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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해우(海隅)의 백합국어사랑방(신문사설&칼럼) 원문보기 글쓴이: 해우(海隅)
2010년 9월 28일 화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일러두기 :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편집한 것이며 상업적 목적은 일절 없습니다.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본인의 성향과는 무관함을 알려 드립니다.
*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
[한국일보 사설-20100928화] 아이의 눈으로 입양 허가제 운영을
국내 가정에 입양됐다 파양되는 이들은 연간 800여명에 이른다. 사법연감에 따르면 양부모로부터 파양된 사례는 2007년 897건, 2008년 902건, 지난해 866건이었다. 하지만 입양 사실을 숨기려고 친자 출생 신고를 했다가 친자관계 부존재 확인소송을 통해 관계를 단절하는 경우가 많은 현실을 감안하면 실제 파양 건수는 더 많을 것이다. 파양 중 80~90%는 협의상 파양이다. 지난 해만 해도 866건 중 91.5%인 793건이 협의상 파양이었다. 입양이 신고만으로 이뤄지는 것처럼 파양도 손쉽게 결정되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는 통계다.
그만큼 입양아의 지위는 불안하다. 입양과 파양에 이르는 과정에서 그들은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다. 정부나 법원이 입양을 개인 차원의 문제로 인식해 개입을 하지 않은 결과다. 그동안 입양 과정에서 양부모의 자질과 자격에 대한 심사나 검증은 전무하고 입양 아동의 관점이나 입장은 무시됐다. 그로 인해 최악의 경우 아이들이 양부모의 이익을 위해 이용 당하다 버림받는 경우까지 빈발했다. '아동 수출국'오명을 씻기 위해 국내 입양을 장려해온 정부가 입양 제도의 여러 문제점에 대해선 수수방관해 온 셈이다.
그런 점에서 법무부가 미성년자를 입양할 때 법원이 부모의 입양 동기와 경제적 능력, 범죄 전력 등을 심사해 입양 여부를 결정하는 허가제 도입을 추진키로 한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우리나라가 1991년 가입한 유엔 아동권리 협약이 입양 허가제를 규정하고 있는 사실에 비춰볼 때 정부의 움직임은 다소 늦은 감이 없지 않다. 그러나 양적 측면만 강조하던 입양 정책을 질적 측면까지 고려하는 쪽으로 수정ㆍ전환함으로써 입양아들의 행복권 실현을 위한 필요 최소한의 조치를 마련키로 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다만 이같은 정책 전환이 실효를 거두려면 협의상 파양도 법원의 심사를 거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 파양 위기에 처한 입양아들이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와 파양된 입양아들을 보호할 수 있는 대책을 함께 마련하는 것이 긴요하다.
[한겨레신문 사설-20100928화] 국민 우롱하는 4대강 ‘친수구역 특별법’
정부와 한나라당이 추진해온 4대강 주변 ‘친수구역 활용에 관한 특별법’이 애초 설명과 달리 수자원공사에 개발이익을 몰아주기 위한 것임이 정부 문건으로 확인됐다. 4대강 사업비 8조원을 부담하는 수공에 특혜를 주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사실로 입증된 셈이다. 정부는 그동안 거짓말을 해온 데 대해 사과하고 법안 추진을 당장 중지하기 바란다.
이 문건을 보면 정부는 이미 지난해 8월부터 수공의 투자비 회수를 위해 다양한 방법을 모색해왔다. 처음에는 하천법을 개정해 수공에 친수구역 개발권을 주려다 여의치 않자 특별법 제정으로 방향을 틀었다. 문건에선 또 택지개발법상 수공이 사업자가 될 수 없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 수공이 대규모 택지개발 사업에 참여하기 위해 특별법 제정을 추진해왔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수공의 4대강 사업 참여는 애초부터 잘못된 것이었다. 법적 근거가 불확실한데다 8조원의 예산을 조달할 방안도 전혀 없다. 정부가 4대강 예산을 줄이려고 수공에 떠넘긴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예산도 없는 수공에 억지로 맡겼으니 그 비용을 회수할 수 있도록 4대강 개발의 특혜를 주는 것은 당연한 절차다. 일의 추진 과정으로 보나 이번에 드러난 문건으로 보나 친수구역 특별법이 수공의 사업비 보전을 위한 것임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더이상 국민을 속이려 하지 말고 이를 인정해야 할 것이다.
