 가장 크다고 생각되는 것을 골라서 시선을 고정하고 예의 주시를 했다.
그랬더니 한참을 기다린 끝에 꽃받침이 움직였나 싶더니 이내 툭 터지면서 순식간에 꽃잎이 활짝 벌어지는 것이 아닌가?
아, 아, 이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가? 내 눈으로 사사삭 소리를 내듯이 꽃이 피는 광경을 직접 목격을 하다니!
나는 이후 깜깜하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그곳을 떠나지 못했다.
은근 공포심이 샘솟던 숙직이 그날부터는 기다려지기까지 했다.
그리고 여러 차례 관찰을 하다 보니 몇 가지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되었다.
어두워지기 시작해야 핀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고, 피는 순간이 2~3초 정도로 짧아 이곳저곳을 살피다가는 하나도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 바람이 산들산들 불 때 많이 핀다는 것, 달맞이꽃 피는 것을 관찰하는 최선의 시기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달 밝은 밤이 제일 좋다는 것 등등
정말로 노랗게 핀 달맞이꽃이 달빛을 받아 빛나면 형광색 비슷하게 환상적 풍경이 된다.
그러나 요즘이야 밝은 불빛과 하도 색감이 좋은 여러 가지 것들에 익숙하여 그런 똑같은 광경을 목격한 아이가 있다 하더라도 나의 그런 감동에 근접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도 그 무렵 그 달맞이꽃이 피는 것을 목격한 이래 다른 어떤 꽃도 피어나는 것을 본적이 없다.
달맞이꽃은 이름대로 달이 있는 밤에 피었다가 해가 떠오르는 낮이 되면 지는 꽃이다.
## 동영상 소개
1. 달맞이꽃이 피어나는 동영상 -- 내가 직접 촬영하고 싶었으나 이 근처에서 그렇게 많은 꽃이 있는 곳을 찾지 못해서 아직 못 찍었음.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bungyc&jumpingVid=7B4ACAD02FF03BA8BFD0338657EE98C82B52&logNo=30143481559
2. 달맞이꽃 노래 -- 맹인가수 이용복의 노래가 더 유명하지만 여기서는 김추자의 노래로
https://youtu.be/fTLoa0dTewg
첫댓글 달맛이꽂 터지는모습잘봤어~~우리집 달맛이꽃은 해맛이꽃인지 왜 낮에피여 있지?
저녁엔 지던데~~종자가 틀린가?
아마도 개량종일거야
난 그런건 못 봤는데 한번 가봐야겠네! ^^
관대초등학교는 임서방이 몇달전까지 근무하던곳인데 숙직실을 물어보니까 아예 철거를 해버렸다는데~
재작년인가 그학교를 가본적이 있는데 지금도 학교가 예쁘더라고
입구에 모양좋은 소나무도 한그루 있어
숙직실이야 40년이 넘었으니 그뒤에 지은 것도 철거했겠다! 나는 그옆에 있는 낮은산에서 봄, 가을이면 아이들 데리고 가서
풍경화 그리라고 하고 풀밭에 누워있곤 했는데 거기 아직도 있나 가보고 싶은데 아직 못 가봤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