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회 안산전국여성백일장
대상 / 운문
그늘
김 민 지
천막은 우주와 작은 고양이
아버지와 나의 궤도는
늘 서커스 외줄에 묶여 있었다.
나는 검은 손바닥에서 자전과 공전을 배웠다.
나는 어릿광대였고,
저글링처럼 돌아가는 행성들이
바닥에 뒹굴었다.
우리는 서로 같은 우주를 관측하고 있다 했지
이따금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별똥별들
어쩌면 내가 외발자전거를 타고 태어난 날도,
그을린 피부색을 가릴 분을 칠한 이유도,
모두, 아버지와 같은 손금을 지녀서 일지도 몰라
서커스의 막이 빛을 밀어낼 때마다
별똥별을 하늘도 반납하듯 폭죽이 터졌다.
아버지와 나는 분칠한 얼굴을 지웠다.
우린 얼마나 닮은 표정을 지니고 있을까
거울에 공을 던지자, 내 얼굴이 개졌다.
새 떼가 젖은 수건처럼 아버지의 어깨에서 떨어졌다.
오늘 밤,
우리는 땀처럼 축축한 중력을 벗어 버렸다.
무수한 흔들림의 파문을 공중에 그리면서
외줄을 타는 아버지의 헐렁한 뒷모습
내가 아버지의 얼굴에 앉았다가 날아가면
아버지의 얼굴이 사라졌다.
나는 아버지의 표정을 엿보지 못한 채로
한참을 외줄 위에서 멈춰 있었다.
차갑게 식은 관객석 위로 새가 날아올랐다.
나도 아버지처럼
눈 밑에 한 줄기의 자국을 가지고 싶었다.
문득, 아버지의 생애가 섬광처럼 지나갔다.
우리의 두 눈동자에 초승달이 차올랐다.
나는 천막 아래 그늘에서
태양이 외줄 아래로 숨는 것을 똑똑히 봤다.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