수공이 8조원의 사업비를 회수하려면 그 몇 배에 이르는 수십조원의 공사를 벌여야 한다. 그러려면 관광·레저시설이나 주택단지 개발사업을 할 수밖에 없다. 대구시는 이미 친수구역 특별법 통과에 대비해 낙동강 인근에 대규모 위락시설 조성을 추진중이다. 특히 특별법이 통과되면 개발 예정지의 절반이 하천 2㎞ 안에 포함된다. 상수원보호구역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이 막개발로 크게 훼손될 게 분명하다.
그뿐 아니다. 하천법, 자연환경보전법, 4대강 수계 및 물관리 등에 관한 법률 등은 대부분 수질과 환경 보호를 위해 하천 주변 개발을 억제하고 있다. 하지만 특별법이 통과되면 이런 법들이 무력화되면서 하천 관리의 기본 틀은 무너지게 된다. 지금이라도 수공은 4대강 사업에서 손을 떼야 한다. 4대강 사업은 여야가 국회에서 결론을 낼 일이지 변칙적으로 수공에 떠맡기고 뒤로 적자를 보전해줄 일이 아니다.
[동아일보 사설-20100928화] 人共치하의 참상, 젊은 세대에도 알려줘야
1950년 6월 25일 기습 남침을 감행한 북한 인민군은 소련제 탱크를 앞세우고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와 사흘 만에 서울을 점령했다. 피란을 가지 못한 140여만 명의 서울시민은 국군과 유엔군이 서울을 수복한 9월 28일까지 3개월간 꼼짝없이 북한 인민공화국(인공·人共) 치하에서 살아야 했다. 공산주의의 실상을 뼈저리게 체험한 악몽의 나날이었다. 당시 13세 소년이던 이현희 성신여대 명예교수(한국근현대사)는 “30년보다 긴 3개월이었다”고 회고했다.
60년 전 그때 서울 도처에는 북한군의 서울 입성을 환영하고 김일성을 찬양하는 벽보와 플래카드가 나붙었다. 많은 우파 지식인과 지주(地主), 북한군에 협조하지 않은 사람들이 ‘반동분자’로 몰려 인민재판에 회부된 뒤 총살당했다. 북한군의 식량 강탈로 수많은 서울시민이 먹을거리를 구하러 구석구석을 뒤지고 다니거나 풀로 연명해야 했다. 눈에 띄는 젊은이들은 무차별로 이른바 의용군으로 끌려갔다. 북한군 치하의 전국 대부분 지역이 비슷한 생지옥을 경험했다.
6·25전쟁으로 남한의 민간인만 24만여 명이 사망하고 12만여 명이 학살됐다. 8만4000여 명이 납치되고 30여만 명이 행방불명됐다. 국가안보를 튼튼히 하지 못해 적군에 점령되면 어떻게 되는지를 똑똑히 보여주는 참혹한 기록이다. 북한은 1948년 9월 정권 수립 후 치밀하게 전쟁 준비를 한 반면 우리는 탱크 한 대, 전투기 한 대 없이 전쟁을 맞았다. 전쟁 발발 당일까지도 ‘설마 북이 남침하겠느냐’며 무사태평이었다.
오늘 서울 수복 60년을 맞는 마음이 무겁다. 수복을 기념하는 것도 좋지만 한 차례 요란한 행사를 벌이고 망각해버린다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 생존자들의 증언과 기록 등을 통해 인공 치하의 참상을 광범위하게 수집하고 체계적으로 정리해 젊은 세대들도 그 시대의 아픔을 알게 해야 한다. ‘전투는 군인이 하지만 전쟁은 국민이 한다’는 말이 있다. 국가를 수호하자면 국민의 정신무장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다.
