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의사들의 자살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2월 경북에서 산부인과 의사인 전 모 원장이 병원 지하 사무실에서 보일러 배관에 전깃줄로 목을 매 숨졌다. 숨진 전 원장은 의료사고와 경영난으로 병원을 폐업했으며 증권으로 부채를 해결하려다 오히려 빚을 지고 심한 괴로움에 시달려온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지난해 4월에는 서울에서 극심한 채무관계에 시달려 온 정형외과 전문의가 독극물을 정맥주사 해 숨졌으며 두 달 후인 6월에는 강원도 원주에서 경영난에 시달려 온 40대 마취과 전문의가 부인과 함께 동반 자살했다.
고소득 전문직으로 알려진 의사들이 흔들리고 있다. '사(士)자 불패' 신화의 주류를 이루던 의사들이 경영난과 상대적 박탈감으로 인해 극단적인 선택으로까지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최근 조사에서도 극명하게 나타난다. 소득 상위 10%의 의사들이 하위 10%의 의사들에 비해 무려 7.6배나 많은 진료비 수입을 거둬들인다는 조사 결과가 나온 것이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 2003년 소득 상위 10% 개원의들의 연 매출이 4억 5천 8백만 원인 반면, 하위 10%는 6천만 원 가량에 불과해 의사들 간에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진료과목 별로는 정형외과가 3억 8천 8백만 원으로 연 매출이 가장 높았고, 안과와 신경외과가 뒤를 이었다. 반면 최근 저출산 현상 등으로 수입이 급감한 산부인과와 소아과, 비뇨기과와 가정의학과 등은 연 매출이 1억 5천만 원 가량으로 상대적으로 적었다. 더욱이 연 1억 2천만 원 이하의 매출을 올리는 의원이 전체의 22%나 돼 의원 운영비 등을 감안할 경우 상당수 의원이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소아과 개원의 가운데는 연봉으로 추산할 경우 3천 5백만 원 이하가 30% 정도라는 얘기도 있다. 이번 조사에는 비 보험 항목이 빠져 성형외과와 피부과, 안과 등의 수입은 정확하게 반영되지 않았지만, 현 의사들의 상황을 보여주기에는 충분하다. 이젠 의사라고 해서 고소득이 보장되는 시대는 지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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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현상은 경기 침체나 내수 부진 때문만은 아니다. 의료 서비스 시장의 수급 구조 자체가 전반적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바로 '공급의 확대'가 주원인인 것이다. 1975 - 2003년 사이에 우리나라 인구는 3천 5백만 명에서 4천 8백만 명으로 늘어났다. 그런데 같은 기간 동안 의사 수는 만 6천 8백 명에서 8만 천 3백 명으로 4배 넘게 급증했다. 특히, 80년대 중반이후 신설 의과대학이 우후죽순처럼 생기면서 의사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지금도 매년 2천 5백 명의 의사가 새로이 시장에 진입한다. 이젠 도시 지역은 거의 포화상태이고 대도시에는 '송곳 꽃을 자리조차 없을 정도'라는 우스개 소리가 나오고 있다. 바로 이런 치열한 경쟁속에서 급변하고 있는 개원가는 빈익빈, 부익부로 양극화되고 있는 것이다. 파이가 커지지 않는 한 한쪽이 새로 개원하면 다른 곳은 폐업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적자생존의 치열한 경쟁은 이제 의사들에게도 예외가 아닌 것이다.
다른 전문직들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9월 광주지법은 지방법원 부장판사 출신의 변호사에게 파산 결정을 내려 변호사 등록을 취소했다. 변호사도 이젠 파산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해마다 천 명에 달하는 사법시험 합격자 배출로 변호사 수가 급증하다보니 수임 건수는 점차 줄어들 수밖에 없다. 공인회계사의 경우 절반 가까운 합격자들이 연수받을 회계법인을 정하지 못해 일반 기업으로 발걸음을 돌리고 있다. 이젠 고소득이 보장되는 '전문직'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의과대학에만 들어가면, 고시에 붙기만 하면 부와 명예가 한꺼번에 보장되는 건 정말 까마득한 옛날 이야기이다.
자격증이 저절로 돈을 벌어주는 시대는 지나갔다. 전문직으로 성공하기 위해 이제 자기 분야 전문지식만으로는 승부하기가 힘든 것이다. 우리사회도 점차 직종의 간판보다는 개인의 부가가치에 더 후한 점수를 주는 방향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동일한 직종 내에서도 그 사람이 창출하는 부가가치에 따라 보수가 크게 달라지는 것이다. 사(士)자가 된 뒤에도 옥석을 가리는 냉혹한 경쟁이 다시 기다리고 있다. 끊임없는 변화와 혁신으로 자신을 갈고 닦는 사람만이 미래의 전문가로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개원의의 경우 좀 더 조직화, 전문화, 차별화 된 의료서비스로 자체를 브랜드화 시켜야 한다. 결국 고객들이 찾을 만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면 시장에서 퇴출될 수밖에 없다. 고도의 서비스산업인 의료에서 고객들이 바로 경쟁을 부추기며 구조조정을 촉진하기 때문이다.
(kbs이충헌기자 건강파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