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 채재순
우리는 아직 피난민이다 철조망 거두고 늠름히 걸어갈 수 있다고 그날이 곧 온다고 살아갈수록 잠들지 못하는 북청사자들이 실향의 겨울을 울고 있다 두고 온 북녘 하늘을 부르며 무너진 원산행 철교 위를 청초호 갈매기떼 끼룩이고 위대한 봄은 도착하지 못했다 숯처럼 쓰러져 있는 이 도시의 성 길조차 함박눈이 지워버리려는데 피난민 실은 목선이 어슴 새벽을 떠나고 있다 - 시작노트 - 수복지구인 속초엔 봄이 오지 않았다. 실향민들에겐 늘 겨울만이 존재할 뿐이다. 남북 관계가 호전 될 때마다 실향민들의 꿈은 부풀곤 했는데, 꿈은 꿈으로만 끝나버리곤 했다. 북청사자놀음을 하면서 고향을 그리워하던 어른들이 이 세상을 떠나면서 속초는 고향으로 가는 길조차 지워지는 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게 되었다. 그러나 늠름하게 고향을 향해 걷고자 하는 그들의 염원이 있는 한 속초는 사그라든 재가 아니라 다시 타오를 숯이다. 아직 피난민이며 실향민이지만 포기할 수 없는 그들의 마음이 있기에 속초를 제2의 고향이라고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된다. 그들에겐 북녘에 두고 온 제 1의 고향만 있을 뿐이다. 살아갈수록 잠 못 드는 실향민들의 고향을 향한 뜨거운 염원이 꿈틀거리고 있는 한 속초에 위대한 봄은 올 것이다. ·강원 원주 출생 ·1994년 시문학으로 등단 ·1999년 첫시집 ‘그 끝에서 시작되는 길’ 발간 ·갈뫼, 산까치, 빈터 동인 ·현재 대포초등학교 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