북은 지금 이 순간에도 남침 야욕을 버리지 않고 있다. 6·25전쟁 당시 우리가 겪었던 참상이 아직도 북에서는 계속되고 있다. 김정일 집단의 실체를 제대로 알고 제2의 남침 가능성에 철저히 대비하는 것만이 6·25와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는 길이다.
[조선일보 사설-20100928화] 현대차 14만대 리콜, 도요타처럼 되지 않으려면
현대자동차가 미국 앨라배마 공장에서 생산한 신형 쏘나타 14만대를 리콜하기로 했다. 미국 도로교통안전국이 운전대 작동 결함과 관련된 2건의 소비자 신고를 받은 뒤 현대차 미국 내 판매모델 전 차종을 조사한 데 따른 조치다. 현대차는 "미국 현지공장의 조립 과정에서 운전대의 볼트를 제대로 연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부품의 구조적 결함이 아니라 단순한 조립 실수로 인한 문제라는 것이다.
현대차 설명이 맞는다면 이번 리콜은 미국 시장 판매에 타격을 줄 만한 사안은 아니다. 아직 운전대 결함으로 인한 사고나 인명 피해도 없어 리콜 파장이 더 확대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계기로 현대차 품질 관리 시스템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현대차는 지난 2월에도 신형 쏘나타의 문이 완전히 닫히지 않는 결함이 발견돼 국내외에서 4만6000여대를 리콜했었다. 단기간에 판매가 급증하면서 품질 관리 능력에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는 지적이 회사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세계 1위 자동차 회사인 도요타가 대규모 리콜 사태로 주춤한 틈에 현대차 미국 시장 점유율은 지난 8월까지 20개월 연속 상승세를 나타냈다. 현대·기아차의 세계 시장 점유율도 9.3%로 사상 최고 수준이다.
해외 판매 급증에 따라 부품 공급업체들이 휴일 없이 공장을 풀가동하고도 현대·기아차의 주문 물량을 제때에 대기 어려울 지경이라고 한다. 납기(納期)에 맞추기 위해 무리를 하다 보면 품질관리에 구멍이 날 가능성도 커진다. 도요타가 대량 리콜 사태로 어려움을 겪게 된 배경도 2000년 이후 해외생산 능력을 크게 늘리는 과정에서 품질관리가 허술해졌기 때문이었다. 현대차가 지금처럼 '팽창 전략'을 계속 밀어붙이다가는 도요타가 겪었던 실패를 되풀이할 위험이 있다. 해외 시장 공략을 통해 세계 자동차 업계의 메이저 회사로 올라서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품질관리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속도 조절을 검토할 때가 됐다.
[서울신문 사설-20100928화] 자연재해대책 또 공염불 그쳐선 안된다
정부가 최악의 폭설이나 폭우에 대비하기 위해 재난대책을 강화하기로 한 것은 만시지탄이나 다행스럽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어제 발표한 대책을 보면 사후 복구 중심에서 예방 중심으로 전환하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이제는 현실로 다가온 기상 이변을 감안해서 기존 재난대책의 패러다임을 바꾸려는 시도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만하다. 그에 맞춰 최악의 재난에도 버틸 수 있는 국가재난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려면 좀 더 실효성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정부는 연말까지 극한 기상 예측치를 기준으로 방재시설의 가이드라인을 새로 설정하기로 했다. 방재 설계 기준을 시우량, 즉 시간당 강우량으로 통일하기로 한 것은 100년, 200년 만의 폭우나 폭설에 대비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런 다짐은 다짐만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하수시설, 배수펌프장, 저류지 등을 새 가이드라인에 맞추려면 쉬운 일이 아니다. 이 가운데 단기적인 방안은 즉각 시행에 옮겨야 한다. 예산 문제를 포함한 장기적인 사안은 실행에 앞서 정교한 준비가 필요하다.
