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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렬 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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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쓰기감상방 스크랩 에프킬라를 뿌리며/ 이상국
향목 추천 0 조회 46 17.05.31 19:3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에프킬라를 뿌리며/ 이상국


자다 일어나 에프킬라를 뿌린다

향긋한 안개가 퍼지고
나를 공격하던 모기들은 입이 무너지고 날개가 녹아내리고
죽었다.

싸움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국은 일본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렸다
수십만이 하루살이처럼 죽었다

그들은 다시 베트남에 고엽제를 살포하여
초목의 씨가 마르고
수백만의 인민들이 죽거나 천천히 썩었다

나는 모기에게 이긴 게 아니라
그가 공격하면 나도 맨손으로 싸워야 했다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다가
나는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 박찬일 엮음 <시간 있는 아침> (토담미디어,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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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씨가 더워지면서 여름의 최대 숙적 모기 때문에 벌써 걱정이다. 모기퇴치용품 가운데 ‘에프킬라’는 가정용 스프레이 살충제의 대명사다. 그러나 곤충을 죽일 수 있는 물질이면 사람에게도 해가 되는 것은 명약관화한 이치다. 세상의 모든 싸움이 그렇듯 모기와의 싸움에서도 나는 절대로 다치지 않고 안전하다는 보장은 어림없다. 대표적 유해성분인 ‘퍼메트린’은 발암 가능성이 의심되는 내분비계장애물질인 환경호르몬으로 알려져 있다. 예민한 사람일 경우 기관지 천식, 메스꺼움, 두드러기, 구토 등의 증세를 유발할 수 있다. 면역력이 떨어진 남성은 성기의 크기가 작아지고 정자 수가 감소하는 등의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단다.

  에프킬라가 그럴진대 밀림을 초토화시킨 고엽제는 말해 뭐하랴. 베트남전쟁에서 미군은 밀림이나 땅굴에 숨어 지속적으로 게릴라전을 벌이는 베트콩을 압박하고 비밀수송로로 이용되어온 정글을 제거하기 위해 대규모 고엽제를 살포하였다. ‘다이옥신’이 함유된 고엽제의 공격을 받은 나무의 꽃과 열매는 물론 거의 모든 잎사귀가 2~3주 내에 말라 떨어졌다. 공중에서 살포되는 고엽제에 미군부터 주민들, 우리 참전용사까지 무방비로 노출되었다. 다이옥신은 1g으로 2만 명을 죽일 수 있을 정도의 가공할 독성물질이다. 당시 고엽제 위험성을 인지 못한 체 수행된 작전에 ‘초목의 씨가 마르고 수백만의 인민들이 죽거나 천천히 썩었다.’

  영화 <굿모닝 베트남>의 라디오방송 진행자 로빈윌리엄스는 매일 아침마다 외쳤다. “어제 죽지 않고 오늘 베트남에서 좋은 아침을 맞이하셨나요?” 고엽제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어제 죽지 않았을지라도 조금씩 죽어갔고 남은 평생 좋은 아침을 맞이할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또한 위험천만한 놀이겠으나 어린 시절 뿌연 연막을 피우는 소독차(방구차라고도 불렸던)를 명랑하게 뒤따랐던 기억이 있다. 아이들은 소독약 연기인 줄 알면서도 연기를 마시며 끝까지 뒤를 쫓아갔다. 베트남에서도 고엽제를 더위에 단비마냥 웃통을 벗고 시원하게 맞았다. 모기약이라며 고엽제가 쏟아지는 곳을 쫓아다니면서 조금이라도 더 맞으려 했다.

  전쟁이 끝난 뒤 고엽제의 후유증은 오래가지 않아 그 진상이 드러났다. 전 주월 미군총사령관 웨스트 모랜드 육군대장을 증인으로 청문회에 출석시키는 등 한때 미국의 정계는 떠들썩했으며 큰 사회문제로 대두되었다. 구체적인 보상이 이뤄지고 미국에서는 큰 이슈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대한민국 제5공화국 정부에서는 정권 유지에 급급했다. 골치 아픈 문제를 고의로 외면하고 미국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철저한 보도 통제와 억압을 가했다. 실제로 1984년 중앙일보에서 고엽제문제를 최초 보도하였으나 압력을 가하여 보도기자를 해고시키고 타 언론사에 보도하지 못하도록 통제하였다.

  한국에서는 대부분 그런 사실을 모른 채 40대의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들은 왜 자기가 죽어 가는지 몰랐고 병원에서조차 알지 못했다. 난치병임을 뒤늦게 안 일부 참전군인은 더 이상 가족에게 고통을 줄 수 없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심지어 당시 사회는 그들이 베트남에서 못된 짓을 하다가 고약한 성병, 국제 매독에 걸렸다고 조롱하며 매도했다. 점잖게 말하는 이들은 ‘베트남 풍토병’이라고 불렀다. 사실 자기 자신도 그렇게 알고 죽은 사람이 수두룩했다. 지금은 약소하나마 매월 22만원의 참전명예수당과 등급에 따라 40여만 원에서 80여만 원까지 고엽제후유의증수당을 받고 있지만, 억울하게 먼저 간 그들은 보상은커녕 몸 주고 뺨맞고, 국 쏟고 거시기 데이고 소박맞은 신세로 시름시름 앓다 가버렸다.


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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