소방본부와 건설부서로 이원화돼 있는 지방자치단체의 재난대응시스템을 건설본부로 일원화한 것은 신속한 대응을 위해 바람직하다. 그러나 지난 겨울의 폭설과 올여름 수도권을 강타한 태풍과 폭우에서 경험했듯이 기상청 예보가 늦어지면서 공무원 동원이 지연돼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상황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기상청이 기상 이변 상황을 예보하는 데 실패하더라도 실시간 변동 상황이 중앙정부나 지방정부에 자동적으로 통보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집값 걱정 탓에 상습 수해지역 주민과 해당 지자체들이 자연재해 위험지구 지정을 꺼리는 문제도 중앙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풀어야 한다.
정부가 기존 방재시설을 보강하거나 새로운 인프라를 구축하려면 돈이 관건이다. 급경사지는 재조사 비용만 해도 1조 3000억원이 필요하다. 수도권 이재민 지원금과 각종 금융 지원대책 등에도 한두푼이 드는 게 아니다. 자칫 전시성 대책만을 쏟아내고는 예산 등 현실적인 한계에 막히지 않을까 걱정스럽다.기후변화에 따른 기상재해가 국가적 불행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정부와 정치권은 이번 대책이 또다시 공염불에 그치지 않도록 머리를 맞대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00928화] 공공기관 경영평가 부분 손질 아닌 전면개혁을
기획재정부가 공공기관 경영평가제도 개선방안을 연말까지 마련하기로 했다. 기관과 기관장으로 나뉜 평가체계를 통합하고, 평가지표를 단순화하는 동시에 기관의 성격에 따라 차별화하며 평가위원들의 윤리규정을 강화하겠다는 것이 주된 방향이다. 정부는 이를 통해 공공기관 평가부담을 완화하고, 평가의 신뢰성 및 실효성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동안 제기되어왔던 공공기관 경영평가제도의 문제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었고 보면 얼마나 근본적인 개선책이 마련될지는 지켜 볼 일이다.
정부는 2008년부터 실시된 공공기관 평가가 책임경영 등 공공기관 선진화를 성공적으로 뒷받침했다고 자평하지만 현장에서는 평가의 신뢰성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정부도 인정하듯이 기관과 기관장 평가결과가 딴판으로 나오는 것은 그 단적인 사례에 해당한다. 평가부담이 가중되고 기관의 성격이나 규모를 고려하지 않거나 평가지표가 복잡하다는 지적도 제기돼왔다. 뿐만 아니라 평가위원을 상대로 한 공공기관의 로비 소문이 돌기도 했다.
정부는 이런 문제점을 일부 개선한다면 지금의 공공기관 경영평가제도를 계속 유지해도 무리가 없다고 판단한 듯하다. 하지만 평가체계를 다소 손질한다고 해도 현행 공공기관 경영평가제도의 골격이 바뀌지 않는한 '순위를 매기기 위한 평가' 혹은 '평가를 위한 평가'에서 벗어나기는 어렵다는게 우리 생각이다.
무엇보다 지금과 같은 경영평가제도로는 비용이나 노력에 비해 그 실익이 너무 작다. 공공기관들은 평가기간에 맞춘 단기적 관점에 치우쳐 평가기준에 따라 점수를 올리는 식의 경영에 매몰될 것이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공공기관들의 근본적인 조직문화 혁신과 제대로된 경영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바람직한 방향은 공공기관마다 선진화를 위한 명확한 목표를 설정한뒤, 이를 자율경영과 합리적 성과보상체계 등을 통해 달성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정부가 굳이 현행 평가제도를 유지하겠다면 평가를 컨설팅 방식으로 과감히 전환하거나, 매년 평가를 실시하기보다 기관장 임기와 연계시키는 방안도 검토해 볼만하다. 공공기관을 선진화하려면 평가의 개념과 방식도 선진화되지 않으면 안된다.
* 오늘의 주요 칼럼 읽기
[중앙일보 칼럼-분수대/고대훈(논설위원)-20100928화] 축구 DNA
40대를 넘긴 세대의 어린 시절은 축구와 고무줄로 성별(性別)이 구분됐다. 남자 애들은 ‘둥근 것은 무엇이든 발로 차는 인간의 본능’에 충실해 축구로 하루를 보냈다. 맨땅의 학교 운동장에서 혹은 동네 골목길에서 책가방이나 벽돌로 골대를 만들어 놓고 고무로 된 축구공을 차댔다. 교실 복도에서도 틈만 나면 헌 수건이나 옷가지를 돌돌 말은 걸레를 축구공 삼아 발재간을 겨뤘다.
반면 여자 애들에게 축구는 금기였다. 남녀유별(男女有別)을 미덕으로 여기던 풍조가 남아 있던 때였다. 그러니 온몸을 땀에 적시고 먼지를 뒤집어쓰며 뛰어다니는 말괄량이를 곱게 보지 않았다. 대신 고무줄놀이에 만족해야 했다. 그만큼 축구는 남성의 전유물이었다.
우리나라에 여자축구의 전통이 없던 건 아니다. 영국식 근대 축구가 한국에 전파된 시기는 1882년(고종 19년), 인천항에 상륙한 영국 군함 플라잉호스의 승무원을 통해서다. 그로부터 67년 뒤인 1949년 무학·중앙·명성 3개 여중학교 팀이 출전한 가운데 한국 최초의 여자축구경기가 서울에서 열렸다. 여자농구·여자배구에는 군말이 없었으나 유독 여자축구에는 사회적 반감이 심해 우여곡절 끝에 겨우 성사됐다. 그런 탓인지 한국전쟁 이후 여자축구는 한동안 자취를 감췄다.
세상이 변하는데 축구라고 여성 무풍지대로 남겠는가. 85년 축구협회의 여자축구단이 발족되면서 36년간의 긴 잠에서 깨어나 다시 기지개를 켰다. 여자 학교팀과 실업팀도 속속 창단됐다. 하지만 변변한 지원이나 관심이 없어 ‘그들만의 리그’에 머물렀다. 2002년의 한·일 월드컵과 인도계 축구 소녀의 꿈을 그린 영화 『슈팅 라이크 베컴』은 축구가 남자만의 놀이가 아님을 보여주는 자극제가 됐다. 영국의 여자프리미어리그, 독일의 여자분데스리가, 미아 햄이란 세계적 여자 축구 스타를 배출한 미국의 여자프로축구를 기다리면서 말이다.
우리의 몸에는 ‘축구 유전자(DNA)’가 흐른다고 한다. 신라시대 가축의 방광이나 태반에 바람을 넣어 차거나 던지는 축국(蹴鞠)이란 놀이 형태의 공차기가 저류에 깔려 있다는 것이다. 사실 얇은 줄을 넘나드는 고무줄놀이도 섬세한 발놀림이 없으면 곤란하다. 17세 이하(U-17) 여자 월드컵 우승은 여성이란 이름 아래 숨죽였던 축구 DNA가 분출한 사례가 아닐까 싶다. 이런 기세라면 ‘여자 박지성’이 여자프리미어리그를 휘젓고, 여자분데스리가에서 ‘여자 차붐’이 부는 날이 머지않았다.
[경향신문 칼럼-여적/김태관(논설위원)-20100927화] 승부차기
<페널티킥을 앞둔 골키퍼의 불안>이라는 소설이 있다. 희곡 <관객모독>으로 유명한 독일 작가 페터 한트게의 1970년 작품이다. 소설에서 전직 골키퍼 블로흐는 이렇게 말한다. “골키퍼는 잘 주목하지 않아요. 공이나 공격수에게서 눈을 떼는 것은 부자연스러운 일이지요. 관중들은 슈팅을 했을 때에야 비로소 골키퍼를 쳐다봅니다.” 하지만 페널티킥의 순간엔 경기장의 모든 시선이 일시에 골키퍼에게로 쏠린다. 이때 골키퍼의 부담감을 블로흐는 “한 가닥 지푸라기로 골문을 가리는 심정”이라고 표현한다.
불안하기는 키커도 마찬가지다. 승부차기에서 골키퍼는 5개 중 하나만 막아도 영웅이 되지만, 키커는 단 한 번의 실축으로 역적이 된다. 그래서 승부차기 또는 페널티킥은 키커에게 공포의 ‘러시안 룰렛’이다. 이론상으로 페널티킥은 키커에게 유리하다. 공과 골문 사이의 거리는 11m로, 약 0.5초면 공이 골라인을 통과한다. 반면 골키퍼가 반응하여 움직이는 속도는 약 0.6초라니 공을 막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승부차기는 ‘신의 장난’이라고 한다. 세계적인 골잡이도 어이없는 실축으로 고개를 떨구기 일쑤다. 넣으면 당연하고, 실패하면 역적이 되는 엄청난 부담감 때문이다.
마음이 얼면 몸도 얼어붙는다.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고는 큰 승부에서 평상심을 유지하기란 지극히 어렵다. <열자>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활의 명수 열어구가 백혼무인의 팔 위에 물잔을 올려 놓고 활을 쏘는데, 뒤 화살이 앞 화살과 겹치며 백발백중이었다. 그런데 백혼무인은 태연했다. “이것은 높은 경지가 아닐세. 그대는 높은 산 바위에 서서 100길 낭떠러지를 발밑에 두고서도 그대로 쏠 수 있겠는가?” 둘이 산에 올라 가파른 절벽에 서니, 열어구는 덜덜 떨었다. 백혼무인이 말했다. “그대는 두려워 눈을 감았구려. 지극한 경지에 오른 이는 백척간두에 서도 평지나 다름없는 법일세!”
17세 이하 여자월드컵 결승전 승부차기에서 6번째 키커 장슬기 선수가 나섰을 때 모두가 가슴을 졸였다. “장 선수, 압박감을 이겨야 해요.” TV 중계자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공이 총알처럼 날아가 골망을 갈랐다. 대한민국의 소녀들은 벼랑끝에서도 떨지 않았다. 떤 것은 선수가 아니라 오히려 관객이었다. 보아도 보아도 질리지 않는 유쾌한 ‘관객모독’이다.
[매일경제신문 칼럼-데스크 칼럼/황국성(문화부장)-20100928화] 유인촌 장관과 최종원 의원
* 연기생활 40년 동반자였던 두 사람, 자리에 따라 각 세우는 모습 안타까워… 문화예술 위해 머리 맞대야
예상대로 두 사람은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한 사람이 까칠하게 물으면, 다른 한 사람은 빈틈없는 논리로 맞섰다. 또 한 사람이 사자후를 토하듯 격하게 몰아붙이면, 상대는 최대한 차분하게 응대했다. 지난 8일 열린 국회 문화체육관광통신위원회는 시작 전부터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날은 최종원 의원이 7ㆍ28재보선 당선 후 처음으로 유인촌 장관과 맞짱 뜨는 날이었다. 그는 국회의원 배지를 달기 전부터 "(유 장관은) 한 대 맞고 시작해야 한다"며 날을 세웠다.
"장관, 조희문(영화진흥위) 위원장에게 사퇴하라고 얘기한 적 있습니까." 검은색 생활한복 차림에 모자를 쓴 최 의원은 작심한 듯 `선방`을 날렸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유 장관은 잠시 당황해 "네?" 하고 되묻기도 했다. 이렇게 시작된 두 사람의 첫 만남은 `막말` 논란, `MB정부 문화예술정책`에 이어 유 장관의 개인재산 기부에 이르기까지 팽팽하게 전개됐다.
사실 두 사람의 대결은 불발로 그칠 일이었다. 유 장관은 신재민 차관이 문화부 장관 후보자로 내정된 후 짐을 싸놓았다. 언론사 문화부장들과의 환송자리에선 "(퇴임 후에)전국을 자전거로 돌며 머리를 식히겠다. 연극을 하자는 요청이 들어오는데 차차 생각해 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당시 그는 2년6개월의 현 정부 최장수 장관, 역대 최장수 문화부 장관이라는 무거운 짐을 벗어던진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그의 바람과는 달리 후임 장관 일이 묘하게 흘러갔고, 유 장관은 싸던 짐을 다시 풀어야 했다. 어쩌면 두 사람은 서로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고나 할까.
유 장관과 최 의원은 같은 연배(최 의원이 1950년생으로 한 살 많다)에다 40년 넘게 연기생활을 해왔다. 비슷한 길을 걸어온 것이다. 최 의원은 1970년 연극 `콜렉터`로 데뷔했고, 유 장관이 1년 뒤 연극 `오델로`로 연기를 시작했다. 이후 두 사람은 연극ㆍ영화ㆍTV를 오가며 연기생활의 꽃을 피웠다. 유 장관이 `전원일기` 김 회장네 둘째 아들로 부드럽고 선한 이미지를 남겼다면, 최 의원은 직설적이고 강한 캐릭터로 두터운 팬을 확보했다.
묘하게도 그렇게 오랜 세월 연기생활을 해왔지만 두 사람이 함께 출연한 작품은 거의 없다. 필자 기억으로는 1989년에 개봉한 영화 `아제아제바라아제` 정도만 꼽을 수 있다. 따라서 딱히 친하지도, 소원하지도 않은 사이였다.
그러던 두 사람이 장관과 국회의원이라는 다른 위치에서 만난 것이다. 유 장관은 취임 이후 싫든 좋든 줄곧 여론의 관심을 받아왔다. 잠잠해질 만하면 뭔가 하나씩 터졌다. 역대 문화부 장관 중에서 가장 많은 주목을 끈 사람을 꼽으라면, 아마 유 장관은 DJ정부 실세였던 박지원 장관과 첫째자리를 다퉜을 것이다.
MB정부 출범 후 `유인촌의 문화부`는 새로운 문화정책 패러다임을 내세웠다. 보다 많은 사람이 문화를 즐길 수 있어야 하고, 성과가 있어야 기금을 지원해주었다. 참여정부가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였다면 MB정부는 `지원하되 검증받아야 한다`는 방식이다. 문화계 일각에서는 문화계 인사에 대한 매끄럽지 못한 해임과정도 문제 삼았다. 이는 최 의원에게 유 장관을 몰아붙일 수 있는 좋은 빌미가 되기도 했다.
대개 정책의 성패는 몇 년이 지난 다음에야 나타난다. 계량화하기 어려운 문화예술정책은 더더욱 긴 호흡이 필요하다. 따라서 필자는 이 난에서 `유인촌식 문화정책`에 대한 섣부른 평가와 판단은 피하고자 한다.
다만 문화예술계를 대표하는 인사들이 `보수와 진보` `내 편과 네 편` 하는 식으로 갈려 각을 세우는 모양새가 안타까울 뿐이다. 새 총리 후보자의 결정으로 유 장관이 자연인으로 돌아갈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두 사람이 서로 오해와 진실을 터놓고 얘기하며, 문화예술을 위해 함께 머리를 맞댈 시간도 길지 않다.
[서울경제신문 칼럼-데스크 칼럼/강창현(정보산업부장)-20100928화] 휴대폰 보조금의 딜레마
기업들의 과점과 담합에 대한 정부 규제는 시장경제에서 항상 '뜨거운 감자'로 논란이 돼왔다. 정상적인 시장기능의 확립을 위해 정부 개입이 필요하다는 대의명분과 자사 이익 극대화를 위한 기업 경영활동이 상충되기 때문이다.
지난주 추석연휴가 끝나자마자 방송통신위원회는 차별적인 보조금을 지급해 이용자의 이익을 저해했다는 이유로 SK텔레콤ㆍKTㆍLG유플러스 등 이동통신 3사에 시정명령과 함께 203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보조금 상한선도 27만원으로 제한했다. 이번 조치는 지난 2008년 휴대폰 보조금 규제가 없어진 뒤 처음이며 과징금 액수도 현 정부 출범 이후 최대 규모다. 이통사들의 과도한 보조금이 줄어들면 상대적으로 투자여력이 커져 서비스 질이 높아질 것이라는 게 방통위의 입장이다.
* 스마트폰 활성화에 역행
이통사들은 방통위가 무서워(?) 직접 대응을 자제하고 있지만 속내는 다르다. 이번 조치가 스마트폰 활성화에 역행된다는 주장이다. 단말기 보조금 지급 규제로 앞으로 소비자들은 90만원이 넘는 고가의 스마트폰 구매에 부담을 가지고 당연히 스마트폰 보급도 그만큼 주춤거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세계를 주도해온 우리 정보기술(IT)산업에 찬물을 끼얹는 사건이 스마트폰이었다. 지난해 애플의 아이폰발 스마트폰 열풍이 세계를 휩쓸었을 때 우리 기업들은 주역이 되지 못하고 한편에 비켜난 형국이었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도 이와 관련,"스마트폰 쇼크로 한국이 위태롭다. 우리나라가 스마트폰 도입이 늦은 것은 정부와 기업 모두가 음성통화 위주의 현 시장에 안주해왔기 때문이다. 삼성과 LG의 전세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3% 수준은 부끄러운 일"이라는 발언을 잇따라 내놓으면서 국내 스마트폰 산업을 독려했다.
이에 대응 국내업체들은 경쟁력 있는 스마트폰을 출시하고 다양한 요금제 도입 경쟁으로 스마트폰 구매 부담을 낮췄다. 또 해외 통신업체들이 도입을 꺼리는 무제한 무선데이터서비스를 실시해 스마트폰 사용 환경 수준을 높였다.
방통위가 보조금 규제 이유로 밝히고 있는 투자활성화, 요금 인하 명분도 최근의 상황에서는 적절하지 않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통사들은 정부의 압박에 밀려 요금을 인하했지만 최근에는 소비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경쟁적으로 요금 인하, 무선인터넷 활성화 조치를 선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4G(4세대) 통신망 투자계획을 앞당기고 와이파이망 투자도 늘리고 있다.
사실 휴대폰 보조금을 둘러싼 정부와 기업의 줄다리기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보조금 문제는 통신망의 진화와 맞물려 '허용과 규제'를 거듭해왔다. 정부는 통신망이 진화할 때마다 신기술 보급이라는 명분 아래 보조금을 허용해 신형 휴대폰 보급을 독려했으며 요금 인하를 위해 마케팅 과다경쟁이라는 이유를 들어 보조금을 규제해왔다.
* 한국에서만 보조금 규제
2008년 3월 단말기 보조금 규제법은 관련 당사자 간의 치열한 논쟁 끝에 폐지됐다. 그런데 이번 조치로 법으로 폐지된 휴대폰 보조금 규제법이 행정지도로 사실상 부활하고 있는 셈이다. 해외에서도 법으로 보조금 규제를 하는 나라는 그동안 핀란드가 유일했으나 3G(3세대)로 넘어오면서 '시장 활성화가 안 된다'는 이유로 폐지된 상태다.
그렇다면 급변하는 통신 시장에서 정부의 역할은 무엇일까. 적법성 논란이 있는 행정지도로 기업에 불이익을 주는 것보다 기업들이 경쟁할 수 있는 환경 조성에 더 무게중심을 둬야 한다. 스마트폰 활성화 측면에서 정부의 정책과 보조금 규제는 서로 엇박자가 될 수 있다.
결국 선택은 소비자에 달렸다. 연말에는 국내 스마트폰 보급률이 10% 정도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소비자들은 스마트폰을 보다 싼 가격으로 구입하는 정책에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